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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1번= {{TagSpage|129}}本書는 鄙藏한 編者 未詳의 寫本이다. 그러나 表紙 內面에 <cite no="XX">「癸丑十月十日 冊主朴琪俊」</cite>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年 以前의 寫本인 것은 疑心 없다. 뿐만 아니라 그 體裁로 보아 或은 이것이 그 當時 編著가 出版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實行되지 못한 채 남은 그 原稿本이 아니었던가 하는 疑心도 있다. 그것은 그 書頭에 本文의 漢熟語와 漢詩句를 漢字 그대로 表出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本書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歌曲을 써있는데 그에는 一々히 朱로 傍點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암만 하여도 原稿本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傍證이 될 듯싶으나 本書 下半을 써내려가 御史가 아직 春香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來日의 卞使道 生日宴을 기다리면서 廉聞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旅客집을 들어 行客들이 華容道를 읽는 것을 보고 <cite no="XX">「어허 그道令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cite>하여 놓고 그다음에 <cite no="XX">「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은 中에 四名唱 過客들이 들어와서 各所長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壯觀일네라. 이때 살보 權先達이 들어오며 놀보제」</cite>를 썼다가 (本書 第88張 裏面) 지우고, <cite no="XX">「이때 御史道 春香집 近境을 다다르니 云々」</cite>에 繼續하였는데, 이 削除한 部分을 그 뒤 御史가 春香을 獄中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女人이 명을 자으면서 春香의 貞節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cite no="XX">「春香貞節은 사람마다 아는데 卞使道는 人類가 아니로다」</cite>한 다음에 옮겨<cite no="XX">「이때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운中에 四名唱 過客이 들어와 各其所長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權{{TagPage|130-1}}先達이 늘보倻 제비대문을 云云」</cite> (本書 第94張 裏面)이라고 썼다. 이것은 筆寫時에 或 謄寫者가 그 頁次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移寫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cite no="XX">「그러구러 이튿날 되여」</cite>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確實히 膽寫 時의 頁次 잘못으로 因한 削除가 아니고 原作者 自身이 改刪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本書는 可히 原作者의 原稿本이라는 疑心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목차7원문1번= {{TagSpage|129}}本書는 鄙藏한 編者 未詳의 寫本이다. 그러나 表紙 內面에 <cite no="XX">「癸丑十月十日 冊主朴琪俊」</cite>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年 以前의 寫本인 것은 疑心 없다. 뿐만 아니라 그 體裁로 보아 或은 이것이 그 當時 編著가 出版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實行되지 못한 채 남은 그 原稿本이 아니었던가 하는 疑心도 있다. 그것은 그 書頭에 本文의 漢熟語와 漢詩句를 漢字 그대로 表出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本書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歌曲을 써있는데 그에는 一々히 朱로 傍點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암만 하여도 原稿本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傍證이 될 듯싶으나 本書 下半을 써내려가 御史가 아직 春香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來日의 卞使道 生日宴을 기다리면서 廉聞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旅客집을 들어 行客들이 華容道를 읽는 것을 보고 <cite no="XX">「어허 그道令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cite>하여 놓고 그다음에 <cite no="XX">「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은 中에 四名唱 過客들이 들어와서 各所長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壯觀일네라. 이때 살보 權先達이 들어오며 놀보제」</cite>를 썼다가 (本書 第88張 裏面) 지우고, <cite no="XX">「이때 御史道 春香집 近境을 다다르니 云々」</cite>에 繼續하였는데, 이 削除한 部分을 그 뒤 御史가 春香을 獄中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女人이 명을 자으면서 春香의 貞節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cite no="XX">「春香貞節은 사람마다 아는데 卞使道는 人類가 아니로다」</cite>한 다음에 옮겨<cite no="XX">「이때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운中에 四名唱 過客이 들어와 各其所長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權{{TagPage|130-1}}先達이 늘보倻 제비대문을 云云」</cite> (本書 第94張 裏面)이라고 썼다. 이것은 筆寫時에 或 謄寫者가 그 頁次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移寫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cite no="XX">「그러구러 이튿날 되여」</cite>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確實히 膽寫 時의 頁次 잘못으로 因한 削除가 아니고 原作者 自身이 改刪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本書는 可히 原作者의 原稿本이라는 疑心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목차7원문2번= {{TagSpage|130-2}}그리고 本書는 一行 17, 18字 乃至 22, 23字, 每頁 12行의 105張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歌曲 本意로 編纂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朱墨으로 傍點을 치고 그 始作되는 옆에는「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중머리쇠옥성」, 「진양아라리」, 「애원성진양제」, 「애원성중머리」,「진양애원성」, 「중머리애원성」, 「중꾹거리」, 「들치기폭이목」, 「폭이목애원성」, 「쇠옥성중머리」, 「머리시조목」, 「항성진양제폭이목」 等의 曲名을 註記하였다. 이것은 全혀 本書에 와서 처음으로 試驗한 것이고 또 以後의 異本에서도 別로히 볼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많은 노래를 含有하여 普通 春香歌에서 듣지 못하는「베틀노래」라먼지「處士歌」라든지 「새타령」이라든지「華容道」라든지「搬葬歌」라든지 이러한 노래가 數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플로트라든지 그 內容 李明善氏本과 完版本 兩本을 折衷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그 몇몇 重要한 것을 들어 보면 첫째 李道令이 廣寒穰서 房子시켜 春香 불렀을 때 李明善氏本은 春香이 房子에게 雁 蝶 蟹 鳩 넉宇를 써 주고 갔었다 하였으나 本書는 이 것을 取하되 多少 그를 具體化시켜 雲從龍 風從虎 贋遊沙 蝶隨花라는 文句를 써 주었다 하였으며, 또 李明善氏本은 李道令이 房子들 데리고 첫날 밤에 春香집을 찾아 갈 때 익살스러운 房子란 놈이 점잖은 道令님을 無限{{TagPage|131-1}}이 쓰달려「房子」라 부르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 하고 道令을 辱보였으나, 本書 또한 그것을 자미있게 보았든가 차마 그 부르지 못할 이름은 云云하지 아니하고 房子가 朴春伯이라는 제 字를 불러 달라 하였으며 李道令은 房子놈이 암만 달래도 잘 가지 안함으로 그놈이 돈 생각이 있어 그런줄 짐작하고 三百兩 票紙를 해 주었다 하여 있다. 그리고 그 다음 離別하는 場面에 가서는 使道가 同副承旨에 陞差하였다는 것, 李道令이 春香을 腰輿에라도 넣어 가겠다는 것은 完版本에 따랐고 明鏡과 指環을 信物로 交換하고 春香이 다시 五里亭에서 道令을 餞送하였다는 것은 李明善氏本에서 取하여 왔다. 또 新官 卞俠道 到任 後 春香이 獄에 갇혀서 自嘆하고 울다가 黃陵廟의 꿈을 꾸고 따라 獄窓櫻桃花落의 꿈을 꾸어 지나가는 장님을 불러 解夢하는 것은 完版本의 플로트를 좇았으나 여기는 그 장남을 朴봉사라 하였고 嘉屋 云々은 없으되 장님이 春香의 다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揷入하였다. 이 謔談은 京版本 以來 李明善氏本에도 있었던 것인데 完版本에는 어쩐 일인지 없어졌던 것을 여기 다시 復活시킨 것이다. 그다음 이것은 別로 神通치 못한 이야기지마는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 途中에 李明善氏本에 御史가 書堂에 들렀다가 書堂 學生에게 속아 土塚에 가서 春香의 墓인줄 알고 울다가 主人에게 辱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本書에도 이것을 갖다 써서 여기는 書堂 學生에게 속았다 하지 아니하고 총각 노래에서 春香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으며 墓主는 龍生員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後 절에 들어 水陸祭를 보았다던가 香丹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것은 本書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  
 
|목차7원문2번= {{TagSpage|130-2}}그리고 本書는 一行 17, 18字 乃至 22, 23字, 每頁 12行의 105張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歌曲 本意로 編纂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朱墨으로 傍點을 치고 그 始作되는 옆에는「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중머리쇠옥성」, 「진양아라리」, 「애원성진양제」, 「애원성중머리」,「진양애원성」, 「중머리애원성」, 「중꾹거리」, 「들치기폭이목」, 「폭이목애원성」, 「쇠옥성중머리」, 「머리시조목」, 「항성진양제폭이목」 等의 曲名을 註記하였다. 이것은 全혀 本書에 와서 처음으로 試驗한 것이고 또 以後의 異本에서도 別로히 볼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많은 노래를 含有하여 普通 春香歌에서 듣지 못하는「베틀노래」라먼지「處士歌」라든지 「새타령」이라든지「華容道」라든지「搬葬歌」라든지 이러한 노래가 數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플로트라든지 그 內容 李明善氏本과 完版本 兩本을 折衷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그 몇몇 重要한 것을 들어 보면 첫째 李道令이 廣寒穰서 房子시켜 春香 불렀을 때 李明善氏本은 春香이 房子에게 雁 蝶 蟹 鳩 넉宇를 써 주고 갔었다 하였으나 本書는 이 것을 取하되 多少 그를 具體化시켜 雲從龍 風從虎 贋遊沙 蝶隨花라는 文句를 써 주었다 하였으며, 또 李明善氏本은 李道令이 房子들 데리고 첫날 밤에 春香집을 찾아 갈 때 익살스러운 房子란 놈이 점잖은 道令님을 無限{{TagPage|131-1}}이 쓰달려「房子」라 부르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 하고 道令을 辱보였으나, 本書 또한 그것을 자미있게 보았든가 차마 그 부르지 못할 이름은 云云하지 아니하고 房子가 朴春伯이라는 제 字를 불러 달라 하였으며 李道令은 房子놈이 암만 달래도 잘 가지 안함으로 그놈이 돈 생각이 있어 그런줄 짐작하고 三百兩 票紙를 해 주었다 하여 있다. 그리고 그 다음 離別하는 場面에 가서는 使道가 同副承旨에 陞差하였다는 것, 李道令이 春香을 腰輿에라도 넣어 가겠다는 것은 完版本에 따랐고 明鏡과 指環을 信物로 交換하고 春香이 다시 五里亭에서 道令을 餞送하였다는 것은 李明善氏本에서 取하여 왔다. 또 新官 卞俠道 到任 後 春香이 獄에 갇혀서 自嘆하고 울다가 黃陵廟의 꿈을 꾸고 따라 獄窓櫻桃花落의 꿈을 꾸어 지나가는 장님을 불러 解夢하는 것은 完版本의 플로트를 좇았으나 여기는 그 장남을 朴봉사라 하였고 嘉屋 云々은 없으되 장님이 春香의 다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揷入하였다. 이 謔談은 京版本 以來 李明善氏本에도 있었던 것인데 完版本에는 어쩐 일인지 없어졌던 것을 여기 다시 復活시킨 것이다. 그다음 이것은 別로 神通치 못한 이야기지마는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 途中에 李明善氏本에 御史가 書堂에 들렀다가 書堂 學生에게 속아 土塚에 가서 春香의 墓인줄 알고 울다가 主人에게 辱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本書에도 이것을 갖다 써서 여기는 書堂 學生에게 속았다 하지 아니하고 총각 노래에서 春香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으며 墓主는 龍生員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後 절에 들어 水陸祭를 보았다던가 香丹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것은 本書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  
|목차7원문3번= {{TagSpage|131-3}}以上은 李明善氏本과 完版本에서 影響받는 點을 들었으나, 또 그렇다 하여 本書가 노상 以上 兩本의 折衷主義로만 그치지 않았다. 間이 本書로서의 新案도 있었으니 일터이면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보고 한참 빵憾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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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3번= {{TagSpage|131-3}}以上은 李明善氏本과 完版本에서 影響받는 點을 들었으나, 또 그렇다 하여 本書가 노상 以上 兩本의 折衷主義로만 그치지 않았다. 間이 本書로서의 新案도 있었으니 일터이면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보고 한참 恍憾하여 {{TagPage|132-1}}저서 房子에게 그것이 金이나 玉이냐 물으면 房子가 金도 아니다 玉도 아니다 對答하였는데 本書는 그 對答하는 主客을 뒤바꿔 房子가 도리어 道令에게 金이냐 玉이냐라고 부르면 道令이 金도 아니다 玉도 아니다라고 對答하였다하고, 또 李道令은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春香의 편지를 받는 것은 京版本 以外 다른 異本은 다 있었던 것이나 그러나 春香에게는 獄中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 李道令에게 부쳤다는 事實이 이때껏 없었다. 이것은 事實로 보아 確實한 矛盾이라 하여야 될 것을 以前 異本은 認識치 못하고 왔던 것인데 本書는 이 點을 分明히 하여 春香이 獄中에서 편지를 써 부쳤다 하고 그나마 그 편지는 前日 房子가 가지고 京城으로 가던 길인데, 御史가 반가이 그 房子를 만나 편지도 받았을 뿐 아니라 春香의 事情도 들어 비로소 李道令이 卞使道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 決心하였으며, 그 房子에게는 自己가 내려가잔 前에는 아모 말을 말라 당부하아 보내고 靑坡驛卒에게는 다시 通寄하여 卞使道 生日인 某日에 南原서 出道를 할 것이니 그때까지 廣寒樓로 待令하라 命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事件은 順調로히 展開되었었다. 또 御史는 三門에 御史出道를 하고 廣寒樓에서 坐起하여 春香을 呼來하였다 하며, 御史가 玉指環을 내어 春香을 주었을 때 春香은 처음에는 或 李道令이 그 몸이 窮하니 남에게 팔지나 않았나 疑心하였다 한다. 그리고 끝은 <cite no="XX">「春香을 本宅으로 治送하니라 그뒤야 누가 알리요」</cite>로 막음하여 讀者의 想像에 맡겨버리고 뒤 消息은 말하지 않아 얼마큼 以前 異本의 形 態를 깨트린 느낌도 있다.
{{TagPag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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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4번= {{TagSpage|132-2}}以上으로 大綱 本書의 概括的 紹介를 마치었으나 끝으로 한가지 더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李道令은 이름 을 夢龍이라 하였으나 春香은 바로 南原 妓生 成春香이라 하였다. 따라서 처음에 完版本과 같은 人物 紹介가 없이 從來의 異本 形式을 그대로 쫓았다.그리고 春香 李道令의 첫날밤 結緣에 있어서는 李道令이 春香에 對하여 約婚을 請하{{TagPage|133}}니 春香이 처음에는 拒絶 하는 듯하더니 어느 사이에 許諾한단 말도 없고, 또 手記를 써 달라 한 적도 없이 저절로 結合하여 버렸다. 春香을 妓生으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閭閻집 處子로 昇格시켜 다시 成參判의 딸을 만든 것은 春香傳으로 보아서 한 發達이요 또 完版本의 한 功勞라 하여야 될 것인데 本書는 어찌하여 그 影響은 받고 있으면서 春香만 다시 妓生으로 되돌려버렸을까, 생각컸댄 本書는 앞에서 說來하여 온 바와 같이 李明善氏本과 完版本 兩本의 影響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事實이나 이 兩本은 春香의 身分에 對하여 各其 닯았던 것이다. 即 李明善氏本은 妓生이라 하였고 完版本 閻閻家 處女라 하였던 것인데, 春香을 非妓生이라 한 것은 勿論 完版本의 創說이요 同時에 以前 傳來에는 없는 말이다. 이 本書로서 볼 때 多少라도 寫實에 置重하자면 亦是 春香은 妓生에 그대로 두는 것이 有利하지 않을까 하여 完版本의 그것을 取하지 않은 듯싶다. 本書의 이러한 態度는 곳々이 보인다 할 수 있으니 春香을 妓生 그대로에 두고 李道令이 春香집을 가서 約婚을 請할 때 別로 手記 云이 없었다는 것도 그것이지마는 또 春香이가 獄中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에 부쳤다는 것이라든지, 李道令은 南原治行 途中에서 그 편지를 보고 비로소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辱을 當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南原서 出道할 것을 決定하였다는  것도 그것인데, 從來의 春香傳은 御史가 비로소 春香의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不分明하고 途中에서 農夫에게 探內하여서 알았다 하지마는 그것이 너무도 微微하여 마치 御史가 벌서 그 事實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春香의 편지라 하더라도 以前本은 大概 御史가 어디서 받느냐 하면 農夫에게 探問한 以後에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春香의 편지는 퍽 無力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本書는 그 편지를 農夫와 만나잔 前, 御史治行을 하고 나오는 처음에 보았다 하였다. 이리하여 春香의 편지 一張이 많은 效果를 나타내게 되고 또 그 다음 農夫와의 問答도 無理가 없이 順々히 展開되{{TagPage|134}}어 나갈 것이다. 이外도 이러한 것을 찾으면 또 있을 것이나 要컨대 本書의 取할 點은 여기에 있고 또 本書의 價値 있는 곳이라 하겠다.
|목차7원문4번= {{TagSpage|XXX}} {{TagPage|XXX}}
 
  
 
|목차7해독문1번= 본서는 폐장한 편자 미상의 사본이다. 그러나 표지 내면에 <cite no="XX">「계축십월십일 책주박기준」</cite>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년 이전의 사본인 것은 의심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체재로 보아 혹은 이것이 그 당시 편저가 출판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실현되지 못한 채 남은 그 원고본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도 있다. 그것은 그 서두에 본문의 한숙어와 한시구를 한자 그대로 표출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본서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가곡을 써있는데 그에는 일일이 주로 병점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아무래도 원고본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방증이 될 듯싶으나 본서 하반을 써내려가 어사가 아직 춘향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내일의 변사도 생일연을 기다리면서 청문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여객집을 들어 행객들이 화용도를 읽는 것을 보고 <cite no="XX">「어허 그도령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cite>하여 놓고 그다음에 <cite no="XX">「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은 중에 사명창과객들이 들어와서 각소장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장관일네라. 이때 살보 권선달이 들어오며 놀보제」</cite>를 썼다가 (본서 제88장 뒷면) 지우고, <cite no="XX">「이때 어사도 춘향집 근경을 다다르니 으뜸」</cite>에 계속하였는데, 이 삭제한 부분을 그 뒤 어사가 춘향을 옥중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여인이 명을 자으면서 춘향의 정절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cite no="XX">「춘향정절은 사람마다 아는데 변사도는 인류가 아니로다」</cite>한 다음에 옮겨<cite no="XX">「이때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운중에 사명창과객이 들어와 각기소장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권선달이 늘보턱 제비대문을 으뜸」</cite> (본서 제94장 안면)이라고 썼다. 이것은 필사시에 혹 전사자가 그 페이지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이사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cite no="XX">「그러구러 이튿날 되여」</cite>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전사 시의 페이지 잘못으로 인한 삭제가 아니고 원작자 자신이 개천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본서는 가히 원작자의 원고본이라는 의심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목차7해독문1번= 본서는 폐장한 편자 미상의 사본이다. 그러나 표지 내면에 <cite no="XX">「계축십월십일 책주박기준」</cite>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년 이전의 사본인 것은 의심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체재로 보아 혹은 이것이 그 당시 편저가 출판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실현되지 못한 채 남은 그 원고본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도 있다. 그것은 그 서두에 본문의 한숙어와 한시구를 한자 그대로 표출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본서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가곡을 써있는데 그에는 일일이 주로 병점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아무래도 원고본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방증이 될 듯싶으나 본서 하반을 써내려가 어사가 아직 춘향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내일의 변사도 생일연을 기다리면서 청문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여객집을 들어 행객들이 화용도를 읽는 것을 보고 <cite no="XX">「어허 그도령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cite>하여 놓고 그다음에 <cite no="XX">「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은 중에 사명창과객들이 들어와서 각소장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장관일네라. 이때 살보 권선달이 들어오며 놀보제」</cite>를 썼다가 (본서 제88장 뒷면) 지우고, <cite no="XX">「이때 어사도 춘향집 근경을 다다르니 으뜸」</cite>에 계속하였는데, 이 삭제한 부분을 그 뒤 어사가 춘향을 옥중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여인이 명을 자으면서 춘향의 정절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cite no="XX">「춘향정절은 사람마다 아는데 변사도는 인류가 아니로다」</cite>한 다음에 옮겨<cite no="XX">「이때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운중에 사명창과객이 들어와 각기소장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권선달이 늘보턱 제비대문을 으뜸」</cite> (본서 제94장 안면)이라고 썼다. 이것은 필사시에 혹 전사자가 그 페이지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이사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cite no="XX">「그러구러 이튿날 되여」</cite>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전사 시의 페이지 잘못으로 인한 삭제가 아니고 원작자 자신이 개천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본서는 가히 원작자의 원고본이라는 의심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목차7해독문2번= 본서는 일행 17, 18자 내지 22, 23자, 매페이지 12행의 105장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가곡 본의로 편찬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주묵으로 병점을 치고 그 시작되는 옆에는 '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 '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 '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중머리쇠옥성', '진양아라리', '애원성진양제', '애원성중머리', '진양애원성', '중머리애원성', '중꾹거리', '들치기폭이목', '폭이목애원성', '쇠옥성중머리', '머리시조목', '항성진양제폭이목' 등의 곡명을 주기하였다. 이것은 전혀 본서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고 또 이후의 이본에서도 별로 볼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많은 노래를 함유하여 보통 춘향가에서 듣지 못하는 '베틀노래'라든지 '처사가'라든지 '새타령'이라든지 '화용도'라든지 '반장가'라든지 이러한 노래가 수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플롯이라든지 그 내용 이명선씨본과 완본 두본을 절충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그 몇몇 중요한 것을 들어 보면 첫째 이도령이 광한농서 방자시켜 춘향 불렀을 때 이명선씨본은 춘향이 방자에게 기란 나비 게 비둘기 넉글자를 써 주고 갔었다 하였으나 본서는 이 것을 취하되 다소 그를 구체화시켜 구름따라 용 바람따라 호 사막놀이 나비따라 꽃이라는 문장을 써 주었다 하였으며, 또 이명선씨본은 이도령이 방자들 데리고 첫날 밤에 춘향집을 찾아 갈 때 익살스러운 방자란 놈이 점잖은 도령님을 무한이 쓰달려 '방자'라 부르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 하고 도령을 욕보였으나, 본서 또한 그것을 자미있게 보았든가 차마 그 부르지 못할 이름은 '방자가 박춘백이라는 제 자를 불러 달라' 하였으며 이도령은 방자놈이 아무리 달래도 잘 가지 안함으로 그놈이 돈 생각이 있어 그런줄 짐작하고 삼백량 표지를 해 주었다 하여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별하는 장면에 가서는 사도가 동부승지에 승차하였다는 것, 이도령이 춘향을 허리거리에라도 넣어 가겠다는 것은 완본에 따랐고 명경과 지방을 신물로 교환하고 춘향이 다시 오리정에서 도령을 송별하였다는 것은 이명선씨본에서 취하여 왔다. 또 신관 변효도 취임 후 춘향이 옥에 갇혀서 자탄하고 울다가 황릉묘의 꿈을 꾸고 따라 옥창벚꽃낙의 꿈을 꾸어 지나가는 장남을 부러 풀이하는 것은 완본의 플롯을 좇았으나 여기는 그 장남을 박봉사라 하였고 가택 으뜸은 없으되 장남이 춘향의 다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삽입하였다. 이 해담은 경본 이래 이명선씨본에도 있었던 것인데 완본에는 어쩐 일인지 없어졌던 것을 여기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그다음 이것은 별로 신통치 못한 이야기지만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이명선씨본에 어사가 서당에 들렀다가 서당 학생에게 속아 토적에 가서 춘향의 묘인줄 알고 울다가 주인에게 욕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본서에도 이것을 갖다 써서 여기는 서당 학생에게 속았다 하지 아니하고 총각 노래에서 춘향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으며 묘주는 용생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후 절에 들어 수륙제를 보았다던가 향단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것은 본서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
 
