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담 및 이연방에 대한 소고 -조선유학사의 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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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담 및 이연방에 대한 소고 -조선유학사의 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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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徐花潭及李蓮坊에 對한 小考-朝鮮儒學史의 一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4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이병도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1936년4월
시작쪽 112쪽 종료쪽 126쪽 전체쪽 015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역사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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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본문


본문1: 1


중종 기묘사화(동왕 14년) 후 반도의 유학이 사색이론적 방면에 기울어져 오로지 고상한 철리 고구를 주안으로 삼으려 할 제에, 이 경향의 최선편을 착(着)한 일인으로 조선 주기학파(主氣學派)의 선구자가 되는 이는, 즉 화담(花潭) 서 선생이라 할 수 있고 또 그의 학설을 계승하여 발휘한 이는 연방(蓮坊) 이 선생이라 할 수 있으니, 지금 이 양선생의 학설에 대하여 다소 고구한 바를 소개하려한다.
쪽수▶P112-1中宗己卯士禍(同王十四年)後 半島의 儒學이 思索理論的方面에 기울어저 오로지 高尙한 哲理考究를 主眼으로 삼으려할 際에, 이 傾向의 最先鞭을 着한 一人으로 朝鮮主氣學派의 先驅者가 되는 이는, 卽 花潭徐先生이라 할 수 있고 또 그의 學說을 繼承하야 發揮한 이는 蓮坊 李先生이라 할 수 있으니, 지금 이 兩先生의 學說에 對하야 多少 考究한 바를 紹介하려 한다.





































본문2: 2


서화담은 조선 성종 20년(서기 1489년) 2월 17일에 송도(개성) 화정(禾井)리에서 출생하였으니, 명(名)은 경덕(敬德) 자(字)는 가구(可久) 호(號)는 화담(花潭)이라고 한 외에도 복재(復齋)라고도 하여, 일생을 빈한한 생활로 보내던 학자이었다. 그는 소년시대로부터 두뇌가 명철하여 특히 사색에 장(長)하여 18세 때에 대학을 읽다가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 조에 이르러, 개연(慨然) 탄왈(嘆曰) “학을 함에 먼저 물(物)을 격(格)치 않으면 독서해서 무엇에 쓰리오”라 하고, 이로부터 천지만물의 명(名)을 벽상에 게시하고 날로 궁리를 시(試)하여 일물을 구진(究盡)한 연후에야 타(他)사물에 옮기기를 상습으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누일 불안할 때도 있고 또 그 때문에 왕왕 질병에 걸릴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궁리 사색에 의하여 득(得)한 바는 다시 독서에 인하여 이를 확실케 하며, 항상 말하기를 “나는 스승을 얻지 못한 까닭으로 용공(用功)이 지심(至深)하였으니, 후인들은 나의 말에 의하면 나와 같은 노(勞)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으로써 그의 독학의 고로(苦勞)를 추찰할 수 있다. 일찍이 모명(母命)으로 진사의 시에 응하여 중(中)하였으되 곧 학업을 포기하고 실(室)을 개성 화담상에 축(築)하고 오로지 이곳에 서식하여 도의(道義)에 잠심(潛心)하여, 세간의 시비득실, 영욕화복을 초탈하여 일호도 의(意)에 개(介)치 아니하며, 가량(家糧)이 자주 끊어져도 오히려 안연히 이에 처하였다. 중종 말년에 그는 효행으로써 성균관 유생들에게 추천한 바 되어 후릉(厚陵) 참봉의 임명이 있었으나 사임불취(辭任不就)하고 이어 중병을 얻어 상욕(床褥)에 신음할 새, 그는 “성현의 언(言)은 임이 선유(先儒)의 주석을 경(經)하였으므로 다시 중언할 것이 없지만, 아직 그 설파치 못한 것은 이를 서에 저하여 전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하고, 곧 벼개(枕)에 의(倚)하여 「원리기(原理氣)」 「리기설(理氣說)」 「태허설(太虛說)」 「귀신사생설(鬼神死生說)」 및 「복견기천지지심」 등의 약간 편을 초(草)하고 마침내 명종 원년에 58세로 졸(卒)하였다. 그 역책(易簀)에 임하여 일문생이 묻되 “선생의 금일 의사가 어떠하십니까”라고 함에 그는 답하기를 “생사의 리를 안 지 이미 오래라 의사 편안하다”고 하였다 한다. 이는 물론 화담의 평소 심성수양에 적공(積功)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으니, 마치 명의 왕양명(王陽明, 守仁)이 임종의 제에 어떤 문인에게 유언의 청을 받아 미소하며 “차심(此心)이 광명한데 또다시 무엇을 말하랴”고 하였다 함과 유사하다.
쪽수▶P112-2徐花潭은 朝鮮 成宗 二十年(西紀一四八九年) 二月十七日에 松都(開城) 禾井里에서 出生하였으니, 名은 敬德 字는 可久 號는 花潭이라고 한 外에도 復齋라고도 하야, 一生을 貪寒한 生活로 보내든 學者이었다. 그는 少年時代로부터 頭腦가 明哲하야 特히 思索에 長하야 十八歲時에 大學을 닑다가 「致知在格物」條에 이르러, 慨然 嘆曰 「學을 함에 먼저 物을 格치 않으면 讀書해서 무엇에 쓰리오」라 하고, 일로부터 天地萬物의 名을 壁上에 揭示하고 날로 窮理를 試하야 一物을 究盡한 然後에야 他事物에 옮기기를 常習으로하였다. 이리하야 그는 累일不眼할 때도 있고 또 그 때문에 往往 疾病에 걸릴 때도 있었다고 한▶P113-1다. 그의 窮理思索에 依하야 得한 바는 다시 讀書에 因하야 이를 確實케 하며, 항상 말하기를 「나는 스승을 얻지 못한 까닭으로 用功이 至深하였으니, 後人들은 나의 말에 依하면 나와 같은 勞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吾人은 이것으로써 그의 獨學의 苦勞를 推察할 수 있다. 일즉이 母命으로 進士의 試에 應하야 中하였으되 곧 學業을 抛棄하고 室을 開城花潭上에 築하고 오로지 이곳에 捿息하야 道義에 潛心하야, 世間의 是非得失, 榮辱禍福을 超脫하야 一毫도 意에 介치 아니하며, 家糧이 자주 끊어저도 오히려 晏然히 이에 處하였다. 中宗末年에 그는 孝行으로써 成均舘儒生들에게 推薦한바-되어 厚陵 參奉의 任命이 있었으나 辭任不就하고 이어 重病을 얻어 床褥에 呻吟할새, 그는 「聖賢의 言은 임이 先儒의 注釋을 經하였으므로 다시 重言할 것이 없지만, 아직 그 說破치 못한 것은 이를 書에 著하야 傳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하고, 곧 벼개(枕)에 倚하야 「原理氣」 「理氣說」 「太虛說」 「鬼神死生說」 및 「復見其天地之心」 等의 若干篇을 草하고 맟음내 明宗元年에 五十八歲로 卒하였다. 그 易簀에 臨하야 一門生이 뭇되 「先生의 今日意思가 어떠하심니가」라고 하매 그는 答하기를 「生死의 理를 안지 임이 오래라 意思 편안하다」고 하였다 한다. 이는 勿論 花潭의 平素心性修養에 積功해온 結果라고 볼 수 있으니, 마치 明의 王陽明(守仁)이 臨終의 際에 어떤 門人에게 遺言의 請을 받어 微笑하며 「此心이 光明한대 또다시 무엇을 말하랴」고 하였다 함과 類似하다.
화담의 학(學)은 궁리진성(窮理盡性) 사색체험(思索體驗)을 주로 삼아 언어 문자로써 발표하기를 좋아 아니하여 그 저술이 매우 적고, 상기 수편의 논문이란 것도 극히 간단하여 설이미진(說而未盡)한 감이 없지 아니하나, 그래도 그의 고원한 철학적 사상은 이에 의하여 잘 규지(窺知)되고, 그 의미로 보아 이들 논문을 수집한 화담집 일책은 오인이 귀중히 여기는 바의 하나이다. 화담의 사상의 대체는 이율곡(李栗谷, 珥)의 설파함과 같이 송의 장횡거(張橫渠, 載) 류의 사상에 속하되 간혹 독창의 견과 자득의 묘가 없지 아니하며, 그 우주의 근저를 들여다보려 함이 비교적 심각하였다. 지금 화담의 우주본체관에 취하여 보면 그는 횡거와 같이 우주의 본체를 태허(太虛)에 불과한 양으로 생각하고, 태허의 담연무형(淡然無形)한 것은 선천의(○○○) ()로서, 이는 이는 시간 공간의 제약에서 전혀 독립한 무제한•무시종•항구불멸의 실재라고 인식하였다. 그 ‘원리기(原理氣)’라고 제(題)한 글에
쪽수▶P113-2花潭의 學은 窮理盡性 思索體驗을 主로 삼아 言語文字로써 發表하기를 조와아니하야 그 著述이 매우 적고, 上記數篇의 論文이란 것도 極히 簡單하야 說而未盡한 憾이 없지 아니하나, 그래도 그의 高遠한 哲學的思想은 이에 依하야 잘 窺知되고, 그 意味로 보아 이들 論文을 收集한 花潭集一冊은 吾人이 貴重히 역이는 바의 하나이다. 花潭의 思想의 大體는 李栗谷(珥)의 說破함과 같이 宋의 張▶P114-1橫渠(載)流의 思想에 屬하되 間或 獨創의 見과 自得의 妙가 없지 아니하며, 그 宇宙의 根抵를 드려다보려 함이 比較的 深刻하였다. 지금 花潭의 宇宙本體觀에 就하여 보면 그는 橫渠와 같이 宇宙의 本體를 太虛에 不過한 양으로 생각하고, 太虛의 淡然無形한 것은 先天의(○○○) ()로서, 이는 時間空間의 制約에서 全혀 獨立한 無制限•無始終•恒久不滅의 實在라고 認하였다. 그 「原理氣」라고 題한 文에

