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일선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준호(G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선우일선(鮮于一扇)
선우일선.jpg
출처 : https://music.osulgil.com/entry/선우일선의-생애와-히트곡
 
한글명 선우일선 한자명 鮮于一扇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여 생년 1919년 몰년 1990년 출신지 평안남도 대동군 룡성면 전공 민요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선우일선은 한국의 가수이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교육인으로 활동했다.[1] 데뷔곡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36년 전후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았다.[2] 1935년 삼천리지에서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1위 왕수복, 2위 선우일선, 3위 이난영, 4위 전옥, 5위 김복희가 선정될 만큼 그때의 선우일선의 인기는 왕수복, 이난영 등과 더불어 대단했습니다.[3] 「꽃을 잡고」와 대표작「조선팔경가」는 모두 수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며,「태평연」이나「능수버들」등도 지금까지 신민요의 고전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4]


생애


출생과 교육

현재의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인 평안남도 대동군 룡성면 출신이다.[5] 가수가 되기 전에는 최창선(崔昌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이 이름이 본명인지 가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6] 선우일선은 유명한 선비인 선우돈암인물의 후손인데, 할머니의 환갑잔치에서 본 기생 이화중선의 춤과 노래에 반해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번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7]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다가 3년제 평양기생학교기관에 입학하여 기생이 되었다.[8]


데뷔 이후

소리를 잘 하는 기생으로 알려져 1933년 포리돌레코드기관 문예부장 왕평인물에게 발탁되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9] 당시 왕평은 폴리돌에서 왕수복인물과는 조금 다른 민요청을 가진 가수를 구하던 중 선우일선의 우아한 고음미청과 청아한 육성을 보고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10] 1934년 김안서인물작사, 이면상인물작곡의 신민요 <꽃을잡고작품>로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서도소리 명창 김주호인물와 함께 녹음한 <영감타령작품>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11] 신민요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널리 불리게 된 〈조선팔경가작품〉를 비롯하여, 1940년대까지 〈압록강 뱃노래작품〉(원제:압록강 뗏목 노래),〈바람이 났네작품〉와 같은 히트곡을 계속 내면서 인기를 유지했다.[12]


광복이후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고향인 평양공간에 머물렀고, 평양음악대학기관 성악학부 민족성악 교원이 되었다.[13] 1955년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단체의 민요악보화 사업에도 상당히 관여한 것으로 보이며, 1958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14] 이후 제자들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1989년 평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15]


연구


꽃을 잡고

폴리돌레코드사에서 1934년 6월 발매한 "꽃을 잡고"는 신민요로 분류되지만 그간에 발표되던 신민요와는 그 느낌이 매우 다른 독특한 그러면서 수준 높은 선율을 보여주는 곡으로 데뷔와 함께 인기가수로 발돋움하는데 큰 기여를 한 곡이다.[16] <꽃을잡고>의 음계는 ‘솔-라-도-레-미’의 전통적 경토리이며, 종지음이 도(G)이고 ‘솔-도(D-G)’로 종지선율이 완전4도 상행으로 종지된다는 점에서 신경토리에 해당된다.[17]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랫말은 김소월의 스승인 시인 김억이 작사했다.[18]



조선팔경가

왕평(편월)이 작사하고 형석기가 작곡해 1935년 폴리돌에서 발표된 <조선팔경가>는 선우일선의 대표적인 신민요이며 동살풀이 장단으로 매우 흥겹게 부르는 노래이다.[19] 그러나 <조선팔경가>는 남북한에서 공히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곡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원곡대로 전승되지 않고 있는 아픔을 가진 신민요이기도 하다.[20] 먼저 가사의 경우 <조선팔경가>에 등장하는 8가지 경치인 금강산 일만이천봉, 한라산, 석굴암 아침경, 해운대 저녁달, 부전고원, 평양모란봉(금수산), 백두산천지, 압록강뗏목 중 정치적인 이유로 남북한 모두에서 가사와 곡명이 바뀌어 전하고 있다.[21] 북한은 <조선팔경가>를 민요로 분류하고 있으며, 원래 팔경 중 남한에 있는 한라산, 석굴암, 해운대 대신 백두산, 총석정 해돋이, 동해의 푸른 물로 3경을 바꿔 부르고 있으며, 또한 8경 대신 6경으로 축소해 부르고 있다.[22]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황금심이 킹스타 레코드에서 음반취입을 하면서 <조선팔경가>를 <대한팔경>으로 명칭을 바꾸고, 부전고원과 평양 모란봉 대신 경포대 노을과 낙산사 저녁종으로 3경을 바꿨으며 8경 대신 6경으로 축소하였다.[23]



