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개요
일제강점기 출판경향, 당시 유통되었던 서적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출판사적 측면에서
한일합병을 전후해 일본자본이 조선 인쇄업계에 침투했다. 1900년대 경성에는 모모야마 인쇄소, 에가와 활판소, 야마도 인쇄소 등이 진출했고 1907년에는 10여 곳이 영업하고 있었다. 1917년에는 전국 70개소 중 조선인이 경영하는 곳은 11곳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규모도 전체의 14%에 그쳤다. 1938년에는 조선인 업체가 51.2%로 추산되나 자본금 규모는 31% 정도였으며 해방 후 정부 수립 전까지 적산귀속업체로 남아 있던 인쇄소가 84개에 이르렀다. 1907년 신문지법으로 인가제를 허가제로 변경하고, 모든 조선인의 잡지와 서적 출판의 사전 검열을 강제하는 출판법을 1909년 2월 23일 제정 및 실시하였으며, 같은 해 5,767권을 압수했을 정도였다. 식민지 통치를 위한 자료 축적을 위해서 1908년 조선연구회와 조선고서간행회라는 출판사가 조직되어 한국연구도서와 고전을 간행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최남선은 조선광문회를 발족하여 국학 관계 도서를 간행했다. 그렇지만 조선인 자본 출판사는 기술 부족과 영세 자본으로 명맥만 잇고 대체로 서점 경영 겸해 영세 출판을 하는 정도였다. 회동서관, 동양서관, 신구서림, 광학서포, 중앙서림, 박문서관, 영창서관 등이 있었는데 거의 한말에 창설되어 도서 판매를 겸하며 고대소설이나 중국고전을 출판하였다. 이중 회동서관은 이광수의 무정, 단종애사,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 2백여 종이 넘는 책을 출판하면서 1950년대 중반까지 활발히 출판문화를 선도했다. 박문서관도 1907년 설립 후 56년까지 활동을 지속하였는데 초반에는 주로 계몽적 교과서류를 중심으로 하다가 1939년 1월부터 동서고금의 양서를 저렴히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박문문고를 발행해 대중의 지식욕, 독서욕에 부응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 절요, 손진태 편 구전민요, 고정옥 편 조선민요집, 김억 편 소월시초(素月詩抄), 이태준 자찬(自撰) 태준단편선 등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양서와 저작들을 다루었다. 한성도서는 조선인의 문예작품을 전문적으로 출판했는데 최남선의 백두산 참관기(白頭山參觀記), 이광수의 혁명가의 아내, 심훈의 상록수, 이기영의 고향,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등이 그 예이며 한국근현대출판에 있어 최초의 문학전집 조선문학전집 10권, 현대 장편소설전집(전 10권)을 출판했다. 1934년 확장하여 1936년까지 일반 단행본을 주로 출판하는데 장편 문학전집을 비롯한 호화본, 김팔봉의 김옥균 등을 출판했다. 세창서관에서는 고전소설, 척독류, 유행창가집 등을 출판 및 판매했다. 영창서관은 일제 초 설립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 출판했는데, 신서, 구서, 중국서, 교과서, 칠서, 소학, 기타 등의 서적을 완비했고 1920년대까지는 당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신구소설류와 창가서 등을 출판했으나 1930년대에는 신문예물, 당시 최고 인기작가였던 이광수 작품을 독점출판하거나 김동인, 윤백남 등 저명 작가의 작품으로 조선작가명작전집을 기획, 총서로 발간하였는데 이 역시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일제 말 대표적인 출판사 중 하나가 되었다.(박문서관, 이문당 등) 해방 이후에는 전대 서적을 재간하며 6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다 사라졌다. 영창서적은 초기 세창서적으로 딱지본에 주력하다가 이후 영창서적으로 개편해 딱지본의 연장선상에서 춘향전, 운영전 등 고전류와 대중적이고 값싼 조선 작품을 출판했다. 1930년대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체제로 전환되면서 일제는 더욱 엄격한 검열을 가하여 서적 출판 역시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