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전문절도

DH Edu
CSH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4일 (목) 23:29 판 (서적전문절도 사례)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일제시대에는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절도하는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이렇게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절도하는 일이 드물지만, 당시에는 꽤 많은 수의 서적 전문 절도범들이 존재했고, 이로 인한 피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32년부터 1940년까지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서 서적전문절도의 몇몇 케이스와 당시 책과 소득을 합쳐 왜 이들이 책이라는 상품을 전문적으로 훔쳤고,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일제시대 당시 서적의 평균가격과 조선인의 소득

주제별 서적가의 평균 비교[1]
출판사(세로)/주제(가로) 구소설 신소설 신문예 농학서 척독서 의학서 창가서 경서류
박문서관 30.1 34.6 120.3 70.0 77.0 82 51.2 138.4
회동서관 31.7 38.4 101.4 38.6 60.6 87.5 48.8 116
영창서관 31.0 47.5 146.4 60.0 79.6 92.0 49.4 262.5
덕흥서림 29.0 35.0 182.5 60.0 76.9 80.0 44.6 137.5


출판사들은 대중의 수요가 많았던 신구소설류, 창가서 등에 대해선 비교적 낮은 가격을, 지식층이 즐겨보던 신문에서, 경서류 같은 경우에는 높은 가격을 매겼으며, 실용서 또는 교양서에는 평균적인 가격을 매겼음을 알 수 있다.[2]

그리고 시대별 평균가격의 경우 1913년, 1925년, 1930년의 가격변화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위의 표는 1932년에서 1940년대의 대략적인 평균가격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박문서관에서 출판된 금국화의 경우 가격의 변화가 50전, 45전, 45전이었으며, 영창서관에서 출판된 강상루의 경우에도 50전, 50전, 50전으로 가격의 큰 변화가 없었기에, 위의 표는 1932년에서 1940년대까지의 책의 가격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3]

1932~1940년대 당시 조선의 1인당 월평균 소득은 61원이었다.[4]

조선인의 평균소득에 비해 책의 가격은 상당한 고가였으며, 이는 다양한 이유로 돈이 필요하던 사람들에게 좋은 절도품목이 되었다.

서적전문절도 사례

Quote-left.png 그는 서적을전문으로 본정통 각 서점을 도라다니면서 갑빗싸고 전당잘잡는 법률서적만 절취하여황금정모 전당포에 입질하야 유흥에 소비 하였다는데 Quote-right.png
출처: 「書籍專門窃盜(서적전문절도)」, 『조선일보』, 1936년.4월.5일. (2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Quote-left.png 書籍專門窃盜(서적전문절도) 二日間三百卷(이일간삼백권) 흠친책을그집에되팔어 本町署(본정서)에서取調中(취조중) 이틀동안에 서적상백여권을 훔치어 절도죄스피—드업의 신기록을지은자가 잡히엇다 Quote-right.png
출처: 「書籍專門窃盜(서적전문절도) 二日間三百卷(이일간삼백권)」, 『조선일보』, 1934년.12월.2일. (2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Quote-left.png 奇特(기특)한讀書狂(독서광) 書籍專門窃盜(서적전문절도) 평양경찰에발견체포 取調警官(취조경관)도同情(동정) 【平壤(평양)】책을 읽고십흐나 수중에돈은업고 생각한나머지 자긔의 필요한서적을 서점에가 책을 절취하다가 발각되어 평양서에 체포 되엇는데... Quote-right.png
출처: 「奇特(기특)한讀書狂(독서광) 書籍專門窃盜(서적전문절도)」, 『조선일보』, 1931년.08월.25일. (2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이들이 돈을 주로 사용한 곳

참고문헌

방효순, 「일제시대 민간 서적발행활동의 구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김계연,「1930년대 경성도 전세난에 월급 23% 주거비로」, 『연합뉴스』, 2016년.6월.7일, 『연합뉴스』online, 연합뉴스.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주석

  1. 방효순, 「일제시대 민간 서적발행활동의 구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104p.
  2. 방효순, 위의 논문 104p
  3. 방효순, 위의 논문 107p
  4. 김계연,「1930년대 경성도 전세난에 월급 23% 주거비로」, 『연합뉴스』, 2016년.6월.7일, 『연합뉴스』online, 연합뉴스.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