|목차7해독문2번= 본서는 일행 17, 18자 내지 22, 23자, 매페이지 12행의 105장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가곡 본의로 편찬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주묵으로 병점을 치고 그 시작되는 옆에는 '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 '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 '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중머리쇠옥성', '진양아라리', '애원성진양제', '애원성중머리', '진양애원성', '중머리애원성', '중꾹거리', '들치기폭이목', '폭이목애원성', '쇠옥성중머리', '머리시조목', '항성진양제폭이목' 등의 곡명을 주기하였다. 이것은 전혀 본서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고 또 이후의 이본에서도 별로 볼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많은 노래를 함유하여 보통 춘향가에서 듣지 못하는 '베틀노래'라든지 '처사가'라든지 '새타령'이라든지 '화용도'라든지 '반장가'라든지 이러한 노래가 수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플롯이라든지 그 내용 이명선씨본과 완본 두본을 절충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그 몇몇 중요한 것을 들어 보면 첫째 이도령이 광한농서 방자시켜 춘향 불렀을 때 이명선씨본은 춘향이 방자에게 기란 나비 게 비둘기 넉글자를 써 주고 갔었다 하였으나 본서는 이 것을 취하되 다소 그를 구체화시켜 구름따라 용 바람따라 호 사막놀이 나비따라 꽃이라는 문장을 써 주었다 하였으며, 또 이명선씨본은 이도령이 방자들 데리고 첫날 밤에 춘향집을 찾아 갈 때 익살스러운 방자란 놈이 점잖은 도령님을 무한이 쓰달려 '방자'라 부르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 하고 도령을 욕보였으나, 본서 또한 그것을 자미있게 보았든가 차마 그 부르지 못할 이름은 '방자가 박춘백이라는 제 자를 불러 달라' 하였으며 이도령은 방자놈이 아무리 달래도 잘 가지 안함으로 그놈이 돈 생각이 있어 그런줄 짐작하고 삼백량 표지를 해 주었다 하여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별하는 장면에 가서는 사도가 동부승지에 승차하였다는 것, 이도령이 춘향을 허리거리에라도 넣어 가겠다는 것은 완본에 따랐고 명경과 지방을 신물로 교환하고 춘향이 다시 오리정에서 도령을 송별하였다는 것은 이명선씨본에서 취하여 왔다. 또 신관 변효도 취임 후 춘향이 옥에 갇혀서 자탄하고 울다가 황릉묘의 꿈을 꾸고 따라 옥창벚꽃낙의 꿈을 꾸어 지나가는 장남을 부러 풀이하는 것은 완본의 플롯을 좇았으나 여기는 그 장남을 박봉사라 하였고 가택 으뜸은 없으되 장남이 춘향의 다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삽입하였다. 이 해담은 경본 이래 이명선씨본에도 있었던 것인데 완본에는 어쩐 일인지 없어졌던 것을 여기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그다음 이것은 별로 신통치 못한 이야기지만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이명선씨본에 어사가 서당에 들렀다가 서당 학생에게 속아 토적에 가서 춘향의 묘인줄 알고 울다가 주인에게 욕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본서에도 이것을 갖다 써서 여기는 서당 학생에게 속았다 하지 아니하고 총각 노래에서 춘향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으며 묘주는 용생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후 절에 들어 수륙제를 보았다던가 향단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것은 본서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
|목차7해독문3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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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해독문3번= 이상은 이명선씨본과 완판본에서 영향 받는 점을 들었으나, 또 그렇다 하여 본서가 노상 이상 양본의 절충주의로만 그치지 않았다. 간이 본서로서의 신안도 있었으니 일터이면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보고 한참 황홀하여 저서 방자에게 그것이 금이나 옥이냐 물으면 방자가 금도 아니다 옥도 아니다 대답하였는데 본서는 그 대답하는 주객을 뒤바꿔 방자가 도리어 도령에게 김이냐 옥이냐라고 부르면 도령이 김도 아니다 옥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하고, 또 이도령은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춘향의 편지를 받는 것은 경판본 이외 다른 이본은 다 있었던 것이나 그러나 춘향에게는 옥중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 이도령에게 부쳤다는 사실이 이때까지 없었다. 이것은 사실로 보아 확실한 모순이라 하여야 될 것을 이전 이본은 인식하지 못하고 왔던 것인데 본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여 춘향이 옥중에서 편지를 써 부쳤다 하고 그나마 그 편지는 전일 방자가 가지고 경성으로 가던 길인데, 어사가 반가이 그 방자를 만나 편지도 받았을 뿐 아니라 춘향의 사정도 들어 비로소 이도령이 변사도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 결심하였으며, 그 방자에게는 자기가 내려가잔 전에는 아무 말을 말라 당부하아 보내고 청파역졸에게는 다시 통기하여 변사도 생일인 모일에 남원서 출도를 할 것이니 그때까지 광한루로 대령하라 명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사건은 순조롭게 전개되었었다. 또 어사는 삼문에 어사출도를 하고 광한루에서 좌기하여 춘향을 호래하였다 하며, 어사가 옥지환을 내어 춘향을 주었을 때 춘향은 처음에는 혹 이도령이 그 몸이 궁하니 남에게 팔지는 않았나 의심하였다 한다. 그리고 끝은 <cite no="XX">"춘향을 본댁으로 치송하니라 그뒤야 누가 알리요"</cite>로 마감하여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고 뒤 소식은 말하지 않아 얼마만큼 이전 이본의 형태를 깨뜨린 느낌도 있다.
|목차7해독문4번= @
+
|목차7해독문4번= 이상으로 대강 본서의 개괄적 소개를 마쳤으나 끝으로 한 가지 더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이도령은 이름을 몽룡이라 하였으나 춘향은 바로 남원 기생 성춘향이라 하였다. 따라서 처음에 완본과 같은 인물 소개가 없이 종래의 이본 형식을 그대로 쫓았다. 그리고 춘향 이도령의 첫날밤 결연에 있어서는 이도령이 춘향에 대하여 약혼을 청하니 춘향이 처음에는 거절하는 듯하더니 어느 사이에 허락한단 말도 없고, 또 수기를 써 달라 한 적도 없이 저절로 결합하여 버렸다. 춘향을 기생으로 버려두지 않고 여염집 처녀로 승격시켜 다시 성참판의 딸을 만든 것은 춘향전으로 보아서 한 발달이요 또 완본의 한 공로라 하여야 될 것인데 본서는 어찌하여 그 영향은 받고 있으면서 춘향만 다시 기생으로 되돌려버렸을까, 생각해보건대 본서는 앞에서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이명선씨본과 완본 두본의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 두본은 춘향의 신분에 대하여 각기 닮았던 것이다. 즉 이명선씨본은 기생이라 하였고 완본 이원가 처녀라 하였던 것인데, 춘향을 비기생이라 한 것은 물론 완본의 창설이요 동시에 이전 전래에는 없는 말이다. 이 본서로서 볼 때 다소라도 사실에 둘중하자면 역시 춘향은 기생에 그대로 두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여 완본의 그것을 취하지 않은 듯싶다. 본서의 이러한 태도는 곳곳이 보인다 할 수 있으니 춘향을 기생 그대로 두고 이도령이 춘향집을 가서 약혼을 청할 때 별로 수기 이외 없었다는 것도 그것이지만 또 춘향이가 옥중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에 부쳤다는 것이라든지, 이도령은 남원치행 도중에서 그 편지를 보고 비로소 변효도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남원서 출도할 것을 결정하였다는 것도 그것인데, 종래의 춘향전은 어사가 비로소 춘향의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불분명하고 도중에서 농부에게 탐내하여서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미미하여 마치 어사가 벌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춘향의 편지라 하더라도 이전본은 대개 어사가 어디서 받느냐 하면 농부에게 탐문한 이후에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춘향의 편지는 퍽 무력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본서는 그 편지를 농부와 만나기 전, 어사치행을 하고 나오는 처음에 보았다 하였다. 이리하여 춘향의 편지 일장이 많은 효과를 나타내게 되고 또 그 다음 농부와의 문답도 무리가 없이 순순히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이외도 이러한 것을 찾으면 또 있을 것이나 요컨대 본서의 취할 점은 여기에 있고 또 본서의 가치 있는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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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6일 (화) 04:56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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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이본고(1)
Icon article.png
출처 :
 
원제목 春香傳 異本考(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1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조윤제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1939년 12월
시작쪽 94쪽 종료쪽 134쪽 전체쪽 41쪽 연재여부 연재 범주 논문 분야 문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序言


춘향전의 원작자와 그 원본은 지금에 와서 막막하여 상고할 길을 잊었다. 그러나 춘향전은 조선 고대 소설에 있어 확실히 한 이채라 볼 수 있으니, 그 내용이 제반 고대 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인간 생활의 순정을 실사하였다는 것뿐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그 찬란한 문채에는 도저히 다른 소설의 추급을 허하지 않았다. 그래서 춘향전은 과거에 있어 실로 압도적 노력을 가지고 모든 소설에 군림하여 종종의 이본을 낳았던 것이나, 시대는 바뀌어 현대가 된다 할지라도 종래 소설을 탐독하던 일반 농민 계급에는 별로 그 생활에 급한 변화가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도리어 바꿔 들어온 현대 자유주의는 춘향전에 다시 현대적 의의를 가지고 와서 독자 대중이 환호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춘향전의 숙(熟)은 재연하게 되었다. 여기에 눈이 밝은 경성 각 출판서 이(肄)는 또 각기 기교를 자랑하여 그 중간 내지는 번안물을 경쟁적으로 출판하니, 이본은 용수처럼 쏟아져 나와 십수 년 사이에 무려 십수 종류를 헤아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아직 열은 식지 않아 이것이 바로 2, 3년 전까지도 계속되어 온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조선 문학이 다시 고전 문학의 재음미로 동향을 보이게 됨에 따라 춘향전은 또 새로운 의미에 있어 일반 문학자의 주의를 끌게 되고, 일방에 있어서는 이것이 곧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어 이미 수 종의 기술과 연구물이 발표된 것은 우리의 깊이 동경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여기서는 그 이본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려 하거니와, 전래의 사본은 이미 많이 산일이 되어 얻어보기 어렵게 되었고, 근래의 활자본에도 벌써 절판되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또 원작자가 미상하기 때문에 원본을 상고하기에 극히 곤란을 느끼게 되어, 이 이본 연구에 그 근본적 토대를 퍽 박약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는 이 이상 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므로, 우선 내 손으로 모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이본을 수집하여 대강 출판 연대순으로 나열하여 두고, 그 상호의 관계 내지는 그 자체의 소설적 가치를 연구하여 보려 한다.
쪽수▶P94春香傳의 原作者와 그 原本은 지금에 와서 漠々하여 相考할 길을 잊었다. 그러나 春香傳은 朝鮮 古代小說에 있어 確實히 한 異彩라 볼 수 있으니 그 內容이 諸般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人間 生活의 純情을 實寫하였다는 것뿐 아니라 그 形式에 있어서도 그 燦爛한 文彩에는 到底히 다른 小說의 追及을 許하지 않았다. 그래서 春香傳은 過去에 있어 實로 壓倒的 努力을 가지고 모든 小說에 君臨하여 種々의 異本을 낳았던 것이나, 時代는 바뀌어 現代가 된다 할지라도 從來 小說을 耽讀하던 一般 農民階級에는 別로히 그 生活에 急한 變化가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도리어 바꿔 들어온 現代 自由主義는 春香傳에 다시 現代的 意義를 가지고 와서 讀者 大衆에 喚呼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春香傳의 熟은 再燃하게 되었다. 여기에 눈이 밝은 京城 各 出版書肄는 또 各其 技巧를 자랑하여 그 重刊 乃至는 飜案物을 競爭的으로 出版하니 異本은 湧水처럼 쏟아져나와 十數年 사이에 無慮 十數種類를 헤아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아직 熱은 식 ▶P95-1지 않아 이것이 바로 2, 3年前까지도 繼續이 되어온다. 뿐만 아니라 最近의 朝鮮文學이 다시 古典文學의 再吟味에로 動向을 보이게 됨에 따라 春香傳은 또 새로운 意味에 있어 一般 文學者의 注意를 끌게 되고,一方에 있어서는 이것이 곧 文學 硏究의 對象이 되어 이미 數種의 記述과 研究物이 發表된 것은 우리의 깊이 同慶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 여기서는 그 異本에 對하여 硏究하여 보려하거니와 傳來의 寫本은 이미 많이 散逸이 되어 얻어보기 어렵게 되었고 近來의 活字本에도 벌써 絶版되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또 原作者가 未詳하기 때문에 原本을 相考하기에 極히 困難을 느끼게 되어 이 異本 硏究에 그 根本的 土臺를 퍽 薄弱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는 이 以上 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므로 于先 내 손으로 모을 수 있는 範圍 內에서 그 異本을 蒐集하여 大綱 出版 年代順으로 羅列하여 두고 그 相互의 關係 乃至는 그 自體의 小說的 價値를 硏究하여 보려 한다.





































본문2: 一. 春香傳(京版本)


본서는 경성에서 간행된 목판본인데, 간기나 기타 참고 자료가 없어 간행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그 판은 아직도 한유서림에 보관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판형은 가로 15.5cm에서 16cm, 세로 18cm에서 20cm이며, 한 면에 15행에서 16행, 한 행에 24자에서 35자까지 불규칙하게 배열된 판이다.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씨체는 인쇄식 해자가 아니라, 보통 수사식의 행서체를 사용하여 읽기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진 춘향전 판본 중에서는 둘 중 하나로, 매우 주의를 기울일 만한 중요한 자료임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이것이 춘향전의 가장 오래된 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간기의 부재로 간행 연대는 비록 명확하지 않으나, 뒤에서 말할 바와 같이 춘향전의 대부분 이본은 근래의 개산본이고, 오래되었다고 할 만한 것으로는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장본, 이명선 씨 장본인 고사본 춘향전, 그리고 완판본 춘향전 등이 있다. 이들은 후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본들이나, 본서와 비교·검토했을 때 여러 가지 후천적 색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쪽수▶P95-2本書는 京城刊行의 木版本인데 刊記 其他 參考資料가 없어서 刊行 年代를 確實히 알 수 없으나 그 版은 아직도 翰有書林에 保藏되어 있어 比較的 容易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版貌는 橫이 15.5糎 乃至 16糎고 縱은 18糎 乃至 20糎며, 一頁 15行 乃至 16行, 1行 24字 乃至 35字의 不規則한 版인데 全部 16張으로 完了되어 있다. 字體는 印刷式의 楷字가 아니고 普通 手寫式의 行書體를 써서 보기에 若干의 困難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現在 우리가 가지는 春香傳版本으로는 둘中의 하나로서 자못 注意를 要할만한 것은 勿論이거니와 나는 어느 程度까▶P96-1지 이것을 春香傳의 가장 오랜 本이 아닌가 하는 疑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 刊記의 不備로 刊行 年代는 비록 分明하지 못하지마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春香傳 異本의 大部分은 近來의 改刪本이고, 조금 오래다 할 만한 것은 普成專門學校 圖書館 藏本과 李明善氏 藏本인 古寫本春香傳과 完版本春香傳인데 이들은 後世에 가장 많이 그 影響을 끼치고 있는 本이나, 本書와 比較 檢討하여 볼 때 幾多의 後來的 色彩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이명선 씨 본과 완판본이 창곡을 위주로 한 희곡적 소설임에 반하여, 본서는 스토리를 위주로 한 스토리적 소설이고, 둘째로는 완판본에서는 여주인공 춘향이가 전 남원부사 성참판과 월매라는 기생 사이에서 나서, 지금은 다만 퇴기의 딸로서 여염 생활을 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춘향은 다만 기생의 소출일 뿐 아니라 현재 기생으로 있는 인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본서가 반드시 양본보다 오래되었다는 논거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나는 생각하건대 춘향전은 본래 극히 간단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점차 소설로 구상이 되고, 다시 희곡으로 발전했으리라 본다. 만약 그렇다면, 양본은 훨씬 후세의 본이 아닐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주인공 춘향이 처음부터 기생이 아니고 한 퇴기의 딸로서 여각살이를 하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은 의심을 갖게 된다. 왜 그러냐 하면, 후일 춘향이 신관사도에게 초래를 당해 무한한 수난을 겪게 되나, 아무리 폭악한 관장일지라도,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수절한다는 여자를 관정에 초래하여 폭행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며, 또 종래 이본의 경향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춘향의 절개에 대한 동정이 열녀 춘향을 단순한 천기 소생의 부지기성의 창녀로 두지 않고, 비록 그 아버지를 양반으로 설정하여 다시 조신하는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이 도리어 후대의 윤색이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본서를 감히 춘향전의 원본이라고까지는 주장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춘향전 중에서는 원본에 가까운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이것이 이하의 이본 연구에서 하나의 기준이 될지도 모르니, 다음에 간단히 그 경개를 써두고 연구하려 한다.
쪽수▶P96-2첫째로는 李明善氏本과 完版本은 唱曲을 爲主로 한 戱曲的 小說임에 反하여 本書는 스토리를 爲主로 한 스토리的 小說이고, 또 둘째는 完版本에는 女主人公 春香이가 前 南原府使 成參判과 月梅라는 妓生의 사이에서 나서 지금은 다만 退妓의 딸로서 閭閻 生活을 하는 人物이나 本書에서는 春香은 다만 妓生의 所出일 뿐 아니라 現在 妓生으로 있는 人物로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別로히 本書가 반드시 兩本보다 오래다는 論據로 되지않을지 모르나 나는 생각컨댄 春香傳은 本是 極히 簡單한 스토리에서 出發하여 그것이 漸漸 小說로 構想이 되고 다시 戱曲으로 發展하였으리라 하는데 萬若 그렇다면 兩本은 훨씬 後世의 本이라 아니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女主人公 春香은 처음에 果然 妓生이 아니고 한 退妓의 딸로서 閭閣살이를 하던 계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데는 많은 疑心을 갖게 하는 듯하다. 왜 그러냐 하면 後日 春香은 新官使道에게 招來를 當하여 無限한 受難을 겪게 되나, 암만 暴惡한 官長일지라도, 비록 賤身이지마는, 守節한다 하는 女子를 官廷에 招來하여 暴行한다 하는 것은 不自然한 일이 아닐가 하며, 또 從來 異本의 傾向이 보여주는 바와도 같이 春香의 節介에 對한 同情이 烈女春香을 單純한 賤妓所生의 不知其姓의 娼女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비록 그 父이나마 兩班에 빌어와서 다시 操身하는 女子로 하였다는 것이 도리어 後來의 潤色이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本書를 敢히 春香傳의 原本이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마는 적어도 現在 남은 春香傳 中에서는 그▶P97-1原本에 가까운 程度에 있는 것이 아닐가 생각한다. 그러면 이것이 以下 異本 硏究의 한 基準이 될까도 싶으니 다음에 簡單히 그 梗概를 써두고 硏究하려 한다.

경개, 화설. 인조 때에 남원 부사 이등(필자 차음)의 아들 이도령(필자 차음)이 있었다. 봄의 화창한 절기에 춘흥을 이기지 못하고 방자를 불러 남원 경개에 광한루가 좋다는 말을 듣고 포진시켜 방자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서 광한루에 올라 한참 경치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이때 춘향이가 의복을 곱게 단장하고 건너편에서 추천을 하고 있었다. 호탕한 이도령은 곧 그녀가 누구인지 방자에게 물었으나, 방자는 처음에는 이리저리 피하며 쉽게 알려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그녀가 본읍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라고 아뢴다. 이도령은 그녀가 기생인 줄 알고, 곧 방자를 시켜 광한루로 불러보게 하였다. 그 미모에 혹한 이도령은 백년가약을 청하였으나, 처음에는 춘향이가 비록 창기의 몸이나 남의 별실이 되지 않겠다는 것과, 또 일부종사하겠다는 뜻으로 거절한다. 그러나 이도령이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는 성의를 보이게 될 때, 춘향은 그 증거로 불망기를 써달라 하고 허락한다. 이로써 약혼이 성립되어, 광한루에서 잠시 작별하고 그날 밤에 이도령이 다시 춘향 집을 찾게 된다. 도령은 광한루에서 연려히 춘향을 집으로 보내고 책방으로 돌아와서 춘향을 보고 싶은 마음에 "보고지고"라고 외치다 사도께 꾸중을 듣는다. 이 책 저 책 되는 대로 읽다가 겨우 저녁 후에 사도의 퇴등을 기다려 몰래 빠져나와 춘향 집으로 향한다. 이때 춘향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방자가 먼저 들어가 춘향의 어머니를 부르니 춘향의 어머니가 나와 도령을 맞아 춘향의 방으로 안내한다. 춘향 또한 반겨 도령을 맞아들이고 담배와 술로 대접하며, 다시 권주가를 불러 즐기다가 그 밤을 둘이 같이 보냈다.
그다음은 곧 이별이었다. 도령의 부친이 사도에서 호조판서로 승진하여, 도령에게 내행을 모시고 먼저 상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령은 그 말을 듣고 춘향과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지는 듯하여 춘향의 집으로 찾아갔다. 춘향 또한 이별을 서러워하며 울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명경과 옥지환을 신물로 교환하고, 춘향은 도령에게 속히 입신양명한 후 다시 자신을 찾아달라고 애원하였다. 도령은 춘향에게 자신의 귀환을 기다리며 신의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이별하였다.
그 뒤 신관이 임명되었다. 신관은 본래 호색지인이라, 이미 신연하인이 현신했을 때 춘향에 대해 묻더니, 부임하자마자 곧 기생 점고를 하고 춘향의 이름이 그중에 없음을 노하여 사령을 시켜 춘향을 잡아오게 한다. 춘향은 처음에는 나오는 사령에게 술도 먹이고 돈도 주어 무사히 돌려보냈으나, 사령이 거푸 다시 나왔을 때는 부득이하여 관정에 나간다. 사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거행하라 명하지만, 춘향은 이를 굳이 거절하였다. 이에 사도는 드디어 태형을 집행하고, 춘향이 명령을 거행하지 않는다 하여 하옥한다. 이때 한량들이 와서 춘향을 옥으로 메어 나가고, 춘향의 어머니는 도리어 자기 딸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는 것을 설워한다. 이로부터 춘향은 옥중에서 몇 달을 보냈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방문 위에는 허수아비가 달리고 뜰에는 앵도꽃이 떨어지며, 모든 증경이 한복판이 깨어지는 꿈이었다. 마침 지나가던 허봉사를 불러 그 뜻을 묻자, 허봉사가 풀이하기를 "능성실이요, 경파하니 기무성가, 문상에 현재리 하니 만인이 개앙시라"고 해몽하며, 이는 이도령이 곧 급제하여 상봉할 조짐이라 장담하고 떠난다.
이도령은 상경 후 학업을 닦아 태평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자원 삼도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향발한다. 도중 농부와 주막 노인에게 춘향이 신관에 수청 들어 민폐 많다더니 참말이냐 묻다가, 도리어 절개를 지킨 춘향을 욕한다 하여 농부에게 욕을 당하고 남원에 도착하여 춘향 집을 찾으니, 춘향모는 도령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걸인인가 김권농인가 의심하다가 나중에야 도령인 줄 알고 그 형색에 놀란다. 어사는 다시 물을 것도 없이 춘향모를 데리고 옥으로 춘향을 찾으니, 춘향이 날로 사모하던 도령을 만나 반기며 내일은 본관 생일이라 잔치 끝에 필경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니 내일 와서 칼머리나 들어달라 청한다. 어사는 걱정 말라 하고 물러나와 춘향 집에서 자고, 익일 관문 밖에 가서 탐문하니 과연 본관의 생일이었다. 어사는 기웃기웃하다가 틈을 타서 연석에 들어가 걸객으로서 술을 청하니, 본관은 싫어하였으나 운봉이 홀로 호의를 가지고 통인을 시켜 술도 갖다 주고 또 어사가 기생을 청하니 기생도 불러 권주가도 시켜준다. 그러자 큰 상이 들어오는데 바라보니 어사 앞에 놓인 상은 보잘것없으므로 들어엎어 버리고 어사 차운을 청해 "김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배, 촉루락시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라는 시를 지어두고 나와 삼문에 암행어사 출도를 한다. 이에 연석은 급작히 수라장으로 변하였으나 어사는 곧 좌정하여 본관은 우선 봉고파출을 하고 옥중의 춘향을 잡아올려 속여 수청 들라 명하니, 춘향이 또 이에 거절한다. 그제야 어사는 칭찬하고 다른 기생으로 하여금 이로 그 칼을 뜯어 벗긴 후 춘향에게 낯을 들어 대상을 보라 명령한다. 춘향이 쳐다보니 그리고 그리던 낭군이라 좋아서 뛰어 올라가 붙잡고 우니, 어사가 이를 위로한다. 이때 그런 줄도 모르고 딸 주려 미음을 들고 오던 춘향모는 그제야 이 희소식을 듣고 무한히 반기며 어사는 대연을 열어 춘향과 즐긴 후 공사를 마치고 춘향 모녀를 데리고 상경하여 상께 그 연유를 주달하니, 상이 칭찬하여 춘향을 정렬부인으로 봉하셨다.

