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사고
개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한강의 성수대교 중간 부분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실공사와 부실관리로 일어난 사고였다.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례적인 사고의 충격으로 규모에 비해서 훨씬 큰 사회적 충격을 안겨줬다.
내용
전개
사고가 발생한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새벽, 운전자들은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린 철판을 목격했다. 철판이 덮인 부분엔 균열이 있었고, 서울시가 응급조치 해 놓은 것이었다. 부실한 조치로 균열은 점점 커졌고, 한 운전자는 그 부분을 지나는 충격이 커 직접 서울시에 신고했다. 그러나 이후 조치는 안일했다. 당시 뉴스 앵커가 말했듯, 사고는 '예고된 인재'였다.(타M머신, "오!마이 94년 순식간에 무너진 성수대교 붕괴 현장", YouTube, (방송일: 2015. 4. 28.), 작성일: 2022. 6. 26.)
결국 오전 7시 38분 성수대교의 10, 11번 교각이 무너졌고,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봉변을 당했다. 승합차 1대, 승용차 2대가 추락했고 사고 부분 붕괴와 함께 추락했고, 붕괴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도 빠졌다. 이후 달려오던 시내버스 한 대는, 기사 유모 씨가 사고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후륜이 걸친 상태로 정지했다가 이후 뒤집어지며 추락했다. 총 차량 6대, 탑승자 49명이 추락했고,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시내버스에서 발생했다. 승용차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침수되던 차량에서 익사했다. 사고 직후 살아있었던 일부 생존자들도 대처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사망하기도 했다.
출근과 등교를 하던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특히 무학여자중학교[1] 학생 1명과 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 8명이 시내버스에서 참사를 당했다. 이로 인해 무학중학교와 무학여자고등학교는 현재까지도 추모일을 지정하여 희생자들을 기린다고 한다. 또한 서울교육대학교 재학생이던 이승영(당시 20세)씨는 교생 실습을 가다가 버스에서 사고를 당했다. 사후 장기기증을 원했던 고인의 뜻을 가족들이 지켜주려고 했으나 장기기증 시한인 사망 후 6시간을 넘기고서야 시신이 수습되었고, 결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고인의 모친은 보상금으로 교회를 통해 장학회를 운영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당시 뉴스
참고문헌
"`꽝'소리와함께 떨어진 출근길 날벼락", 연합뉴스. 작성일: 1994. 10. 21
타M머신, "오!마이 94년 순식간에 무너진 성수대교 붕괴 현장", YouTube, (방송일: 2015. 4. 28.), 작성일: 2022. 6. 26.
주석
- ↑ 현 무학중학교
기여
- PSY22KU: 최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