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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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G22KU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26일 (일) 18:16 판 (이시영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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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애

시인 이력

남성으로, 1949년 출생으로 시가 아니라 시조로 등단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중앙대학교에 인수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

시인의 특징


시인의 키워드


키워드 논문
'정서와 시대정신으 만남을 치열하게 추구'
'당대의 양심의 소리'
'소외된 자들을 위한 민주적 평등'
'독재와 자본에 대항하는 정치성과 서정적 미학 간의 긴장관계'
'역사 현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객관적 정보의 사실적 전달'
'사랑과 생명의 본질 회복이라는 의지'
이시영 시 연구.pdf
'단형시'
'현실과 역사를 관통하는 어떤 깨달음'
'민중 시인이면서도 따뜻한 정감'
'자아 분열과 대립의 극복, 세계와의 조화 지향'
000000176893 20220626015852.pdf
'역사의식과 서정시를 하나로 융합'
'현실과 내면의 격투를 분석, 성찰, 융합하는 인간의 실존 자체의 과정의 문학적 자세'
이시영 시 연구 -잃어버린 시간의 문학적 복원.pdf

창작한 시집의 경향

나비가 돌아왔다, 2021년 10월

이시영, 문지, 나비가 돌아왔다.jpg

하동, 2017년 9월

이시영, 창비, 하동.jpg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2007년 6월

이시영, 창비,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jpg

이시영의 '서울'

[2]


지도를 불러오는 중...
  1. 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New.laf?authorid=1000256401 교보문고
  2. 이시영. 나비가 돌아왔다. 문학과지성사

나의 서울

떨어뜨린 동전들이 굴러가 사라지는 장면은
어째서 기억이 잘 날까
길바닥, 하수구, 수풀, 마르지 않은 도로, 한강대교 북단, 평일에도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 삼각지, 의족과 가발을 파는 가게, 밥과 찬을 가져와 나누어 먹는 교회

목월선생

성심여고 후문에서 산천동 깔그막 용산성당 올라가는 길, 누가 뒤에서 “이 군!” 하고 불렀다. 돌아보니 키 큰 목월 선생이 거기 서 계셨다.“이 군, 시는 그렇게 쓰면 안 된데이.”반가움에 왈칵 달려갔더니 선생은 안 계시고 웬 낯선 청노루힐빌라.

소주반병

고 임영조 시인이 내게 말하기를, 김종삼 시인은 소주 반병 값이 떨어지면 늘 용산에 있는 태평양화학 사보 『향장』 편집실로 찾아와 그와 오규원 시인에게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땅팔자

그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태원은 지금의 이태원이 아니라 ‘이타인’ 혹은 ‘이태원’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거기 있던 운종사라는 비구니 절을 약탈하여 생긴 이름이고,

계성유치원

9시 15분 정각 오늘도 어김없이 계성유치원 버스가 9동 앞에 멈추었다
엄마들 손에 이끌려 나온 솜털 같은 아이들이 버스에 오른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꼭 계성유치원생이 되고 싶다
계성유치원은 용산성당 아래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