쪽수▶P97-2

梗槪, 話說 仁祖때에 南原 府使李等(筆者 借音)의 아들에 李靈(筆者 借音)이 있었다. 方春花節에 春興을 못 이기어 房子를 불러 南原景概에 廣寒樓가 좋단 말을 듣고 鋪陳시켜 房子 데리고 천천히 걸어서 廣寒樓에 올라 한참 景色을 자랑노라니 이때 春香이가 衣服 단장을 곱게 하고 건너便에 와서 鞦韆을 하고 있다. 豪蕩한 李道令은 곧 그가 누구인가 房子에게 물었으나 房子는 처음에는 이리 저리 避하면서 容易히 알으켜 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그가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라 아뢴다. 李道令은 그가 妓生인줄 알고 곧 房子시켜 廣寒樓로 불러보고 그 美에 惑하여 百年佳約을 請하였으나 처음은 春香이가 비록 娼妓의 몸이나 남의 別室이 되지 않겠다는 것과 또 一夫從事하겠다는 뜻으로 拒絕을 한다. 그러나 李道令이 絶對로 變하지 않겠다는 誠意를 보이게 될 때 春香은 그 證據로 不忘記를 써달라 하고 許한다. 여기에 約婚은 成立이 되어 廣寒樓에서 暫時 作別하고 그날 밤에 李道令이 다시 春香 집을 찾게 되는데, 道令이 廣寒棲서 燃藜히 春香을 집으로 보내고 冊房에 돌아와서 春香을 보고 싶은 마음에 「보고지고」 라고 외처 使道께 꾸중을 듣고, 이 책 저 책 되는대로 읽다가 겨우 夕飯後 使道의 退燈을 기다려 몰래 빠져나와 春香집에 나온다. 이 때 春香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房子 들어가 먼첨 春香 母를 부르니 春香母 나와 道令을 맞아 春香 房으로 案內한다. 春香 또한 반겨 道令을 맞아들여 담배며 술로 待接하고 다시 勸酒歌를 불러 즐기다가 그 밤을 둘이 같이 지냈다.
그 다음은 곧 離別이다. 使道 戶曹判書에 昇進하여 道令은 父親으로부터 內行을 뫼시고 먼저 上京하라는 命令을 받았다. 道令이 그 말을 듣고 春香을 離別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지는 듯하여 春香 집으로 春香을 찾으니 春香도 ▶P98설어하여 울며 서로 明鏡과 玉指環을 信物로 交換하고 春香은 道令에게 速히 立身揚名 後 다시 찾아 달라 哀願하고 道令은 春香에게 信을 지켜 自己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付託하고 離別한다.
그 뒤 新官이 任命되었다. 新官은 本是 好色之人이라 벌써 新延下人이 現身하였을때 春香을 묻더니 赴任하자 곧 妓生點考를 하고 春香의 이름이 그 中에 없음을 怒하여 使令시켜 春香을 잡아온다. 春香이 처음은 나오는 使令을 술도 멕이고 돈도 주어 無事히 돌려 보냈으나 달아 거퍼 나왔을 때는 不得已하여 官廷에 나가니 使道는 곳 守廳을 舉行하라 命한다. 그러나 春香은 굳이 拒絕하였으므로 使道는 드디어 笞刑을 執行하고 다시 命令을 舉行치 않는다 하여 下獄한다. 이때 閑良들이 와서 春香을 獄으로 메어 나가고 春香母는 도리어 自己의 딸이 李道令을 爲하여 守節을 하는 것을 설어한다. 이로부터 春香은 獄中에서 數 月을 보냈는데 하루는 꿈을 꾸니 방문 위에 허수애비 달리고 뜰에 櫻桃花 떨어지고 보든 證鏡이 한복판이 깨어지거늘 마침 지나가는 許봉사를 불러 물으니, 許봉사 花落하니 能成實이요 鏡破하니 豈無聲가 門上에 懸졔리 하니 萬人이 皆仰視라 解夢하여 李道令이 수이 及第하여 相逢할 占卦라 壯談하고 간다.
李道令은 上京 後 學業을 닦아 太平科에 壯元으로 及第하여 自願 三道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向發한다. 途中 農夫와 酒幕 老人에게 春香이 新官에 守廳들어 民弊많다더니 참말이냐 묻다가 도리어 節介 春香을 辱한다하여 農夫에게 辱을 當하고 南原에 到當하여 春香 집을 찾으니 春香母, 道令인줄 알아보지 못하고 乞人인가 金勸農인가 疑心타가 나중에야 道令인줄 알고 그 形色을 놀랜다. 御史 다시 물을 것도 없이 春香母를 데리고 獄으로 春香을 찾으니 春香이 날로 思慕하던 道令을 만나 반기며 來日은 本官 生日이라 잔치 끝에 畢竟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니 來日 와서 칼머리▶P99-1나 들어달라 請한다. 御史 걱정마라 하고 물러나와 春香집에서 자고, 翌日 官門 밖에 가서 探問하니 果然 本官의 生日이라. 御史 기웃기웃하다가 틈을 타서 宴席에 들어가 乞客으로서 술을 請하니 本官은 싫어하였으나 雲峯이 홀로 好意를 가지고 通引시켜 술도 갖다주고 또 御史가 妓生을 請하니 妓生도 불러 勸酒歌도 시켜준다. 그리자 큰 床이 들어오는데 바라보니 御史 앞에 놓인 床은 보잘것 없으므로 들어엎어 버리고 御史 次韻을 請해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背,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라는 詩를 지어두고 나와 三門에 暗行御史出道를 한다. 이에 宴席은 急작히 修羅場으로 變하였으나 御史는 곧 坐定하여 本官은 于先 封庫罷出을 하고 獄中의 春香을 잡아올려 속여 守廳들라 命하니 春香이 또 이에도 拒絕한다. 그제야 御史 稱讚하고 다른 妓生으로 하여금 이로 그 칼을 뜯어벗긴 後 春香에게 낯을 들어 臺上을 보라 命令한다. 春香이 쳐다보니 그리고 그리던 郎君이라 좋아서 뛰어 올라가 붙잡고 우니 御史가 이를 慰勞한다. 이때에 그런 줄도 모르고 딸 주려 미염을 들고 오던 春香母는 그제야 이 喜消息을 듣고 無限히 반기며 御史는 大宴을 열어 春香과 즐긴 後 公事 마치고 春香 母女 데리고 上京하여 上께 그 緣由를 奏達하니 上이 稱讚하여 春香으로 貞烈夫人을 封하셨다.

이상은 본서의 간단한 경개가 되겠으나, 여기서 볼지라도 본 춘향전은 후세의 다른 춘향전과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이도령의 이름이 보통은 몽룡이라 불려왔으나, 여기서는 령으로 되어 있다. 이령이 어떻게 하여 이몽룡으로 변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거니와, 이도령의 이름은 사실상 이 소설 전개에 있어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남원에 있을 때라든지 등과 전에는 아직 이도령으로 통하였고, 등과 후 어사에 제수되었을 때는 어사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보통 고대소설의 체제로서 처음에 그 인물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 아비는 모이고 그 이름은 모 운운이라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은 춘향의 조연 인물로서 반드시 나오는 향단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고, 춘향모의 활약도 매우 미미하여 다만 이도령이 첫날 밤 춘향 집을 찾아갔을 때 잠깐 도령을 맞아 춘향 방으로 인도하는 것과 춘향이 하옥될 때, 어사를 맞아 옥으로 인도하는 것, 그리고 어사가 곧 이도령인 줄 알고 반기는 때에 나타날 뿐이다. 또 춘향이라든지 춘향모의 성격을 볼지라도 이미 춘향은 기생인 만큼 그 행동에 있어 보통 기생과 기생모의 태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부를 때 춘향은 흔쾌히 가서 마음을 허하였고, 돌아와 그날 밤 집으로 이도령이 찾아왔을 때도 역시 기생과 기생모로서 귀공자 도령을 맞았으며, 이별하는 장면에서도 춘향은 잠깐 지나가는 남자를 만났으니 으레 이별이 있을 줄 각오한 듯, 이도령이 상경을 고하자 곧 후일 다시 찾아달라 기약하고 훌훌히 보냈다. 그러므로 춘향의 춘향다운 점은 이별 후의 태도, 즉 관장의 억압에도 한 번 언약한 사람을 위하여 그 절개를 굽히지 않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또한 여기가 후세 사람들의 찬양을 받는 점이 되었을 줄 믿는다.
쪽수▶P99-2以上은 本書의 簡單한 梗槪가 되겠으나 여기서 볼지라도 本 春香傳은 後世의 다른 春香傳과 많은 異點을 發見할 수 있다. 첫째는 李道令의 이름이 普通은 夢龍이라 불려왔으나 여기서는 靈(령)으로 되어 있다. 李靈이 어떻게 하여 李夢龍으로 變하였는가 하는데 對하여는 뒤에서 다시 생각하여 보고자하거니와 李道令의 이름은 事實上 이 小說 展開에 있어서 그다지 必要하질 않았다. 南原 在留 時代라던지 登科 前에는 아직 李道令으로 通하였고, 登科 後 御史에 除授되었을 때는 御史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本書에 있어서는 普通 古代小說의 體로서 처음에 그 人物을 紹介하기 爲하 ▶P100-1여 其父는 某요 그名은 某 云云이라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은 春香의 助演 人物로서 반드시 나오는 香丹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고 春香母의 活躍도 매우 微微하여 다만 李道令이 첫날밤에 春香집을 찾아갔을 때 暫間 道令을 맞아 春香 房에 引遵하는 것과 春香이 下獄될 때와 御史 맞아 獄으로 引遵하는 것과 御史가 곧 李道令인줄 알고 반기는 때에 나타날 뿐이다. 또 春香이라던지 春香母의 爲人을 볼지라도 벌서 春香은 妓生인 만큼 그 行動에 있어 普通妓生과 妓生母의 態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부를 때에 春香은 欣欣이 가서 마음을 許하였고, 돌아 와서 그날 밤에 집으로 李道令이 찾았을 때도 亦是 妓生과 妓生母로서 貴公子 道令을 맞았고, 離別하는 그 場面에서도 春香은 暫間 지나가는 男子를 만났으니 으레히 離別이 있을 줄 覺悟한 듯이 李道令이 上京을 告하자 곧 後日 다시 찾아달라 期約하고 훌훌이 보냈다. 그럼으로 春香의 春香인 바는 離別 後의 그 態度 即 官長의 抑制에도 한번 言約한 사람을 爲하여 그 節介을 굽히지 않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또 여기가 後世 사람의 讚揚을 받는 點이 되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또 본서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토리를 위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보통 춘향전에서 보이는 가곡적인 방면은 거의 생략되었다. 이를테면 십장가라든지 상사곡 같은 것은 없었고, 또 춘향전의 특색으로 흔히 나오는 천자풀이라든지 기생 점고의 영창식 호명 같은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만큼 여기에는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대체로 춘향전의 결점을 든다면, 공연히 말을 다듬기 위하여 사실을 굽히고 모순을 스스로 만드는 폐단이 있다 할 수 있으나, 본서에서는 말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폐단을 자연히 제거할 수 있어 사건을 퍽이나 순조롭게 전개해 나갔다. 이 점은 확실히 본서의 특장이라 볼 수 있는 동시에, 본서를 소설로서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될 줄 믿는다.
쪽수▶P100-2그리고 또 本書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토리를 爲主로 한 小說이기 때문에 普通春香傳에서 보이는 歌曲的 方面은 거의 省略되었으니 이를 터이면 十杖歌라든지 相思歌같은 것은 없었고, 또 春香傳의 特色으로 흔히 나오는 千字풀이라든지 妓生點考의 詠唱式의 呼名같은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만큼 여기에 無理가 없었다. 大體로 春香傳의 缺點을 든다 한다면 空然히 말을 다듬기 爲하여 事實을 굽히고 矛盾을 저절로 만드는 弊가 없다할 수 없으나 本書에서는 그 말에 보다 그 事實에 爲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弊를 自然 滅할 수 있어 퍽이나 順調로히 事件을 展開하여 나갔다. 이 點은 確實히 本書의 特長이라 볼 수 있는 同時에 또 本書를 小說로서 價値 있게 하는 것이 될 줄 믿는다.





































본문3: 二. 烈女春香守節歌(完版本春香傳)