太虛淡然無形 號之曰先天(○○) 其大無外(●●●●) 其先無始(●●●●) 其來不可究(●●●●●)淡然虛靜(○○○○) 氣之原(○○○)也 彌漫無外之遠逼塞充實無有空闕 無一毫可容間也 然挹之則虛 執之則無 然而却實不得謂之無也 到此田地 無聲可耳 無臭可接 千聖不下語(●●●●) 周張引不發(●●●●●) 邵翁不得下一字處也(●●●●●●●●●) 摭聖賢之語 泝而原之 易所謂寂然不動 庸所謂誠者自成 語其淡然之體曰一氣(○○○○○○○○○) 語其混然之周曰太一(○○○○○○○○○) 濂溪於此不奈何只消下語曰 無極而太極 是則先天(○○) 不其奇乎 奇乎奇 不其妙乎 妙乎妙

쪽수▶P114-2

太虛淡然無形 號之曰先天(○○) 其大無外(●●●●) 其先無始(●●●●) 其來不可究(●●●●●)淡然虛靜(○○○○) 氣之原(○○○)也 彌漫無外之遠逼塞充實無有空闕 無一毫可容間也 然挹之則虛 執之則無 然而却實不得謂之無也 到此田地 無聲可耳 無臭可接 千聖不下語(●●●●) 周張引不發(●●●●●) 邵翁不得下一字處也(●●●●●●●●●) 摭聖賢之語 泝而原之 易所謂寂然不動 庸所謂誠者自成 語其淡然之體曰一氣(○○○○○○○○○) 語其混然之周曰太一(○○○○○○○○○) 濂溪於此不奈何只消下語曰 無極而太極 是則先天(○○) 不其奇乎 奇乎奇 不其妙乎 妙乎妙

라고 서술한 것은 즉 그의 본체관이니, 그는 일로써 선인미발(先人未發)의 묘리를 오득(悟得)함과 같이 호언하였다. 소위 선천(先天)이란 것은 그 담연정허(淡然靜虛)한 체(體)로부터 말하면 일기(一氣) 혹은 기의 원(原)이로되, 보편타당한 쪽으로부터 보면 태일(太一)이니, 주렴계(돈이)는 이에 있어 어찌할 수 없어 다만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의 어로써 미봉(彌縫)하였다는 말인데, 이 견해는 주자가 태극을 순수의 리(理)라고 해한 설과는 취지를 달리한다(후에 상설함).
쪽수▶P114-3라고 敍述한 것은 卽 그의 本體觀이니, 그는 일로써 先人未發의 妙理를 悟得함과 같이 豪言하였다. 所謂 先天이란 것은 그 淡然靜虛한 體로부터 말하면 一氣 혹은 氣의 原이로되, 普遍妥當한 쪽으로부터 보면 太一이니, 周濂溪(敦頤)는 이에 있어 어찌할 수 없어 다만 無極而太極의 語로써 彌縫하였다는 말인데, 이 見解는 朱子가 太極을 純粹의 理라고 解한 說과는 趣旨를 달리한다(後에 詳說함).
화담의 근본사상은 곧 이에 있으니, 횡거도 그 명저 정몽(태화편) 중에 “太虛無形 氣之本體”“太虛爲淸 淸則無礙” 혹은 “混一之常”이라고 하였으나, 그 말이 산만하여 화담처럼 직절 간명하게 요령 얻기 쉽게는 말하여 있지 않다. 요컨대 화담은 선천의 기로써 우주만물의 말미암아 나타나는 본체 본원을 삼는 동시에 항상 만상을 일관하여 있는 실재로 인식하였다. 그러면 화담의 소주(所主)하는 선천의 기는 정적인가 동적인가 하면 그는 위의 글에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쪽수▶P114-4花潭의 根本思想은 곧 이에 있으니, 橫渠도 그 名著 正蒙(太和篇)中에 「太虛無形 氣之本體」「太虛爲淸 淸則無礙」 或은 「混一之常」이라고 하였으나, 그 말이 散漫하야 花潭처럼 直截簡明하게 要領얻기 쉽게는 말하여 있지 않다. 要컨대 花潭은 先天의 氣로써 宇宙萬物의 말미암아 나타나는 本體本源을 삼는 同時에 항상 萬象을 一貫하여있는 實在로 認하였다. 그러면 花潭의 所主하는 先天의 氣는 靜的인가 動的인가 하면 그는 上文에 繼續하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倏爾躍 忽爾闢 孰使之乎 自能爾也 亦自不得不爾 是謂理之時也 易所謂感而遂通 庸所謂道自道 周所謂太極動而生陽者也 不能無動靜無闔闢 其何故哉 機自爾也

