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열사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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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M22KU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26일 (일) 20:11 판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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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87년 1월 14일 오전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사망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에 의한 치사사건이라는 데서 사람들은 분노를 크게 일으켰다. 경찰은 초기 발표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얘기로 발뺌하며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들었고, 이것이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내용

발생 원인

전개

경찰은 초기 발표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 없는 얘기를 하며 발뺌을 하였으나 시체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간 출혈의 흔적과 사타구니, 폐 등이 엉망이 되어 있었으며 복부가 부풀어 있고 폐에서 수포음 등이 들렸다는 사실에 근거해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치안본부는 물고문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물고문 가담자는 2인에 불과하다고 축소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부영 전민련 상임의장이 영등포교도소에서 조한경과의 대화를 통해 고문진상의 축소조작을 밝혀냈다. 이후 천주교 정의평화구현 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3인의 추가 가담자를 발표하였다.

그런 와중에 치안본부는 1월16일 오전 8:00시경 가족의 허락도 없이 벽제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해 버림으로써 증거인멸을 도모했다. 나아가 87년 2월7일 박종철 열사 국민추도회를 원천봉쇄하고 강압과 왜곡을 반복했다. 결국 치안본부는 결국 치안본부는 고문진상 은폐, 조작을 인정했다. 하지만 은폐, 조작이 당사자들의 입맞춤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교소도 면회기록에서 치안본부 지휘라인의 은폐노력이 드러나고, 조한경 강진규를 횡하려던 2억원 입금통장의 실체도 드러났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은폐조작 지시사실도 인정되는 등 결국은 축소 은폐 노력의 진상이 폭로되었다.

관련영상

영향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