본서는 완판본인데, 그 판목은 아직도 전주 다가서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간기가 없어, 불행히도 그 판각 연대를 상고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경판본과 더불어 현재 남아 있는 귀중한 텍스트일 뿐 아니라, 경판본이 스토리를 위주로 한 춘향전이라면, 본서는 가곡을 위주로 한 춘향전이 되어 가히 쌍벽이라 이를 만하다. 판의 체재는 상하 11권으로 분권되어 있으며, 폭은 약 17cm, 길이는 18cm에서 25cm에 이르고, 한 행에 18자에서 30자를 담았으며, 각 쪽은 1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이 45장, 하권이 39장으로 완성되어 있어 경판본과 비교하면 상당히 그 내용이 풍부해졌다. 그러면 다음으로 먼저 그 플롯의 전개를 경판본과 비교하며, 다른 이본들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다소 상세히 논하고자 한다.
쪽수▶P101-1本書는 完版本인데 그 版木은 아직도 全州 多佳書舘에 保藏되어 있을 것이나 이것도 亦是 刊記가 없어서 不幸히 그 版刻 年代는 相考할 수 없다. 그러나 먼저의 京版本과 아울러 現在 版本으로서 남은 貴重한 텍스트일 뿐 아니라, 京版本이 스토리를 爲主로 한 春香傳인데 對하여 本書는 歌曲 爲主로 한 春香傳이 되어 可히 雙璧이라고 이를만한 것이다. 版의 體裁는 上下 11卷에 分卷되어 積이 約 17糎, 縱이 18糎 乃至 25糎, 一行 18字 乃至 3字, 每 頁 13行에 上卷이 45張, 下卷이 39張으로 完了되어 京版本에 比하면 相當히 그 內容이 豊富하여졌다. 그러면 다음에 먼저 그 풀로트의 展開를 京版本과 比較하여 가면서 다른 異本과도 關係가 있으니까 多少 詳細히 論述하고자 한다.
우선 본서의 시작은 경판본이 인조조 때 운운으로 시작한 것과 달리, 숙종대왕 즉위 초로 시작된다. 또 경판본에서는 먼저 이도령이 등장하여 광한루에 오르고 그곳에서 춘향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만, 본서에서는 춘향의 인물 소개가 먼저 등장한다. 원래 춘향은 퇴기 월매가 성참판과 함께 지내면서 나이가 사십이 가까워지도록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하여, 남편과 의논하고 지리산에 가서 빌며 길몽을 얻었다. 그 길몽의 내용은, 한 선녀가 청학을 타고 와 계화 한 가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절하며 말하기를 "낙포의 딸이었는데 반도를 올리러 옥경에 갔다 광한전에서 적송자를 만나 정회를 다하지 못한 차에 시만(時晩)이 죄가 되어 상제 대노하셔 진퇴(塵堆)에 내쳤는데, 두류산 신령께서 부인 집을 지시(指示)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라고 하며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다른 이본에서는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도령의 이름이 본서에서는 몽룡으로 되어 있다. 경판본에서는 이름이 '령'으로 되어 있는데, 어째서 '몽룡'으로 바뀌었는가? 다소 부차적이지만, 이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도령의 이름을 몽룡이라 한 이유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는데, 방자가 춘향의 집에 갔을 때 춘향모가 한 말이다. "꿈이라 하는 것은 아무런 허황된 일이 아니로다. 간밤 꿈에 난데없는 청룡 하나가 벽도지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이렇게 우연히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도 댁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夢) 자 용 룡(龍) 자가 신통하게 맞았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거라" 고 하였다. 고대 소설에서는 일상적인 사건을 운명적으로 결정짓고, 이를 예언적으로 이끄는 매개체로 '꿈'을 자주 사용했다. 춘향과 이도령의 인연 역시, 이러한 운명적인 요소 없이는 설명되지 않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춘향모의 꿈이었다. 이 점에서, 이도령의 이름이 '몽룡'이라는 다소 비범한 이름으로 바뀌어 사건을 자연스럽고 신비롭게 전개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도령은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나귀를 타고 광한루에 올라가 춘향이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방자를 시켜 부르게 한다. 춘향은 그때 시중들 수 없는 때라며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도령은 다시 방자를 보내 광한루로 춘향을 불러내 약혼을 청한다. 그러나 춘향은 그 자리에서 승낙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약혼은 그날 밤, 이도령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 춘향모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춘향이 어디까지나 기생의 행동이 아닌, 여염집 여인의 모습으로 이도령과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경판본에서는 춘향이 혼자 광한루에 와서 그네를 타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본서에서는 춘향이 시비인 향단을 데리고 왔으며, 이후 내내 향단이 춘향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쪽수▶P101-2于先 開卷始初에 京版本은 話說 仁祖朝때 云々으로 筆起하였으나 本書에서는 肅宗大王 即位初로 始作되어있고, 다시 京版本에서는 먼저 李道令이 나와서 廣寒樓에 오를 때에 그 앞에 春香이가 나타났으나 여기에는 먼저 春香의 人物 紹介가 나왔는데, 元來 春香은 退妓 月梅가 成參判과 지내면서 近四旬에 그 血肉이 없음을 恨嘆하여 家君과 議論하고 智異山에 빌어 吉夢을 얻고 나왔다. 그 吉夢이란 것은 一位 仙女가 靑鶴을 타고와서 桂花 一枝를 들고 堂에 올라 舉手長揖하고 하는 말이 「洛浦의 딸일러니 蟠桃進上 玉京갔다. 廣寒殿에서 赤松子를 만나 未盡情懷하올차에 時晩함이 罪가되어 上帝 大怒하사 塵堆에 내치심애 갈바를 몰랐더니 頭流山神靈께서 夫人宅으로 指示하기로 왔아오니 어▶P102여삐 여기소서」하며 품 안으로 들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다른 異本에 가서는 어떻게 變하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注意할 일이다. 그리고 李道令은 이름을 夢龍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李道令의 이름은 夢龍이라 될 感이 있으나, 京版本에는 靈으로 되어있는데 어째서 夢龍으로 되었을까. 蛇足이 될 지 모르나 한번 생각하여 보건대 平書에 있어 李道令의 命을 받아 房子가 春香집을 갔을때 春香母의 말에 「꿈이라 하는 것은 전수이 虛事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난대없는 靑龍하나 碧桃池에 잠겨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가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使道子弟 道令님 일홈이 夢龍이라 하니 꿈夢字 용龍宇 神通하게 마지었다. 그러나 저러나 兩班이 부르시는데 아니갈수 있것나나 잠간 가서 다녀오너라」 한 것이 있다. 即 古代小說에 있어 日常 事件을 運命的으로 決定하며, 또 이를 豫言的으로 引導하는 것은 「꿈」이라 할 수 있는데, 春香과 李道令의 因緣이란 것도 또한 거기에 무슨 先天的으로 運命的인 것이 없으면 안 될 것이요, 그것을 具現하는 것은 곧 먼저의 春香母의 꿈이 될 것이니까, 여기에 李道令의 夢龍이란 이름은 事件을 自然스러히 또 神秘로히 展開하는데 가장 必要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李道令의 이름을 夢龍이라는 尋常치 않은 이름에 變更되어 以後 變함이 없는 듯이 생각되나, 이 李道令 夢龍은 父教를 얻어서 나귀를 타고 廣寒穰에 가서 春香을 먼 눈으로 鞦韆하는 것을 보고 房子시켜 불렀다. 그럴 때에 春香은 時仕가 아님을 稱託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房子를 그 집으로 보내서 廣寒棲로 불러다가 約婚을 請하였다. 그러나 春香은 그 자리에서 許하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정말 約婚은 그날밤에 李道令이 春香집을 찾아서 春香母의 許諾으로 된 것이다. 여기에 春香은 어디까지 妓生의 行動이 아니고 閻閻찜 行身하는 女子의 몸으로서 李道令과 結合이 되었음을 注意할 것이고, 또 京版本에는 春香이 廣寒樓 앞에 와서 襲을 鞦韆을 하는데 혼자 와서 한 듯이 되어 있지마는 本書에는 香丹▶P103-1이라는 侍婢를 데리고 왔었으며, 以後 내내 香丹은 春香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도 注意을 要할 것인줄 믿는다.
다음으로 춘향과 이도령의 교정 장면에 들어가면 대체적으로 그 플롯에는 큰 변동이 없었으나, 사도의 퇴등을 기다리며 독서하던 중 춘향전 일류의 천자풀이가 나온다. 이도령의 "보고지고"라는 외침에 놀란 사도가 도령이 주공을 보고자 한다는 대답을 듣고 도리어 감격하여 책월의 육랑정을 불러 자기 아들이라 칭찬하는 말이 나온다. 또한, 첫날 밤 춘향 집에 갔을 때 춘향은 결코 기생의 몸으로서 이도령을 맞이하지 않고 끝까지 은근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춘향모 역시 비록 전날 기생이었으나 교양 있는 여인으로서 춘향과 이도령, 춘향모 세 사람이 함께 자리에 앉아 춘향모의 승낙을 기다린 끝에 두 사람의 혼약이 성립되었다. 두 사람의 정이 점차 깊어감에 따라, 그 사랑의 감정을 많은 사랑가로 표현하였다. 그러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본서에서는 사도가 동부승지로 승진되었고, 이도령은 춘향을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애타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춘향의 말을 청했으나 꾸중만 들었다고 한다. 춘향은 물론 기쁘게 이별하지 않았으며, 춘향모도 또한 그 이별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이도령에게 춘향을 데려가라고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도령은 이렇게 되니 할 수 없어 춘향을 신주 모시는 가마에 태워서라도 남몰래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이 말에 춘향도 도리어 이도령의 처지에 동정하여 결국 이별하는 수밖에 없다며 눈물로서 이별하며 떨어지지 못하다가, 뒤따라온 사령이 나와 행차를 재촉할 때에야 겨우 마지막 잔을 나누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면경과 옥지환 같은 신물을 교환하지 않았다.
쪽수▶P103-2 다음 春香과 李道令의 交情場面에 들어가서는 大體에 있어 그 플로트에 變動이 없었으나 使道의 退燈을 기다리면서 讀書하는 끝에 春香傳 一流의 千字풀이가 나오고 李道令의 「보고지고」란 소리에 놀랜 使道가 道令의 周公을 보고자한다는 對答에 도리어 感激하여 冊月의 陸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하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첫날밤 春香 집에 갔을 때는 春香은 決코 妓生의 몸으로서 道令을 맞이하지 않고 끝까지 은근한 態度를 가졌었으며 春香母도 비록 前日의 妓生이였으나 亦是 敎養있는 女子로서 나와서 春香, 李道令, 春香母 三人이 鼎坐하여 結局 春香母의 承諾을 기다려 兩人의 婚約이 成立되었는데 兩人의 情이 漸々 깊어감에 딸 그 사랑의 情을 많은 사랑歌로서 나타내었다. 그리다가 青天霹靂으로 離別이 되는메, 本書에서는 使道가 同副承旨로 陞差하였고, 李道令은 春香을 두고 감이 애가 타서 그 母親에게 春香의 말을 請하다가 꾸중만 들었다 하였다. 그리고 春香 勿論 欣々히 離別 하지 않았으며 春香母도 또한 그 離別을 容易히 應諾하지 않고 道令에게 데려가라 肉迫하였다. 李道令도 이렇게 되니 할 수 없어 그러면 春香을 神主 모시는 腰輿에 태워서라도 남몰래 데려가겠다 하니 이 한 말에 春香도 도리어 李道令의 形便에 同情 하여 그러면 離別하는 수밖에 할 일 없다하여 눈물로서 離別하며 떨어지지 못하다가 後陪 使令이 나와 行次를 재촉할 때에야 겨우 마지막 一盃酒로 나누었는데, 서로 面鏡과 玉指環의 信物은 바꾸지 않았다.
그 후 곧 신관 사도가 부임한 것은 경판본과 다름이 없으나, 그 이름은 자핫골 사는 변학도로 되어 있고, 와서 기생 점고를 하는데 여기서는 그 호명이 바로 시구 영창식이었다. 춘향을 잡으러 오는 데는 처음에 사령들이 와서 춘향에게 술도 얻어먹고 돈도 얻어가지고 흐느적 흐느적 돌아갈 때, 행수 기생이 뒤쫓아 나와 춘향을 데리고 갔었다. 그리하여 춘향이 동헌에 나타났을 때 한 번 보고 즐기는 사도는 회계 생원을 불러다가 서로 농담을 하며 춘향에게 절개를 굽히라며 강요한다. 결국 듣지 않으니 태장을 집행하려 하는데, 첫낫 두낫을 맞으면서 춘향은 소위 "십장가"로 화답하였다. 그다음 춘향이 하옥되지만, 여기서는 한량이 보이지 않았고 기생들이 나와 동정하였으며, 춘향모는 춘향의 목을 안고 울다가 이러한 사유로 서울에 급히 달려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춘향의 만류로 실현되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춘향은 옥중에서 '장모가'를 부르며 울다가 잠들었다. 꿈에서 황릉묘에 찾아가 상군부인 이하 역대의 여중 호걸들을 차례로 만나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다음 옥창 밖의 앵도꽃이 떨어지고 운운의 꿈을 꾸어 장님에게 물어 점을 쳐서 해몽을 얻는 것은 경판본과 같으나, 장님의 성은 허씨가 아니고 다만 봉사 하나로만 되어 있으며, 해몽 끝에 마침 까마귀가 옥 담에 와서 까옥까옥 울자 장님이 따라 이 소리를 '가옥가옥(嘉屋嘉屋)'이라 해석하였다.
쪽수▶P103-3그 後 곧 新官使道가 赴任한 것은 京版本과 다름이 없으나 그 이름은 자핫골 사는 卞學道로 되어있고 와서 妓生點考를 하는데 여기서는 그 呼名이 바로 詩句詠唱式이었으며, 春香을 잡으러 오는 데는 처음에 使令들이 와서 春香에게 술도 얻어먹고 돈도 얻어가지고 흐늘흐늘 들어갈 때에 行首妓生이 뒤쫓아 나와 春香을 데리고 갔었다. 그리하여 春香▶P104-1이 東軒에 나타났을 때 한번 보고 즐기는 使道는 會計生員을 불러다가 서로 弄談을 하며 또 春香에 節介를 굽히라 우겨댄다. 結局 듣지 않으니 笞杖 執行을 할 것이나 한낫 두낫 맞는데 春香은 所謂 十杖歌로서 和答하였다. 그 다음은 春香이 下獄될 것이나 여기는 閑良이 보이지 않았고 妓生들이 나와서 同情하였으며, 또 春香母는 春香의 목을 안고 울다가 이런 事由로 서울에 急走내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春香의 挽留로 實行하든 안 하였으나, 春香은 獄中에서 長嗼歌로 울었으며, 울다가 잠들어서는 黃陵廟에 찾아 가서 湘君夫人以下 歷代의 女中豪傑을 낯낯이 맞나 많은 慰勞와 激勵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다음 獄窓 櫻桃花가 떨어지고 云々의 꿈을 꿔서 장님에게 問卜하여 解夢을 얻는 것은 京版本과 같으나 장님의 姓은 許氏가 아니고 다만 봉사 하나로 되어 있고 또 解夢 끝에 마침 까마귀가 獄 담에 와서 까옥까옥 하니 장님은 달아 이것을 嘉屋嘉屋이라 풀었다.
이도령의 암행어사는 경판본과 같이 자원하여 된 것이 아니고, 특별히 전하의 제수한 것으로 되었으며 남원을 향해 출발한 그는 도중에 농부에게 곤욕을 당하고, 본서에서는 도중에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상경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그리하여 어사는 그 아이를 꾀어 편지를 개봉하고 보고 울다가 그 아이더러 이도령은 나와 죽마고우인데 이번에 함께 하경하여 그는 완영에 들어가 있으니 내일 남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니 나를 따라오면 그 양반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듣지 않고 어사에게 달려들어 편지를 뺏으려다가 어사의 허리에 차고 있던 마패를 만지고 놀란다. 어사는 그 아이에게 만일 천기누설하면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 울려 입을 막아 놓고 남원으로 들어갔다. 어사는 뜻깊은 오작교를 지나며 다리 아래에서 여자들이 빨래를 하며 춘향을 동정하는 공론을 듣고 춘향의 집을 찾았을 때는 춘향모는 정화수를 떠놓고 李道令이 과거에 급제하길 빌고 있을 때다. 어사는 매우 그 정성에 감동했으나, 처음 춘향모가 어사의 걸인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을 때는 어사는 상경한 그 후 관로가 끊기고 가산은 탕진되어 부친은 학장으로 나가고, 모친은 친가로 가버려 자신은 할 수 없이 춘향을 찾아왔다고 속였다. 춘향모는 그 말을 진짜로 믿고 낙담하여 어사를 박대한다. 그럴수록 어사는 지긋지긋하게 밥을 달라며 보채니, 춘향모의 박대는 더욱 심해졌다. 그럴 때 향단이가 나와 어사를 극진히 대접하고 춘향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니, 어사가 향단을 달래며 춘향모를 재촉하여 향단에게 등불을 들려 옥으로 가 춘향을 만나는데 이때 춘향은 李道令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몸에 홍삼을 입고 온 꿈을 꾸었다. 그 다음은 대체로 京版本과 다르지 않았으나, 옥에서 춘향이 어사를 만났을 때 그의 행색을 보고 도리어 동정하여 춘향모에게 어사를 좋게 대접하라고 권하였다. 어사는 옥에서 물러나와 문 안 문 밖 탐문하고 춘향집에 돌아가 그 밤을 새웠다. 그리고 본관 생일 연회에서 부른 어사의 차운은 어사가 자청하여 한 것이 아니라, 운봉이 먼저 운을 불러 어사가 화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춘향이 정렬부인으로 봉해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도령은 영상까지 지냈고, 춘향에게는 3남 2녀가 있어 모두 총명하여 직책에 올랐으며, 만세에 걸쳐 명성을 전했다는 내용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친다.
쪽수▶P104-2李道令의 暗行御史는 京版本과 같이 自願하여 된 것이 아니고 特히 殿下의 除授한 것으로 되었으며 南原을 向發하여 途中에서 農夫에게 困辱을 받고는, 本書에서는 路上에 春香의 편지를 가지고 上京하는 아해를 만난다.그리하여 御史는 그 아해를 어 편지를 開封하여 보고 울다가 그 아해더러 李道令은 나와 竹馬交友인데 이번에 같이 下卿하여 그는 完營에 들어 來日 南原서 만나자고 約束을 하였으니 나를 따라오면 그 兩班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해 듣지않고 御史에 달려들어 편지를 빼앗으려 하다가 御史 허리에 찼던 馬牌를 만지고 놀랜다. 이에 御史 그 아해에 萬一 天機漏說하면 生命을 保全치 못하리라 울려 그 입을 막아 놓고 南原으로 들어왔다 마침 뜻 깊은 烏鵲橋를 지나다가 다리 밑에서 女人들이 빨래를 하며 春香을 同情하는 公論을 두고 春香집을 찾았을 때는 春香母는 精華水를 떠 놓고 李道令이 科擧에 及第하라 빌고 있을 때다. 御史 매우 그 精誠에 感動하였으나 처음春香母가 御史의 乞人形▶P105-1色을 보고 깜작 놀랐을 때는上京한 그後 宦路는 끊어지고 家産은 蕩盡하여 父親은 학장으로 나가고 母親은 親家로 가서 自己는 할 수 없어 春香을 찾아왔다 속였다. 그랬더니 春香母는 정말 그런 줄 알고 落憺 끝에 御史를 薄待한다. 그럴수록 御史는 지긋지긋 달라불어 밥을 달라 보채니 春香母 더욱 薄待가 甚하여 갔으나 그럴 때에 香丹이가 나와 御史를 極盡히 待接하고 春香을 생각하여 또한 우니 御史가 달래어 春香母를 재촉하여 香丹에게 燈 들려 獄으로 가서 春香을 만나는데 이때 春香은 李道令이 머리에 金冠을 쓰고 몸에 紅衫을 입고 온 꿈을 꾸었다. 그 다음은 大證로 京版本과 別다름이 없었으나 獄에서 春香이가 御史를 만났을 때 그 行色을 보고 도리어 同情하여 그 母에게 좋이 待接하라 勸하였고, 御史는 獄으로 물러나와 門안 門밖 廉內을 마치고 春香집에 돌아가 그 밤을 새웠다. 그리고 本官 生日宴에 들어가 부른 御史의 次韻은 御史가 自請하여 한 것이 아니고 雲峯의 呼韻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最後에는 春香으로 貞烈夫人을 封하였다는 그 뒤 消息에 다시 李道令은 領相까지 지내고 春香에겐 3男 2女를두어 皆々히 聰明하여 모두 職居一品으로 萬世에 遺傳하였다는 것도 添附하여 끝을 마쳤다.
이상은 그 플롯의 전개를 경판본과 비교하여 설명하였으나, 여기서만 보아도 춘향전은 상당한 거리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춘향은 인물로서 이미 기생에서 여염집 처녀로 변모하였고, 이도령은 이름을 몽룡이라 개명하였다. 또 춘향에게는 향단이라는 시녀가 가까운 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도령은 책방에서 광한루로 소풍을 나가려 할 때 부친의 교훈을 물었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으로 이도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춘향의 어머니는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원하며 단을 모아놓고 축원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어사가 남원을 향해 오는 도중 춘향의 편지를 받았다는 등, 플롯 자체가 상당히 발전했을 뿐 아니라 춘향이라는 인물 자체에도 큰 변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기생이 아니었다는 점도 그것이지만, 처음 인물 소개에서 "효행(孝行)이 무쌍(無雙)하고 인자함(仁慈)이 기린(麒麟) 같으며, 일곱여덟 살이 되매 서책(書冊)에 흥미를 느껴 예의(禮儀)와 절개(貞節)를 실천하니"라는 바와 같이 퍽 유식하고 행실이 독실하여 조금도 야비한 점이 없었다. 또한 춘향의 어머니 역시 그러한 딸의 어머니답게 교양(敎養) 있는 부인이라 할 수 있었다.
쪽수▶P105-2以上은 그 플로트의 展開를 京版本과 對比하여 說來하였으나 여기서만도 春春傳은 相當한 距里에 飛蹟發展하였다 볼 수 있다. 即 春香은 人物로서 벌써 妓生에서 閭閻집 處子로 變裝하였고, 李道令은 이름을 夢龍이라 改名하였으며 또 春香에게는 香丹이라는 侍女가 近側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李道令은 冊房에서 廣寒樓로 消風을 나가려 할 때 父敎를 물었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으로 李道令과 結緣하였으며, 春香毋는 李道令이 科擧에 及第하라고 壇을 모아놓고 祝願하였다. 이 外에도 御史가 南原을 오는 途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았다는 等 相當히 그 플로트로서 發展을뿐 아니라 春香 그 自體의 人物에도 큰 變化를 볼 수 있었으니 그 몸이 妓生이 아니었던 것도 그것이지마는 처음 그 人物 ▶P106-1紹介에「孝行이 無雙이요 仁慈함이 麒麟이라 七八歲되매 書冊에 着味하여 禮貌貞節을 일삼으니」云々한 바와 같이 퍽이나 有識한 데다가 行實이 篤實하여 조그만치도 野卑한 點이 없었다. 또 春香母도 亦是 그러한 딸의 어머니인 만큼 敎養있는 婦人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서는 그 문체에 있어 역시 많은 진보를 볼 수 있다. 소위 춘향전다운 찬란한 문채란 것은 여기 와서 대성한 듯한 느낌이 있으니 먼저 그 몇 句節을 다음에 引用하여 보겠다.

향단아 밀어라. 한번굴러 심을주며 두번굴러 심을주니 발밑에 가는 따걸 바람조차 펄펄, 앞뒤점점 멀어가니 머리우에 나무입은 몸을딸아 흐늘흐늘, 오고갈제 살펴보니 녹음속에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 백운간에 번개불이 쐬이난듯 섬지재전 홀은후라, 앞에얼른 하는양은 가부야운 저 제비가 도화일점 떨어질 차려하고 쫓이는듯, 뒤로번듯 하는양은 광풍에 놀랜호접 짝을일코 가다가 돌치는듯, 무산선녀 구름하고 양대상에 나리는듯 ─(춘향의 추즐하는 장면)─
춘향의 모 기가막혀
'여보 도령님, 남우 생때같은 자식을 이경경이 웬일이요. 절곡한 우리춘향 애통하여 축거드면 자자단신 이내 신세 뉘를믿고 사잔말고'
도련님 어이없어
'여바라 춘향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영영 안보랴냐. 한양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이별, 정객관산로 ▶P107-1기중에 오희월녀 부부이별, 편삽래자소일인 용산의 형제이별, 서리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이별, 그런이별 만하여도 소식을 들을 때가있고, 생이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 출신하여 너를다려갈것 이니 우지말고 잘있거라. 우름을 너머 울면 눈도붓고 목도쉬고 골머리도 아푸니라. 돌기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내가도 광석될줄 몰라있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밖에 우뚝서서 일년춘절 다지내되 입이필줄 몰타있고, 병이라도 회심병은 오매불망 죽나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말고 잘있거라'
존향이 할길없어
'여보 도령님, 내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요. 행찬업시 가실진댄 내의찬합 갈맛다가 숙소참 잘자리에 날본다시 잡수시요.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장면)─
이내죄가 무삼죄냐. 국각투식 아니거던 엄형중장 무삼일고, 살인죄인 아니여든 항쇄족쇄 웬일이며, 역률망상 아니여든 사지결박 웬일이며 음양도적 아니여든 이형벌이 웬일인고, 이망수는 연수되야 청천일장지에 내의설음 원정지여 옥황전에 올이고저, 낭군길워 가슴답답 불이붙네, 한숨이 바람되야 불난불을 더부치니 속절업시 나죽겠네. ─(춘향이 옥중에서 장탄하는 장면)─

쪽수▶P106-2그리고 本書는 그 文體에 있어 亦是 많은 進步를 볼 수 있다. 所謂 春香傳다운 燦爛한 文彩란 것은 여기 와서 大成한듯한 느낌이 있으니 먼저 그 몇 句節을 다음에 引用하여 보겠다.

香丹아 밀어라. 한번굴러 심을주며 두번굴러 심을주니 발밑에 가는 따걸 바람조차 펄펄, 앞뒤점점 멀어가니 머리우에 나무입은 몸을딸아 흐늘흐늘, 오고갈제 살펴보니 綠陰속에 紅裳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九萬長天 白雲間에 번개불이 쐬이난듯 瞻之在前 忽隱後라, 앞에얼른 하는양은 가부야운 저 제비가 桃花일점 떨어질 차려하고 쫓이는듯, 뒤로번듯 하는양은 狂風에 놀랜蝴蝶 짝을일코 가다가 돌치는듯, 巫山仙女 구름하고 陽臺上에 나리는듯 ─(春香의 楸輟하는 場面)─
춘향의 모 기가막혀
『여보 道令님, 남우 생때같은 子息을 이境境이 웬일이요. 節曲한 우리春香 哀痛하여 축거드면 子々單身 이내 身勢 뉘를믿고 사잔말고』
도련님 어이없어
『여바라 春香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永々 안보랴냐. 한양낙일수운기는 蘇通國의 母子離別, 征客關山路 ▶P107-1幾重에 吳姬越女 夫婦離別, 編揷萊茨少一人 龍山의 兄弟離別, 西里陽關無故人은 渭城의 朋友離別, 그런離別 만하여도 消息들을 때가있고, 生而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壯元及第 出身하여 너를다려갈것 이니 우지말고 잘있거라. 우름을 너머 울면 눈도붓고 목도쉬고 골머리도 아푸니라. 돌기라도 망두石은 千萬年이 지내가도 광석될줄 몰라있고, 나무라도 相思木은 窓밖에 우뚝서서 一年春節 다지내되 입이필줄 몰타있고, 病이라도 懷心病은 寤寐不忘 죽나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말고 잘있거라』
存香이 할길없어
『여보 道令님, 내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요. 行撰업시 가실진댄 내의饌盒 갈맛다가 宿所참 잘자리에 날본다시 잡수시요. 香丹아 饌盒 술瓶 내오너라』 ─(春香과 李道令의 離別場面)─
이내罪가 무삼罪냐. 國殼偷食 아니거던 嚴刑重杖 무삼일고, 殺人罪人 아니여든 項鎖足鎖 웬일이며, 逆律網傷 아니여든 四肢結縛 웬일이며 陰陽盜賊 아니여든 이刑罰이 웬일인고, 二網水는 硯水되야 青天一張紙에 내의설음 原情지여 玉皇前에 올이고저, 朗君길워 가슴답々 불이붙네, 한숨이 바람되야 불난불을 더부치니 속절업시 나죽겠네. ─(春香이 獄中에서 長嘆하는 場面)─

이와 같이 본서의 문체는 사사조의 운문체로 되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그 유창한 맛은 도저히 다른 소설의 추급을 허하지 않는다. 또 그 전체가 운문체로 되어있는 만큼 다분히 가곡적 부면을 가지고 있을 것도 저절로 명백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앞의 인용문에서도 잠깐 보아 알 바와 같이 많은 한시구며 지나(중국) 고전을 흡수하였는데 이것이 지극히 교묘히 수용되어 조금도 어색한 데가 없다. 일터이면 전기 인용문 중에서 '담지재전홀연후'란 문구가 있으나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논어의 '안연외연탄왈, 앙지미고 찬지미견 담지재전(●●●●) 홀연재후(●●●●)'라는 것으로 안연이가 공자의 위대한 인격을 표현한 말이나, 이것을 춘향이가 이도령의 안전에서, 그 마음을 빼앗아 가면서, 추천하는 모양을 그리는 말에 차용하였다. 한문도 이렇게 되면 벌써 한문으로서의 한문이 아니고 조선문에 완전히 소화하여 버리어 조선으로서의 한문이라는 가치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상 한문은 우리에게 수입되어 다분히 생활 상에 소화되었거니와 춘향전 더욱이 본서는 그를 가장 능란하게 활용하였다는 것은 가히 경탄할 만한 것이 있다.
쪽수▶P107-2 이와 같이 本書의 文體는 四四調의 韻文體로 되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그 流暢한 맛은 到底히 다른 小說의 追及을 許하지 않는다. 또 그 全體가 韻文體로 되어있는 만큼 多分 歌曲的 部面을 가지고 있을 것도 저절로 明白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앞의 引用文에서도 暫間보아 알 바와 같이 많은 漢詩旬며 支那古典을 吸取하였는데 이것이 至極히 巧妙히 ▶P108-1收用되어 조그만치도 語塞한 데가 없다. 일터이면 前記 引用文 中에서 「膽之在前忽焉後」란 文句가 있으나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論語의 「顔淵喟然嘆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膽之在前(●●●●) 忽焉在後(●●●●)라는 것으로 顔淵이가 孔子의 偉大한 人格을 表現한 말이나, 이것을 春香이가 李道令의 眼前에서, 그 마음을 빼앗아 가면서, 鞦韆하는 모양을 그리는 말에 借用하였다. 漢文도 이렇게 되면 벌써 漢文으로서의 漢文이 아니고 朝鮮文에 完全히 消化하여 버리어 朝鮮로서의 漢文이라는 價値밖에 남지 않았다. 事實上 漢文은 우리에게 輸入되어 多分히 生活上에 消化되었거니와 春香傳 더욱이 本書는 그를 가장 能灘하게 活用하였다는 것은 可히 驚嘆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본서가 너무 그 문장을 다듬고 언어 표현미에만 힘을 경주하였기 때문에 과연 그 문채는 찬란하였으나 그 반면에 사실을 굽히고 모순을 스스로 이루는 폐가 없잖아 있었으니 이를테면 앞에서 인용하였던 첫째 번의 글을 좀 더 달아서 인용하여 보면

무산선녀 구름타고 양대상에 나리는듯, 나무잎도 풀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 실근
『이애 향단아 근디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질하다 근디줄 부뜰어라』
부뜰라고 무수이 進退하며 한창이리노닐적에 세냇가 盤石上에 玉비녀 떨어저 쟁쟁하고 「비내비내」하는소래 산호채를 들어 옥반을 깨치는듯,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인물 아니로다

쪽수▶P104-2그러나 本書가 너무 그 文章을 다듬고 言語表現美에만 힘을 傾注하였기 때문에 果然 그 文彩는 燦爛하였으나 그 反面에 事實을 굽히고 矛盾을 스스로 이루는 弊가 없잖아 있었으니 일터이면 앞에서 引用하였던 첫째 번의 글을 좀 더 달아서 引用하여 보면

巫山仙女 구름타고 陽臺上에 나리는듯, 나무잎도 풀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 실근
『이애 香丹아 근디바람이 毒하기로 精神이 어질하다 근디줄 부뜰어라』
부뜰라고 무수이 進退하며 한창이리노닐적에 세냇가 盤石上에 玉비녀 떨어저 쟁쟁하고 「비내비내」하는소래 珊瑚채를 들어 玉盤을 깨치는듯, 그 態度 그 形容은 世上人物 아니로다

이와 같으니 얼마든지 그 모순을 잡아낼 수 있다. 즉 추천을 하면서 나뭇잎을 따서 입에 물어본다든지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春香이와 같은 處女가 무슨 머리에 비녀가 있어서 그것이 盤石 위에 떨어진다는 일이 있을 理가 없다. 이 것은 모두 말을 다듬어 써내리는 바람에 미처 그러한 矛盾이 있는 것을 깨닫▶P109-1지 못한 탓이라 하겠으니 要컨댄 本書의 重大한 缺點이라 아니할 수 없다.
쪽수▶P104-2이와 같거니와 얼마든지 그 矛盾을 잡아낼 수 있다. 即 鞦韆을 하면서 나뭇잎을 따서 입에 물어본다든지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春香이와 같은 處女가 무슨 머리에 비녀가 있어서 그것이 盤石 위에 떨어진다는 일이 있을 理가 없다. 이 것은 모두 말을 다듬어 써내려오는 바람에 미처 그러한 矛盾이 있는 것을 깨닫▶P109-1지 못한 탓이라 하겠거니와 要컨댄 本書의 重大한 缺點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본서에는 몇 개의 연문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이도령이 광한루로부터 돌아와서 "보고지고" 하다가 便道에게 꾸중을 듣는다니 다음에 그 部分을 引用하면

通引 들어가
"道令님 웬목이요, 고함소래에 使道놀래시사 嚴問하라 하옵시니 엇지 알외잇가"
"딱한(●●) 일이로다(●●●●). 남우집(●●●) 늙은이는(●●●●) 耳聾症도(●●●●●) 있나니라(●●●●) 마는(●●) () 너무(●●) 밝은(●●) 것도(●●) 예상일(●●●) 아니로다(●●●●)."
글러한다(●●●●) 하다마는(●●●●) 글헐이가(●●●●) () 이쓸고(●●●). 道令님 大驚하여
"이대로 엿자와라. 내가 論語라 하는글을 보다가⋯⋯"
이것이요. 그둘은 使道가 道令님의 論語를 보다가 周公을 보고지고 하였다 하는 對答에 感激하여 睦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讚하며 둘이 問答하는 데니 即 使道 너무 感激하여라고
"政丞이야 엇지 바래것나마는 내生前에 及第는 쉬 하리만은, 及第만 쉽게하면 出六이야 베면이 지내것나"
"아니요(●●●) 그리할(●●●) 말삼이(●●●) 아니라(●●●) 政丞을(●●●) 못하면(●●●) 長栍이라도(●●●●) 되지요(●●●)"
使道이(●●●) 號令하되(●●●●)
"자네(●●) 뉘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하나(●●●)"
"대답은(●●●) 하였아오나(●●●●) 뉘말인지(●●●) 몰라요(●●●)"
그런다고(●●●) 하였으되(●●●●) 그게(●●) () () 거짓말이였다(●●●●●).