쪽수▶P115-1

倏爾躍 忽爾闢 孰使之乎 自能爾也 亦自不得不爾 是謂理之時也 易所謂感而遂通 庸所謂道自道 周所謂太極動而生陽者也 不能無動靜無闔闢 其何故哉 機自爾也

즉 선천의 기는 동정합벽(動靜闔闢) 공히 작용하는 것으로, 그 작용이 결코 타(他)로부터 사역(使役)되는 바 아니고 그 스스로가 능히 하고 또한 스스로 그러(爾)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화담은 특히 이를 ‘이지시(理之時)’라고 하였는데, 이지시는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 능히 그러한 가운데 소이연(所以然)의 리(理)가 있어 스스로 그렇지 아니할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한 것이니 그것이 타의 사역이 아닌 이상 필경 ‘기자이(機自爾)’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기자이’란 말은 확실히 그의 독창어로서 매우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기는 즉 기관의 의(義)로, 능동 능정의 신묘한 세력•경향 혹은 의욕을 이름이니, 정에서 동으로 옮는 사이 동에서 정으로 가는 사이에 있어 그러하도록 작용하는 기틀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기는 동기(動機) 활기(活機)의 의로 정지에서 운동에 이행하는 자연 필연적 세력 경향을 이르는데 많이 사용되는 말인즉, 이는 마치 독일철학자 Leibnitz의 소위 Conatus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쪽수▶P115-2卽 先天의 氣는 動靜闔闢 共히 作用하는 것으로, 그 作用이 決코 他로부터 使役되는바 아니고 그 스스로가 能히 하고 또한 스스로 그러(爾)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花潭은 特히 이를 「理之時」라고 하였는데, 理之時는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 能히 그러한 가온대 所以然의 理가 있어 스스로 그렇지 아니할 수 없는 境遇를 意味한 것이니 그것이 他의 使役이 아닌 以上 畢竟 「機自爾」에 不過하다는 말이다. 「機自爾」란 말은 確實히 그의 獨創語로서 매우 滋味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機는 卽 機關의 義로, 能動能靜의 神妙한 勢力•傾向 혹은 意慾을 이름이니, 靜에서 動으로 옮는 사이 動에서 靜으로가는 사이에 있어 그러하도록 作用하는 機틀이다. 그러나 實際에 있어서는 機는 動機活機의 義로 靜止에서 運動에 移行하는 自然必然的 勢力傾向을 이르는데 만히 使用되는 말인즉, 이는 마치 獨逸哲學者 Leibnitz의 所謂 Conatug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상술한 화담의 설은 장횡거의 “太虛不能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 是皆不得已而然也(○○○○○○○○)”(정몽태화편) “倏而生(○○○) 忽而成(○○○) 不容有毫髮之間 其神矣夫”(위와 같음)와 서로 유사한 점이 없지 아니하고 그 소위 「기」도 주자의 “動靜者所乘之機”(태극도해)의 기와 전연 동의미의 어로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장주(張朱) 2자는 화담처럼 ‘기자이’라고까지는 명언하지 아니하였다. 화담의 이 말은 암만해도 그의 독특한 용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후학의 사상에 끼친 영향도 결코 심상하지 아니하였다. 더욱 이율곡과 같은 이는 이 ‘기자이’의 설에 깊이 흥미를 느끼어, 화담의 독자의 묘가 있음을 늘 사람에게 말하고 또 율곡 자신의 학설상에도 이를 취용하였으니, 즉 그(율곡)가 성우계(成牛溪)(혼(渾))에 여(與)하는 책 중에 “陰靜陽動 機自爾(●●●)非有使之者(●●●●●) 非有使之者(●●●●●)也”, “陰靜陽動 其機自爾(●●●●)而其所以陰靜陽動者理也”라고 한 것은, 확실히 화담 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율곡 및 그 학파에 속하는 학도가 대개 이러한 사상에 인하여 리(理)를 한 형식적의 것으로 돌려보내는 혐의가 있어, 근세 호남의 거벽인 기노사(奇蘆沙) 정진(正鎭)은 기저 외필(猥筆) 중에 이를 논란하여 “其機自爾 非有使之者 問所謂理者落在何方……初旣無使之然之妙 末又非有操縱之力 寄寓來乘 做得甚事 有之無所補 無之靡所闕 不過爲附肉之疣 隨驥之蠅 嗚呼可憐矣云云”(려사집 권16)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는 타일 따로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쪽수▶P115-3勿論 上述한 花潭의 說은 張橫渠의 「太虛不能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 是皆不得已而然也(○○○○○○○○)」(正蒙太和篇) 「倏而生(○○○) 忽而成(○○○) 不容有毫髮之間 其神矣夫」(同上)와 서로 類似한 點이 없지 아니하고 그 所謂 「機」도 朱子의 「動靜者所乘之機」(太極圖解)의 機와 全然 同意味의 語로 볼 수 있으나, 그러나 張朱二子는 花潭처럼 「機自爾」라고 까지는 明言하지 아니하였다. 花潭의 이 말은 암만해도 그의 獨特한 用語라고 볼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後學의 思想에 끼친 影響도 決코 尋常하지 아니하였다. 더욱 李栗谷과 같은 이는 이 「機自爾」의 說에 깊이 興味를 늣기어, 花潭의 獨自의 妙가 있음을 늘 사람에게 말하고 또 栗谷自身의 學說上에도 이를 取用하였으니, 即 그(栗谷)가 成牛溪(渾)에 與하는 書中에▶P116-1 「陰靜陽動 機自爾(●●●)非有使之者(●●●●●) 非有使之者(●●●●●)也」, 「陰靜陽動 其機自爾(●●●●)而其所以陰靜陽動者理也」라고 한 것은, 確實히 花潭說의 影響이라고 볼 수 있다. (栗谷 及 其學派에 屬하는 學徒가 大槪 이러한 思想에 因하야 理를 한 形式的의 것으로 돌려보내는 嫌疑가 있어, 近世 湖南의 巨擘인 奇藘沙正鎭은 其著 猥筆中에 이를 論難하야 「其機自爾 非有使之者 問所謂理者落在何方……初旣無使之然之妙 末又非有操縱之力 寄寓來乘 做得甚事 有之無所補 無之靡所闕 不過爲附肉之疣 隨驥之蠅 嗚呼可憐矣云云」(藘沙集卷十六)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對하여는 他日 따로 말할 機會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화담은 ‘선천’ 및 ‘기자이’의 설에서 경(更)히 후천발생관에 옮기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쪽수▶P116-2花潭은 「先天」及 「機自爾」의 說에서 更히 後天發生觀에 옮기어 다음과 같이 敍述하였다.

旣曰一氣 一自含二 旣曰太一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得生克 生則克 克則生 氣之自微以至鼓盪 其生克使之也 一生二二者何謂也 陰陽也 動靜也 亦曰坎離也 一者何謂也 陰陽之始 坎離之體 淡然爲一者也 一氣之分爲陰陽 陽極其鼓而爲天 陰極其聚而爲地陽鼓之極 結其精者爲日 陰聚之極 結其精者爲月 餘精之散爲星辰 其在地爲水火焉 是謂之後天 乃用事者也

쪽수▶P116-3

旣曰一氣 一自含二 旣曰太一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得生克 生則克 克則生 氣之自微以至鼓盪 其生克使之也 一生二二者何謂也 陰陽也 動靜也 亦曰坎離也 一者何謂也 陰陽之始 坎離之體 淡然爲一者也 一氣之分爲陰陽 陽極其鼓而爲天 陰極其聚而爲地陽鼓之極 結其精者爲日 陰聚之極 結其精者爲月 餘精之散爲星辰 其在地爲水火焉 是謂之後天 乃用事者也

담연청허(淡然淸虛)하고도 보편타당한 선천의 기는 본래 일(一)에 불외하지만, 그 일(一)은 문득 이(二)를 함생(涵生)하고 이(二)는 스스로 생극(生克)을 작용하는 것이니, 이(二)라 함은 곧 음양(陰陽)•동정(動靜)•감리(坎離) 등을 이름이며, 이(二)를 생(生)하는 일(一)은 즉 그 음양의 시, 감리의 체인 담연주일(淡然周一)한 기라 일기(一氣)가 분(分)하여 음양이 될 때에 양의 격동이 극한 자가 천(天)이 되고 음(陰)의 취응(聚凝)이 극한 자 지(地)가 되며 또 전자의 정(精)을 결(結)한 자 일일(ㅡ日)이 되고 후자의 정을 결한 자 일월(ㅡ月)이 되며, 여정(餘精)의 산한 자로 천(天)에 재한 자는 성신이 되고, 지(地)에 재한 자는 수화(水火)가 되니, 이를 선천에 대하여 위지후천(○○)(謂之後天(○○))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직각적 우주관은 저 송유(宋儒)들의 항다반(恒茶飯)하는 소리로 별로 신미(新味)를 찾을 수 없지만, 일기(一氣)의 미발본체(未發本體)를 선천이라 하고, 일기의 이발(已發)한 현상을 후천이라 하여 어디까지든지 일기를 주창함은 화담설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단 화담은 후천을 말함에 있어 인물발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함이 일 유감이나 위의 “其在地爲水火焉”이란 말로써 추구하여보면, 화담은 수화(水火)를 지상만물의 2대 원소로 보는 동시에 지상에 생존하는 인물은 다 수화의 여정(餘精)의 산결(散結)에 불과한 양으로 생각한 것 같다.
쪽수▶P116-4淡然淸虛하고도 普遍妥當한 先天의 氣는 本來 一에 不外하지만, 그 一은 문득 二를 涵生하고 二는 스스로 生克을 作用하는 것이니, 二라 함은 곧 陰陽•動靜•坎離 等을 이름이며, 二를 生하는 一은 卽 그 陰陽의 始, 坎離의 體인 淡然周一한 氣라 一氣가 分하야 陰陽이 될 때에 陽의 激動이 極한 者가 天이 되고 陰의 聚凝이 極한 者 地가 되며 또 前者의 精을 結한 者ㅡ日이 되고 後者의 精을 結한 者ㅡ月이 되며, 餘精의 散한 者로 天에 在한 者는 星辰이 되고, 地에 在한 者는 水火가 되니, 이를 先天에 對하야 謂之後天(○○)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主觀的 直覺的 宇宙觀은 저 宋儒들의 恒茶飯하는 소리로 別로 新味를 차▶P117-1즐 수 없지만, 一氣의 未發本體를 先天이라 하고, 一氣의 已發한 現象을 後天이라하야 어디까지든지 一氣를 主唱함은 花潭說의 特色이라고 볼 수 있다. 但 花潭은 後天을 말함에 있어 人物發現에 對하야 言及하지 아니함이 一遺憾이나 右의 「其在地爲水火焉」이란 말로써 推究하여보면, 花潭은 水火를 地上萬物의 二大元素로 보는 同時에 地上에 生存하는 人物은 다 水火의 餘精의 散結에 不過한 양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담연일기(淡然一氣)를 표방하는 화담은 특별히 리(理)를 인정하지 아니하였는가 함이 이로부터의 논제이다. 화담은 일기를 주장하면서 또한 리를 부인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화담의 소위 ‘리’는 기외(氣外)에 대립하여 있는 자가 아니라 기내(氣內)에 있어 기의 작용을 적의하게 하는 법칙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리는 기의 재(宰)로 ‘재’는 밖(外)에서 와서 이를 맞는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중(氣中)에 내재하여 기 작용에 취하여 능히 그 소이연의 중(中)을 실(失)케 아니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然)한 것’을 기라고 하면, ‘그러한 소이’를 리라고 한다. 그리고 리는 기에 선(先)하여 있지 않다는 것이 또한 화담의 근본 관념이다. 그 「리기설(理氣說)」의 조에
쪽수▶P117-2淡然一氣를 標榜하는 花潭은 別히 理를 認치아니하였는가 함이 일로부터의 論題이다. 花潭은 一氣를 主張하면서 또한 理를 否認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花潭의 所謂 「理」는 氣外에 對立하여있는 者가 아니라 氣內에 있어 氣의 作用을 適宜하게 하는 法則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理는 氣의 宰로 「宰」는 밖(外)에서 와서 이를 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氣中에 內在하야 氣作用에 就하야 能히 그 所以然의 中을 失케 아니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然)한 것」을 氣라고 하면, 「그러한 所以」를 理라고 한다. 그리고 理는 氣에 先하여 있지 않다는 것이 또한 花潭의 根本觀念이다. 그 「理氣說」의 條에

