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연우무대
개요
'연극하는 친구'라는 뜻을 가진 연우무대는 1977년 2월 5일 연극소모임으로 시작하여 한국 연극계에서 창작극 활성화를 주도하는 대표 극단으로, 창단 이래 45년 동안 80여 차례 수상하며 그 우수성을 입증하였다.[1] 현재까지 연우무대는 연극 70여편, 뮤지컬 3편, 가족극 8편, 창작연구발표 27편을 무대에 올렸으며 특히 창작극 불모시대에 ‘창작극만 공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창작극 전성시대의 도래에 공헌했는데[2], 대표작으로는 70년대의 <장산곶매>, 80년대의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90년대의 <날 보러 와요>, 2000년대의 <해무>, <이>, <여신님이 보고계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이 있으며, 현재는 연극, 뮤지컬에 이어 영화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영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여 경험을 쌓고 있다.[3]
내용
창단
극단 연우무대는 1977년 2월 5일 서울대학교 연극회 졸업생과 3학년 이상의 서울대학교 재학생 10여명이 모인 연극 소모임이 계기가 되어 본래는 한 편의 연극 텍스트를 정해 번역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으나 이 모임이 극단으로 발전하였다.[4] 창립공연은 1978년 3월 15일부터 21일까지 공간소극장에서 올려진 김광림 작, 정한룡 연출의 창작극 <아침에는 늘 혼자예요>였는데, 당시 연극 협회는 대학극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우여곡절 끝에 준회원으로 극단이 등록된 것은 1978년 9월이었다.[5]
다음은 창단공연에서의 연우무대가 밝힌 포부이다.
연우는 대학무대가 바탕이 된 모임이다. 오늘의 연우를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약속을 하였고, ..(중략)... "가장 격렬하게, 탐욕스럽게, 진실을 위해서만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연극행위를 한다." 이것을 이전의 많은 선배와 지금 활약하고 있는 많은 연극인들이 연극행위를 위해 지켜온 공통의 신념이기도 하다. 우리의 눈이 보아온 진실과 허위, 우리의 귀가 들은 양심과 비인간의 소리, 살을 부딪히고 내 몸으로 느꼈던 것들이 우리의 지성과 신념 속에서 여과하여 우리가 만들어내는 무대는 바로 우리와 우리의 동시대인들이 내쉬는 독한 냄새나는 숨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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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침에는 늘 혼자에요>, 프로그램 중에서 김광림 작, 정한룡 연출, 1978, 3. 15 - 21. 공간소극장[6] |
이렇듯 연우무대는 창작극만을 하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하여 ‘우리 이야기를 우리의 연극 양식으로 표현한다’는 목표 아래 역사적, 사회적 소재를 다룬 창작극을 지속적으로 공연해 창작극의 활성화를 주도하였으며, 1985년 신촌역 부근에서 연우소극장을 개관하였다.[7]
연원 및 변천
1985년 신촌역 부근에서 연우소극장을 개관하여 공연한 서사 연극 「한씨연대기」(황석영 작/김석만 연출, 1985), 풍자극 「칠수와 만수」(오종우ㆍ이상우 작/이상우 연출, 1986) 등은 젊은 대학생 관객에게 큰 인기를 모았으며, 1987년 4월 극장을 혜화동 로터리로 옮긴 이후의 풍자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원작/주인석 극본/김석만 연출, 1988), 「늙은 도둑 이야기」(이상우 작/연출, 1989) 역시 높은 인기를 모았다.[9] 현재는 뮤지컬, 콘서트, 연극, 무용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연우무대 자체기획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단체의 대관공연도 이루어지고 있다.[10]
개관연도 | 장소 | 내용 | 공연 |
---|---|---|---|
1985 | 마포구 신촌역 부근 | 연우소극장 첫 개관 |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등 |
1987 | 혜화동 로터리 부근 | 이전한 연우소극장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늙은 도둑 이야기」 등 |
수상경력 및 연극제 참가 이력
- 해당 데이터의 출처는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의 극단 연우무대 페이지입니다.
의의 및 평가
실험극장은 1960년 창단한 이래 수십년 이상 한국 연극의 중심으로서 활동하며 소극장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연극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국내 최초로 예매제도를 도입하여 관객 만명을 돌파하기도 했으며, 전용극장을 통해 대표작을 발표하며 연극 사상 최장기공연 기록을 세우는 등[11] 한국 연극 역사의 중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극계의 중추 역할을 해왔으며, 동인제 극단으로 시작하여 사실주의 작품 위주였던 1960년대 한국 연극의 흐름을 바꾸고, 이후에는 시대에 발맞춰 과감히 동인제 극단에서 제작 중심의 프로덕션 체제로 전환하는 등[12] 전문적인 극단 경영의 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신인 배우와 연출가 작가를 끊임없이 양성하여 연극계의 인재풀을 형성하고,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여 한국 연극의 틀을 확장하였다는 점에서 실험극장은 한국 연극계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논문
구태환,「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운동에 관한 연구 : -운니동 시절을 중심으로-」,『연극교육연구』34권0호, 한국연극교육학회, 2019.
주석
- ↑ 『연우무대』
online , 연우무대. - ↑ 『연우무대』
online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연우무대』
online , 연우무대. - ↑ 『극단 연우무대』
online ,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 ↑ 신사빈, 「연우무대 창작극의 변천과 특성」,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Vol. 15 No. 9, 한국콘텐츠학회, 2015, 48쪽.
- ↑ 한재우, 「극단 연우무대 공연 연구 : 창단 이후 1990년대 까지」,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10~11쪽.
- ↑ 『극단 연우무대』
online ,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 ↑ 『연우무대』
online , 연우무대. - ↑ 『연우무대』
online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https://iyeonwoo.modoo.at/?link=3q1alyhn
연우소극장]』
online , 연우소극장. - ↑ 『PLAY DB』
online , 인터파크. - ↑ 권재현, 「"전용극장 남기고 물러나는게 꿈"」, 『동아일보』, 2010년.12월.9일.
『동아일보』online , 동아일보.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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