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이유경(CNU2024))이 작성했습니다.



조복성 (趙福成)
조복성.jpeg
출처 : [2]online, 한겨레.
 
한글명 조복성 한자명 趙福成 영문명 JO,BOKSEONG 가나명 이칭 관정(觀庭)
성별 남성 생년 1905년 몰년 1971년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 전공 동물학, 교육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평안남도 평양 출생.평양고등보통학교 기관 사범과를 나온 뒤 한때 국민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1930년부터 11년간 경성제국대학 예과와 의학부에 근무하였다.[1] 1942년부터 중국의 난징[南京]·항저우[杭州]·서호의 박물관에서 연구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국립과학박물관장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강의하였다.[2] 박사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대한민국 학술원은 1960년 7월 저작상을, 경북대학교에서는 1961년 3월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1970년 12월 정부는 국민훈장 동백상을 수여했다. [3]


생애


출생 및 어린시절

조복성 박사인물(1905~1971)는 평안남도 평양공간에서 태어났다.[4] 외아들이면서 위로 4명의 누나가 있었던 그의 외가는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사슴, 두루미, 꿩 등 가축이 아닌 동물들을 기르고 있었다. 외가에서 이런 동물들과 함께 놀면서 동물에 대한 특별한 호기심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5]


평양고등보통학교 시절

평양고등보통학교 기관시절 생물 담당 교사는 일본인 도이 히로노부인물였다. [6] 도이 선생 역시 동물 연구와 채집활동에 관심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도이 선생에게 조복성 박사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조복성 박사는 도이 선생으로부터 곤충 채집과 분류, 표본 제작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4년간의 평양고등보통학교 생활이 마무리 될 무렵 학자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본 일본 교사들은 그가 계속해서 곤충학을 수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7]


곤충학의 대중화와 후학 양성을 결심

중국에 있는 일본 정부 기관의기관 요청으로 난징, 항저우, 기후의 박물관공간에서 근무했다..[8]

이 시기에 동물학을 연구하였는데 이를 통해 곤충 전문가로서 그 활동범위를 넓히게 됐다.[9]
그는 일제강점기, 연구에 몰두한 과학자였다. 독립한 조국에서 과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곤충의 대중화에 힘쓰며 과학자로서 연구 활동을 계속해야 하고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했다..[10]


교육자로서의 조복성

한국전쟁사건이 마무리 될 무렵 곳곳에서 다시 교육 활동이 시작됐다.[11] 조복성 박사인물는 1953년 성균관대학교 기관, 1955년 고려대학교 기관에서 각각 동물학 교수로서 후학들을 양성했고 197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과학자 겸 교수로서 활동했다. [12]고려대학교에서 재직하는 동안 학부의 곤충학, 동물분류학 및 실습, 야외실습, 일반동물학실험, 농림곤충학, 임해실습, 진화론, 해부학실습 등의 여러 교과목을 가르쳤고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18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13] 그 외에도 대학용 각종 생물학 교재, 곤충학 보급을 위한 다양한 책자, 중학교용 과학책 등의 15권을 저술하였다.[14]


1971년 타계 후

척박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학자로서의 사명으로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조복성 박사는 이 땅의 후학 양성을 위해 교육자로서의 다각적인 활동에도 책임을 다했다.[15] 1971년 타계 후에는 남은 재산과 아끼는 표본, 연구자료와 서적 등을 장학회와 교내 도서관에 모두 기탁, 기증하도록 해 후진양성의 뜻을 이어가도록 했다.사건[16] 그의 노력은 대한민국 근대 동물학 자연과학 연구에 초석이 되어 지금까지도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커다란 자산이 되고 있다.[17]





연구


국립과학관 운영 총책

해방 후 많은 국가기관기관이 설치 됐는데 국립과학관도 그 중 하나였다.[18] 중국박물관에서 근무한 조복성 박사는 국립과학관 운영의 총책을 맡아야 했다. 1945년 국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일본어로 된 동식물의 명칭을 우리말로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19]


「곤충이야기」와 「곤충기」

1948년 발간한 「곤충이야기」 서적와 「곤충기」 서적는 그의 대표 저서이다.[20] 「곤충이야기」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도서라면, 「곤충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었다. 일제 강점기로 인해 열악했던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교육, 문화 등을 진작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곤충기」는 60여 종의 토종 곤충에 관해 이야기한다.[21]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조복성 Person: 도이 히로노부 A hasMaster B
Person: 조복성 Institution: 평양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조복성 Institution: 경성제국대학교 A worksAt B
Person: 조복성 Group: 국립과학관 A isMemberOf B
Book: 곤충기 Person: 조복성 A creato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560&cid=46639&categoryId=46639네이버지식백과』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comediaonline, ecomedia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주석


  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560&cid=46639&categoryId=46639네이버지식백과』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4. [1]online,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6.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7.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8.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9.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0.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1.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2.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3.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4.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5.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6.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7.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8.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19.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20.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
  21. The K magazineonline, The K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