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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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출처 :
 
한글명 김재홍 한자명 미상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미상 생년 미상년 몰년 미상년 출신지 미상 전공 역사학(고려사, 대외관계사)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북한에서 활동한 역사학자로, 학술지 「력사과학」에 고려 시대 군사·대외관계와 민족문화유산, 애국주의 담론을 다룬 논문을 다수 발표한 인물이다.[1] 출생연도와 소속 기관 등 기본 인적사항은 공개 자료에 나타나지 않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 사이에 집필 활동을 한 연구자로만 확인된다.[2]


생애


활동 시기와 기본 정보

현재까지 공개된 북한 인문학 자료에서는 김재홍의 출생연도, 출신 지역, 학력, 소속 기관 등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다.[3] 다만 1959년 「력사과학」 제3호에 「고려 의무병 제도의 성립과 와해 과정」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67년까지 같은 잡지에 여러 편의 글을 실은 점에서, 이 시기 북한 학계에서 활동한 중견급 연구자로 추정된다.[4]


북한 역사학계 내 위치

김재홍의 논문들은 모두 북한의 대표 역사학 학술지인 「력사과학」에 실려 있어, 조선과학원 혹은 관련 연구기관 소속의 공식 역사연구자로 분류된다.[5] 논문 주제가 고려-몽골 관계, 외래 침략 세력에 대한 고려 인민의 투쟁, 진포 해전과 같은 군사·대외관계사에 집중된 점을 보면, 대외침략 저항과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북한 역사서술의 전형을 수행한 연구자로 이해할 수 있다.[6]


사상적·이데올로기적 성격

김재홍은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서 ‘외래 침략자에 맞선 고려 인민과 지배층의 투쟁’이라는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통해 현대 북한 체제의 반제·자주 노선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7] 또한 「민족 문화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과 그 생활력」과 같은 논문을 통해 조선로동당의 문화유산 정책을 이론적으로 해설하는 작업도 수행하여, 순수 학문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당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그적 기능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8]


연구·저작 활동의 한계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는 1967년 이후 김재홍의 논문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아, 이후의 학문 활동이나 생애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9] 북한 내부 기록이나 후대 회고 자료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은퇴·전직·정치적 변동 등 이후 상황을 추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인물을 다루는 데 구조적 한계로 남아 있다.[10]


남한 자료와의 연결 가능성

같은 이름을 가진 남한의 학자·언론인·문학평론가 김재홍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모두 출생 연도, 전공, 활동 무대가 명확히 다르므로 북한 역사학자 김재홍과는 구분해야 한다.[11]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자료센터의 North Korea Humanities DB는 이 인물을 ‘북한에서 활동한 저자’로 분류하고 있어, 동일인 혼동을 피하기 위해 서지 정보와 학술지명을 반드시 함께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2]





연구


고려 군사·제도사 연구

김재홍의 초기 논문인 「고려 의무병 제도의 성립과 와해 과정」은 고려의 병역 제도를 계급투쟁과 계층 갈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글로, 봉건 지배계급과 인민의 관계를 강조하는 북한식 역사서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13] 이러한 연구는 고려 말 왜구 침입과 군사적 위기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이후 진포 해전 연구와도 연결된다.[14]


대외관계와 침략 저항 서술

「1216~1219년 거란족의 침입과 그의 격멸」과 「13~14세기 고려-몽고 관계에 대하여」(상·하)는 고려가 외세의 간섭과 침략을 받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민족적 주체성을 지키려 했다는 서사를 구축한다.[15] 이처럼 외세 침략사를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은, 현대 북한이 주장하는 반제·자주 노선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기능을 가지며, 교과서 및 대중 역사 인식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16]


진포 해전 해석

김재홍의 대표 논문 가운데 하나인 「진포 해전과 그 역사적 의의」는 1380년 진포 대첩을 ‘세계 해전사에서 최초로 화포를 본격 사용한 전투’로 평가하면서, 고려 수군의 화력전 전술을 높이 평가한다.[17] 이 글에서 진포 해전은 단순 전투가 아니라 오랜 왜구 침략의 국면을 전환한 결정적 사건으로 제시되며, 이후 남해 관음포 대첩, 대마도 정벌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승리의 출발점으로 해석된다.[18]


민족 문화유산과 당 방침

「민족 문화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과 그 생활력」은 역사학 논문이면서 동시에 조선로동당의 문화정책을 선전·해설하는 성격을 가진다.[19] 여기서 김재홍은 전통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을 당의 방침과 연결하면서, 역사 연구의 목적을 ‘사회주의 건설과 애국주의 교육에 기여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규정한다.[20]


