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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23일 (토) 23: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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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속에 묘사된 경성


장소와 지역을 중심으로


경성팀: PHS21KHU, SYJ21KHU, KM21KHU



연구 목적


1920~1930년대 한국 문학에서 드러난 경성

경성시가도 광화문로 1927.jpg

경성시가도 광화문로(1927)


본 연구는 한국의 1920~1930년대 소설에서 재현된 경성을 기반으로 하여 텍스트에 드러난 장소의 상징성, 더 나아가 작가들과의 관계성을 탐구한다. 1920~1930년대 한국 지식인 소설 텍스트에서의 경성은 『광분(염상섭)』에서 그러했듯, 일제에 의해 장소 정체성을 잃은 장소상실의 공간으로, 제국 일본이 경성에 오려 붙인 근대적 이미지들 뒤에 가려진 식민지 자본주의의 균열과 모순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묘사된다.[1] 그러나 1920~1930년대 식민지 경성은 상실된 장소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다수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공간을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나누었을 때, 그 시선에서 소외되었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Literatrue KHU는 그 역사를 장소에 관한 탐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Literature KHU에서 다룬 소설들에 나오는 장소에서는 다양한 위치를 가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수집한 논문에서는 작가 중심적인 시선으로 작가와 장소·인물의 관계성을 다루었지만, 장소에 관한 사실적 설명을 통하여 식민지 경성에서의 실제 사람들의 삶을 탐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장소와 관련된 지식인들을 조사했을 때, (일제 지식인이지만) 조선에 우호적이었던 당대 비평가 야나기 무네요시를 발견한 것처럼 일본 지식인층에서도 조선 경성에 대한 시선이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Literature KHU는 1920~1930년대 문학에서 드러난 경성을 실제로 존재했던 장소와 작가 간 관계성으로 나누어 연구하고자 한다. 후속 연구를 통하여 문학에서 드러난 경성을 지도로 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대 경성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관계성, 그리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당대의 현실적인 삶을 기술하여 그동안 소외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할 예정이다.

연구 대상


소설

제목 작가
천변풍경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날개 이상
순경이 있는 풍경 나카지마 아쓰시
광인 노천명
그림자 이태준
기생 산월이 이태준
낙조 박태원
도시와 유령 이효석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복덕방 이태준
삼대 염상섭
상자 안회남
시골쥐 서울구경 방정환
악마 박태원
인간문제 강경애
장마 이태준
장마든지 닷샛날 염상섭
점경 이태준
집 이야기 이태준
천변풍경 박태원
청춘무성 이태준
태평천하 채만식
해방전후 이태준
행복에의 흰손들 이태준
애욕 박태원
조선과 그 예술 야나기 무네요시
時々刻々 타나카 히데미쓰

장소

장소명
경성역(京城驛)
광교(광통교廣通橋)
광화문
남대문
남대문역
창경궁(창경원)
화신상회
종묘
남묘
종로
조선은행
우미관
관철동 33번지
미쓰꼬시 백화점
경성운동장
청량리역
명월관
황금정
백합원
조선극장
단성사
열빈루
서대문형무소
파고다공원_탑골공원
경성제국대학
태평통 고물상
영추문
효자동
남산
돈화문
조선중앙일보
총독부
대한문
조선신궁
한양공원
탑동공원
석파정
창의문
보성고보
한청빌딩
안국동 네거리
남대문 정거장
쓰기다니 양품점
히라다
희락관
일한서방
멕시코
바긴네코
본정통_충무로
진고개
가네보_종방서비스스테이션
명치제과
남대문통
장곡천정
조선호텔
조선일보
명치좌
파고다공원_탑골공원
치요다_그릴
베이비 골프장
기념비각
한강
한강철교
광희문
창덕궁
탑골공원
문화주택단지
경성지방법원
영등포
구 미국 영사관

연구 방법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천변풍경(박태원)』, 『날개(이상)』등을 중심으로 텍스트에 재현된 경성의 장소를 수집하고, 역사 아카이빙 사이트·온라인 백과사전·기사·논문 등을 통하여 장소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였다. 장소 사진과 장소에 관한 사실적 설명의 경우, 역사 아카이빙 사이트 및 온라인 백과 사전·기사 등을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소설 텍스트에 나타난 장소와 작가의 관계성, 그리고 1920~1930년대 경성의 장소가 갖는 상징적 의미에 관해서는 논문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어 자료는 Literature의 KM21KHU가 번역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데이터 분석의 경우, 1) 경성의 장소를 카테고리화하여 소설 구절과 함께 지도에 마킹하는 방법 2) 경성의 지역을 중심으로 소설을 지정하여 주인공의 경로를 마킹하는 방법으로 구분하여 연구했다. 1)의 경우, 장소의 특성을 교통과 문화·예술·유흥, 자연·공원·유적으로 구분하였다. 2)의 경우, 이태준의 소설 「기생산월이」와 안회남의 소설 「상자」를 중심으로 장소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던 충무로와 종로를 중심으로 경로를 정리했다.

