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시각장애인 안마사 투신사건
개요
시각장애인 안마사제도 위헌 결정으로 인한 2006년 시각장애인 안마사 투신사건을 알아본다.
내용
2006년 헌법재판소의 현행 안마사에 관한 규칙 위헌 판결
2006년 5월 25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7대 1로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는 것(안마사에 관한 규칙 3조 1항)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행 안마사에 관한 규칙이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이다.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안마사 자격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한정한 규칙은 시각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하여금 안마사 자격을 원천적으로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기준"이라고 밝혔다. [1] 이로 인해 많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6년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시위 및 투신
- 시각장애인 안마사 시위
2006년 5월 29일 대한안마사협회 회원 4000여명이 헌법재판관의 사퇴와 시각장애인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 도중 경기지부 회원 20여명이 마포대교로 이동했고, 오후 1시부터 한강 다리 난간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안마사협회 회원 200여명 또한 마포대교 밑에 모였다. 경기지부 회원들은 2006년 5월 30일 오후 5시까지 정부가 시각장애인 안마사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한강에 투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위로 인해 경찰이 출동하여 시각장애인 안마사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도 있었다. 대한안마사협회 지도부는 시위를 중단하라고 하였으나 경기지부 회원들은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얻기 전까지 매일 4명씩 투신할 것이라며 시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또한 이날 마포대교 인근 한강둔치에서는 안마사 400여명이 정부에 생계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했고 명동성당 입구에서도 서울맹학교 동문회 소속 70여명이 집회를 벌였다.[2] KBS 뉴스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안마사 이외의 직업을 구하는 것이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 안마사제도가 그들의 마지막 생존권이라고 이야기하며 시각장애인 안마사제도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인터뷰한 바 있다.
- 시각장애인 안마사 투신 사건
2006년 5월 30일 오후 5시 30분경에도 정부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 답을 주지 않았고, 경기지부 김용화는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김용화는 대기하고 있던 순찰정과 119 구조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러나 그가 구조되고 있던 중 이상규, 박현수, 장주칠 또한 마포대교에 투신했다. 이들은 모두 구조되었으며 구조 뒤 병원으로 송치되었다.
이후 하루 뒤인, 2006년 6월 1일에도 똑같이 4명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오후 2시 15분경 임모씨(31)와 미상 안마사 1명, 그리고 오후 5시경 미상 안마사 2명이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들 또한 모두 대기 중이던 순찰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 시각장애인 안마사 투신 현장
- 시각장애인 안마사 투신 장소
참고문헌
홍희정, "[뉴스 따라잡기 시각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 『KBS NEWS』, 2021.12.30.
유보연, "시각장애 안마사 4명 한강 투신", 『웰페어뉴스』, 2006.05.30.
김준일·황인찬, "시각장애인 안마사 4명 “생계보장” 또 한강투신", 『경향신문』, 2006.06.01.
"헌재판결 반발,안마사 4명 한강 또 투신", 『부산일보사』, 2006.06.02.
MBClife, "[MBC 다큐프라임 시각장애인들의 안마, 그 속에 있는 투쟁의 역사, MBC 201220 방송]", YouTube, (2020.12.20), 2022.06.26.
주석
- ↑ 유보연, "시각장애 안마사 4명 한강 투신", 『웰페어뉴스』, 2006.05.30.
『웰페어뉴스』online , 웰페어뉴스. - ↑ 김준일·황인찬, "시각장애인 안마사 4명 “생계보장” 또 한강투신", 『경향신문』, 2006.06.01.
『경향신문』online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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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SR22KU: 최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