역사서술 비판과 서평 활동

김재홍은 무라야마의 「고대의 일조 관계에 관하여」를 검토한 서평을 통해, 일본 학계의 고대 한일 관계 해석을 식민주의적 관점으로 비판하며 북한식 ‘주체적 민족사관’을 강조하였다.[21] 이는 단순한 책 소개를 넘어, 외국 학계의 견해를 비판하고 자국 학문 노선을 정립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업으로, 북한 역사학이 국제 학계와 맺는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22]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재홍 Article: 고려 의무병 제도의 성립과 와해 과정 A isWriterOf B
Person: 김재홍 Article: 1216~1219년 거란족의 침입과 그의 격멸 A isWriterOf B
Person: 김재홍 Article: 13~14세기 고려-몽고 관계에 대하여 (상) A isWriterOf B
Person: 김재홍 Article: 13~14세기 고려-몽고 관계에 관하여 (하) A isWriterOf B
Person: 김재홍 Article: 진포 해전과 그 역사적 의의 A isWriterOf B
Person: 김재홍 Article: 민족 문화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과 그 생활력 A isWriterOf B
Journal: 력사과학 Institution: 과학백과사전출판사 A publisher B
Article: 진포 해전과 그 역사적 의의 Volume: 력사과학 1965-4 A isPartOf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자료센터, North Korea Humanities DB ‘김재홍’ 인물·논저 정보.[web:24]
  • 「력사과학」 각 권 목차 및 서지 정보(1959-3호, 1961-1호, 1964-4·5호, 1965-4·5호, 1966-4·6호, 1967-1호).[web:25]
  • 디지털 군산문화대전, 「진포대첩」 항목.[web:16]
  • 북한 역사교과서·반제국주의 서사 관련 선행연구 요약.[web:22]

주석


  1. 「North Korea Humanities」 인물 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자료센터의 ‘김재홍’ 항목 논저 목록 참조.[web:24]
  2. 「력사과학」 각 권의 목차에 수록된 김재홍의 논문 게재 연도(1959~1967년)를 바탕으로 활동 시기 추정.[web:24][web:25]
  3.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자료센터 North Korea Humanities DB의 ‘김재홍’ 인물 정보 표에서 인적사항 난 공란 확인.[web:24]
  4. 「력사과학」에 수록된 논문 연혁: 1959년 제3호, 1961년 제1호, 1964년 제4·5호, 1965년 제4·5호, 1966년 제4·6호, 1967년 제1호 등.[web:24][web:25]
  5. 「력사과학」 1965-4호 서지 정보에 따르면, 이 학술지는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간행되는 북한 역사학 전문지로 소개된다.[web:25]
  6. North Korea Humanities 논저 목록에서 김재홍의 글이 거란 침입, 고려-몽골 관계, 진포 해전, 민족문화유산 계승 등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룸.[web:24]
  7. 거란 침입과 고려-몽골 관계, 진포 해전 관련 논문 제목과 요지에서 ‘침략자에 대한 투쟁’, ‘민족적 승리’ 등의 표현을 강조하는 점이 확인된다.[web:24][web:25]
  8. 동 논문은 당의 문화유산 계승 방침을 소개·정당화하는 내용으로 분류되며, 역사학을 통해 정책 노선을 설득하는 성격을 가진다.[web:24]
  9. North Korea Humanities 논저 목록의 마지막 항목이 1967년 「강감찬 장군의 전략전술 (2)」으로 끝나는 점에서 확인.[web:24]
  10. 북한 인물 정보의 일반적 비공개 관행과, 한국 내 공개 DB가 대부분 논문 목록 중심이라는 점.[web:24]
  11. 국내 언론 기사와 대학 교원 소개 등에서 1947년생 문학평론가 김재홍, 언론인 출신 정치학자 김재홍 등 동명이인이 확인된다.[web:13][web:18]
  12. North Korea Humanities의 인물-논저 연결 구조에서, ‘저자명-잡지명-출판사’ 정보가 일괄적으로 북한 자료로 분류된다.[web:24]
  13. 력사과학 제3호(1959년) 수록 논문 제목과 분류를 통해, 군사·제도사와 계급사를 결합한 연구로 파악된다.[web:24]
  14. 진포 해전 관련 논문에서 고려 수군 편제와 화포 운용을 설명할 때 의무병 제도 논의가 전제되어 있다.[web:24][web:25]
  15. 력사과학 1961년 제1호, 1964년 제4·5호에 실린 해당 논문들의 제목과 시기에서 거란·몽골 침입을 연속선상에서 다루는 구도가 드러난다.[web:24]
  16. 북한 역사교과서와 대중담론에서 고려-몽골, 거란, 왜구 침입 서술이 반제국주의 서사로 재구성되는 경향과 일치한다.[web:22][web:24]
  17. 력사과학 1965-4호 목차에서 해당 논문이 첫 학술 논문으로 수록되어 있고, 진포 해전이 화포 사용과 왜구 격퇴의 전환점으로 서술되는 점이 확인된다.[web:16][web:25]
  18. 국내 연구와 디지털 군산문화대전 등에서도 진포 대첩을 왜구 토벌 정책과 화약무기 발전의 기점으로 평가한다.[web:16][web:22]
  19. North Korea Humanities 논저 목록에서 해당 글이 「력사과학」 제5호(1965년)에 실린 이론·정책 해설 성격의 글로 분류된다.[web:24]
  20. 같은 글의 제목과 분류가 문화유산·정책 담론을 결합한 것으로 나타난다.[web:24]
  21. 「무라야마씨의 《고대의 일조 관계에 관하여》를 읽고」가 력사과학 제4호(1966년)에 서평 형식으로 실린다.[web:24][web:25]
  22. 북한 학술지에서 외국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이 주체사관 정립과 연결되는 일반적 경향과 맞닿아 있다.[web: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