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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R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19일 (토) 20:53 판 (기사 선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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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선정 이유


토월회와 박승희는 한국 연극사에서 긍정보다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토월회는 동인제로 시작하여 전문 극단으로 발전하였고, 그 중심에는 박승희가 있었다. 물론 토월회와 박승희의 신극 운동이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고,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 또한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는 현대의 시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식민지 조선 당대에도 토월회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일본과 서구권의 전문 극단, 혹은 현대와 같은 운영을 당대 식민지 조선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엄격한 잣대로 말하자면, 한국의 현대 극단 또한 극단 운영 측면에서는 토월회에서 크게 나아갔다고 볼 수는 없다. 토월회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현대 한국 극단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세계와 불화하고 세계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시작된다. 식민지 상태에서 조선 예술인들은 자유롭게 세계와 불화하고 세계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연극 또한 영화처럼 자본의 예술이다. 식민지 국가에서 안정적인 자본으로 작품을 창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는 어쩌면 토월회와 박승희에 대한 변호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말하겠지만, 이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열악하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연극을 올리고자 투쟁했던 예술인들에 대한 변호이다. 결과론적인 측면만 보지 말고, 과정론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둠의 시대를 밝히고자 했던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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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승희
  2. 토월회 1923
  3. 토월회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