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SNU24-1)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1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 TUANANH(CBNU2024)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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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한자명)
Hwang Jang Yeop.jpg
출처 : 위키백과[1]
 
한글명 황장엽 한자명 黃長燁 영문명 Hwang Jang-yop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23년 몰년 출신지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황장엽(黃長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였다. 북한의 정치가로 활약하던 시절 제5·6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탈북 후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생애


출생

황장엽은 1923년 2월 17일에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황원택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성장하였으며 평남강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평양고등상업학교에 신규 입학하였으나 1936년 평양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전입 및 편입학하여 1941년 평양고보를 졸업하였다. 아버지 황원택은 본부인을 여의고 재혼한 부인에게서 황장엽과 아우 황봉엽 두 형제를 보았다. 일찍 사망한 그의 아버지 황원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은 없다. 1942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주오 대학(법학부)에서 공부하였으나 1944년 2월, 일제의 패전 징후 상황으로 인하여 강제소환되어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주오 대학을 중퇴한 후 약 1년 6개월 동안 강원도 삼척 탄광에서 징용을 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였으며, 그 후 서울을 거쳐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다. 해방 후인 1947년 만24세에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였고 1951년에 정치경제학 학사 학위 취득한 후 모스크바 대학교 대학원에서 법철학 석사·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5년에 귀국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1965년 10년 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되었고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여하였으며 김정일을 후원하여 주체사상 개인강사를 맡기도 했다.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차장

김일성 유일통치체제를 전당과 전사회에 구현하였고, 제1부-선전지도부, 제2부-교양지도부, 제3부는 선동선전부, 제4부는 출판보도부문과 문화예술부문 지도부 운영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정치 활동

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된 이후,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1972년~1982년), 1980년 조선로동당 총비서장,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6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중앙위원장, 1987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장, 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장 등 여러 요직을 겸임하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에 주체사상을 체계화하는 역할을 했고 이를 제3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해외에 주체사상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잘 알려지지 않은 지인이 황장엽에게 30년 동안 개혁 개방을 같이 하자며 "너희 그러다가 진짜 망한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김정일을 중국에 보내 달라!"고 했고, 이에 황장엽은 김정일에게 중국에서 오라고 하는데 한번 가보라고 제안했다가 "그 나쁜 XX들! 무엇 때문에 중국에 가겠소?"라며 욕하던 김정일에 의해 결국 당 내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사망

2010년 10월 10일 논현동의 국정원 안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양녀인 김숙향 등이 주관하였으며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시신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소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연구


학력

평양고등상업학교 전퇴(1936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1941년)

주오 대학 법학과 중퇴(1944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 학사(1951년)

모스크바대학교 대학원 법철학 석사(1952년)

모스크바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1954년)


사건

2006년 12월 21일에 대한민국 사람 김아무개가 황장엽과 관련된 자유북한방송의 사무소에 '황장엽은 쓰레기 같은 그 입을 다물라, 배신자는 대가를 치른다.'라고 하는 내용의 협박문과 붉은 그림도구가 칠해진 황장엽의 사진, 도끼등이 들어간 소포를 보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2008년 9월 27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2009년 6월 1일에 김현희를 12년 만에 만났고 함께 투쟁하자고 전했다.[2]

2010년 4월 4일에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인 납북자들에 관한 논의를 한다.[3]

2010년 4월 20일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검거됐다.

2010년 10월 10일에 자택에서 좌욕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4]


암살 미수

김영철(인민군 상장) 정찰총국장은 황장엽을 암살하도록 공작원 김명호와 동명관 2명에게 지시했다. 이 공작원들은 탈북자들 틈에 섞여 대한민국에 유입되었으며 대한민국에 도착하긴 했으나 탈북자 심사당시 남파된 목적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현재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고 2010년 7월 1일 10년형이 확정되었다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황원택 Person 황장엽 A hasSon B
Person: 황장엽 Institution: 평양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황장엽 Institution: 김일성종합대학 A is the principal of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C%9E%A5%EC%97%BD#cite_note-17 『황장엽』 위키백과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