온톨로지 설계



클래스(Class)

Person 인물

Work 작품

Place 장소

Location 지역

Adress 주소

Press 신문

Magazine 잡지

Publisher 출판사

관계(Relation)

writes 집필하다 (Person→work)

appears 나오다 (Place→Work)

isLocatedIn 에_위치하다 (Place→Adress)

isEditionOf 의_간행본이다 (Work→Publisher, Work→Press, Work→Magazine)

isPartOf 의_부분이다 (Adresss→Lcation, Lcation→Location)

연구 데이터


【데이터 시트 페이지로 이동】


노드 데이터(총 141건)

  • Person 11건
  • Location 72건
  • Book 14건
  • Work 29건
  • Press 4건
  • Magazine 11건
  • Publisher 2건


링크 데이터(총 253건)

  • writes 27건
  • isPartOf 48건
  • isLocatedIn 65건
  • appears 86건
  • isEditionOf 29건



데이터 분석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장소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일상적 풍경)

경성의 교통지


Quote-left.png

광교(廣橋)·북광통교(北廣通橋)·대광통교(大廣通橋)·광통교(廣通橋)·대광교(大通橋)라고 불리던 광교는 본래는 흙과 나무로 만들었던 것인데, 홍수로 인한 유실이 심해지자 대종 때 정릉의 식물을 이용하여 돌로 다시 만들었다 한다.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으로 본래 정동에 있다. 정릉을 지금의 정릉으로 이전할 때 식물들이 남았는데, 광교는 이 식물들을 사용하였다. 특히 남북 양측의 석벽을 이룬 12개의 신장석(腎臟石)의 문양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많다고 한다. 광통교라는 이름은 청계천에 놓여 있는 다리 가운데 가장 폭이 넓었고 사람이 많이 다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광통방(廣通坊)'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어느 것이 먼지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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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채호석, <1934년 경성, 행복찾기-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


경성의 문화·예술·유흥지

경성의 자연·공원·유적지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지역

(충무로와 종로를 중심으로)

경성그래프.png

총 76개의 장소에 대한 지역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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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나룻말이 올앗다. 불이낫든것이다. 바로그집에서 바로그방에서 산월이의압머리나 지질줄알든[알콜]등잔은 산월이의 멧가지안남은 방세간을태우고 두달치나 세도못낸 남의집방까지 홈싹태운후에 대문간과 행랑을 태우고 다시 안채로 올마붓다가 소방대뿜뿌질에꺼지고말은것이다. 산월이는 눈압히 캄캄하엿다. 그는 전신주를끄러안고 생각하여보앗다. 아모리 생각하여도 [알콜]등잔에 불을대린 생각은나도 끈생각은나지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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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태준, 『기생 산월이』


지도를 불러오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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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해여. 용서하시오. 당신의 소중한 비녀와 가락지, 꼭 일주일 이내에 찾아다 놓으리다. 남편의 이 같은 행동 과히 실망하지 마시고 부디 현명하게 처리해 주시오.' [...] 만약에 할머님이나 어머님이 아시는 날이면 정말 큰 일이다. 집안이 발끈 뒤집히고 사방으로 사람들이 나를 찾아다니게 되지나 않을까, 불유쾌한 생각만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다가 골목으로 들어서서 한 으슥한 곳을 만났을 때 선뜻 비녀, 가락지를 내어 보려다가 그렇게 하는 거것이 두 번이나 내가 잘못을 범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만두고 그대로 어느 전당포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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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회남, 『상자』


지도를 불러오는 중...