氣外無理 理者氣之宰也 所謂宰非自外來而宰之 指其氣之用事能不失所以然之正者 謂之宰 理不先於氣(●●●●●) 氣無始(●●●) 理固無始(●●●●) 若曰理先於氣則是氣有始(●●●●●●●●●●●)也 老氏曰虛能生氣 是則氣有始有限也

쪽수▶P117-3

氣外無理 理者氣之宰也 所謂宰非自外來而宰之 指其氣之用事能不失所以然之正者 謂之宰 理不先於氣(●●●●●) 氣無始(●●●) 理固無始(●●●●) 若曰理先於氣則是氣有始(●●●●●●●●●●●)也 老氏曰虛能生氣 是則氣有始有限也

라고 한 것은 즉 그것을 이름이니, 이로써 보면 화담은 기를 주로 하는 리기합일론자로서 저 리를 주로 하고 리기(理氣)를 이물(二物)로 보고 리기(理氣)에 선후가 있는 것같이 말한 주자의 사상과는 취지를 달리한다. 물론 주자도 리기의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는 “天下未有無理之氣 亦未有無氣之理”(어류(語類) 권1)라고 하면서도 이를 분석 구별 함에 있어서는 “所謂理與氣, 此決是二物”(주자대전(朱子大全) 권46, 답류문숙서(答劉文叔書) 또는 “氣自氣 性自性 亦自不相夾雜”(위와 같음)이라고 하여, 리기의 2원(二元)임을 명언하였고, 또 “有是理 便有是氣 但理是本”(어류 권1)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都有 畢竟以理爲主(○○○○○○)”(위와 같음)라고 하여, 명백히 리선기후 리본리말의 관념을 보였다. 주자는 리를 주로 한 리기이원관을 세워 “太極只是一箇理字”(어류 1)라고 하였음에 대하여 화담은 전술과 같이 기를 주로 한 리기합일관을 세워 “太虛 虛而不虛 虛卽氣也”(태허설)라고 하였다. 화담은 홀로 리기설에 있어서만 그러할 뿐이 아니라 귀신사생설(鬼神死生説)에 있어서도 정장주(程張朱) 3자의 아직 설파치 못한 바를 오득(悟得)하였다고 자언하였다. 왈
쪽수▶P117-4라고 한 것은 卽 그것을 이름이니, 일로써 보면 花潭은 氣를 主로하는 理氣合一論者로서 저 理를 主로 하고 理氣를 二物로 보고 理氣에 先後가 있는 것같이 말한 朱子의 思想과는 趣旨를 달리한다. 勿論 朱子도 理氣의 密接한 關係에 對하여는 「天下未有無理之氣 亦未有無氣之理」(語類卷一)라고 하면서도 이를 分析區別 함에 있어서는 「所謂理與氣, 此決是二物」(朱子大全卷四十六, 答劉文叔書) 또는 「氣自氣 性自性 亦自不相夾雜」(同上)이라고 하야, 理氣의 二元임을 明言하였고, 또 「有是理 便有是氣 但理是本」(語類卷▶P118-1一)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都有 畢竟以理爲主(○○○○○○)」(同上)라고 하야, 明白히 理先氣後 理本理末의 觀念을 보였다. 朱子는 理를 主로한 理氣二元觀을 세워 「太極只是一箇理字」(語類一)라고 하였음에 對하야 花潭은 前述과 같이 氣를 主로한 理氣合一觀을 세워 「太虛 虛而不虛 虛卽氣也」(大虛說)라고 하였다. 花潭은 홀로 理氣說에 있어서만 그러할 뿐이 아니라 鬼神死生説에 있어서도 程張朱 三子의 아직 說破치 못한 바를 悟得하였다고 自言하였다. 曰

程張朱說極備死生鬼神之情狀 然亦未肯說破所以然之極致 皆引而不發 令學者自得 此後學之所以得其一而不得其二 傳其粗而不見十分之精 某(敬德) 欲採三先生之微旨 以爲鶻突之論 亦足以破千古之疑(「鬼神死生論」)

쪽수▶P118-2

程張朱說極備死生鬼神之情狀 然亦未肯說破所以然之極致 皆引而不發 令學者自得 此後學之所以得其一而不得其二 傳其粗而不見十分之精 某(敬德) 欲採三先生之微旨 以爲鶻突之論 亦足以破千古之疑(「鬼神死生論」)

라 하고, 계속하여
쪽수▶P118-3라 하고, 繼續하야

程曰 死生人鬼一而二而一 此盡之矣 吾亦曰 死生人鬼只是氣之聚散而已(●●●●●●●●●●●●) 有聚散而無有無(○○○○○○○)」 氣之本體然矣 氣之湛一淸虛者 瀰漫無外之虛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大小之聚散於太虛 以大小有殊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 況人之精神知覺聚之大且久者哉 形魄見其有散 似歸於盡 沒於無 此處率皆不得致思(●●●●●●●●) 雖三先生之門下 亦莫能皆詣其極 皆掇拾粗粕爲說爾……人之散也(●●●●) 形魄散耳(●●●●) 聚之(●●) 淡一淸虛者終亦不散(●●●●●●●●●) 散於太虛淡一之中(●●●●●●●●) 司一氣也(●●●●) 其知覺之聚散 只有久速耳 雖散之最速有日月期者 乃物之微者爾 其氣終亦不散 何者氣之淡一淸虛者旣無其始又無其終(○○○○○○○○○○○○○○○○○)(위와 같음)

쪽수▶P118-4

程曰 死生人鬼一而二而一 此盡之矣 吾亦曰 死生人鬼只是氣之聚散而已(●●●●●●●●●●●●) 有聚散而無有無(○○○○○○○)」 氣之本體然矣 氣之湛一淸虛者 瀰漫無外之虛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大小之聚散於太虛 以大小有殊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 況人之精神知覺聚之大且久者哉 形魄見其有散 似歸於盡 沒於無 此處率皆不得致思(●●●●●●●●) 雖三先生之門下 亦莫能皆詣其極 皆掇拾粗粕爲說爾……人之散也(●●●●) 形魄散耳(●●●●) 聚之(●●) 淡一淸虛者終亦不散(●●●●●●●●●) 散於太虛淡一之中(●●●●●●●●) 司一氣也(●●●●) 其知覺之聚散 只有久速耳 雖散之最速有日月期者 乃物之微者爾 其氣終亦不散 何者氣之淡一淸虛者旣無其始又無其終(○○○○○○○○○○○○○○○○○)(同上)

이라 하고, 오히려 이에 대하여
쪽수▶P118-5이라 하고, 오히려 이에 對하야

此理氣所以極妙底 學者苟能做工到此地頭 始得覰破千聖不盡傳之微旨矣 雖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위와 같음)

쪽수▶P118-6

此理氣所以極妙底 學者苟能做工到此地頭 始得覰破千聖不盡傳之微旨矣 雖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同上)