태평연

선우일선의 신민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인 <태평연>은 <창부타령작품> 선율에 왈츠의 느낌을 입힌 신민요로 전형적인 경토리로 이뤄진 빠른 굿거리 장단의 곡이다.[24] 1936년에 폴리돌에 발표되었고 남강월 작사에 정사인 작곡의 곡이며 재발매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25]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서는 <어화우리 농민들아>로 바뀌어 불리고 있고, 남한에서는 <태평가>라는 이름으로 곡명과 가사가 바뀐 채 경기민요로 널리 불리고 있는 등 각각 남북한을 대표하는 민요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26]



영감타령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마누라타령>을 개작한 것으로 보이는 신속요<영감타령>은 1969년 반야월 작사, 고봉산 작곡, 하춘화와 고봉산이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부른 <잘했군 잘했어>로 바뀌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27] 많은 이들이 하춘화의<잘했군 잘했어>를 원곡으로 생각할 정도로 인기를 얻은 반면52) 서도명창 김주호 특유의 재담조 넉살이나 선우일선 특유의 구수한 민요조의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트롯트 음악이 강한 느낌으로 변모했다.[28]‘라-도-미-솔’ 단 4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영감타령>은 향토민요로 존재하던 속요를 편곡하였다 하여 신속요, 신민요라 부르기도 한다.[29]



능수버들

<능수버들>은 경기민요<흥타령>계통의 신민요로, 신반경토리와 신경토리의 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30] 전통적인 요소가 강한 <능수버들>역시 신반경토리와 신경토리의 복합형으로 만들어진 창작민요로서 <흥타령(천안삼거리)>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31] 이 능수버들 역시 현재 남북한에서 대표적인 민요로 소개되고 있으며 선율이나 장단에 커다란 변화가 없는 반면 남한의 경우 토속민요로 둔갑되거나 나훈아, 김영임 등 가수나 국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면서 가사가 대폭 바뀌고, 음악 역시 조금은 저속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전하고 있다.[32]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평양기생학교 A graduates B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포리돌레코드 A worksAt B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평양음악대학 A worksAt B
Person: 선우일선 Group: 권번 A isMemberOf B
Institution: 평양기생학교 Location: 평양 A isLocatedIn B
Institution: 평양음악대학 Location: 평양 A isLocatedIn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머거주기, "꽃을 잡고 / 김억 작사 선우일선 노래", 『네이버블로그-음악과함께』online, 작성일: 2024년 05월 13일.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왕수복과 쌍벽을 이룬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online, 지역N문화

이장춘, "평양기생출신 인기가수 선우일선과 조선팔경",『티스토리-이장춘』online, 작성일: 2010년 12월 07일.

첫발자욱, "가요(3040)/꽃을 잡고 - 선우일선", 『네이버 블로그 - 淺香朴詩(천향박시)의 Par king Lot』online, 작성일: 2023년 06월 30일.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주석


  1.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2. ↑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3. ↑ 이장춘, "평양기생출신 인기가수 선우일선과 조선팔경",『티스토리-이장춘』online, 작성일: 2010년 12월 07일.
  4. ↑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5.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6.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7. ↑ 『왕수복과 쌍벽을 이룬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online, 지역N문화.
  8.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9.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0.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1.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2.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3. ↑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4.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5.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6. ↑ 첫발자욱, "가요(3040)/꽃을 잡고 - 선우일선", 『네이버 블로그 - 淺香朴詩(천향박시)의 Par king Lot』online, 작성일: 2023년 06월 30일.
  17.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8. ↑ 머거주기, "꽃을 잡고 / 김억 작사 선우일선 노래", 『네이버블로그-음악과함께』online, 작성일: 2024년 05월 13일.
  19.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0.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1.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2.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3.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4.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5.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6.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7.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8.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9.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0.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1.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2. ↑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