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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R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5일 (금) 10:13 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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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제강점기 출판경향, 당시 유통되었던 서적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근대 전후의 출판

근대 이전까지 책은 생산 및 보존이 어려운 귀중품으로, 일부 지식인들의 향유물이었으며 주로 필사를 하여 소장하였다. 소설책도 조선 말기 성행한 세책업이나 전기수를 통해서 제한적으로 향유되었다. 1883년 국영출판사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면서부터 신식 활자가 쓰였으며, 1884년 박문국의 활자와 시설을 이용한 민간출판사가 설립되었고, 1896년 최초의 민간출판사 겸 인쇄소인 배재학당 활판소가 설립되며 활판 인쇄를 통한 신문, 잡지, 서적 발행이 본격화된다. 이처럼 근대에 접어들면서 근대적 인쇄기술의 성과로 책의 대중화가 가능해지며, 또한 학교가 보급되어 문맹률이 낮아져 독서인구가 늘게 되었다. 신문 연재 형식으로도 많은 문예작품이 보급되었지만 이는 검열의 영향을 크게 받는 방법이었다. 검열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출판사의 경영 악화에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다만 고전소설은 저작권료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일제의 검열도 쉽게 통과할 수 있고, 한자의 사용이 적거나 한글 해석이 달려 독자들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하여 1910~1920년대에 활발히 출간되었다. 이는 눈에 띄는 총천연색의 삽화가 그려진 표지로 출간되었는데 '구활자본 고전소설' 혹은 딱지본이라고 불리는 박리다매형 책이 출현하기도 한다. 신소설도 딱지본의 형태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기존의 단색의 엄숙한 표지와는 달리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화려한 디자인은 대중화와 소비문화로의 포섭을 한눈에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출처=「(김기철,)「[일제시대 휩쓴 베스트셀러 '딱지본'을 아십니까」,『조선일보』,2010.07.04.『조선일보』online,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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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아이들이 갖고 놀던 딱지처럼 알록달록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딱지본'은 1920~1930년대에 널리 유행한 출판물로 '구(舊)활자본' '활자본'으로도 불렸다. 서양의 인쇄 기술 도입과 함께 들어온 납활자로 대량 인쇄한 딱지본은 '홍길동전' '심청전' 같은 고전소설뿐 아니라 '추월색' '장한몽' 등 신소설도 찍었다. 딱지본은 대개 4·6판 크기에 한글로 내려쓰기를 했는데, 시장에서 국수 한 그릇 값 정도인 육전(六錢)에 팔렸다고 해서 '육전소설'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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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기철,)「[일제시대 휩쓴 베스트셀러 '딱지본'을 아십니까」,『조선일보』,2010.07.04.『조선일보』online,조선일보.


식민지와 검열

한편 이러한 딱지본은 일제의 식민 치하 조선의 상황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이미 한일합병을 전후해 일본자본이 조선 인쇄업계에 침투하여, 1900년대 경성에는 모모야마 인쇄소, 에가와 활판소, 야마도 인쇄소 등이 진출했고 1907년에는 10여 곳이 영업하고 있었다. 1917년에는 전국 70개소 중 조선인이 경영하는 곳은 11곳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규모도 전체의 14%에 그쳤다. 1938년에는 조선인 업체가 51.2%로 추산되나 자본금 규모는 31% 정도였으며 해방 후 정부 수립 전까지 적산귀속업체로 남아 있던 인쇄소가 84개에 이르렀다.

일본자본이 인쇄업의 지분을 다수 차지했을 뿐 아니라

1907년 일제는 신문지법을 제정해 인가제를 허가제로 변경하고, 모든 조선인의 잡지와 서적 출판의 사전 검열을 강제하는 출판법을 1909년 2월 23일 제정 및 실시하였으며, 같은 해 5,767권을 압수했을 정도였다.

박몽구, 「일제 강점기 한민족 출판 연구」, 『한국출판학연구』제36권 제2호(통권 제59호), 한국출판학회, 2010, 103쪽.

이렇듯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색된 방안이 딱지본이었으며, 서점과 도서관 등이 수도에만 존재했던 유통의 물리적 한계 상황에서 통신판매나 서적행상 등을 통해서 지방에도 활발히 유통되어 유행할 수 있었다. 일제 기관 차원에서도 출판이 진행되었는데, 식민지 통치를 위한 자료 축적을 위해서 1908년 조선연구회와 조선고서간행회라는 출판사가 조직되어 한국연구도서와 고전을 간행하였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최남선은 조선광문회를 발족하여 국학 관계 도서를 간행했다. 그렇지만 조선인 자본 출판사는 기술 부족과 영세 자본으로 명맥만 잇고 대체로 서점 경영 겸해 영세 출판을 하는 정도였다.