연구 결과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장소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일상적 풍경)

경성그래프.png

연구 대상에 포함된 작품들을 분석한 결과, 문학작품에서 드러난 경성의 장소들은 종로구 32개, 중구 31개, 용산구 2개, 송파구 2개, 서대문구 2개, 동대문구 1개, 동작구 1개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던도시라고 불렸던 경성의 중심가, 본정을 중심으로 일제 지식인들이 활동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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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역은 1922년 경성부의 인구 증가로 경성의 관문이 될 중앙역을 만들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일제에 의해 계획되었다. 본래 남대문정거장역이었던 것을 일본의 건축가 쓰가모토 야스시(塚本靖)가 설계를 맡아 신축하면서 '경성역(京城驛)'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으며, 정식으로 개통식을 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일어·영어·러시아어의 세 가지 언어로 적힌 정거장 간판까지 달고 문을 연 경성역은 그 건물의 웅장한 규모와 독특한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을 자랑하는 1920년대 경성의 새로운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식민화된 조선의 수도 경성의 장소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했다. 사실 동양의 근대화는 애초부터 서구의 문물을 들이고 그들의 생활양식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이국적인 양풍의 건물이나 양장을 입은 남녀의 모습이 도시의 일상에 포착되는 것을 그 자체로 문제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식민지 국가였던 조선의 근대화가 제국 일본의 필요에 의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경성역은 군사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용산역과 함께 일제에 의해 조선 및 대륙 침략 발판 마련의 일환으로 건설된 것으로, 일제는 노량진과 용산에서 끊겼던 경인선과 경부선을 도심까지 끌어들이면서 인천과 부산의 두 항구도시를 서울과 긴밀하게 연결하였다. (중략) 결국 경성역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서구적 양식은, 조선의 입장에서 본다면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장소 고유 속성과 조선의 전통 미학을 무시하고 제국이 고안한 이미지를 덧바른 '무장소(placelessness)'의 표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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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승미, 「식민지 경성, 그 상실된 장소의 소설적 재현-염상성의 『광분』을 중심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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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 도로의 아스팔트를 경계로 해서 서울이라는 도시 중심부의 화려함과 그로부터 나온 모든 오물이 흘러나가는 보이지 않는 물길이 갈리고 있는 것처럼, 구보가 살았던 당시 청계천·청계천변은 여러 측면에서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우선 청계천은 당시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경계였다. 청계천 남쪽의 남촌이 주로 일상(日商)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거리임에 비해, 청계천 북쪽의 북촌은 조선의 상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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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채호석, <1934년 경성, 행복찾기-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3]


본 기말 발표 시트에서 정리한 경성의 교통지는 3개, 경성의 문화, 예술 및 유흥지는 8개, 자연, 공원 및 유적지 또한 8개이다. 이렇듯 경성은 일제 지배 아래 강제적인 근대화가 진행된 불행한 도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떤 지역보다 서구적인 근대화가 빠르게 일어나며 화려한 도시의 모습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었다. 대부분 소설에 나오는 일상의 모습 또한 지식인의 멜랑콜리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지만 경성의 본정을 중심으로 하여 유흥지나 상점가를 방문하는 등 일반적인 소시민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1920~1940년대 문학을 참고하여 경성의 장소 곳곳에서 어떠한 일상적인 모습들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즉, 거시적인 역사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실제 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 작품 속 드러난 경성의 지역

(충무로와 종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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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서울은 극단적으로 분단된 도시였다. 서울의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거주지역에서, 상권에서, 그리고 도시개발면에서 서로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 분단된 양측의 중심에는 각각 종로와 본정이 있었다. [...] 이제 종로는 온 세상 물화가 모여들고, 성중의 선남선녀가 모여드는 번화한 거리에서 빈곤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빈곤한 상가로 전락했다. 본정(충무로)이 부유한 일본인의 상징이라면 종로는 빈곤한 조선인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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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우용, <종로와 본정-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4]



소설 「기생산월이」의 작가 이태준은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반발심을 드러내기보다는 그 시대 내에서 보여지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모습들을 잘 나타냈다. 「기생산월이」에서는 기생으로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산월이'의 시점을 통해 당시 종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생들은 남자를 찾기위해 종로를 떠돌며 호객행위를 했고, 그런 기생들의 호객행위가 일상이 되어버린 조금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한 인물의 하루로 그려내고 있었다. 좁은 방에 세를 들어 살아가며 그 돈을 갚기 위해 남자를 찾으러 다녔던 종로는 위 논문에서 나와있듯 빈곤한 조선인의 상징이었다.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장소들을 조사하고 그 장소가 포함된 지역을 조사하며,'산월이'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은 종로가 조선인들에게 어떤 장소였는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소설 「상자」의 작가 안회남은 그 시대의 현실적인 삶을 그려내며 거기에 따르는 의식과 역사적 현실을 잘 나타내는 작가로서 유명하다. 소설「상자」에서도 가난한 부부의 현실적인 신혼생활을 주인공의 '나'의 시점으로 서술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거나 실직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아내의 보석까지 전당포에 팔아버린 주인공 '나'가 충무로에서 사치를 부리는 모습은 그 공간의 의미를 명확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위 논문에 따르면 충무로(본정)은 부유한 일본인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적인 공간 속에서 주인공이 경험했던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와 상점들, 거기에서 팔리는 사치를 위한 물품들은 그 거리가 경성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문학 작품 속 드러난 일본 작가의 시선