하는 것이다. 연문이라 아니 볼 수 없으나 "그런다고 하였으되 운운"이란 말로 보면 본서의 사출자 혹은 그 판각자가 자기의 의견으로 이 말을 삽입하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본서가 편작되잔 그 이전에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함유한 이본이 있었던가 어느 것일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여기에 한 의문을 가지게 되거니와 사실상 본서와 경판본과를 비교하여보면 그 플롯에서나 그 표현상에 있어서나 그 차이가 너무나 심한 것을 본다. 원래 춘향전은 소설로서 볼 것은 물론이지마는 또 이것을 일종의 희곡으로 발달하였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 경판본에서 본서 완판본까지에는 몇 번이나 노래로서 광대의 입을 통하여 불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자연 그 가운데에 플롯이 마음대로 개조가 되고 또 표현하는 언어가 저절로 마작되어왔을 것이니 본서는 말하자면 이런 것의 집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할 것이다. 따라서 본서 이전에도 경판본 이후 몇 종류의 이본이 있었을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이하 말하고자 하는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본이라든지 이명선 씨 장본 같은 고사본은 곧 그러한 종류의 이본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끝으로 본서는 금년 초춘에 박문 문고판으로 간행된 필자의 교주춘향전의 저본이 되었던 것을 부기하여둔다.
쪽수▶P109-2또 本書에는 몇 개의 衍文을 發見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李道令이 廣寒樓로부터 돌아와서 「보고지고」 하다가 便道에게 꾸중을 듣는다니 다음에 그 部分을 引用하면

通引 들어가
『道令님 웬목이요, 고함소래에 使道놀래시사 嚴問하라 하옵시니 엇지 알외잇가』
딱한(●●) 일이로다(●●●●). 남우집(●●●) 늙은이는(●●●●) 耳聾症도(●●●●●) 있나니라(●●●●) 마는(●●) () 너무(●●) 밝은(●●) 것도(●●) 예상일(●●●) 아니로다(●●●●).』
글러한다(●●●●) 하다마는(●●●●) 글헐이가(●●●●) () 이쓸고(●●●). 道令님 大驚하여
『이대로 엿자와라. 내가 論語라 하는글을 보다가⋯⋯』
이것이요. 그둘은 使道가 道令님의 論語를 보다가 周公을 보고지고 하였다 하는 對答에 感激하여 睦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讚하며 둘이 問答하는 데니 即 使道 너무 感激하여라고
『政丞이야 엇지 바래것나마는 내生前에 及第는 쉬 하리만은, 及第만 쉽게하면 出六이야 베면이 지내것나』
아니요(●●●) 그리할(●●●) 말삼이(●●●) 아니라(●●●) 政丞을(●●●) 못하면(●●●) 長栍이라도(●●●●) 되지요(●●●)
使道이(●●●) 號令하되(●●●●)
자네(●●) 뉘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하나(●●●)
대답은(●●●) 하였아오나(●●●●) 뉘말인지(●●●) 몰라요(●●●)
그런다고(●●●) 하였으되(●●●●) 그게(●●) () () 거짓말이였다(●●●●●).

하는 것이다. 右에 圏點을 둔 部分은 本書로 보아서 確實히 衍文이라 아니 볼 수 없으나 「그런다고 하였으되 云云」이란 말로 보면 本書의 寫出者 或은 그 板刻者가 自己의 意見으로 이 말을 揷入하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本書가 編作되잔 그 以前에 그러한 意味의 말을 含有한 異本이 있었던가 어느 것일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여기에 한 疑問을 가지게 되거니와 事實上 本書와 京版本과를 比較하여보면 그 플로트에서나 그 表現上에 있어서나 그 差異가 너무나 甚한 것을 본다. 元來 春香傳은 小說로서 볼 것은 勿論이지마는 또 이것을 一種의 戲曲으로 發達하였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 京版本에서 本書 完版本까지에는 몇 번이나 노래로서 廣大의 입을 通하여 불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自然 그 가운데에 플로트가 마음대로 改造가 되고 또 表現하는 言語가 저절로 磨琢되어왔을 것이니 本書는 말하자면 이런 것의 集成한 것으로 보는 것이 可할 것이다. 따라서 本書 以前에도 京版本以後 몇 種類의 異本이 있었을 것은 疑心할 수 없는 以下 말하고자 하는 普成專門學校 圖書館藏本이라든지 李明善 氏 藏本같은 古寫本은 곧 그러한 種類의 異本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끝으로 本書는 今年 初春에 博文 文庫版으로 刊行된 筆者의 校註春香傳의 底本이 되었던 것을 附記하여둔다.
































































































본문4: 三. 春香傳(普成專門學校圖書舘藏本)


본서는 현재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사본이다. 그 사출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앞뒤에는 좀이 심하게 먹어 읽을 수 없는데가 많고, 중간에 갑진 정월 11일부 지부지를 뒤집어 쓴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35, 36년 전의 전사본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분편은 전부 54장에, 끝이 약간장 누락될 듯하고 1페이지 10행 또는 11행이며, 1행은 25, 26자 내외로 되어 있으나, 본서는 여러 점으로 보아 경판본과 완판본의 중간본인 감을 준다. 첫째 그 플롯에 있어 전반 즉 춘향 이도령의 이별까지는 경판본에 가깝고, 후반은 완판본에 방사한 점이 있으니 다음에 먼저 이에 대하여 말하여 보리다.
쪽수▶P110-2本書는 現在 普成專門學校 圖書館에 所藏되어 있는 古寫本이다. 그 寫出 年代는 分明를 않으나 앞뒤에는 좀이 甚하게 먹어 읽을수 없는데가 많고, 中間에 甲辰 正月 11日附 致富紙를 뒤집어 쓴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지▶P111-1금으로부터 35, 36年 前의 轉寫本임에는 틀림이 없는듯하다. 分〿은 全部 54張에, 끝이 若汗張 漏落될 듯하고 1頁 10行 乃至 11行이며, 1行은 25, 26字 內外로 되어 있으나, 本書는 여러 點으로 보아 京版本과 完版本 의 中間本인 感을 준다. 첫째 그 플로트에 있어 前半 即 春香 李道令의 離別까지는 京版本에 가깝고, 後半은 完版本에 倣似한 點이 있으니 다음에 먼첨 이에 對하여 말하여 보련다.
그러면 이를 편의상 전반과 후반에 나누어 전반은 경판본에, 후반은 완판본에 비교하여 보겠는데 개권벽두는 숙종대왕 즉위 초라고 되어 있어 도리어 완판본의 그와 같았으나 이도령이 먼저 광한루에 나왔을 때에 춘향이가 비로소 그 인물을 나타냈다는 것이라든지, 춘향이 방자를 따라 광한루에 와서 이도령을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이라든지 다 경판본과 같은데 다만 여기에 춘향 도령에 대하여 불망기를 청하지 않고 "소녀 집을 찾으소서"라는 말로 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도령은 책방에 돌아왔다가 밤을 타서 춘향집을 찾는 데까지도 같으나 춘향집에 이르렀을 때는 춘향모는 나오지 않고 춘향이가 그 모르게 방으로 인도하여 담배와 술로 흔흔히 대접하고 또 거문고도 타며 노래도 불러 곧 사랑의 장면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이까지는 춘향모는 그 존재 아직 나타내지 않았다. 다음 이별의 장면이 되면 여기는 이도령이 아직도 춘향과 같이 자고 있는데 방자가 와서 향단이 시켜 도령 깨워 사도 신변에 무슨 일이 있는 듯하다는 것을 고했다. 그리고 사도는 완판본에와 같이 동부승지에 승차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도령은 춘향을 데리고 가겠다고 입안 말로 사도께 사뢰는데 사도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춘향집에 다시 나와 이별을 할 때는 다소 경판본보다 애정한 맛이 있었으니 춘향모도 여기 참석하게 되어 완판본을 상상케 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옥지환과 명경의 신물을 교환하는 것은 경판본 그대로인데 여기는 한번 더 이도령이 신물을 아직 교환하기 전에 방자 시켜 책방의 책상을 갖다 춘향에게 정표로 주려는 것이 있다.
쪽수▶P111-2그러면 이를 便宜上 前半 後半에 나누어 前半은 京版本에 後半은 完版本에 比較하여 보겠는데 開卷劈頭는 肅宗大王 即 位位 初 云云으로 되어 있어 도리어 完版本의 그와 같았으나 李道令이 먼첩 廣寒樓에 나왔을 때에 春香이가 비로소 그 人物을 나타냈다는 것이라든지, 春香이 房子를 딸아 廣寒樓에 와서 李道令을 만나 因緣을 맺는 것이라든지 다 京版本과 같은데 다만 여기에 春香 道令에 對하여 不忘記를 請하지 않고「小女 집을 찾으소서」라는 말로 許하고 말았다. 그리고 李道令은 冊房에 돌아왔다가 밤을 타서 春香집을 찾는 데까지도 같으나 春香집에 이르렀을 때는 春香母는 나오들 안하고 春香이가 그 母 모르게 房으로 引導하여 담배와 술로 欣欣히 待接하고 또 거문고도 타며 노래도 불러 곧 사랑의 場面이 展開되었다. 따라서 이까지는 春香母는 그 存在 아직 나타내지 않았다. 다음 離別의 場面이 되면 여기는 李道令이 아직도 春香과 같이 자고 있는데 房子가 와서 香丹이 시켜 道令 깨워 使道 身邊에 무슨 일이 있는 듯하다는 것을 告한다. 그리고 使道는 完版本에와 같이 同副承旨에 陞差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道令은 春香을 데리고 가겠다고 입안 말로 使道께 사뢰는데 使道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春香집에 다시 나와 離別을 할 때는 多少 京版本보다 愛情한 맛이 있었으니 春香母도 여기 參席하게 되어 完版本을 想像케 하는 點이 있다. 그러나 玉指環과 明鏡의 信物을 交換하는 것은 京版本 그대로인데 여기는 한번 더 李道令이 信物을 아직 交換하진 前에 房 ▶P112-1子 시켜 冊房의 冊床을 갖다 春香에게 情表로 주랴는 것이 있다.
위는 후반을 완판본에 대조하여 보면 신관은 역시 자핫골 변학도인데, 점고 끝에 춘향이 이도령으로 인해 수절한다는 말을 여기는 행수기생이 하였다 하고 완판본에는 춘향을 잡으러 행수기생이 사령 뒤를 쫓아 나왔다 하였는데, 여기는 처음 갔던 사령들이 술에 취해 들어오니 사도는 다른 사령을 재차 보내 잡아왔다 하였다. 그리고 춘향이 하옥될 때는 기생들이 와서 동정하였다는 것과 춘향모가 서울에 급을 내겠다는 것은 없다. 도리어 여기는 경판본과 같이 춘향모가 그 딸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고 하옥되는 것을 원망하였는데 춘향은 그 모에 잘못된 생각을 깨워 주었다. 하옥 후 춘향이 자탄하는 것은 완판본과 같으나 아직 옥창 앵도화가 떨어지고의 꿈이 나오기 전에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향발하였다는 것이 나온다. 그리하여 어사는 투중에서 검은 소로 밭 가는 농부와 낭탄도 하고 농부가를 들으면서 오다가(농부에게 춘향 사를 붓다가 궁욕을 당하는 일은 없다) 춘향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편지를 가지고 오던 아해는 어사가, 이도령은 그집이 망하여 나와 같이 여주 이천 등지로 빌어먹어 오다가 그의 외삼치 되는 순천부사를 찾아가는 투중에 발병이 나서 공주 모원서 처졌다는 말에 곧 넘어 따로 편지를 빼앗으려 하지도 않고 뒤돌아갔다. 따라서 그 아해가 어사의 마패를 만졌다 하는 것은 여기없고 어사는 그 길로 남원으로 향해 오는데, 이때에 옥중에서 춘향은 여러가지 꿈을 꾸어 장남에게 복점을 하였다. 그런데 여기는 그 꿈이란 것이 완판본파는 다소 바꿔 되었으니 완판본의 황릉묘 꿈은 없고 그 대신 청조가 고기 네 마리를 물어다가 춘향의 치마에 싸주었다는 꿈과 달 밝은 밤에 노인이 물가에서 왕래한다는 꿈을 꾸었다. 여기 대하여 장님은 모두 소식 알겠다는 길몽으로 해몽하고 그다음 거울이 깨어지고 꽃이 떨어지는 꿈과 그 해몽은 완판본과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어사가 남원에 당도하여 춘향 집을 찾는 것이라든지 춘향모가 단에 빈다든지, 또 어사가 춘향모에게 밥을 달라하니, 박대고 안 주려 하는 것을 향단이가 나와 어사에게 극진히 대접하였다는 것이라든지, 기타가 대개는 완판본과 같은데 다만 어사가 춘향모들 처음 만나 그 놀래는 것을 보고 집이 망하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미처 어사가 그런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여기서는 춘향모가 어사에 달겨들면서 그 신세를 개탄하였고 옥에서 춘향을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춘향모가 집으로 같이 가기를 싫어하였으므로 어사는 광한루에 가서 그 밤을 새웠다 하였다. 그리고 어사 좌정 후 춘향을 불러다가 보고 그 칼을 벗기는데 모든 기생으로 하여금 입으로 물어 뜯어 벗기게 하고 옥지환을 내어 춘향에게 준 것은 도리어 경판본에 가까운 점이 있다. 끝으로 최후는 어떻게 마감하였는지 낙장으로 알 수 없으나 현재는 춘향이 어사가 곧 자기 낭군임을 보고 반기는 것으로 마쳤다.
쪽수▶P112-2以上은 前半을 京版本과 對照하면서 主張 그 差異點을 말하였으나 以下 다시 그 後半을 完版本에 對照하여 보면 新官은 亦是 자핫골 卞學道인데, 點考 끝에 春香이 李道令으로 因해 守節한다는 말을 여기는 行首妓生이 하였다 하고 完版本에는 春香을 잡으러 行首妓生이 使令 뒤를 쫓아 나왔다 하였는데, 여기는 처음 갔던 使令들이 술이 醉해 들어오니 使道는 다른 使令을 再次 보내 잡아왔다 하였다. 그리고 春香이 下獄될때는 妓生들이 와서 同情하였다는 것과 春香毋가 서울에 急를 내겠다는 것은 없다. 도리어 여기는 京版本과 같이 春香母가 그 딸이 李道令을 爲해 守節하 고 下獄되는 것을 怨望하였는데 春香은 其 母에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었다. 下獄 後 春香이 自嘆하는 것은 完版本과 같으나 아직 獄窓櫻桃花가 뗘러지고 云云의 꿈이 나오잔 前에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向發하였다는 것이 나온다. 그리하여 御史는 途中에서 검은 소로 밭 가는 農夫와 弄談도 하고 農夫歌를 들으면서 오다가(農夫에게 春香 事를 붓다가 困辱을 當하는 일은 없다) 春香 편지를 받게되었는데 편지를 가지고 오던 아해는 御史가, 李道令은 그집이 亡하여 나와 같이 驪州 利川等地로 빌어먹어 오다가 그의 外三寸되는 順天府使를 찾아가는 途中에 발병이 나서 公州 모원서 처졌다는 말에 곧 넘어 別로 편지를 빼앗으려 하지도 않고 뒤돌아갔다. 따라서 그 아해가 御史의 馬牌를 만졌다 하는 것은 여기 없고 御史는 그 길로 南原으로 向해 오는데, 이때에 獄中에서 春香은 여러가지 꿈을 꾸어 장남에게 卜點을 하였다. 그런데 여기는 그 꿈이란 것이 完版本과는 多少 바꿔 되었으니 完版本의 黃陵廟 꿈은 없고 그 代身 靑鳥가 고기 네 마리를 물어다가 春香의 치마에 싸주었다는 꿈과 달 밝은 밤에 老人이 물가에서 往來한다는 꿈을 꾸었다. 여기 對하여 장님은 모두 消息 알겠다는 吉夢으로 解夢하고 그다음 거울이 깨어지고 꽃이 떠러지는 꿈과 ▶P113-1그 解夢은 完版本과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御史가 南原에 當到하여 春香집을 찾는 것이라든지 春香母가 壇에 빈다든지, 또 御史가 春香母에게 밥을 달라하니, 薄待코 안 주려 하는 것을 香丹이가 나와 御史에게 極盡히 待接하였다는 것이라든지, 其他가 大概는 完版本과 같은데 다만 御史가 春香母들 처음 만나 그 놀래는 것을 보고 집이 亡하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미처 御史가 그런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여기서는 春香母가 御史에 달겨들면서 그 身勢를 慨嘆하였고 獄에서 春香을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春香母가 집으로 같이 가기를 싫어하였으므로 御史는 廣寒樓에 가서 그 밤을 새웠다 하였다. 그리고 御史 坐定 後 春香을 불러다가 보고 그 칼을 벗기는데 모든 기생으로 하여금 입으로 물어 뜯어 벗기게 하고 玉指環을 내어 春香에게 준 것은 도리어 京版本에 가까운 點이 있다.끝으로 最後는 어떻게 막음하였는지 落張으로 알 수 없으나 現在는 春香이 御史가 곧 自己 郎君임을 보고 반기는 것으로 마쳤다.
위는 전반을 경판본과 대조하면서 주장 그 차이점을 말하였으나 이하 다시 그 내용에 이르러 좀 더 자세히 검토하여 보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도령의 이름을 몽룡이라 하고, 춘향을 기생이 아닌 열간집 처녀라 한 것은 암만 하여도 후래적 색채를 가지는 듯하나, 본서에는 이도령은 형식적 무의미한 령이란 이름은 버렸으나 아직 몽룡이란 이름은 얻지 못하여 다만 도령으로 통칭하였고, 춘향은 경판본과 마찬가지로 역시 기생이라는 신분이었다. 또 그가 단순히 이름이 기생이라는 것 뿐 아니라 그 행동에 있어서도 또한 그 이름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를테면 광한루에서 이도령을 처음 만났을 때에 쉽게 도령의 청을 들어주고 그러면 소녀 집을 찾으소서라 한 것이라든지 그날 밤에 이도령이 제집을 찾아 왔을 때에 그 모에게 일언의 말도 없이 몰래 맞아 들어 정을 교환하였다는 것은 모두 기생의 행동이었었다. 또 춘향모 마저 기생 모임이 틀림이 없었으니 춘향이가 매를 맞고 하옥될 때에 그가 한 말에 "이 아해야 못생겼다, 너만 못한 계월이도 임실아전 득행하여 잘 있더라 못생긴 박금이도⋯⋯ 네 고집 어찌하여 천리 이별 보낸 솔솔 일신수식하여 늙은 어미 간장 썩이너냐"한 것으로 보드라도 결국히 택판본에서 보는 춘향모의 품은 없었다. 일로 보아도 본서는 적어도 완판본보다는 먼저가 아닌가 의심나는데,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 한다면 본서는 또 적잔히 그 영향을 완판본에 미쳤다 할 수 있다. 유선 박처에 숙종대왕 즉위초 운운 시작되었다는 것 뿐 아니라 이부사는 삼청각 이륜으로 과천군감, 금산군수를 역임하여 남원부사에 제수되었다는 것이 그대로 완판본에 보이고, 후반이 되면 그 플로트가 서로 방사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활약이라든지 표현 묘사가 거개 비등한데, 첫째 인물로는 전반에서 아직 미미하던 춘향모와 향단의 활약이 여기서는 제법 완판본을 상상케 하고, 다음 표현과 묘사 방면에 기생점고에 시구영창 식의 호명이라든지, 향단에 십장가는 서로 방방한 점이 있다.
쪽수▶P113-2以上으로서 本書의 플로트는 前半 後半을 各各 京版本과 完版本에 比較硏究하여 보았으나 일로도 能히 本書가 前記 兩本의 中間本이리라는 感을 얻을 듯싶으나, 다시 그 內容에 이르러 좀 더 仔細히 檢討하여 보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李道令의 이름을 夢龍이라 하고, 春香을 妓生이 아닌 閭閻집 處女라 한 것은 암만 하여도 後來的 色彩를 가지는 듯하나, 本書에는 李道令은 形式的 無意味한 靈이란 이름은 벌서 버리였으나 아직 夢龍이란 이름은 얻지 못하여 다만 道令으로 通稱하였고, 春香은 京版本과 마찬가지로 亦是 妓生이라는 身分이었다. 또 그가 單純히 이름이 妓生이라는 것 뿐 아니라 그 行動에 있어서도 또한 그 이름을 免하지 못하였으니 일터이면 廣寒樓에서 李道令을 처음 만났을 때에 쉽게 道令의 請을 들어주고 그러면 小女 집을 찾으소서 라 한 것이라든지 그날 밤에 李道令이 제집을 찾아 왔을 때에 其母에게 一言의 말도 없이 몰래 맞아 들어 情을 交換하였다는 것은 모두 妓生의 行動이었었다. 또 春▶P114-1香母 마저 妓生 母임이 틀림이 없었으니 春香이가 매를 맞고 下獄될 때에 그가 한 말에 「이 아해야 못생겼다, 너만 못한 桂月이도 任實衙前 得幸하여 잘 있더라 못생긴 박금이도⋯⋯ 네 고집 어찌하여 千里 離別 보낸 〿〿 一身守飾하야 늙은 어미 肝腸 썩이너냐」한 것으로 보드라도 到底히 宅版本에서 보는 春香母의 品은 없었다. 일로 보아도 本書는 적어도 完版本보다는 먼저가 아닌가 疑心나는데, 高若 그렇게 할 수 있다 한다면 本書는 또 적잔히 그 影響을 完版本에 미쳤다 할 수 있다. 于先 劈頭에 肅宗大王 即位初 云云 始作되었다는 것 뿐 아니라 李府使는 三淸澗 李輪〿으로 果川縣監, 金山郡守를 歷任하여 南原府使에 除授되었다는 것이 그대로 完版本에 보이고, 後半이 되면 그 플로트가 서로 倣似할 뿐 아니라 人物들의 活躍이라든지 表現 描寫가 擧皆 比等한데, 첫째 人物로는 前半에서 아직 微微하던 春香母와 香丹의 活躍이 여기서는 제법 完版本을 想像케 하고, 다음 表現과 描寫 方面에 妓生點考에 詩句詠唱 式의 呼名이라든지, 香丹에 十杖歌는 서로 仿佛한 點이 있다.
그러나 본서에 표현된 언어 문장은 양본 어느 것과도 꼭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춘향전이라는 소설이 단순히 소설로서 번안되어 나가지 않고, 전에는 늘 연예적 희곡을 중심으로 번안되었다는 한 증거가 될지는 모르나 이상 전반은 경판본에 가깝고 후반은 완판본에 작사하다는 것도 주로 그 플롯의 전개상 한 말이고 그 표현된 언어 문장에까지 말한 것이 아니다. 본서의 언어 문장으로 말하면 이것도 역시 두 본의 중간을 밟은 것이라 할 수 있어 아직 충분히 스토리적이 노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동향만을 보일 뿐이다. 따라서 그 표현이 경판본 같은 썰렁한 맛과 완판본과 같은 유창한 맛을 모두 잃어, 잘못하면 저속한 맛을 남기기가 십상이다. 이 점은 확실히 본서의 결점이라 할 수 있어 문학적 평가를 높게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본서들의 이본적 가치는 상실치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점으로 보아서는 나는 그 가치를 상실치 않는다 할뿐 아니라, 이 존재가 춘향전 연구에 있어서는 귀중한 것이라 말을 아끼지 않는다.
쪽수▶P114-2그러나 本書에 表現된 言語 文章은 兩本 어느 것과도 꼭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春香傳이라는 小說이 單純히 小說로서 翻案되어 나가지 아니하고, 前에는 늘 演藝的 戲曲을 中心하여 翻案되었다는 한 證據가 될지는 모르나 以上 前半은 京版本에 가깝고 後半은 完版本에 做似하다는 것도 主로 그 플로트의 展開上 한 말이고 그 表現된 言語 文章에까지 말한 것이 아니다. 本書의 言語 文章으로 말하면 이것도 亦是 兩本의 中間을 밟은 것이라 할 수 있어 아직 充分히 스토리 日的이 歌曲的으로 發展하지 못하고, 그 動向만을 보일 뿐이다. 따라서 그 表現이 京版本 같은 〿〿한 맛과 完版本과 같은 流暢한 맛을 모두 잃어, 잘못하면 卑俗한 맛을 남기기가 〿〿이다. 이 點은 確實히 本書의 缺點이라 할 수 있어 文學的 評價를 높게 期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하여 本書들의 異本的 價値는 喪失치 않을 ▶P115-1것이다. 도리어 이 點으로 보아서는 나는 그 價値를 喪失치 않는다 할뿐 아니라, 이 存在가 春香傳 研究에 있어서는 貴重한 것이라 말을 아끼지 않는다.












