라고 결(結)하였다. 즉 사생인귀(死生人鬼)는 오직 기의 취산(聚散)에 불과하고 그 취산은 결코 유무를 가리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그 설(其說)의 골자며, 그는 이 견해로써 정장주(程張朱)의 미긍설파(未肯說破)의 것을 파하고 이에 천성부진전(千聖不盡傳)의 처미지(覷微旨)를 파하였다고 하나, 기의 산(散)이 곧 무(無)가 아니라는 사상은 이미 장횡거도 말한 일이 있으니 그는 정몽태화편 제1에 “聚亦吾體 散亦吾體知死之不亡者 可與言性矣” “方其散也 安得遽謂之無” 또는 “氣之聚散於太虛 猶冰釋於水 知太虛卽氣則無無(●●●●●●●●)……諸子淺妄有有無之分(●●●●●●●●●) 非窮理之學也”라고 쾌론하였다. 장자는 이와 같이 이미 오래전에 기불멸(氣不滅)의 설을 창하여 ‘취(聚)를 유, 산(散)을 무’라 하는 속학자의 망견(妄見)을 깨트리려고 하였은즉 화담의 설은 결국 이에서 영향되고 유래되어 일진(一眞) 그것을 발휘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단 정자 주자에 있어서는 기의 취산(聚散)으로써 생사를 설명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소위 취산은 화담의 ‘무유무(無有無)’(유무가 없다는 말)와 횡거의 ‘무무(無無)’(무가 없다는 말)와 달라 곧 유무를 가리켜 말함인즉, 서장(徐張)의 양설과는 스스로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정자는 “凡物之散 其氣遂盡 無復歸本原之理”(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라 하고, 주자는 이 사상을 계승하여 “聚則有 散則無” “氣之已散者 卽化而無有矣”(대전 권45 답료자회서(答廖子晦書))라고 하여, 2자 공히 기의 산을 무, 취를 유로 보았었다. 요컨대 정자는 ‘天地之化 生生無窮’과 ‘往者過, 來者續’을 유자의 근본사상으로 삼아 이 뜻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편이므로 그 소위 ‘산(散)’은 기(氣)가 산하고 왕하여 전혀 무에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나, 서장(徐張)은 어디까지든지 산을 기(氣)의 환원으로 인식하는 쪽이므로 ‘一氣長存’ 또는 ‘往者不過, 來者不續’의 기불멸론에 이르렀다. 더욱 화담이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이라 혹은 “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라 함에 이르러서는 확실히 물질 불멸론에 가까운 의견이었다. 화담의 견해가 이와 같으므로 순연한 정주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은 그의 설을 시인하지 않게 되었다. 이퇴계(황)는 일찍이 답정자중강목(答鄭子中講目) 중에 화담을 평론하여 “花潭所見 殊未精密 觀其所著諸說 無一篇無病痛”전제하고 거듭해서 “以徐所謂有聚散而無有無(●●●●●●●)者爲甚精 又自云其氣却散而與天地之氣混合無間(鄭子中講目) 此數處爲可疑 盖理本無有無 而猶有以有無言者若氣 則至而伸 聚而形爲有 反而歸 散而滅 爲無 安得謂無有無耶(●●●●●●●) 氣之散也 自然消盡而泯滅 不待必與天地之氣混合無間而後就泯也”(퇴계집 권25)라고 하였으며 또 그 「非理氣爲一物辯證」이란 논문 중에도 화담의 설을 평하여 “嘗試以花潭說揆諸聖賢說 無一符合處 每謂花潭一生 用力於此事 自謂窮深極妙 而終見得理字不透 所以雖拼死力 談奇說妙 未免落在形器粗淺一邊了 爲可惜也”(퇴계집 권41)라 하였다. 퇴계는 정주의 설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는 때문에 기를 주장하는 화담더러 마침내 리 자를 투득(透得)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하는 말인데, 화담의 설에 다소 영향된 율곡도 또한 이러한 비평을 내린 일이 있다. 즉 율곡은 답성호원(答成浩原)(우계) 서에 퇴계와 화담과를 비평하여 말하되
쪽수▶P118-7라고 結하였다. 卽 死生人鬼는 오직 氣의 聚散에 不過하고 그 聚散은 決코 有無를 가르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P119-1 其說의 骨子며, 그는 이 見解로써 程張朱의 未肯說破의 것을 破하고 仍히 千聖不盡傳의 覷微旨를 破하였다고하나, 氣의 散이 곧 無가 아니라는 思想은 임이 張橫渠도 말한 일이 있으니 그는 正蒙太和篇 第一에 「聚亦吾體 散亦吾體知死之不亡者 可與言性矣」 「方其散也 安得遽謂之無」 또는 「氣之聚散於太虛 猶冰釋於水 知太虛卽氣則無無(●●●●●●●●)……諸子淺妄有有無之分(●●●●●●●●●) 非窮理之學也」라고 快論하였다. 張子는 이와 같이 임이 오래 前에 氣不滅의 說을 唱하야 「聚를 有 散을 無」라 하는 俗學者의 妄見을 깨틀려고 하였은즉 花潭의 說은 結局 이에서 影響되고 由來되야 一眞 그것을 發揮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但 程子朱子에 있어서는 氣의 聚散으로써 生死를 說明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所謂聚散은 花潭의 「無有無」(有無가 없다는 말)와 橫渠의 「無無」(無가 없다는 말)와 달라 곧 有無를 가르처 말함인즉, 徐張의 兩說과는 스스로 區別하지 않으면 안 된다. 卽 程子는 「凡物之散 其氣遂盡 無復歸本原之理」(二程遺書卷十五)라 하고, 朱子는 이 思想을 繼承하야 「聚則有 散則無」 「氣之已散者 卽化而無有矣」(大全卷四十五 答瘳子晦書)라고 하야, 二子 共히 氣의 散을 無, 聚를 有로 보았었다. 要컨대 程者는 「天地之化 生生無窮」과 「往者過, 來者續」을 儒者의 根本思想으로 삼어 이 뜻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편이므로 그 所謂 「散」은 氣가 散하고 往하야 全혀 無에 도라가고 만다는 것이나, 徐張은 어디까지든지 散을 氣의 還元으로 認識하는 쪽이므로 「一氣長存」 또는 「往者不過, 來者不續」의 氣不滅論에 이르렀다. 더욱 花潭이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이라 혹은 「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라 함에 至하여는 確實히 物質不滅論에 갓가운 意見이었다. 花潭의 見解가 이와 같으므로 純然한 程朱學派에 屬하는 學者들은 그의 說을 是認하지 않게 되었다. 李退溪(滉)는 일즉이 答鄭子中講目中에 花潭을 評論하야 「花潭所見 殊未精密 觀其所著諸說 無一篇無病痛」이라▶P120-1 前提하고 仍히 「以徐所謂有聚散而無有無(●●●●●●●)者爲甚精 又自云其氣却散而與天地之氣混合無間(鄭子中講目) 此數處爲可疑 盖理本無有無 而猶有以有無言者若氣 則至而伸 聚而形爲有 反而歸 散而滅 爲無 安得謂無有無耶(●●●●●●●) 氣之散也 自然消盡而泯滅 不待必與天地之氣混合無間而後就泯也」(退溪集卷二十五)라고 하였으며 또 그 「非理氣爲一物辯證」이란 論文 中에도 花潭의 說을 評하야 「嘗試以花潭說揆諸聖賢說 無一符合處 每謂花潭一生 用力於此事 自謂窮深極妙 而終見得理字不透 所以雖拼死力 談奇說妙 未免落在形器粗淺一邊了 爲可惜也」(退溪集卷四十一)라 하였다. 退溪는 程朱의 說을 唯一한 標準으로 삼는 때문에 氣를 主張하는 花潭더러 마츰내 理字를 透得하지 못하고 말었다고 하는 말인데, 花潭의 說에 多少 影響된 栗谷도 또한 이러한 批評을 내린 일이 있다. 卽 栗谷은 答成浩原(牛溪)書에 退溪와 花潭과를 比評하야 말하되

退溪(○○)則深信朱子 深求其意 而氣質精詳愼密 用功亦深 其於朱子之意 不可謂不契 其於全體不可謂無見 而若豁然貫通處則猶有所未至(●●●●●●●●●●●) 故見有未瑩(●●●●●) 言或微差(●●●●) 理氣互發 理發氣隨之說 反爲知見之累耳 花潭(○○)則聰明過人而厚重不足 其讀書窮理 不拘文字 而多用意思 聰明過人 故見之不難 厚重不足 故得少爲足 其於理氣不相離之妙處瞭然目見(●●●●●●●●●●●●●●) 非他人讀書依樣之比 (他人은 退溪를 가르침인 듯) 故便爲至樂 以爲湛一淸虛之氣(●●●●●●) 無物不在(●●●●) 自以爲得千聖不盡傳之妙 而殊不知向上更有理通氣局一節(●●●●●●●●●●●●●●) 繼善成性之理則無物不在 而湛一淸虛之氣 則多有不在者也 理無變 而氣有變 元氣生生本息 往者過來者續而己 往之氣 已無所在 而花潭 則以爲 一氣長存(●●●●) 往者不過(●●●●) 來者不續(●●●●) 此花潭所以有認氣爲理之病也(●●●●●●●●●●●●●) 雖然偏全間(○○○○○) 花潭是自得之見也(○○○○○○○○) 今之學者(●●●●) 開口便說理無形而氣有形(●●●●●●●●●●●) 理氣決非一物(●●●●●●) 此非自言也 傳人之言也 何足以敵花潭之口而服花潭之心哉 惟退溪攻破之說 深中其病 可以救後學之誤見也 盖退溪 多依樣之味 故其▶P121-1言拘而謹 花潭多自得之味 故其言樂而放 謹故少失 放故多失 爲退溪之依樣 不必效花潭之自得也 云云(율곡전서 권10)

쪽수▶P120-2

退溪(○○)則深信朱子 深求其意 而氣質精詳愼密 用功亦深 其於朱子之意 不可謂不契 其於全體不可謂無見 而若豁然貫通處則猶有所未至(●●●●●●●●●●●) 故見有未瑩(●●●●●) 言或微差(●●●●) 理氣互發 理發氣隨之說 反爲知見之累耳 花潭(○○)則聰明過人而厚重不足 其讀書窮理 不拘文字 而多用意思 聰明過人 故見之不難 厚重不足 故得少爲足 其於理氣不相離之妙處瞭然目見(●●●●●●●●●●●●●●) 非他人讀書依樣之比 (他人은 退溪를 가르침인 듯) 故便爲至樂 以爲湛一淸虛之氣(●●●●●●) 無物不在(●●●●) 自以爲得千聖不盡傳之妙 而殊不知向上更有理通氣局一節(●●●●●●●●●●●●●●) 繼善成性之理則無物不在 而湛一淸虛之氣 則多有不在者也 理無變 而氣有變 元氣生生本息 往者過來者續而己 往之氣 已無所在 而花潭 則以爲 一氣長存(●●●●) 往者不過(●●●●) 來者不續(●●●●) 此花潭所以有認氣爲理之病也(●●●●●●●●●●●●●) 雖然偏全間(○○○○○) 花潭是自得之見也(○○○○○○○○) 今之學者(●●●●) 開口便說理無形而氣有形(●●●●●●●●●●●) 理氣決非一物(●●●●●●) 此非自言也 傳人之言也 何足以敵花潭之口而服花潭之心哉 惟退溪攻破之說 深中其病 可以救後學之誤見也 盖退溪 多依樣之味 故其▶P121-1言拘而謹 花潭多自得之味 故其言樂而放 謹故少失 放故多失 爲退溪之依樣 不必效花潭之自得也 云云(栗谷全書卷十)