야나기 무네요시 - 조선과 그 예술[1923년 출판]



야나기 무나요시.jpg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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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用)ある朝鮮人はつぎのようなありのままな質問を吾々に与えた。「日本は吾々のために教育を与えるのか、日本のために吾々を教育するのか、何(いず)れなのか」と。如何なる日本人も前者であると言い切るものはないであろう。実際その教育は彼らの衷心の要求や歴史的思想やを重んじて行う教育ではない。むしろかかることを否定し歴史を教えず、外国語を避け、主として日本語を以て、日本の道徳、また彼らには今まで無関係であった日本の恩恵を中枢として、彼らの思想の方向をさ更(か)え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全然新たな教育の方針に対して彼らが親しみ難い情を抱くのも自然な事実であろう。彼らには略奪者と見えた者を、最も尊敬せよと言われるのである。彼らにはこれが解し難い奇異な矛盾に充ちた声に響くにちがいない。

[인용]어떤 조선인은 다음과 같이 그대로의 질문을 우리에게 주었다. “일본은 우리에 위해서 교육을 주는지,일본에 위해서 우리를 교육하는지,어느쪽인가.” 어떠한 일본인도 전자라고 단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실제로 그 교육은 그들의 충심의 욕구와 역사적인 사상을 존중하여 하는 교육이 아니다.오히려 부정하고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외국어를 피해,주로 일본어나 일본의 도덕,또한 조선인들이 무관심이었던 일본의 은혜를 중추로 하여 조선인들의 사상의 반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완전히 다른 새로운 교육의 방침에 대해 조선인들이 친숙해지기 어려운 감정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사실일 것이다.조선인들에게는 약탈자로 보인 일본을 가장 존경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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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柳宗悦『朝鮮とその芸術』所収 朝鮮人を想う Kindle版 位置No.298>


나카지마 아쓰시-순경이 있는 풍경



나카지마 아츠시.jpg


순경이 있는 풍경은 나카지마 아쓰시가 쇼와4년6월에 "교우회 잡지"으로 발표한 것이다.그 때는 나카지마 아쓰시는 20살이고,대학에 입학하기 1년 전이었다.이 작품은 나카지마 아쓰시가 죽은 후 "李陵"를 포함해서 출판할 수 없었던 작품집 중에 포함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하지만 이 작품은 나카지마 아쓰시가 조선을 무대로 설정한 흔하지 않은 작품의 하나이고,조선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이라고 한다.

타나카 히데미쓰-『時々刻々』(시시각각) [1973출판]



타나카 히데미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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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中英光は、1940年1月、中国戦地から帰還してからも家族がいる朝鮮の京城にすぐには戻らず、戦争従軍での報償の次元で、東京の本社で1年ほど勤めた後、再び朝鮮の京城での勤務を命じられ朝鮮に渡ってきた。この2回目の朝鮮滞在期をいわゆる朝鮮滞在後期と言われている。 英光にとってこの朝鮮滞在後期とは、中国戦地での戦争体験と共に、戦後、「自己否定と自己弁解」をはかるほど、痛ましい体験として刻まれている。それは、「オリムポスの果実」の池谷賞受賞により日本文壇から作家․田中英光として認められ、本格的に文壇活動が始まった時期と重なっているが、太平洋戦争に伴う日帝の植民政策の強化のため、国策協力なしでは文筆活動ができなかった時期なのである。こういうわけで、新進作家․田中英光としては、いやおうなく国策協力の道を選ぶしかなく、それと共に国策に合わせて作品も書き残した。その結果物が、「鮮童三題」と「海州港にて」、「雲白く草青し」と「碧空見えぬ」などであり、戦後の「酔いどれ船」である。本稿ではこのような朝鮮滞在後期の作品を通して、どんなふうに日本帝国主義政策に協力ぶりをみせているか、を追及してみた。
번역)타나카 히데미쓰는 1940년1월,중국전쟁터에서 귀환한 후에도 가족이 있는 조선의 경성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전쟁 종군 보상 차원에서 도쿄 본사에서 1년 정도 근무한 뒤 다시 조선 경성에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고 조선으로 건너왔다.이 두 번째 조선체재기를 이른바 조선체재 후기로 알려져 있다. 영광에게 조선체재 후기는 중국 전쟁 체험과 함께 전후 자기부정과 자기변명을 할 정도로 뼈아픈 체험으로 새겨져 있다.이는 '오림포스의 과실'인 이케타니상 수상으로 일본 문단으로부터 작가 다나카 히데미쓰로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이 시작된 시기와 겹치지만, 태평양전쟁에 따른 일제의 식민정책 강화로 국책협력 없이는 문필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기이다.그런 까닭에 신진 작가 다나카 히데미쓰로서는 어쩔 수 없이 국책 협력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와 함께 국책에 맞춰 작품도 써서 남겼다.그 결과물이 '선동삼제'와 '해주항에서', '운백초청사'와 '벽공이 보이지 않는다' 등이었고, 전후의 '취기선'이었다.본 논문은 이 같은 조선 체류 후기 작품을 통해 어떤 식으로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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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田中英光の朝鮮係小考察- 朝鮮在後期が背景になった作品を中心に-