본문5: 四. 春香傳(李明蕃氏藏本)


본서는 전체 93장으로 완결된 고사본이다. 그 저작연대라든지 사출 연대는 불명하나 다소 이에 참고 자료를 찾는다면 본서 본문 중 이도령 수기문에 "정유 원월 십삼일 밤에 기주에 이몽룡이요 증인에 방자 고두쇠라" 하는 것이 있어 얼마 쯤 우리의 주의를 끌지만 물론 이것이 충분한 고증의 자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서는 그 내용을 세밀히 연구하여 보면 완판본과 비슷비슷할 뿐 아니라 확실히 그 연대가 그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이하에 그 플롯으로부터 연구하겠다.
쪽수▶P115-2本書는 全部 93張으로 完結된 古寫本이다. 그 著作年代라든지 寫出 年代는 不明하나 多少 이에 參考 資料를 찾는다면 本書 本文 中 李道令 手記文에丁酉元月十三日夜에 記主에 李夢龍이요 證人에 房子 고두쇠라」 하는 것이 있어 얼마쯤 우리의 注意를 끌지만 勿論 이것이 充分한 考證의 資料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本書는 그 內容을 細密히 研究하여 보면 完版本과 비슷 비슷할 뿐 아니라 確實히 그 年代가 그보다 오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면 以下에 그 플로트로부터 研究하겠다.
플롯은 완판본과 대동소이하여 거의 비슷하나 약간 다른 점만을 들어 비교연구하여 보면 완판본 상두에 숙종대왕 즉위초 운운하여놓고, 이때 남원부에 월매라는 기생이 있으되하여 춘향의 신분과 그 인물 소개를 하였으나, 본서에서는 필두는 숙종대왕 즉위초 운운으로는 필기하였지만 그 다음은 춘향의 인물 소개는 없이 경판이나 보전도서관본과 마찬가지로 이도령의 인물 소개가 나왔고, 이도령은 광한루에서 멀리 춘향의 자태를 발견하고 혹하여 방자 시켜 그를 광한루로 불렀을 때 춘향은 오들않고 방자에게 안락해 넉자를 적어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도령은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용이히 해득치 못하였더니 방자의 지혜를 빌어 기러기는 물을 따고, 나비는 꽃을 따고 게는 굼우를 따고, 비들기는 관관초비의 비니 요조숙녀 찾아오라는 뜻으로 해하고 그날 밤 춘향집을 찾았다. 이때 춘향모는 나와서 비록 도령을 응접은 하였지만 완판본과 같이 부모로서 그 딸의 혼약을 허락한다는 것은 없었다. 다만 옆에 앉아서 놀다가 자기 방으로 건너가고, 춘향은 도령에 대하여 은근히 담배도 대접하고 술도 부어 올리고 노래도 불러 들려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주었다. 그리다가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청함에 처음은 퍼뜩 허하지 않더니 도령의 뜻이 굳건함을 보고 수기를 받고 일신을 그에 맡겼다. 따라서 완판본과 같이 예로써 맞는다 하는 것이 없이 경판이나 보전도서관본에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사도는 동부승지에 승차하였다 하지 아니하고 이조참의에 낙점이 되었다 하며,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하는 데는 이도령이 춘향을 애주에라도 태워 가지고 가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춘향은 이도령을 보내기가 너무 섭섭하여 오리정에 주반을 차려 놓고 가는 님을 여기서 망종 이별을 하였으며 또 서로 명경과 옥지환으로 신물을 교환하였다. 그 다음은 서로 다름이 없으나 완판본에는 춘향이 옥에 갇혀서 자탄하다가 황릉묘에 가 보이고 또 옥창 앵도화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는 것을 계속하여 기록하였는데 본서에는 황릉묘 다음에 이도령이 급제하여 자원으로 호남옥사가 되어 나오는 도중에서 춘향의 편지를 받았다 하고, 옥사가 남원을 가까이 왔을 때에 춘향은 옥중에서 옥창 앵도화 떨어지고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었다 하였다. 다음 어사가 남원을 오는 도중에서는 농부들이 모 심다가 나와 쉴 때 부사의 정사며 춘향의 일을 물었다는 다음에 한 곳에서는 검은 소로 밭을 가는 농부와 농담도 하였다 하고, 또 도중에서 살인죄수에 대한 판결이 불공평하였다고 부사를 원망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고, 또 주막에서 노인에게 춘향의 일을 물었다고도 하며, 춘향의 편지를 받은 후에도 서당에 들러 춘향이 죽었다는 소식을 두고 비분하여 서당 학생들이 가르치는 초상 앞에 가서 울다가 묘주에게 욕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며, 또 오다가 절에 들렀더니 수륙제가 한창인데 마침 거기 향단이가 춘향을 위해 제 올리는 것을 만났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또 춘향의 몽사에도 옥창 앵도화 떨어진다는 것 뿐 아니라 도령이 고기 넷을 듣고 말 타고 구름에 왕래한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소소한 것으로 따로 이 춘향전 전체에 있어 따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것도 후래의 이본에 또 그냥 따라한 것도 있다는 것은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쪽수▶P115-3플로트는 完版本과 大同小異하여 거의 비슷하나 若干 틀리는 點만을 들어 比較硏究하여 보면 完版本 甥頭에 肅宗大王 即位初에 云云하여놓고, 이때 南原 府에 月梅라는 妓生이 있으되하여 春香의 身分과 그 人物 紹介를 하였으나, 本書에서는 劈頭는 肅宗大王 即位初 云云으로는 筆起하였지마는 그 다음은 春香의 人物 紹介는 없이 京版本이나 普專圖書館本과 마찬가지로 李道令의 人物 紹介가 나왔고, 李道令은 廣寒樓에서 멀리 春香의 姿態를 發見하고 惑하여 房子 시켜 그를 廣寒樓로 불렀을 때 春香은 오들않고 房子에게 雁蝶蟹鳩 넉字를 적어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李道令은 이것이 무슨 뜻인가 容易히 解得치 못하였더니 房子의 智慧를 빌어 기러기는 물을 딿고, 나비는 꽃을 딿고 ▶P116게는 구무를 딿고, 비들기는 關關鴡鳩의 鳩니 窈窕淑女 찾아오라는 뜻으로 解하고 그날밤 春香집을 찾았다. 이때 春香母는 나와서 비록 道令을 應接은 하였지마는 完版本과 같이 父 母로서 그 딸의 婚約을 許諾한다는 것은 없었다. 다만 옆에 앉아서 놀다가 自己 房으로 건너가고, 春香은 道令에 對하여 은근히 담배도 待接하고 술도 부어 올리고 노래도 불러 듣기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주었다. 그리다가 李道令이 百年佳約을 請함에 처음은 펏덧 許하지 않더니 道令의 뜻이 堅固함을 보고 手記를 받고 一身을 그에 맡겼다. 따라서 完版本과 같이 禮로써 맞는다 하는 것이 없이 京版本이나 普專圖書館本에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使道는 同副承旨에 陞差하였다 하지 아니하고 吏曹參議에 落點이 되었다 하며, 春香과 李道令의 離別하는 데는 李道令이 春香을 腰輿에라도 태워 가지고 가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春香은 李道令을 보내기가 너무 섭섭하여 五里亭에 酒盤을 차려놓고 가는 님을 여기서 망종 離別을 하였으며 또 서로 明鏡과 玉指環으로 信物을 交換하였다. 그 다음은 서로 다름이 없으나 完版本에는 春香이 獄에 갇혀서 自嘆타가 黃陵廟에 가 보이고 또 獄窓 櫻桃花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는 것을 繼續하여 記錄하였는데 本書에는 黃陵廟 다음에 李道令이 及第하여 自願으로 湖南御史가 되어 나오는 途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았다 하고, 御史가 南原을 가까이 왔을 때에 春香은 獄中에서 獄窓櫻桃花 떨어지고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었다 하였다. 다음 御史가 南原을 오는 途中에서는 農夫들이 모 심다가 나와 쉴 때 府使의 政事며 春香의 일을 물었다는 다음에 한 곳에서는 검은 소로 밭을 가는 農夫와 弄談도 하였다 하고, 또 途中에서 殺人罪囚에 對한 判決이 不公平하였다고 府使를 怨望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고, 또 酒幕에서 老人에게 春香의 일을 물었다고도 하며, 春香의 편지를 받은 後에도 書堂에 들러 春香이 죽었다는 消息을 두고 悲憤하여 書堂 學生들아 가르치는 草殯 앞에 가서 울다가 墓主에게 辱을 當하는 일도 ▶P117-1있었다 하며, 또 오다가 절에 들렀더니 水陸祭가 한창인데 마침 거기 香丹이가 春香을 爲해 齊 올리는 것을 만났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또 春香의 夢事에도 獄窓櫻桃花 떨어진다는 것뿐 아니라 道令이 고기 넷을 듣고 말 타고 雲間에 往來한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小小한 것으로 別로히 이 春香傳 全體에 있어 別 影響을 주는 것이 아니지마는 이것도 後來의 異本에 또 그냥 踏襲된 것도 있다는 것은 注意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 본서의 플로트를 대개 완판본과 다른 점만을 들어 말하였으나 우리는 여기서 일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것을 보았다. 즉 그 하나는 완판본 벽두의 춘향 인물 소개인데 이것은 완판본에 와서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춘향의 성이 성가라 하는 것은 본서에서도 춘향모가 그 딸이 하옥되어 정히 생명이 위급할 때 단을 모아놓고 정화수를 떠다 비는 말 가운데「건명임자생리씨대주와 곤명임자생성씨게주가」운운한 것이 있지마는 애초에 춘향은 성참판의 딸 성춘향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은 확실히 완판본의 새로운 시험이라 아니 할 수 없는데 이는 요컨댄 춘향을 려염집 처자로 가장하는 완판본의 의도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또 하나는 리도령이 광한루로 춘향을 불렀을 때 완판본에선 춘향이 오들 안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을 재차 방자를 그 집으로 보내 불렀다 하였는데 본서에서는 춘향이가 방자에게 글 넉자를 써서 리도령에 전하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 갔으며 리도령은 또한 그 뜻을 짐작하고 다시 부르지 않았다 하였다. 이전 본들은 모두 이도령의 일언에 춘향이가 와서 대령한 것을 이렇게까지 한 것은 전혀 춘향의 인물에 대한 동정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겠거니와, 그 동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후래의 색채가 농후하다고 나는 앞에서 말하였지마는 지금 이 두 것을 보건댄 본서의 동정은 지금 움직임을 보일 따름이라서 아직 그 도가 완판본에 미치지 못하였음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는 경판본 보전도서관본에서 완판본으로 발달하여 가는 그 과정에 위한 것이라 추측함을 허할 줄 믿는다.
쪽수▶P117-2以上 本書의 플로트를 大概 完版本과 다른 點만을 들어 말하였으나 우리는 여기서 一二 注意하지 않으면 안 될 重要한 것을 보았다. 即 그 하나는 完版本 劈頭의 春香 人物 紹介인데 이것은 完版本에 와서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春香의 姓이 成가라 하는 것은 本書에서도 春香母가 그 딸이 下獄되어 正히 生命이 危急할 때 壇을 모아 놓고 精華水를 떠다 비는 말 가운데「乾命壬子生李氏대주와 坤命壬子生成氏게주가」云云한 것이 있지마는 애초에 春香은 成參判의 딸 成春香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은 確實히 完版本의 새로운 試驗이라 아니 할 수 없는데 이는 要컨댄 春香을 閭閻집 處子로 假裝하는 完版本의 意圖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또 하나는 李道令이 廣寒樓로 春香을 불렀을 때 完版本에선 春香이 오들 안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을 再次 房子를 그 집으로 보내 불렀다 하였는데 本書에서는 春香이가 房子에게 글 넉字를 써서 李道令에 傳하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 갔으며 李道令은 또한 그 뜻을 짐작하고 다시 부르지 않았다 하였다. 以前 本들은 모두 李道令의 一言에 春香이가 와서 待令한 것을 이렇게까지 한 것은 全혀 春香의 人物에 對한 同情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겠거니와, 그 同情이 깊으면 깊을수록 後來의 色彩가 濃厚하다고 나는 앞에서 말하였지마는 지금 이 두 것을 보건댄 本書의 同情은 지금 움직임을 보일 따름이라서 아직 그 度가 完版本에 미치지 못하였음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本書는 京版本 普專圖書館本에서 完版本 ▶P118-1으로 發達하여 가는 그 過程에 位한 것이라 推測함을 許할줄 믿는다.
그러면 다음 또 본서 등장의 중요 인물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면 첫째 이도령은 그 이름을 몽룡이라 하였으나 이것은 그의 수기에 단 한번 나올 따름이고 완판본에와 같이 널리 보통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다음 춘향은 역시 기생이라 하여 있다. 기생점고에 대비청속이란 말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역시 천기라 불렀고, 또 그 행동에 있어 그에 틀림이 없었으니 이도령이 첫날 밤에 집으로 찾아 왔을 때 조금도 수태가 없이 의례히 맞는 손으로 이도령을 맞아 수적하였다. 또 춘향모도 다름없는 한 개 기생의 모였으니 춘향이 오리정에서 도령을 이별하고 울 때 나와서"이년 변시럽다 이별도 남 다르다. 기생이라 하는 것이 이별 거기 늙느니라, 나도 소시 구실 할제 대부를 세량이면 손가락이 아퍼 못세겠다"운운한 것이라던지, 춘향이 매 맞고 업더졌을 때에 춘향을 안고"압다 요년아 이것이 웬일이니 기생이라 하는 것이 수절이란 무엇이니"한 것으로 볼지라도 아직 결코 완판본의 춘향모는 아니었다. 그 다음 향단은 보전도서관본에는 그 활약이 적히 미미하였고 완판본에는 충실한 춘향의 시비로서 근측을 떠나지 아니 하였더니 여기서는 보전도서관본보다는 물론 그 활약을 인증할 수 있지만 아직 완판본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볼지라도 본서는 그 연대가 완판본보다 오래다는 것을 역설할 수 있을 듯하다.
쪽수▶P118-2그러면 다음 또 本書 登場의 重要 人物에 對하여 硏究하여 보면 첫째 李道令은 그 이름을 夢龍이라 하였으나 이것은 그의 手記에 單 한번 나올 따름이고 完版本에와 같이 널리 普通的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다음 春香은 亦是 妓生이라 하여 있다. 妓生點考에 代婢呈贖이란 말이 있을 뿐 아니라 自身이 亦是 賤妓라 불렀고, 또 그 行動에 있어 그에 틀림이 없었으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집으로 찾아 왔을 때 조금도 羞態가 없이 으레히 맞는 손으로 李道令을 맞아 酬的하였다. 또 春香母도 다름없는 一個 妓生의 母이었으니 春香이 五里亭에서 道令을 離別하고 울 때 나와서 「이년 변시럽다 離別도 남 다르다. 妓生이라 하는 것이 離別 거기 늙느니라, 나도 少時 구실 할제 대부를 세량이면 손가락이 아 퍼 못세겠다」云云한 것이라던지, 春香이 매 맞고 업더졌을 때에 春香을 안고 「압다 요년아 이것이 웬일이니 妓生이라 하는 것이 守節이란 무엇이니」한 것으로 볼지라도 아직 決코 完板本의 春香母는 아니었다. 그 다음 香丹은 普專圖書館本에는 그 活躍이 적히 微微하였고 完版本에는 忠實한 春香의 侍婢로서 近側을 떠나지 아니 하였더니 여기서는 普專圖書館本보다는 勿論 그 活躍을 認證할 수 있지마는 아직 完版本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點으로 볼지라도 本書는 그 年代가 完版本보다 오래다는 것을 力說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본문에 들어가 사실적으로 이틀 연구하여 보면 나는 먼저 완판본을 연구하면서 그 연문있는 부분에 주의하였으나 이 부분을 본서에서 찾아 보면 사도와 목랑청이 문답하는 말 가운데

『과거는 갈데 없지』
『없지요』
『벼슬 할리』
『벼슬 하지요. 하다 못하면 무명실이라도 하지요』
『에이 사람 나가』
『나가라면 나가지요』

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뿐 아니라 원증 본서에는 이러한 소화, 재담, 질담이 무수히 있다. 다음에 본서의 면목 소개할 겸 그 일례를 들어 보면 리도령이 춘향집에 가고 싶어 사도의 퇴등을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리는 장면에

『동헌에서 퇴등하얐느냐』
『아직 멀었소』
도령님 피란하되
『야숙하다 야숙하다. 우리 부친이 야숙하다. 남의 사정도 모를야 차질인들 잘 손가, 녹섯달 표면시키 중맛기는 가례로다. 방자야 동헌 좀 쳐다 보아라』
『아직 멀었소』
『방자야』
『예, 대료관자 아니면 되갯소. 말씀하오』
『상방에 가서 사도눈을 좀 보고 오너라』
『눈을 보면 엇더하오』
『대종이 있나니라. 쉬게 주무실랴면 자조 금적거리고, 더듸 주무실랴면 드문 드문 금적이느니라』
방자놈 갓다 오더니
『여보 그 눈대종은 못 하겠습데다 어떤 때는 새X하듯 깝짝이듯 깜짝깜짝하다가 어떤때는 비 맞인 쇠눈 금적이듯 금적 금적하니 알수 없습데다』
『에라 홀레 개자식 고만 두어라 내가 보마』
도령님이 상방에 들어가니 사도 오수경을 씨고 평상에 누었는데 눈을 뜨고 날을 보시나, 감고 주무시나 한참 서서 궁리타가 잠을 아니들었으면 날을 보고 말할테요 잠이 깊이 들었이면 자최없이 나가리라 한번 대종을 보자하고 안경앞에 가서 손꼬락을 꼼작 꼼작하니, 사도 그 거동을 보고
『이것이 무슨짓인고』
도령님이 깜짝 놀라 두손을 마조 잡고 둘러대는 말이
『안경테에 벌러지가 기는듯 하여 그리하였지요
『어서 나가 일즉 자고 공부를 부지런히 하라』
도령님이 무안하야 나오면서
『늙어 갈수록 잠도 없지!』

이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것이 완판본에 가면 소위 연문으로서 남을 것이 될 것이다 완판본 '그런다고 하였으되'운운한 만큼 될 수 있는대로 이러한 야속적 유─모아리스틱한 부분은 없애려 하였다. 그런데 본서에서는 다분히 그러한 것을 가짐은 어째서인가. 이를 완판본의 '그런다고 하였으되'하는 말과 아울러 생각하면 여기서도 혹은 본서가 완판본보다 오랜 형태를 가졌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쪽수▶P118-2 다시 本文에 들어가 事實的으로 이틀 硏究하여 보면 나는 먼저 完版本을 研究하면서 그 衍文있는 部分에 注意하였으나 이 部分을 本書에서 찾아 보면 使道와 睦郞廳이 問答하는 말 가운데

『科擧는 갈데 없지』
『없지요』
▶P119『벼슬 할리』
『벼슬 하지요. 하다 못하면 무명실이라도 하지요』
『에이 사람 나가』
『나가라면 나가지요』

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뿐 아니라 元證 本書에는 이러한 笑話, 才談, 姪談이 無數히 있다. 다음에 本書의 面目 紹介할 兼 그 一例를 들어 보면 李道令이 春香집에 가고 싶어 使道의 退燈을 그야말로 一刻이 如三秋로 기다리는 場面에

『東軒에서 退燈하얐느냐』
『아직 멀었소』
道令님 피란하되
『야숙하다 야숙하다. 우리 父親이 야숙하다. 남의 事情도 모를야 且질인들 잘 손가, 녹섯달 표면시키 중맛기는 가례로다. 房子야 東軒 좀 쳐다 보아라』
『아직 멀었소』
『房子야』
『예, 대료관자 아니면 되갯소. 말씀하오』
『上房에 가서 使道눈을 좀 보고 오너라』
▶P120『눈을 보면 엇더하오』
『대종이 있나니라. 쉬게 주무실랴면 자조 금적거리고, 더듸 주무실랴면 드문 드문 금적이느니라』
房子놈 갓다 오더니
『여보 그 눈대종은 못 하겠습데다 어떤 때는 새X하듯 깝짝이듯 깜짝깜짝하다가 어떤때는 비 맞인 쇠눈 금적이듯 금적 금적하니 알수 없습데다』
『에라 홀레 개子息 고만 두어라 내가 보마』
道令님이 上房에 들어가니 使道 烏水鏡을 씨고 平床에 누었는데 눈을 뜨고 날을 보시나, 감고 주무시나 한참 서서 窮理타가 잠을 아니들었으면 날을 보고 말할테요 잠이 깊이 들었이면 자최없이 나가리라 한번 대종을 보자하고 眼鏡앞에 가서 손꼬락을 꼼작 꼼작하니, 使道 그 거동을 보고
『이것이 무슨짓인고』
道令님이 깜짝 놀라 두손을 마조 잡고 둘러대는 말이
『眼鏡테에 벌러지가 기는듯 하여 그리하였지요
『어서 나가 일즉 자고 工夫를 부지런히 하라』
道令님이 무안하야 나오면서
『늙어 갈수록 잠도 없지!』

이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것이 完版本에 가면 所謂 衍文으로서 남을 것이 될 것이다 完版本 「그런다고 하였으되」▶P121-1云한 만큼 될 수 있는대로 이러한 野俗的 유─모아리스틱한 部分은 없애려 하였다. 그런데 本書에서는 多分히 그러한 것을 가짐은 어째서인가. 이를 完板本의 「그런다고 하였으되」하는 말과 아울러 생각하면 여기서도 或은 本書가 完版本보다 오랜 形態를 가졌지 않는가 하는 疑心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일은 요컨대 이상 여러 점으로 말해온 바와 같이 본서와 완판본을 비교연구하여 보면 보전도서관본보다는 신맛이 있지마는 완판본보다는 얼마를 고색이 있을 것은 속일 수 없으며, 동시에 본서는 경판본과 보전도서관본 등에서 영향을 받아, 다시 완판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 하고 다시 좀 더 본서의 문체에 대하여 말하여 보면 본서도 역시 완판본과 마찬가지로 사사조의 운문체를 많이 썼다. 일례를 들어 보면 이도령이 첫날밤에 춘향집을 찾았을 때 춘향모와의 문답이다.
쪽수▶P121-2일은 要컨대 以上 여러 點으로 말해온 바와 같이 本書와 完版本을 比較硏究하여 보면 普專圖書館本보다는 新맛이 있지마는 完版本보다는 얼마를 古色이 있을 것은 속일 수 없으며, 同時에 本書는 京版本과 普專圖書館本 等에서 影響을 받아, 다시 完版本에 影響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 하고 다시 좀 더 本書의 文體에 對하여 말하여 보면 本書도 亦是 完版本과 마찬가지로 四四調의 韻文體를 많이 썼다. 一例를 들어 보면 李道令이 첫날밤에 春香집을 찾았을 때 春香母와의 問答이다.