1920년대에는 여러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어 지면이 활성화되었으나 고전소설들의 판매는 강세였지만 아직 근대적 소설들은 그만큼 독자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아직 농촌에 근거한 사회였던 당시 근대소설은 고전소설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다. 또한 1925년에는 검열을 통과한 2,000여 종의 출판물 중에서 가장 다수가 243종의 족보였으며 그 다음이 229종의 소설이었고 정치와 과학에 대한 책이 가장 적었다고 한다. 1930년대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체제로 전환한 일제의 더욱 엄격한 검열로 인해 서적 출판 역시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1930년대 중반에는 조선의 출판업계는 전대미문의 성장률을 보이는데, 이는 그동안의 검열에 대한 경험으로 작가, 출판업자 모두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파악하였으며 독자도 이를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다. 검열에 걸리는 소재와 쓰기 방법을 피하되 암시하기도 하는 방향으로 글쓰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러한 예로 염상섭의『삼대』를 들 수 있다. 주역이 되는 조씨 삼대 외의 김병화나 덕기 등 사회주의자나 독립운동가로 생각되는 인물이 주변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출판자본의 형성과 고전소설의 쇠락으로 인해 새로운 문학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대중의 취향에 맞춘 사랑, 돈, 성공담 등을 소재로 쓰기도 하였다.

서적 마케팅

소비재의 가치를 지니게 된 책을 발간 및 판매하는 서점들은 여러 방식의 홍보를 통해 독자를 확보하려 하였다. 서적 자체에 싣는 권말 광고, 자체발행하는 교양잡지, 판매도서목록 송부 서비스,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단기간 할인(북데이, 특매,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단체매), 판촉, 입간판 등의 홍보용 전시물, 그리고 신문 광고를 통해 서적을 홍보하였다. 다만 고가의 신문 광고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출판사의 사정상 차츰 신문 광고 활용률은 하락하였다.

대표적 출판사들

회동서관, 동양서관, 신구서림, 광학서포, 중앙서림, 박문서관, 영창서관 등 대체로 대한제국 말에 창설되어 도서 판매를 겸하며 고대소설이나 중국고전을 출판하였다.

  • 회동서관: 1950년대 중반까지 운영, 이광수의 『무정』과 『단종애사』,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 2백여 종이 넘는 책을 출판.
  • 박문서관: 1907년 설립 후 1956년까지 운영. 초반에는 주로 계몽적 교과서류 중심이었으나 1939년 1월부터 동서고금의 양질의 작품을 저렴히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박문문고를 발행해 대중의 지식욕, 독서욕에 부응. 『삼국사기』, 『고려사 절요』, 손진태 편 『구전민요』, 고정옥 편 『조선민요집』, 김억 편 『소월시초』, 이태준의 『자찬』과 『태준단편선』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양서 다수.
  • 한성도서: 최남선의 『백두산 참관기』, 이광수의 『혁명가의 아내』, 심훈의 『상록수』, 이기영의 『고향』,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이 국내 문예작품을 전문적으로 출판. 한국근현대출판사상 최초의 문학전집 『조선문학전집』 10권, 『현대 장편소설전집』 10권을 출판했다. 장편 문학전집 등 호화본이나 단행본 위주.
  • 세창서관: 고전소설『배비장전』, 『사씨남정기』, 척독류, 유행창가집『모던서울창가집』 등 주로 딱지본을 출판 및 판매.
  • 영창서관: 일제 초 설립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 운영. 신서, 구서, 중국서, 교과서, 칠서, 『소학』 등 여러 서적을 갖추었고 1920년대까지는 당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신구소설류와 창가서 등을 출판했으나 1930년대에는 신문예물, 당시 최고 인기작가였던 이광수 작품을 독점출판하거나 김동인, 윤백남 등 저명 작가의 작품으로 『조선작가명작전집』을 기획, 총서로 발간하였는데 이 역시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일제 말 박문서관과 이문당과 함께 대표적인 출판사의 반열에 오름. 해방 이후에는 전대 서적을 재간.
  • 영창서적: 초기 세창서적으로 딱지본에 주력하다가 이후 영창서적으로 개편해 딱지본의 연장선상에서 춘향전, 운영전 등 고전류와 대중적이고 값싼 조선 작품 공급.

참고문헌

"[세창서관 터]",(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종수, 「일제 강점기 경성의 출판문화 동향과 문학서적의 근대적 위상」, 『서울학연구』(35),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9, 247~272쪽.

마이클 김, 「일제시대 출판계의 변화와 성장」, 『한국사 시민강좌』제37집, 일조각, 2005, 191~204쪽.

박몽구, 「일제 강점기 한민족 출판 연구」, 『한국출판학연구』제36권 제2호(통권 제59호), 한국출판학회, 2010, 89~124쪽.

방효순, 「근대 출판사의 서적 판매를 위한 광고 전략에 대한 고찰」, 『출판잡지연구』21권 1호, 출판문화학회, 2013, 111~136쪽.

유석환, 「딱지본 재독」, 『근대서지』(18), 근대서지학회, 2018, 531~543쪽.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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