연구 후기



PHS21KHU 🤔



SYJ21KHU 😊 건강상의 문제도 있어 힘들었지만, 같은 조원 분들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데이터 발표 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토의를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데이터를 표현해야 더욱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을지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팀플의 시너지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다만, 1학기 동안 다른 수업과 함께 하기엔 정말 품이 많이 들어가는 연구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팀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료를 많이 찾으신 것인지...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팀원 분 중 일본인 학생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었던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국가, 혹은 국가와 집단의 싸움에서 개인은 그 위치가 명백한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그 시대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의 편에 서서 죄 없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편에 섰던 일본인을 발굴해야 될 때가 아닐까요? 증오는 해답이 될 수 없고, 우리는 결국 공존해야 된다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예수처럼 살 수는 없으니...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경성을 연구하는 일은 정말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KM21KHU 🤟🏻 1학기 동안 계속 만들어 왔지만 어려웠던 것이 많았습니다.하지만 같은 팀의 학우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연구결과를 남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그리고 한국문학만 아니라 일제시대 때 일본 작품도 소개할 수 있었으며 한일 간에 경성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웠고 시간이 있으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일본인이라고 해도 경성을 사랑했던 사람들도 많고 일본이 아니라 경성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작품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어서 신기했습니다.외국인이 한 명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신경 써주셨던 교수님과 같은 팀원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코멘트


신여성팀

MHS21KHU 👍🏻 자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작품 속에 등장했던 장소들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익숙한 장소들에 대해 무감하게 느끼고는 하는데, 문학작품 속에 등장했던 경성의 장소라는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같은 서울임에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고 그 장소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통해 주변의 장소들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자료임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AHJ21KHU 😊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청계천, 광화문, 남대문 등..!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그 장소들에 역사가, 소설이 묻어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낯설고도 묘한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조상들의 시간과 연결되어있다는, 그들이 살았던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현재만이 아닌 과거를 살고있다고도 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우리 학교를 보면서도 저 시절 사람들도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사랑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쑥스러워서 과장을 보탠다고 말하겠습니다) 왠지 모를 벅참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요, 익숙하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수많은 장소들을 보면서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를, 역사를 지키고 보존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히 누군가가 따라할 수도, 쉽게 복원할 수도 없는 얼룩덜룩한 손때들, 발자국과 발자국이 만나 더 깊은 발자국이 되어 바닥이 파인 길들.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 사람들의 흔적이니까요. 그것을 통해 우리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숭례문이 불탔을 때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도 이와 통할 것입니다. 정리해주신 자료를 보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장소들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LHY21KHU 🙏🏻 외국 팀원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던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문학은 한자 한글 혼용으로도 많이 쓰여졌지만 일본어로 쓰인 것들도 많아서 일본 유학생 분의 존재가 더욱 더 드러나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너무 재밌는 결과를 보여주셔서 흥미로웠습니다. 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나 또 다른 연구들이 생긴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조선극장팀

CWS21KHU 😊 어쩌면 제일 국문과스러운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조의 진행상황을 보면서 실제 장소와 관념 속의 장소를 구분하는 것이 꼭 이런 연구에만 의미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문학 속의 당시 서울을 보는 한편 지금 제 머릿속의 서울과 실제 서울도 구분해 보게 되는 주제였습니다.