퇴계는 의양(依樣)의 미가 많아 활연관통(豁然貫通)한 곳이 적고, 화담은 총명이 과인하여 자득의 견이 많으나 그 자득의 견은 더 향상이 되지 못하고 그것만으로 자족자만하여 그 위에 理通氣局(●●●●)일절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며 또 화담의 ‘一氣長存 往者不過 來者不續’적 견해에는 인기위리(認氣爲理)의 병이 있다. 의양은 근(謹)한 까닭에 말의 실(失)이 적고 자득은 방(放)하기 쉬워 말의 실(失)이 많으므로 차라리 퇴계의 의양이 되는 편이 좋다하는 말이다. ‘리통기국’의 4자는 율곡의 신 창어로 그는 성우계(成牛溪)에게 답하는 서 중에 스스로 이를 설명하여 왈
쪽수▶P121-2退溪는 依樣의 味가 만허 豁然貫通한 곳이 적고, 花潭은 聰明이 過人하야 自得의 見이 만흐나 그 自得의 見은 더 向上이 되지 못하고 그것만으로 自足自滿하야 그 우에 理通氣局(●●●●)의 一節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며 또 花潭의 「一氣長存 往者不過 來者不續」的 見解에는 認氣爲理의 病이 있다. 依樣은 謹한 까닭에 言의 失이 적고 自得은 放하기 쉬워 言의 失이 만흠으로 차랄이 退溪의 依樣이 되는 便이 좋다하는 말이다. 「理通氣局」의 四字는 栗谷의 新創語로 그는 成牛溪에게 答하는 書中에 스스로 이를 說明하야 曰

理通者何謂(○○○○○)也 理者無本末也 無先後也 無本末無先後 故未應不是先 己應不是後 程子說 是故 乘氣流行 參差不齊 而其本然之玅 無乎不在 氣之偏 則理亦偏 而所偏非理也 氣也 氣之全 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 氣也 至於淸濁粹駁糟粕煨燼糞壞汗穢之中 理無所不在 各爲其性 而其本然之玅 則不害其自苦也 此之謂理之通(○○○○○○)氣局者何謂也(○○○○○○) 氣巳涉形迹 故有本末也 有先後也 氣之本則湛一淸虛(●●●●●●●●)而巳 曷嘗有糟粕煨燼糞壤汙穢氣哉 惟其升降飛揚未嘗止息 故參差不齊而萬變生焉 於是氣之流行也 有不失其本然者 有失其本然者 旣失其本然 則氣之本然者 已無所在 偏者偏氣也 非全氣也 清者清氣也 非濁氣也 糟粕煨燼之氣也 非湛一淸虛之氣也 非若理之於萬物本然之玅無乎不在也 此所謂氣之局也(○○○○)(위와 같음)

쪽수▶P121-3

理通者何謂(○○○○○)也 理者無本末也 無先後也 無本末無先後 故未應不是先 己應不是後 程子說 是故 乘氣流行 參差不齊 而其本然之玅 無乎不在 氣之偏 則理亦偏 而所偏非理也 氣也 氣之全 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 氣也 至於淸濁粹駁糟粕煨燼糞壞汗穢之中 理無所不在 各爲其性 而其本然之玅 則不害其自苦也 此之謂理之通(○○○○○○)氣局者何謂也(○○○○○○) 氣巳涉形迹 故有本末也 有先後也 氣之本則湛一淸虛(●●●●●●●●)而巳 曷嘗有糟粕煨燼糞壤汙穢氣哉 惟其升降飛揚未嘗止息 故參差不齊而萬變生焉 於是氣之流行也 有不失其本然者 有失其本然者 旣失其本然 則氣之本然者 已無所在 偏者偏氣也 非全氣也 清者清氣也 非濁氣也 糟粕煨燼之氣也 非湛一淸虛之氣也 非若理之於萬物本然之玅無乎不在也 此所謂氣之局也(○○○○)(同上)

운운. 간단히 말하면 리통은 리가 만물을 통관하여 어디서나 자약히 본연의 묘를 가지고 있는 것, 기국은 기가 형질에 섭(涉)하면 문득 국(局)하여 편전청탁(偏全淸濁)의 분(分)을 생(生)하는 것이며 기의 본은 담일청허(湛一淸虛)하나 그 담일의 기는 승강비양(升降飛揚)에 변화불일하여 그 본연의 기를 실할 때도 있고 실치 아니할 때도 있다하는 것이다. 율곡의 소위 담일청허의 기는 화담의 소위 일청허의 기에서 영향된 사상으로 볼 수 있는데, 율곡은 단지 그 기는 리와 같이 만물을 통하여 본연의 묘를 고르게 보이지 못하여 혹편 혹전 혹청 혹탁하다 하고, 화담은 이와 달라 담연의 기는 만물에 보편타당하여 그 기가 응취(凝聚)하면 물이 되고 물이 산하면 곧 그 본연의 기가 되어, 응취 전이나 응취 중이나 해산 후나 선천담일의 기에는 조금도 손익증감이 없다하는 것이다. 화담의 기에 대한 관념은 마치 퇴율의 리에 대한 관념과 같기 때문에 퇴계는 그더러 마침내 리 자를 투득하지 못하였다 하고, 율곡은 그를 인기위리의 병이 있다고 함에 이르렀다. 그러나 율곡은 화담의 자득의 견이 능히 리기불상리의 묘처를 요연히 목견한 것은 퇴계와 같은 독서의양인(讀書依樣人)의 비(比)가 아니라고 표창하고 실제 왕왕 화담의 설을 취용하여 거기서 일보를 내킨 것으로 볼진대 율곡이 또한 얼마나 화담의 자득의 견을 배우려고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유학사 상에 있어 주기주리의 이대 경향을 생하기는 화담과 퇴계로부터라고 할 수 있으니, 화담은 가위 주기학파의 선봉이오, 퇴계는 이에 대하여 주리학파의 거얼(巨孼)이 된다고 하겠으며 율곡은 말하자면 이 두 학파의 중간에 처하여 절충을 취한 이라고 하겠는데, 그는 오히려 기술한 바와 같이 화담의 ‘기자이’의 설에 영향되어 리를 은연히 형식적의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후세 율곡학파 중에는 실상 주기적 경향을 가진 학자가 많이 있게 되었다. 이 의미에 있어 보더라도 화담의 조선유학사 상에 처한 지위는 또한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화담의 학설에 대하여는 오히려 더 연구할 바가 많이 있으나 아직 이만 그쳐두고 다음에 연방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쪽수▶P121-4云云. 簡單히 말하면 理通은 理가 萬物을 通貫하야 어디서나 自若히 本然의 妙를 가지고 있는 것, 氣局은 氣가 形質에 涉하면 문득 局하야 偏全淸濁의 分을 生하는 것이며 氣의 本은 湛一淸虛하나 그 湛一의 氣는 升降飛揚에 變化不一하야 其本然의 氣를 失할 때도 있고 失치 아니할 때도▶P122-1 있다하는 것이다. 栗谷의 所謂湛一淸虛의 氣는 花潭의 所謂一淸虛의 氣에서 影響된 思想으로볼 수 있는데, 栗谷은 단지 그 氣는 理와 같이 萬物을 通하야 本然의 妙를 고르게 보이지 못하야 或偏 或全 或淸 或濁하다 하고, 花潭은 이와 달라 淡然의 氣는 萬物에 普遍妥當하야 그 氣가 凝聚하면 物이 되고 物이 散하면 곧 그 本然의 氣가되야, 凝聚前이나 凝聚中이나 解散後나 先天淡一의 氣에는 조금도 損益增減이 없다하는 것이다. 花潭의 氣에 對한 觀念은 마치 退栗의 理에 對한 觀念과 같기 때문에 退溪는 그더러 마침내 理字를 透得하지 못하였다 하고, 栗谷은 그를 認氣爲理의 病이 있다고 함에 이르렀다. 그러나 栗谷은 花潭의 自得의 見이 能히 理氣不相離의 妙處를 瞭然히 目見한 것은 退溪와 같은 讀書依樣人의 比가 아니라고 表彰하고 실제 往往 花潭의 說을 取用하야 거기서 一步를 내킨 것으로 볼진대 栗谷이 또한 얼마나 花潭의 自得의 見을 배흘려고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朝鮮儒學史上에 있어 主氣主理의 二大傾向을 生하기는 花潭과 退溪로부터라고 할 수 있으니, 花潭은 可謂主氣學派의 先鋒이오, 退溪는 이에 對하야 主理學派의 巨孼이 된다고 하겠으며 栗谷은 말하자면 이 두 學派의 中間에 處하야 折衝을 取한 이라고 하겠는데, 그는 오히려 旣述한 바와 같이 花潭의 「機自爾」의 説에 影響되야 理를 隱然히 形式的의 것으로 돌리는 傾向이 있기 때문에 後世 栗谷學派 中에는 실상 主氣的傾向을 가진 學者가 많이 있게 되였다. 이 意味에 있어 보더래도 花潭의 朝鮮儒學史上에 處한 地位는 또한 輕視할 수 없는 것이다. 花潭의 學說에 對하여는 오히려 더 硏究할 바가 만히 있으나 아직 이만 긋치어두고 다음에 蓮坊에 對하야 말하려고 한다.




