춘향어미 하난말이
『여보 도령님, 그런 말삼이랑 두번마오, 내딸춘향 매물하여 친구왕래 전혀없고 사도만일 알으시면 우리 모녀 두신세는 부지하경 될것이니 어서바삐 돌아가오』
이도령 하는말이
『할미 그는 염려마오, 사도도 소시에 우리앞집 이괴쇠누님 친하여가지고 개구녁 출입하다가 울타리가지에 눈통이틀 걸커미어 젓두대기가 여태있내 념려말고 들어가세』
춘향어미 그말을 듯고
「귀중하시는 도령님이 밤중에 오섰다가 종행으로 돌아가면 피차 섭섭 할터이니 잠간다녀 가옵소서. 춘향아 이리 좀 오너라⋯⋯』

또 본심는 완판본 그것과 같이 한시구도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본서의 문장은 근본적으로 그와 닮은 점이 있으니 그는, 만일 완판본의 문장 시민적 문학이라 한다면 본서의 문장은 농민적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벌서 앞에 인용한 몇 구절의 문채로 보아서도 알 일이겠지마는 또 하나 인용하여 보면 이도령이 방자를 데리고 춘향집을 찾아가는 도중이다.

방자놈 돌아서며
『도령님 말씀 들으시요. 기생의 집 가는 길에 우리 두리 평발인즉 방자라고 말으시고 이름이나 불러주오』
『그리하마,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이 몹시 거북하지요. 소입의 성은 알으시지요』
『성이 무엇이냐』
『벽성이지요』
『무엇이냐』
『아가요』
『성도 고약하다. 이름은 무엇이니』
『버지요』
『그놈 성명도 고약하다. 량반이야 부르겠느냐 상놈일다』
▶P123『여보 도령님, 말삼 들으시요. 구성명하여 불러주시면 모시고 가려니와 방자라고 부를테이면 도령님이 혼자 가시요. 소인은 다른데로 갈터인즉 갈려건 가고 말려건 마시고려』
이도령 바쁜 마음에 일각이 삼추로다, 가만히 생각하여 성명을 부처보니 부르기가 난감하고, 부르지 마자하니 갈길을 못가겠네.
『이애 방자야, 오날밤만 성명을 고쳐부르면 어떠하냐』
『되지 못할말을 마오 아무리 상놈인들 피명역성이 될말이요, 갈터이여든 혼자 가오. 내일아침에 책방으로 만납시다』
떨치고 도망하니 이도령이 황망하여 쫓아가며
『이애 많아, 어서 가자』
방자놈이 등불 끄고 가마니 숨엇시니까 허다한 인가중에 찾일 길이 전혀없다. 이도령 민망하여 이리 저리 찾이면서
『이놈이 여기 어디 숨었것다』
중얼 중얼하는 모양은 혼자 보기는 아깝다. 도령님이 생각하되, 방자야 부르면 더군다나 안되겠고, 성명을부르자니 난중하여 못하겠네. 이런놈의 성명도 세상에 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내일이 바뻐 할수없다. 한번만 불러보자 가마니 시험하것다.「아버지」크게야 부를수 있나. 몹슬놈의 성명도있다. 할일없이 불러보자
「아버지야」
방자놈이 썩 나서며
「우애」

쪽수▶P121-3

春香어미 하난말이
『여보 道令님, 그런 말삼이랑 두번마오, 내딸春香 매물하여 親舊往來 全혀없고 使道萬一 알으시면 우리 母女 두身勢는 不知何境 될것이니 어서바삐 돌아가오』
李道令 하는말이
『할미 그는 念慮마오, 使道도 少時에 우리앞집 이괴쇠누님 친하여가지고 개구녁 出入하다가 울타리가지에 눈통이틀 걸커미어 젓두대기가 여태있내 念慮말고 들어가세』
春香어미 그말을 듯고
「貴重하시는 道令님이 밤중에 오섰다가 宗行으로 돌아가면 彼此 섭섭 할터이니 暫間다녀 가옵소서. 春香아 이리▶P122좀 오너라⋯⋯』

또 本審는 完版本 그것과 같이 漢詩句도 많이 引用하였다. 그러나 本書의 文章은 根本的으로 그와 닮은 點이 있으니 그는, 萬一 完版本의 文章 市民的 文學이라 한다면 本書의 文章은 農民的 文學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벌서 앞에 引用한 몇句節의 文彩로 보아서도 알 일이겠지마는 또 하나 引用하여 보면 李道令이 房子를 데리고 春香집을 찾아가는 途中이다.

房子놈 돌아서며
『道令님 말씀 들으시요. 妓生의 집 가는 길에 우리 두리 平髮인즉 房子라고 말으시고 이름이나 불러주오』
『그리하마,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이 몹시 거북하지요. 小入의 姓은 알으시지요』
『姓이 무엇이냐』
『僻姓이지요』
『무엇이냐』
『아가요』
『姓도 고약하다. 이름은 무엇이니』
『버지요』
『그놈 姓名도 고약하다. 兩班이야 부르겠느냐 상놈일다』
▶P123『여보 道令님, 말삼 들으시요. 具姓名하여 불러주시면 모시고 가려니와 房子라고 부를테이면 道令님이 혼자 가시요. 小人은 다른데로 갈터인즉 갈려건 가고 말려건 마시고려』
李道令 바쁜 마음에 一刻이 三秋로다, 가만히 생각하여 姓名을 부처보니 부르기가 難堪하고, 부르지 마자하니 갈길을 못가겠네.
『이애 房子야, 오날밤만 姓名을 고쳐부르면 어떠하냐』
『되지 못할말을 마오 아무리 상놈인들 避名逆姓이 될말이요, 갈터이여든 혼자 가오. 來日아침에 冊房으로 만납시다』
떨치고 逃亡하니 李道令이 황망하여 쫓아가며
『이애 많아, 어서 가자』
房子놈이 燈불 끄고 가마니 숨엇시니까 許多한 人家中에 찾일 길이 全혀없다. 李道令 민망하여 이리 저리 찾이면서
『이놈이 여기 어디 숨었것다』
중얼 중얼하는 모양은 혼자 보기는 아깝다. 道令님이 생각하되, 房子야 부르면 더군다나 안되겠고, 姓名을부르자니 難重하여 못하겠네. 이런놈의 姓名도 世上에 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내일이 바뻐 할수없다. 한번만 불러보자 가마니 試驗하것다.「아버지」크게야 부를수 있나. 몹슬놈의 姓名도있다. 할일없이 불러보자
「아버지야」
房子놈이 썩 나서며 ▶P124-1「우애」

익살스러운 천배 방자와 양반집 귀동자 이도령의 묘사가 실로 교묘하다고도 하겠으나 또 한 점 꾸밈도 없이 천연스러운 그것은 가히 평민문학의 극치다 이를만하다. 본시 소설문학이 이러하고 우리 춘향전이 이래야 될 것이다. 일로 보면 완판본은 너머 미사여구를 나열하기에 힘써 도리어 향토미를 잃은 듯한 느낌이 없다 할 수 없으니 본서 같은 것은 정히 그러한 해독을 입지 않은 순수한 춘향전 문학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절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쪽수▶P124-2익살스러운 賤輩 房子와 兩班집 貴童子 李道令의 描寫가 實로 巧妙하다고도 하겠으나 또 一點 꾸밈도없이 天然스러운 그것은 可히 平民文學의 極致다 이를만하다. 本是 小說文學이 이러하고 우리 春香傳이 이래야 될 것이다. 일로 보면 完版本은 너머 美辭麗句를 羅列하기에 힘써 도리어 鄕土味를 잃은 듯한 느낌이 없다 할 수 없으니 本書 같은 것은 正히 그러한 害毒을 입지 않은 純粹한 春香傳 文學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絕對의 價値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疑心하지 않는다.










































본문6: 五. 古本春香傳


본서는 대정 2년 11월 20일부로 신문관에서 발행된 본이다. 이름은 고본이고 그 오서엔 편수 겸 발행인이 최창선이라 되어있으나 실제는 최남선씨의 개책본으로 상당히 광범위에 와하여 개책한 흔적을 인증할 수 있다. 그런데 본서의 저본은 어떤 것이던가. 일람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또 본서 권두 서문에도 하등 이에 언급함이 없어 나는 전연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연구하여 온 바의 다른 이본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완판본과는 별로히 관련이 없고 경판본과 이명선씨 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으니 춘향은 본시 기생의 몸으로 광한루에 불려 가서 수기를 받고 곧 이도령에 약혼을 헌 것이라든지 이별에 있어 면경과 옥지환의 신물을 교환하고, 춘향은 다시 오리정에서 이도령율 전송한 것이라든지, 춘향이 하옥될 때 한량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라든지 사도가 남의 초상에 가서 울다가 욕을 보았다는 것이라든지 모다 그것을 방증할 수 있을 듯하다.
쪽수▶P114-3本書는 大正 2年 11月 20日附로 新文館에서 發行된 本이다. 이름은 古本이고 그 奥書엔 編修 兼 發行人이 崔昌善이라 되어있으나 其實은 崔南善氏의 改冊本으로 相當히 廣範圍에 瓦하여 改冊한 痕跡을 認證할 수 있다. 그런데 本書의 底本은 어떤 것이던가. 一覽할 機會를 얻지 못하였고, 또 本書 卷頭 序文에도 何等 이에 言及함이 없어 나는 全然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硏究하여 온 바의 다른 異本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完版本과는 別로히 關聯이 없고 京版本과 李明善氏 本에 가장 많은 影響을 받았으리라는 것만은 疑心할 수 없으니 春香은 本是 妓生의 몸으로 廣寒樓에 불려 가서 手記를 받고 곧 李道令에 約婚을 許한 것이라든지 離別에 있어 面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고, 春香은 다시 五里亭에서 李道令율 餞送한 것이라든지, 春香이 下獄될 때 閑良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라든지 御史가 남의 草殯에 ▶P125-1가서 울다가 辱을 보았다는 것이라든지 모다 그것을 傍證할 수 있을 듯하다.
본서는 또 본서로서 새로 고안된 점도 많이 있다. 일례로 이도령이 춘향과 이별할 때 춘향집으로 나와서 서로 붙잡고 애틋하게 떨어지지 못하다가 방자가 나와서 재촉하는 바람에 겨우 떨어져 내가로 들어갔다는 것은 별 다름이 없으나 그 다음 내가로 들어가니 그때야 편도가 내일로 행정행하다 명하였다 하고, 이도령은 그 명을 듣자 설움이 터져 울다가 밤을 새우고 그 익일에 출발하였다 한다. 이것은 사소한 것이지만 그때의 손본은 이 점에 극히 주의하여 대개는 사도가 내직으로 부차하게 된 사령이 내려오자 곧 도령에 행정을 행하란 명이 내리고, 명령을 받은 도령은 곧 춘향집으로 뛰어나와 이별이야 이별이야 하다가 뿌리치고 상경한다는 말하자면 그동안의 시간적 관념이 극히 모호하여 왔던 것인데 본서에서는 그것이 아무 모순이 없이 전개되어 있다고 하겠다. 또 사도가 남원을 향해오다가 도중에서 초상에 울었다는 것은 이명선씨본에서 취한듯 하지만 여기서는 평범의 서당이 아니고 산간 불당으로 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공부하는 선비들과 시도 지으며 노다가 남원부사의 정사를 묻던 끝에 춘향이가 옥중에서 원사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그 초상은 강좌수의 미혼전 딸의 무덤이라 하였다. 그리고 춘향의 편지는 거의 남원 다 와서 받은 것은 다른 이본과 별 차이는 없지만 그 편지로 말미암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춘향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어 일喜일비의 자가 되었다 한다. 또 사도가 옥중으로 춘향을 찾아 그 비관하는 태도를 보고 혹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밤에라도 자해하여 버릴까 두려워하여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또 한번 더 만나기를 굳이 부탁하였다.
쪽수▶P125-2 그러나 本書는 또 本書로서 새로 考案된 點도 많이 있다. 일터이면 李道令이 春香과 離別할 때 春香집으로 나와서 서로 붙잡고 戀戀이 떨어지지 못하다가 房子가 나와서 재촉하는 바람에 겨우 떨어저 內衙로 들어갔다는 것은 別 다름이 없으나 그 다음 內衙로 들어가니 그때야 便道가 明日로 內行治行하다 命하였다 하고, 李道令은 그 令을 듣자 설움이 터져 울다가 밤을 새우고 그 翌日에야 出發하였다 한다. 이것은 些少한 것이지마는 입때의 巽本은 이 點에 極히 不注意하여 大概는 使道가 內職으로 附差하게 된 辭令이 내려오자 곧 道令에 內行을 治行하란 命이 내리고, 命令을 받은 道令은 곧 春香집으로 뛰어나와 離別이야 離別이야 하다가 뿌리치고 上京한다는 말하자면 그동안의 時間的 觀念이 極히 模糊하여 왔던 것인데 本書에서는 그것이 아무 矛盾이 없이 展開되어 있다고 하겠다. 또 御史가 南原을 向해오다가 途中에서 草殯에 울었다는 것은 李明善氏本에서 取한듯 하지마는 여기서는 普通의 書堂이 아니고 山間 佛堂으로 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工夫하는 선비들과 詩도 짓고 놀다가 南原府使의 政事를 묻던 끝에 春香이가 獄中에서 寃死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그 草殯은 姜座首의 未婚前 딸의 무덤이라 하였다. 그리고 春香의 편지는 거의 南原 다 와서 받은 것은 다른 異本과 別 差異는 없지마는 그 편지로 말미암아 죽은 줄로만 알았던 春香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어 一喜一悲의 資가 되었다 한다. 또 御史가 獄中으로 春香을 찾아 그 悲觀하는 態度를 보고 或이나 來日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밤에라도 自手하여 버릴까 두려워하여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또 한번 더 만나기를 굳이 付託하여있다.
이런 것이 본서가 먼저의 자료를 가지고 다시 가공한 것이거니와 이 외에도 또 본서로서 전혀 창안이라고 보이는 점에는 춘향모가 옥중의 허약한 딸을 위하여 약을 달라 굿을 하고 소동을 벌였고, 사도는 도중에서 소인 묵객을 만나 시를 지어서 즐기기도 하고, 풍악 절도 면임들이 부사 생일에 쓰려고 민간에서 징수를 하는 것을 보고 있다. 또다시 그 전체적 플롯 및 기술적 순서를 보면 천자풀이는 보통은 '보고지고' 편에 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교정편 사랑노래에 들어 있고, 또 춘향의 꿈은 극히 간단하여 경판본과도 같이 파경 운운뿐인데 그것도 사도가 춘향집을 당도하였다는 그 다음에 기술하였다. 마치 이명선씨본이 사도남원치행 도중에 잠깐 삽입하였던 것을 여기는 그 맨 끝 도정에 옮겨 가지고 온 것인데, 춘향전을 설명의 편의상 광한루의 결연, 교정, 이별, 춘향의 수난, 이도령의 등과와 암행어사치행, 재봉 이렇게 여섯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경판본과 완판본은 춘향의 옥중꿈사를 춘향의 수난 끝에 두었고, 본서는 그것을 재봉 앞에 가지고 왔다는 것이 된다.
쪽수▶P125-3이런 것이 本書가 먼저의 材料를 가지고 다시 加工한 것이거니와 이 外에도 또 本書로서 全然 創案이라고 보이는 點▶P126-1에는 春香毋가 獄中의 寡弱한 딸을 爲하여 問藥을 한다 굿을 한다 야단을 하였고, 御史는, 途中에서 騷人 墨客을 만나 詩를 지어서 즐기기도 하고, 風〿 約正 面任들이 府使 生日에 쓰려고 民間收斂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또다시 그 全體的 플로트 乃至 記述的 顺序를 보면 千字풀이는 普通은「보고지고」篇에 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交情篇 사랑歌에 들어 있고, 또 春香의 夢寡는 極히 簡單하여 京版本과도 같이 破境 云云뿐인데 그것도 御史가 春香집을 當到하였다는 그 다음에 記述하여 있다. 마치 李明善氏本이 御史南原治行 途中에 暫間 揷入하였던 것을 여기는 그 맨 끝 途程에 옮겨 가지고 온 것인데, 春香傳을 說明의 便宜上 廣寒樓의 結緣, 交情, 離別, 春香의 受難, 李道令의 登科와 暗行御史治行, 再逢 이렇게 六段으로 나누어 본다면 京版本과 完版本은 春香의 獄中夢事를 春香의 受難 끝에 두었고, 本書는 그것을 再逢 앞에 가지고 왔다는 것이 된다.
위에는 주로 본서의 플롯을 두고 연구하여 보았으나 다음은 그 문장에 대하여 말하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본서는 대폭적으로 최남선씨의 손이 든 듯하여 문장 문체에까지 큰 변화를 가지고 온 듯하다. 첫째 개권 벽두의 1페이지부터 5페이지까지의 글은 가히 본서의 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삼천리강산유람가라 부를 수 있는 대문으로서

「여각같은 이천지에 손님 같은 광음이라 홍몽이 조판한 후 영웅호걸 문장재자 몇몇이나 다녀갔노. 일월산하는 지금에 의나하되 인물사업은 자최를 못볼세라. 고인 이미 그러하니 내 인생이 다를소냐, 꿈같은 진세명리 헌신같이 다 버티고 짤하로 명산수에 이 품안 부치리라」

으로 필기하여 백두산단군신역으로부터 명산대리과 명승고적을 두로 밟아 호남승지남원으로 찾아들어오는 그 몽혼한 필치는 최남선씨가 아니면 쓰지 못할 명문으로 되어있다. 또 그 다음 이도령 인물 소개에 있어 완본 같으면

「사도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같고 지혜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이렇게 할 것을, 본서는

「사도자제 도령님이 연광이 십육세라, 김부식의 얼골이요 이덕흥의 풍신이라, 문장은 최고운이요 필법은 김생이라」

하였다. 이것은 모두 최남선씨의 가필윤색한 것으로 거기에 될 수 있는 데까지 조선의 향토색을 가미하고자 하는 것이 나타나 있다. 또 춘향의 인물 소개에도

「연광은 이팔이요, 인물은 일색이요 행실은 백옥이요, 풍월은 황진이요, 재질은 부용이요, 가곡은 선월이라 으뜸」

이라 하여 역시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세밀히 검토하여 보면 얼마든지 의심나는 점을 책출할 듯싶으나 본서는 이와 같이 상당히 넓은 범위에 최남선씨가 손을 대어 개천한 만큼 그 문장은 극히 세련되어 있다 하겠다. 문장의 유창한 점은 완본도 결코 다른 이본에 밑가든 안하겠지만 그러나 완본과 이와는 또 닮은 맛이 있다 하겠으니 나는 먼저 완본과 이명선씨본의 문장을 비하면서 전자를 시민적 문학이라 한다면 후자는 농민적 문학이라 한 일이 있으나, 본서와 완본을 비교하면 본서는 완본보다 또 다시 한층 정도가 높은 느낌이 있어 그것을 시민적 문학이라 하였다면 이것은 귀족적 문학이라 하여야 될 것이다. 그만큼 본서에는 한숙어 한시가 더욱 많아지고 또 조선의 고사, 조선의 속담, 조선의 지혜가 풍부하여 보통의 힘으로는 그 전체의 해독이 용이하지 못하게 되었다.
쪽수▶P126-2以上은 主로 本書의 플로트를 두고 硏究하여 보았으나 다음은 그 文章에 對하여 말하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本書는 大幅的으로 崔南善氏의 손이 든 듯하여 文章 文體에까지 큰 變化를 가지고 온 듯하다. 첫째 開卷 劈頭의 自 1頁으로 至 5頁의 글은 可히 本書의 序曲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三千里江山遊覽歌라 부를 수 있는 大文으로서「旅閣같은 이天地에 손님 같은 光陰이라 鴻濛이 肇判한 後 英雄豪傑 文章才子 몇몇이나 다녀갔노. 日月山河는 지금에 依儺하되 人物事業은 자최를 못볼세라. 古人 이미 그러하니 내 人生이 다를소냐, 꿈같은 塵世名利 헌신같이 다 버티고 찰하로 名山水에 이 懷抱 부치리라」云云으로 筆起하여 白頭山 壇君神域으로부터 名山 大利과 名勝古跡을 두로 밟아 湖南勝地南原으로 찾아들어오는 그 濛渾한 筆致는 崔南善氏가 아니면 쓰지 못할 名文으로 되어있다. 또 그 다음 李道令 人物 紹介에 있어 完版本 같으면

▶P127-1「使道子弟 李道令이 年光은 二八이요, 風采는 杜牧之라, 度量은 滄海같고 智慧豁達하고, 文章은 李白이요, 筆法은 王羲之라」

이렇게 할 것을, 本書는

「使道子弟 道令님이 年光이 十六歲라, 金富軾의 얼골이요 李德馨의 風神이라, 文章은 崔孤雲이요 筆法은 金生이라」

하였다. 이것은 모두 崔南善氏의 加筆 潤色한 것으로 거기에 될 수 있는 데까지 朝鮮의 鄕土色을 加味하고자 하는 것이 나타나 있다. 또 春香의 人物 紹介에도