LHR21KHU 😊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경성의 거리를 VFX를 통해 그래픽으로 복원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연구하실 때 참고하신 소설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인간은 때론 지나 오지 않은 과거의 순간에 노스텔지어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다시 들게 한 연구였습니다. 디지털인문학과 소설문학이 만났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나올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무료하고 공허할 때, 다시 한 번 찾을 거 같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시대의 도시였음에도, 알 수 없는 노스텔지어를 느꼈던 거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KJG21KHU 🙏🏻 사실 발표를 들으면서 댈러웨이나 에딘버러같은 해외사례 생각이 많이 났는데 그러한 연구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유심히 보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로나 원문 제시로 끝나지 않고, 작품의 내용과 담긴 시대상을 통해 당대 사람들에게 장소가 갖는 의미를 이끌어내는 점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일본 작가들의 시선을 다루면서 연구의 확장가능지점까지 엿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한 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독립팀

LSH21KHU 👍🏻 디지털 인문학의 이해를 수강하는 우리 5팀 모두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의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경성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저희 조는 독립운동에 관련된 연구인 탓에 조금 비장한 분위기가 없지않아 있었는데 경성팀은 같은 시기의 좀 더 밝은 모습을 조명한 것이 좋았어요. 지식인과 문학인들이 담배를 피며 커피를 마시던 카페가 생각나는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KYW21KHU 😊 우선 일본 작가의 시선도 볼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문학 속 경성에 대한 묘사를 찾기가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경성에 대한 표현들을 찾아서 놀라웠던 것 같아요.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일제강점기 경성이 어두운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 경성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몇몇 읽어본 작품들도 있었는데 경성이라는 공간에 대해 별생각 없이 읽어서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다시 읽어볼 땐 경성에 대한 묘사들에 좀 더 집중해서 그 당시 경성 분위기를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 재미있게 잘 봤어요:) !!



LZH21KHU 🙏🏻 경성 팀은 소설에서 재현된 경성을 기반으로 소설 텍스트에 드러난 장소과 작가의 관계 등 내용에 대해 연구했는데 작품 속의 그 시대에 대한 작가마다 다양한 표현 내용도 같이 조사했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어요!


모던팀

CSH21KHU 👍🏻 발표를 보면서 작품 속에 등장했던 많은 장소를 알게 되어서 재밌었습니다. 익숙한 작품과 익숙한 장소가 만나 오히려 낯설고 재밌는 내용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타임맵퍼를 통해서 작품에 나온 장소들을 살펴본 것들 또한 매우 재밌었습니다.



KGR21KHU 😊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저희 학과의 관심분야 중에서도 디지털인문학의 도구인 지도나 네트워크 그래프, 타임맵퍼와 제일 잘 어울리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소라는 여러 거점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혹은 어떤 맥락에서 인식되었는지를 잘 다뤄주셔서 해당 문학작품들을 읽을 때 이러한 작업을 참고한다면 보다 해당 시대적 맥락에 대한 넓은 이해를 가지고 보다 체감하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KSH21KHU 🙏🏻 제가 자주 가는 장소들을 100년 전 작가들도 방문하였다는 것이 왜인지 신기하네요. 익숙한 장소들, 그리고 중고등학교때 읽었던(사실 '읽어야만 했던'..) 익숙한 작품들이 많아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timemapper 정리가 너무 잘되어있어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우리 학과의 취향을 저격한 연구 아니었을까요..수고많으셨습니다!




참고 자료


논문

논문
유승미, 「식민지 경성, 그 상실된 장소의 소설적 재현-염상성의 『광분』을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41권0호,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3, 67-93p
채호석, 「1934년 경성, 행복찾기-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민족문학사연구 6권0호,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1994, 187-210p
김종건, 「이상소설의 배경연구 -[날개]를 중심으로 - 」,대구어문논총 통권 7호, 우리말글학회, 우리말글, 1989, 55-74p
김종회, 「월북 후 박태원 역사소설의 시대적 성격 고찰」, 비평문학 제34호, 한국비평문학회, 비평문학, 2009, 93-109p

기사

사이트



주석


  1. 민족문학사연구 6권0호,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1994, 187-210p
  2. 한국문예비평연구 41권0호,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3, 67-93p
  3. 민족문학사연구 6권0호,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1994, 187-210p
  4. 역사와 현실40, 한국사역사연구회, 2001, 163-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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