본문3: 3


화담의 문도(門徒)로서 저명한 이는 이연방(李蓮坊(球)) 허초당(許草堂(曄)) 박사암(朴思菴(淳)) 및 박정암(朴正菴(民獻)) 등 제인이었는데, 그 중에도 연방과 같은 이는 더욱 화담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휘한 고제(高弟)라고 볼 수 있으며, 그의 학설은 왕왕 사설과 공히 이퇴계의 변론의 대상이 되었었다. 지금 다음으로 특히 연방에 대하여 말하면, 연방은 그의 유저(遺著)와 전기에 관한 문자가 오늘날 전하지 아니하여 그의 사적(事蹟)으로는 성명 2자와 별호와 몇 화담의 문인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알 수 없어 유감이 적지 않으나 다행히 그의 학설에 관한 문자는 퇴계집 중에 단간적으로 산견되어 있으므로 나는 이에 의하여 그의 사상의 일단을 엿볼 수밖에 없다. 퇴계집 권32에 소수된 우경선(성전의 자)의 퇴계에게 질(質)한 문목(問目)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도설이 보인다.
程林隱圖

此圖極好 夫天地判後 都是氣 陰陽動靜只是氣 氣上可推尋其理耳 文王卦辭曰 乾元亨利貞 是先言氣也 孔子曰易有太極 亦先言氣也子思曰鳶飛戾天魚躍于淵 此亦先言氣也 若非氣 雖聖人 難言其理也 恐程朱所論 亦不過於此圖意思也 右蓮坊答草堂書(○○○○○○○)也云云.
쪽수▶P122-2花潭의 門徒로서 著名한 이는 李蓮坊(球) 許草堂(曄) 朴思菴(淳) 및 朴正菴(民獻) 等 諸人이었는데, 其 中에도▶P123-1 蓮坊과 같은 이는 더욱 花潭의 思想을 繼承하야 發揮한 高弟라고 볼 수 있으며, 그의 學說은 往往 師說과 共히 李退溪의 辯論의 對象이 되였었다. 지금 다음으로 特히 蓮坊에 對하야 말하면, 蓮坊은 그의 遺著와 傳記에 關한 文字가 오늘날 傳하지 아니하야 그의 事蹟으로는 姓名二字와 別號와 몇 花潭의 門人이라는 것 外에는 全혀 알 수 없어 遺憾이 적지 않으나 多幸히 그의 學說에 關한 文字는 退溪集 中에 短簡的으로 散見되어 있으므로 吾人은 이에 依하야 그의 思想의 一端을 엿볼 수밖에 없다. 退溪集卷三十二에 所收된 禹景善(性傳의 字)의 退溪에게 質한 問目에 依하면 다음과 같은 二箇의 圖說이 보인다.
程林隱圖

此圖極好 夫天地判後 都是氣 陰陽動靜只是氣 氣上可推尋其理耳 文王卦辭曰 乾元亨利貞 是先言氣也 孔子曰易有太極 亦先言氣也子思曰鳶飛戾天魚躍于淵 此亦先言氣也 若非氣 雖聖人 難言其理也 恐程朱所論 亦不過於此圖意思也 右蓮坊答草堂書(○○○○○○○)也云云.

이병도 서화담 및 이연방-2.png

道只是旣濟未濟 坎離只是氣 氣者 理之盛也 理者 氣之妙也 非理 體不立 非氣 用不行 是故顯諸仁者 氣也 藏諸用者 理也 花潭先生曰 坎離藏用有形先 是發明藏諸用之說也 到得流行道始傳 是發明顯諸 仁之說也 於此一圖卦上 可見天地人三才之道盡之矣 右圖說亦蓮坊所著也云云
쪽수▶P123-3
이병도 서화담 및 이연방-2.png