「年光은 二八이요, 人物은 一色이요 行實은 白玉이요, 風月은 黃眞伊요, 재질은 芙蓉이요, 歌曲은 蟾月이라 云々」

이라 하여 亦是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外에도 細密히 檢討하여 보면 얼마든지 疑心나는 點을 摘出할 듯싶으나 本書는 이와 같이 相當히 넓은 範圍에 崔南善氏가 손을 대어 改刪하였는 만큼 그 文章은 極히 洗煉되어 있다하겠다. 文章의 流暢한 點은 完版本도 決코 다른 異本에 밑가든 안하겠지마는 그러나 完版本과 이와는 또 닯은 맛이있다 하겠으니 나는 먼저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의 文章을 比하면서 前者를 市民的 文學이라 한다면 後者는 農民的 文學이라 한 일이 있으나, 本書와 完版本을 比較하면 本書는 完版本보다 또 다시 一層 程度가 높은 느낌이 있어 그것을 市民的 文學이라 하였다면 이것은 貴族的 文學이라 하여야 될 것이다. 그만큼 本書에는 漢熟語 漢詩가 더욱 많아지고 또 朝鮮의 故事, 朝鮮의俗談, 朝鮮의 智識이 豐富하여 普通의 힘으로는 그 全體의 解讀이 容易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치숙어와 한시구며, 또 고사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쓰려하고 그 위에 문장을 고르고 문채를 다듬으려 하였기 때문에 실제 사실적 방면에 있어서는 너무 사실과 원격하는 폐를 면하지 못하였다. 이 점은 가곡을 주로 하여 온 춘향전으로서는 부득이하였고, 또 다른 이본들도 같은 결함에 빠졌다 하여야 하겠지만 본서에 와서는 유독 그 정도가 함을 보았으니, 일터이면 광한루로 나가는 도중풍경이라든지 춘향의 방치레라든지, 또 그 주교상이라든지, 춘향모의 약방문이라든지 이러한 것을 얽어 보면 왼통 세상의 풍경, 서화, 음식, 약방문이 여기 다 모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일례로 춘향의 주교상의 일부에 끌어 보면

「위선 주교상지할제 팔모접은 대마반에 통영소반 안성동기 왜화기 당화기 산호 호박 순금천은 각색기명 노혔는대, 술병도 겻드렸다 등비홍악죽절병 영락금정오동병 야와그린 왜화병 서국보화유리병 벽해수궁산호병 문채좋은 대마병, 각색술을 겻드렸다 국화주 포도주 죽엽주 연엽주 감홍로상당백화주⋯⋯」

이와 같아야 기타는 가히 이로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숙어의 문구에는 일일이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고 전체는 현대소설식으로 순절을 띠어있어 의미해 얻어 독서에 많은 편의를 주고 있다. 춘향전으로의 이러한 시험은 본서보다 일년앞서 출판된 옥중화에서 처음이고 본서에서 그 다음이라 하겠지만 이것이 춘향전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겠고 또 동시에 개천자 최남선씨의 연구적 정신이 그 가운데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겠다.
쪽수▶P127-2그러나 그러한 渶熟語와 漢詩句며, 또 故事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쓰려하고 그 위에 文章을 고르고 文彩를 다듬으려 하였기 때문에 實際 寫實的 方面에 있어서는 너무 事實과 遠隔하는 弊를 免하지 못하였다. 이 點은 歌曲을 主로 하▶P128-1여 온 春香傳으로서는 不得已하였고, 또 다른 異本들도 같은 缺陷에 빠졌다 하여야 하겠지마는 本書에 와서는 唯獨히 그 程度가 함을 보았으니, 일터이면 廣寒樓로 나가는 途中風景이라든지 春香의 房치레라든지, 또 그 酒肴床이라든지, 春香母의 藥方文이라든지 이러한 것을 얽어 보면 왼통 天下의 風景, 書畵, 飲食, 藥方文이 여기 다 모인 듯한 느낌을 준다. 一例로 春香의 酒肴床의 一部에 끌어 보면

「위선 酒肴床支할제 팔모접은 玳瑁盤에 統營小盤 安城鍮器 倭畵器 唐畵器 珊瑚 琥拍 純金天銀 各色器皿 노혔는대, 술瓶도 겻드렸다 滕彼洪澳竹節瓶 影落金井梧桐瓶 野娃그린 倭畵瓶 西國寶貨琉璃瓶 碧海水宮珊瑚瓶 文彩좋은 玳瑁瓶, 각색술을 겻드렸다 菊花酒 葡萄酒 竹葉酒 蓮葉酒 甘紅露相糖百和酒⋯⋯」

이와 같아야 其他는 可히 이로서 推測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漢熟語의 文句에는 一一히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고 全體는 現代小說式으로 旬節을 띠어있어 意味解 得파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고 있다. 春香傳으로의 이러한 試驗은 本書보다 一年앞서 出版된 獄中花에서 처음이고 本書에서 그 다음이라 하겠지마는 이것이 春香傳 硏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겠고 또 同時에 改刪者 崔南善氏의 研究的 精神이 그 가운데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러면 끝으로 본서는 이름을 고본 춘향전이라하여 마치 고래의 전래본을 복판한 듯이 되어있지마는 이상 설래하여 온 바로 보아서도 알 바와 같이 기실은 최남선씨의 번안 편저라 하여서 가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최남선씨가 어느 정도까지 저본에서 번안하였으며 개산하였는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저본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무엇이라 지금 말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쪽수▶P128-2그러면 끝으로 本書는 이름을 古本 春香傳이라하여 마치 古來의 傳來本을 複版한 듯이 되어있지마는 以上 說來하여 온 바로 보아서도 알 바와 같이 其實은 崔南善氏의 飜案 編著라 하여서 可할 것이다. 다만 問題는 崔南善氏가 어느 程度까지 底本에서 飜案하였으며 改刪하였는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底本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무엇이라 지금 말할 수 없음을 遺憾으로 생각한다.











































본문7: 六. 別春香傳


본서는 폐장한 편자 미상의 사본이다. 그러나 표지 내면에 「계축십월십일 책주박기준」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년 이전의 사본인 것은 의심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체재로 보아 혹은 이것이 그 당시 편저가 출판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실현되지 못한 채 남은 그 원고본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도 있다. 그것은 그 서두에 본문의 한숙어와 한시구를 한자 그대로 표출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본서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가곡을 써있는데 그에는 일일이 주로 병점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아무래도 원고본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방증이 될 듯싶으나 본서 하반을 써내려가 어사가 아직 춘향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내일의 변사도 생일연을 기다리면서 청문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여객집을 들어 행객들이 화용도를 읽는 것을 보고 「어허 그도령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하여 놓고 그다음에 「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은 중에 사명창과객들이 들어와서 각소장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장관일네라. 이때 살보 권선달이 들어오며 놀보제」를 썼다가 (본서 제88장 뒷면) 지우고, 「이때 어사도 춘향집 근경을 다다르니 으뜸」에 계속하였는데, 이 삭제한 부분을 그 뒤 어사가 춘향을 옥중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여인이 명을 자으면서 춘향의 정절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춘향정절은 사람마다 아는데 변사도는 인류가 아니로다」한 다음에 옮겨「이때 변사도 잔치를 배설하는데 칠읍관장을 다 청하고 수다이 모운중에 사명창과객이 들어와 각기소장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권선달이 늘보턱 제비대문을 으뜸」 (본서 제94장 안면)이라고 썼다. 이것은 필사시에 혹 전사자가 그 페이지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이사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그러구러 이튿날 되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전사 시의 페이지 잘못으로 인한 삭제가 아니고 원작자 자신이 개천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본서는 가히 원작자의 원고본이라는 의심을 받게 될 줄 믿는다.
쪽수▶P129本書는 鄙藏한 編者 未詳의 寫本이다. 그러나 表紙 內面에 「癸丑十月十日 冊主朴琪俊」이라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27年 以前의 寫本인 것은 疑心 없다. 뿐만 아니라 그 體裁로 보아 或은 이것이 그 當時 編著가 出版이라도 하여 보고자 하던 것이 實行되지 못한 채 남은 그 原稿本이 아니었던가 하는 疑心도 있다. 그것은 그 書頭에 本文의 漢熟語와 漢詩句를 漢字 그대로 表出하여 두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本書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많은 歌曲을 써있는데 그에는 一々히 朱로 傍點을 둔 것이라던지 그 솜씨가 암만 하여도 原稿本인 느낌을 준다. 또 이것도 한 傍證이 될 듯싶으나 本書 下半을 써내려가 御史가 아직 春香집을 찾아 들어가지 아니하고 來日의 卞使道 生日宴을 기다리면서 廉聞하고 돌아다닐 때에 한 旅客집을 들어 行客들이 華容道를 읽는 것을 보고 「어허 그道令 이야기책 보기는 이력찻다」하여 놓고 그다음에 「그러그로 이튿날 되여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은 中에 四名唱 過客들이 들어와서 各所長대로 노래를 한마디씩 하는데 그도 壯觀일네라. 이때 살보 權先達이 들어오며 놀보제」를 썼다가 (本書 第88張 裏面) 지우고, 「이때 御史道 春香집 近境을 다다르니 云々」에 繼續하였는데, 이 削除한 部分을 그 뒤 御史가 春香을 獄中에서 보고 나와서 골목을 지나다가 어떠한 女人이 명을 자으면서 春香의 貞節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春香貞節은 사람마다 아는데 卞使道는 人類가 아니로다」한 다음에 옮겨「이때 卞使道 잔치를 배설하는데 七邑官長을 다 請하고 數多이 모운中에 四名唱 過客이 들어와 各其所長대로 노래를 하더니라 이때 삼보 權▶P130-1先達이 늘보倻 제비대문을 云云」 (本書 第94張 裏面)이라고 썼다. 이것은 筆寫時에 或 謄寫者가 그 頁次를 잊고 썼다가 고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移寫된 여기에는 그 처음에 「그러구러 이튿날 되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確實히 膽寫 時의 頁次 잘못으로 因한 削除가 아니고 原作者 自身이 改刪한 것이라 하여야 될 것이니 本書는 可히 原作者의 原稿本이라는 疑心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본서는 일행 17, 18자 내지 22, 23자, 매페이지 12행의 105장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가곡 본의로 편찬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주묵으로 병점을 치고 그 시작되는 옆에는 '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 '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 '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중머리쇠옥성', '진양아라리', '애원성진양제', '애원성중머리', '진양애원성', '중머리애원성', '중꾹거리', '들치기폭이목', '폭이목애원성', '쇠옥성중머리', '머리시조목', '항성진양제폭이목' 등의 곡명을 주기하였다. 이것은 전혀 본서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고 또 이후의 이본에서도 별로 볼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많은 노래를 함유하여 보통 춘향가에서 듣지 못하는 '베틀노래'라든지 '처사가'라든지 '새타령'이라든지 '화용도'라든지 '반장가'라든지 이러한 노래가 수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플롯이라든지 그 내용 이명선씨본과 완본 두본을 절충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그 몇몇 중요한 것을 들어 보면 첫째 이도령이 광한농서 방자시켜 춘향 불렀을 때 이명선씨본은 춘향이 방자에게 기란 나비 게 비둘기 넉글자를 써 주고 갔었다 하였으나 본서는 이 것을 취하되 다소 그를 구체화시켜 구름따라 용 바람따라 호 사막놀이 나비따라 꽃이라는 문장을 써 주었다 하였으며, 또 이명선씨본은 이도령이 방자들 데리고 첫날 밤에 춘향집을 찾아 갈 때 익살스러운 방자란 놈이 점잖은 도령님을 무한이 쓰달려 '방자'라 부르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 하고 도령을 욕보였으나, 본서 또한 그것을 자미있게 보았든가 차마 그 부르지 못할 이름은 '방자가 박춘백이라는 제 자를 불러 달라' 하였으며 이도령은 방자놈이 아무리 달래도 잘 가지 안함으로 그놈이 돈 생각이 있어 그런줄 짐작하고 삼백량 표지를 해 주었다 하여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별하는 장면에 가서는 사도가 동부승지에 승차하였다는 것, 이도령이 춘향을 허리거리에라도 넣어 가겠다는 것은 완본에 따랐고 명경과 지방을 신물로 교환하고 춘향이 다시 오리정에서 도령을 송별하였다는 것은 이명선씨본에서 취하여 왔다. 또 신관 변효도 취임 후 춘향이 옥에 갇혀서 자탄하고 울다가 황릉묘의 꿈을 꾸고 따라 옥창벚꽃낙의 꿈을 꾸어 지나가는 장남을 부러 풀이하는 것은 완본의 플롯을 좇았으나 여기는 그 장남을 박봉사라 하였고 가택 으뜸은 없으되 장남이 춘향의 다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삽입하였다. 이 해담은 경본 이래 이명선씨본에도 있었던 것인데 완본에는 어쩐 일인지 없어졌던 것을 여기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그다음 이것은 별로 신통치 못한 이야기지만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이명선씨본에 어사가 서당에 들렀다가 서당 학생에게 속아 토적에 가서 춘향의 묘인줄 알고 울다가 주인에게 욕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본서에도 이것을 갖다 써서 여기는 서당 학생에게 속았다 하지 아니하고 총각 노래에서 춘향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으며 묘주는 용생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후 절에 들어 수륙제를 보았다던가 향단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것은 본서에서 갖다 쓰지 않았다.
쪽수▶P130-2그리고 本書는 一行 17, 18字 乃至 22, 23字, 每頁 12行의 105張으로 되어 있거니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歌曲 本意로 編纂되어 노래로 부를 때는 朱墨으로 傍點을 치고 그 始作되는 옆에는「진양제」, 「국거리」, 「몽유진양제」, 「잔국거리」, 「중머리」, 「진양제폭이목」, 「들치기제」, 「상성폭포성」,「들치기폭포성」, 「중머리폭포성」, 「중머리들치기」,「진기」, 「쇠옥성」, 「상성진양제」, 「항성진양제
이상은 이명선씨본과 완판본에서 영향 받는 점을 들었으나, 또 그렇다 하여 본서가 노상 이상 양본의 절충주의로만 그치지 않았다. 간이 본서로서의 신안도 있었으니 일터이면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보고 한참 황홀하여 저서 방자에게 그것이 금이나 옥이냐 물으면 방자가 금도 아니다 옥도 아니다 대답하였는데 본서는 그 대답하는 주객을 뒤바꿔 방자가 도리어 도령에게 김이냐 옥이냐라고 부르면 도령이 김도 아니다 옥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하고, 또 이도령은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춘향의 편지를 받는 것은 경판본 이외 다른 이본은 다 있었던 것이나 그러나 춘향에게는 옥중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 이도령에게 부쳤다는 사실이 이때까지 없었다. 이것은 사실로 보아 확실한 모순이라 하여야 될 것을 이전 이본은 인식하지 못하고 왔던 것인데 본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여 춘향이 옥중에서 편지를 써 부쳤다 하고 그나마 그 편지는 전일 방자가 가지고 경성으로 가던 길인데, 어사가 반가이 그 방자를 만나 편지도 받았을 뿐 아니라 춘향의 사정도 들어 비로소 이도령이 변사도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 결심하였으며, 그 방자에게는 자기가 내려가잔 전에는 아무 말을 말라 당부하아 보내고 청파역졸에게는 다시 통기하여 변사도 생일인 모일에 남원서 출도를 할 것이니 그때까지 광한루로 대령하라 명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사건은 순조롭게 전개되었었다. 또 어사는 삼문에 어사출도를 하고 광한루에서 좌기하여 춘향을 호래하였다 하며, 어사가 옥지환을 내어 춘향을 주었을 때 춘향은 처음에는 혹 이도령이 그 몸이 궁하니 남에게 팔지는 않았나 의심하였다 한다. 그리고 끝은 "춘향을 본댁으로 치송하니라 그뒤야 누가 알리요"로 마감하여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고 뒤 소식은 말하지 않아 얼마만큼 이전 이본의 형태를 깨뜨린 느낌도 있다.
쪽수▶P131-3以上은 李明善氏本과 完版本에서 影響받는 點을 들었으나, 또 그렇다 하여 本書가 노상 以上 兩本의 折衷主義로만 그치지 않았다. 間이 本書로서의 新案도 있었으니 일터이면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보고 한참 恍憾하여 ▶P132-1저서 房子에게 그것이 金이나 玉이냐 물으면 房子가 金도 아니다 玉도 아니다 對答하였는데 本書는 그 對答하는 主客을 뒤바꿔 房子가 도리어 道令에게 金이냐 玉이냐라고 부르면 道令이 金도 아니다 玉도 아니다라고 對答하였다하고, 또 李道令은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春香의 편지를 받는 것은 京版本 以外 다른 異本은 다 있었던 것이나 그러나 春香에게는 獄中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 李道令에게 부쳤다는 事實이 이때껏 없었다. 이것은 事實로 보아 確實한 矛盾이라 하여야 될 것을 以前 異本은 認識치 못하고 왔던 것인데 本書는 이 點을 分明히 하여 春香이 獄中에서 편지를 써 부쳤다 하고 그나마 그 편지는 前日 房子가 가지고 京城으로 가던 길인데, 御史가 반가이 그 房子를 만나 편지도 받았을 뿐 아니라 春香의 事情도 들어 비로소 李道令이 卞使道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 決心하였으며, 그 房子에게는 自己가 내려가잔 前에는 아모 말을 말라 당부하아 보내고 靑坡驛卒에게는 다시 通寄하여 卞使道 生日인 某日에 南原서 出道를 할 것이니 그때까지 廣寒樓로 待令하라 命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事件은 順調로히 展開되었었다. 또 御史는 三門에 御史出道를 하고 廣寒樓에서 坐起하여 春香을 呼來하였다 하며, 御史가 玉指環을 내어 春香을 주었을 때 春香은 처음에는 或 李道令이 그 몸이 窮하니 남에게 팔지나 않았나 疑心하였다 한다. 그리고 끝은 「春香을 本宅으로 治送하니라 그뒤야 누가 알리요」로 막음하여 讀者의 想像에 맡겨버리고 뒤 消息은 말하지 않아 얼마큼 以前 異本의 形 態를 깨트린 느낌도 있다.
이상으로 대강 본서의 개괄적 소개를 마쳤으나 끝으로 한 가지 더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이도령은 이름을 몽룡이라 하였으나 춘향은 바로 남원 기생 성춘향이라 하였다. 따라서 처음에 완본과 같은 인물 소개가 없이 종래의 이본 형식을 그대로 쫓았다. 그리고 춘향 이도령의 첫날밤 결연에 있어서는 이도령이 춘향에 대하여 약혼을 청하니 춘향이 처음에는 거절하는 듯하더니 어느 사이에 허락한단 말도 없고, 또 수기를 써 달라 한 적도 없이 저절로 결합하여 버렸다. 춘향을 기생으로 버려두지 않고 여염집 처녀로 승격시켜 다시 성참판의 딸을 만든 것은 춘향전으로 보아서 한 발달이요 또 완본의 한 공로라 하여야 될 것인데 본서는 어찌하여 그 영향은 받고 있으면서 춘향만 다시 기생으로 되돌려버렸을까, 생각해보건대 본서는 앞에서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이명선씨본과 완본 두본의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 두본은 춘향의 신분에 대하여 각기 닮았던 것이다. 즉 이명선씨본은 기생이라 하였고 완본 이원가 처녀라 하였던 것인데, 춘향을 비기생이라 한 것은 물론 완본의 창설이요 동시에 이전 전래에는 없는 말이다. 이 본서로서 볼 때 다소라도 사실에 둘중하자면 역시 춘향은 기생에 그대로 두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여 완본의 그것을 취하지 않은 듯싶다. 본서의 이러한 태도는 곳곳이 보인다 할 수 있으니 춘향을 기생 그대로 두고 이도령이 춘향집을 가서 약혼을 청할 때 별로 수기 이외 없었다는 것도 그것이지만 또 춘향이가 옥중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에 부쳤다는 것이라든지, 이도령은 남원치행 도중에서 그 편지를 보고 비로소 변효도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남원서 출도할 것을 결정하였다는 것도 그것인데, 종래의 춘향전은 어사가 비로소 춘향의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불분명하고 도중에서 농부에게 탐내하여서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미미하여 마치 어사가 벌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춘향의 편지라 하더라도 이전본은 대개 어사가 어디서 받느냐 하면 농부에게 탐문한 이후에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춘향의 편지는 퍽 무력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본서는 그 편지를 농부와 만나기 전, 어사치행을 하고 나오는 처음에 보았다 하였다. 이리하여 춘향의 편지 일장이 많은 효과를 나타내게 되고 또 그 다음 농부와의 문답도 무리가 없이 순순히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이외도 이러한 것을 찾으면 또 있을 것이나 요컨대 본서의 취할 점은 여기에 있고 또 본서의 가치 있는 곳이라 하겠다.
쪽수▶P132-2以上으로 大綱 本書의 概括的 紹介를 마치었으나 끝으로 한가지 더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李道令은 이름 을 夢龍이라 하였으나 春香은 바로 南原 妓生 成春香이라 하였다. 따라서 처음에 完版本과 같은 人物 紹介가 없이 從來의 異本 形式을 그대로 쫓았다.그리고 春香 李道令의 첫날밤 結緣에 있어서는 李道令이 春香에 對하여 約婚을 請하▶P133니 春香이 처음에는 拒絶 하는 듯하더니 어느 사이에 許諾한단 말도 없고, 또 手記를 써 달라 한 적도 없이 저절로 結合하여 버렸다. 春香을 妓生으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閭閻집 處子로 昇格시켜 다시 成參判의 딸을 만든 것은 春香傳으로 보아서 한 發達이요 또 完版本의 한 功勞라 하여야 될 것인데 本書는 어찌하여 그 影響은 받고 있으면서 春香만 다시 妓生으로 되돌려버렸을까, 생각컸댄 本書는 앞에서 說來하여 온 바와 같이 李明善氏本과 完版本 兩本의 影響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事實이나 이 兩本은 春香의 身分에 對하여 各其 닯았던 것이다. 即 李明善氏本은 妓生이라 하였고 完版本 閻閻家 處女라 하였던 것인데, 春香을 非妓生이라 한 것은 勿論 完版本의 創說이요 同時에 以前 傳來에는 없는 말이다. 이 本書로서 볼 때 多少라도 寫實에 置重하자면 亦是 春香은 妓生에 그대로 두는 것이 有利하지 않을까 하여 完版本의 그것을 取하지 않은 듯싶다. 本書의 이러한 態度는 곳々이 보인다 할 수 있으니 春香을 妓生 그대로에 두고 李道令이 春香집을 가서 約婚을 請할 때 別로 手記 云이 없었다는 것도 그것이지마는 또 春香이가 獄中에서 편지를 써서 서울에 부쳤다는 것이라든지, 李道令은 南原治行 途中에서 그 편지를 보고 비로소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辱을 當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南原서 出道할 것을 決定하였다는 것도 그것인데, 從來의 春香傳은 御史가 비로소 春香의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不分明하고 途中에서 農夫에게 探內하여서 알았다 하지마는 그것이 너무도 微微하여 마치 御史가 벌서 그 事實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春香의 편지라 하더라도 以前本은 大概 御史가 어디서 받느냐 하면 農夫에게 探問한 以後에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春香의 편지는 퍽 無力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本書는 그 편지를 農夫와 만나잔 前, 御史治行을 하고 나오는 처음에 보았다 하였다. 이리하여 春香의 편지 一張이 많은 效果를 나타내게 되고 또 그 다음 農夫와의 問答도 無理가 없이 順々히 展開되▶P134어 나갈 것이다. 이外도 이러한 것을 찾으면 또 있을 것이나 要컨대 本書의 取할 點은 여기에 있고 또 本書의 價値 있는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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