道只是旣濟未濟 坎離只是氣 氣者 理之盛也 理者 氣之妙也 非理 體不立 非氣 用不行 是故顯諸仁者 氣也 藏諸用者 理也 花潭先生曰 坎離藏用有形先 是發明藏諸用之說也 到得流行道始傳 是發明顯諸 仁之說也 於此一圖卦上 可見天地人三才之道盡之矣 右圖說亦蓮坊所著也云云
위의 양개도설 중 전자는 원의 정림은(부심)의 도에 대한 연방의 찬평이요, 후자는 도급설이 공히 연방의 소작(所作)에 계(係)한 것이니, 다시 자세히 말하면 전자는 실상 우성전이 일찍이 퇴계의 문하에 있을 때 정씨의 이 도(圖)를 얻어 보고 그 후 이에 치의(致疑)하여 우연히 허초당(화)에게 물었던바 초당도 또한 의심을 품어 곧 그 동문인 연방에게 질하여 득한 답서이었고, 후자는 연방이 이런 그림에 의방(依倣)하여 기록한 것을 (우씨가) 인용한 것인데 우씨는 상기 연방의 설에 대하여 다시 의혹을 품고 서(書)로써 그 사(師) 퇴계에게 질한 까닭이었다. 이 질의에 답한 퇴계의 서를 보면 정림은의 원도는 이와 다소 달라 즉 중앙의 기권(氣圈) 외에 또 태극권이 있으나 중권으로써 기라고 함은 서로 일치된다 하여 기를 주장하는 정이 양씨의 설을 그르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의 도설에 의하여 연방의 학설을 찾아보면 연방은 명백히 화담의 ‘기를 주로 한 리기합일관’을 그대로 소술하여 천지간에는 오직 이 기뿐이요 리는 단지 기 상에 나가서만 이를 추심하여 얻을 수 있고 기를 제하면 리를 말할 수 없으며(이러한 종류의 사상은 당시를 거(去)하기 가까운 지나의 나정암에게도 있었으니 정암은 기저곤지기(其著困知記) 권상에 「理須就氣上認取」 또는 「理只是氣之理」라고 명언하였다) 그리하여 리는 기의 묘체가 되어 용에 감추어지는 것, 기는 리의 성용(盛用)이 되어 본체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화담의 감리장용(坎離藏用)의 시설(詩說)을 찬양하였고 경히 기(氣)자 내에 리(理)자를 태부(胎付)한 삼중의 기권도를 저(著)하여 화담의 리기합일관을 일층 철저케 하였다.
쪽수▶P123-4右의 兩箇圖說中 前者는 元의 程林隱(復心)의 圖에 對한 蓮坊의 贊評이요, 後者는 圖及說이 共히 蓮坊의 所作에 係한 것이니, 다시 仔細히 말하면 前者는 실상 禹性傳이 일즉이 退溪의 門下에 있을 때 程氏의 이 圖를 어더 보고 그 후 이에 致疑하야 偶然히 許草堂(嘩)에게 무렀든바 草▶P124-1堂도 또한 疑心을 품어 곧 그 同門인 蓮坊에게 質하야 得한 答書이었고, 後者는 蓮坊이 이런 그림에 依倣하야 著한 것을 (禹氏가) 引用한 것인데 禹氏는 上記蓮坊의 說에 對하야 다시 疑惑을 품고 書로써 그 師退溪에게 質한 所以엇다. 이 質疑에 答한 退溪의 書를 보면 程林隱의 原圖는 이와 多少 달라 卽 中央의 氣圈外에 또 太極圈이 있으나 中圈으로써 氣라고 함은 서로 一致된다 하야 氣를 主張하는 程李兩氏의 說를 그르다고 하였다. 그러나 右圖説에 依하야 蓮坊의 學説을 차저보면 蓮坊은 明白히 花潭의 「氣를 主로 한 理氣合一觀」을 그대로 紹述하야 天地間에는 오직 이 氣뿐이요 理는 단지 氣上에 나가서만 이를 推尋하여 어들 수 있고 氣를 除하면 理를 말할 수 없으며(此種類의 思想은 當時를 去하기 갓가운 支那의 羅整庵에게도 있었으니 整庵은 其著困知記卷上에 「理須就氣上認取」 또는 「理只是氣之理」라고 明言하였다) 그리하야 理는 氣의 妙體가 되어 用에 감추어지는 것, 氣는 理의 盛用이 되야 本體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야 花潭의 坎離藏用의 詩說을 讚揚하였고 更히 氣字內에 理字를 胎付한 三重의 氣圈圖를 著하야 花潭의 理氣合一觀을 一層 徹底케 하였다.
위에 보이는 도설은 실로 연방의 근본사상을 규구(窺究)하기에 귀중한 문헌이 되거니와, 또 이 이외에도 그의 특색을 엿볼만한 학설이 있다. 그는 일찍이 심적(정신) 현상에는 체용(體用)이 없다는 설을 저하여, 이 때문에 퇴계에게 또한 변박을 당하였는데, 퇴계의 변박한 논문 「心無體用辯」 중에 산견되는 좌기제조(左記諸條)를 종합하면 연방설의 요점을 얻을 수 있다.
쪽수▶P124-2右示圖說은 實로 蓮坊의 根本思想을 窺究하기에 貴重한 文獻이 되거니와, 또 이 以外에도 그의 特色을 엿볼만한 學說이 있다. 그는 일찍이 心的(精神)現象에는 體用이 없다는 說을 著하야, 이 때문에 退溪에게 또한 辯駁을 當하였는데, 退溪의 辯駁한 論文 「心無體用辯」 中에 散見되는 左記諸條를 綜合하면 蓮坊說의 要點을 어들 수 있다.
(1) 心固有體用 而探其本 則無體用也
(2) 動靜者 實理也 體用者 虛說也 道理 本無體用 而以動靜爲體用也
(3) 體字起於象上 用字起於動上 動之前 何嘗有用 象之前何嘗有體耶
쪽수▶P124-3(1) 心固有體用 而探其本 則無體用也
(2) 動靜者 實理也 體用者 虛說也 道理 本無體用 而以動靜爲體用也
(3) 體字起於象上 用字起於動上 動之前 何嘗有用 象之前何嘗有體耶
다시 이를 묶어 부연하여 말하면, 도리에는 본시 체용을 구별할 것이 없다. 체(體)란 것은 물적 현상에 한하여 생긴 말이고 용(用)은 동적 방면에 나가 관찰한 용어인즉, 물상과 동작을 초월한 형이상적 도리에 거슬러 올라가서는 체용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도리에는 오직 가동가정(可動可靜)의 실리를 포함하여 있으므로 동정(動靜)이 있는 것은 진실한 일이다. 그런즉 심(心)에 있어서도 그 형질적 동작적 방면으로부터 보면 본래 체용이 있는 자이지만, 그 무형한 근본적 정신현상에 추진하여 보면, 오직 현묘한 하나의 도리(道理)가 있을 뿐이요 별로 체용이라고 분별하여 말할 것은 없으며, 단지 동정이 있는 것은 부치 못할 실리이나, 그 동정으로써 체용을 삼는 것은 한갓 인위적 상상의 허구라고 볼 수 있다(한다). 왜 그러냐하면 실리는 일정일동(一靜一動)하는 것으로 동이 극하면 정이 되고 정이 극하면 동이 되어 동정이 극함이 없이 순환하는 것인데, 거기 나가서 무엇을 가르쳐 본체라 하고 무엇을 가르쳐 말용이라 할까 하는 설이다.
쪽수▶P124-4다시 이를 묶어 敷演하야 말하면, 道理에는 本是體用▶P125-1을 區別할 것이 없다. 體란 것은 物的現象에 限하야 生긴 말이고 用은 動的方面에 나가 觀察한 用語인즉, 物象과 動作을 超越한 形而上的 道理에 거슬러 올나 가서는 體用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道理에는 오직 可動可靜의 實理를 包含하여 있으므로 動靜이 있는 것은 眞實한 일이다. 그런즉 心에 있어서도 그 形質的 動作的方面으로부터 보면 본래 體用이 있는 者이지만, 其無形한 根本的 精神現象에 推進하여 보면, 오직 玄妙한 一道理가 있을 뿐이요 別로히 體用이라고 分別하여 말할 것은 없으며, 단지 動靜이 있는 것은 否치못할 實理이나, 그 動靜으로써 體用을 삼는 것은 한갓 人爲的 想像의 虛構라고 볼 수 있다(한다). 웨 그러냐하면 實理는 一靜一動하는 것으로 動이 極하면 靜이 되고 靜이 極하면 動이 되어 動靜이 極함이 없이 循環하는 것인데, 거긔 나가서 무엇을 가르처 本體라 하고 무엇을 가르처 末用이라 할가 하는 說이다.
연방의 이 설은 가장 조선적 특색을 발휘한 것이니, 이때 교주고슬적(膠柱鼓瑟的)으로 정주의 학설만 유일한 신조로 여기든 학자에 비하면 그 독창자득의 견은 가위 백척간두에 일보를 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설에 대한 이퇴계의 변박은 어떠하냐 하면, 즉 아래와 같다. ――도리에 동정이 있어 그 정을 체라 하고 그 동을 용이라 하고 보면, 도리동정(道理動靜)의 실은 즉 도리체용(道理體用)의 실에 밧하지 않을 것이니, 왜 따로 체용 없는 도리를 인하여 동정 이전에 있다고 하느냐 체용을 형이하적 기에만 인하는 것은 불가하다. 형이상적 도리에 있어서도 정자의 소위 ‘충막무짐(冲漠無朕)’과 같은 것은 체로서 형(形) 이전의 상태이며, ‘만상기구(萬象己具)’와 같은 것은 용으로서 동작 이전의 것이다. ‘체’는 반드시 유상적인 것에만 한하지 않고 무상의 상, 무물의 상(심적 현상)에도 인하여 얻을 수 있으며, 또 ‘용’에 있어서도 동적 현상에만 한하지 않고 장차 여사하게 나타나고 동할 만한 요인 혹은 경향에도 사용될 어(語)라 한다. 이미 도리에 동정의 양 속성을 인한다 하면, 정 외에 다시 무체의 도리 동 외에 또 무용인 도리를 유출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하였다. 퇴계의 견해는 항상 정주의 설에 입각하여, 그런 독특의 사상을 허하지 아니하는 이 이므로 연방의 설을 비난함은 면치 못할 사실이나, 그러나 퇴계가 이에 있어, 그 정될만한 도리가 어찌하여 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동될 도리가 무슨 까닭으로 용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더 심각히 설명하지 아니한 이상, 철저한 논리라고 할 수 없으며, 동시에 연방은 이 논박을 용이히 청납(聽納)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쪽수▶P125-2蓮坊의 이 說은 가장 朝鮮的 特色을 發揮한 것이니, 이때 膠柱鼓瑟的으로 程朱의 學說만 唯一한 信條로 여기든 學者에 比하면 그 獨創自得의 見은 可謂 百尺竿頭에 一步를 進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右說에 對한 李退溪의 辯駁은 어떠하냐 하면, 卽 아래와 같다. ―― 道理에 動靜이 있어 그 靜을 體라 하고 그 動을 用이라 하고 보면, 道理動靜의 實은 卽 道理體用의 實에 밧하지 않을 것이니, 웨 따로 體用없는 道理를 認하야 動靜以前에 있다고 하느냐 體用을 形而下的氣에만 認하는 것은 不可하다 形而上的道理에 있어서도 程子의 所謂 「冲漠無朕」과 같은 것은 體로서 形以前의 狀態이며, 「萬象己具」와 같은 것은 用으로서 動作以前의 것이다. 「體」는 반듯이 有象的의 것에만 限치 않고 無狀의 狀 無物의 象(心的現象)에도 認하야 어들 수 있으며, 또 「用」에 있어서도 動的現象에만 限치 않고 장차 如斯하게 나타나고 動할 만한 要因 或은 傾向에도 使用될 語라 한다. 임이 道理에 動靜의 兩屬性을 認한다 하면, 靜外에 다시 無體의 道理 動外에 또 無用인 道理를 由▶P126-1出할 必要가 있을가 라고 하였다. 退溪의 見解는 항상 程朱의 說에 立脚하야, 그런 獨特의 思想을 許하지 아니하는 이임으로 蓮坊의 說을 非難함은 免치 못할 事實이나, 그러나 退溪가 이에 있어, 그 靜될만한 道理가 어찌하야 體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動될 道理가 何故로 用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더 深刻히 說明하지 아니한 以上, 徹底한 論理라고 할 수 없으며, 同時에 蓮坊은 이 論駁을 容易히 聽納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요컨대 화담과 연방은 조선이 처음으로 낳은 특색 있는 학자로서 확실히 독창적 사색에 의하여 일층 고원한 묘체를 오득(悟得)한 진기(珍奇)한 철거자(哲擧者)로 추앙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러나 연방의 유저와 전기에 관한 문자가 오늘날 전하여 오지 아니함은 참으로 유감천만의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료)
쪽수▶P126-2要컨대 花潭과 蓮坊은 朝鮮이 처음으로 나은 特色있는 學者로서 確實히 獨創的 思索에 依하야 一層高遠한 妙諦를 悟得한 珍奇한 哲擧者로 推仰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러나 蓮坊의 遺著와 傳記에 關한 文字가 오늘날 傳하여 오지 아니함은 참으로 遺憾千萬의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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