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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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H21K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2월 22일 (수) 03:09 판 (용도의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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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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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는 지상 33층, 133m짜리 건물로, 건립이래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역할하고 있다. 2002년 10월까지 국세청이 이곳에 입주해 있었기 때문에 ‘국세청 빌딩’으로도 불리며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세 개의 기둥이 고층부의 고리모양의 스카이라운지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으로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용

기본정보

위치 설립년도 수상 상 용도 건축가 건축사
종로구 종로2가 6 1999 금상 제2종 근린생활 시설, 판매시설, 업무시설 라파엘 비뇰리, 손명기, 김창수, 박승 삼우 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 역사

조선시대의 종로

조선시대 당시 종로는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한양의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였다. 그리고 현재 종로타워가 있는 장소에는 중국산 비단을 취급하던 상점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오군란 이후 중국 상인들이 직접 한양에 비단을 수입하여 팔기시작하면서 비단 상점은 점차 사세가 기울었고 1890년 말, 그 자리에 귀금속 상점이 들어서게 된다. 1918년 이 상점은 '화신상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서울에서 가장 큰 귀금속 상점으로 성장한다. 시간이 지나고 1931년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 사업가 박흥식은 화신상회를 매수하여 기존 목조건물을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축하여 운영하지만 4년뒤 이 건물은 화재로 사라지게 된다 [1]

화신백화점에서 종로타워로

화신백화점.jpeg

종로타워의 터에는 조신시대 때 차례대로 포도청, 비단 상점, 귀금속 상점(화신상회)이 위치하였고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근대건축가 박길룡이 설립한 화신백화점이 설립된다. 화신백화점은 신축 당시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주변에 비하여 6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가지며 눈에 띄는 외관을 자랑하였다. 특히 이 백화점은 조선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건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1960-70년대 즈음 화신백화점을 비롯한 계열사들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당시 정부의 종로확장계획과 맞물려 1978년 화신백화점은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지정되게 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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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화신그룹은 몰락하고, 이에 따라 한보그룹이 화신백화점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1988년 다시 한번 부지의 주인이 한보그룹에서 삼성생명으로 바뀌게 되었고 우루과이 출신 건축가 엘레비 베켓이 건축을 담당하게 된다. 1995년 지상 18층 규모의 상업시설 건축허가를 받았고 1999년 현재 모습의 종로타워가 완공된다.

건축적 특징

Quote-left.png 밤에는 삼각 지지대 모양의 구조 타워 위에 놓여 건물의 상부에 떠있는 이 구름 같은 부분은 서울 스카이라인의 이정표로 공중에 떠있는 발광체처럼 보인다. 더불어 건물의 상업과 사무시설 부분에 놓인 옥상 정원은 이 도시 너머로 상상의 날개를 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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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파엘 비뇰리



종로타워 완공 직후의 전경

종로타워는 크게 3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는 곡선의 파사드를 가진 하단, 플랫한 파사드의 중단, 그리고 3개의 기둥에 지탱하여 공중에 떠있는 상단이다.

건물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종로타워의 형상은 많은 오해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특이한 건축물이 상당히 많이 생긴 지금의 서울에서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만 완공 당시 종로타워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기도 했다. 종로타워는 지상 24층과 위워크가 있는 33층 사이에 약 30m의 공간이 비어 있다. 이 공간은 종로 한복판에 상징성 있는 랜드마크 빌딩을 짓고자 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삼우종합건축사무소의 박호영 정일아키포럼 대표는 “애초 비뇰리가 설계한 종로타워의 높이는 지금보다 1.8배 정도 높았지만 한국 법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며 “높이를 낮추는 대신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종로타워는 국내최초로 리프트업 공법을 적용하였다. 리프트업 공법이란 하부에서 구조물을 만든 후 그를 들어올리는 공법으로, 허공에 떠있는 건축물을 시공할 때 자주 사용된다. 나아가, 저층부와 중층부를 나누는 공간에 설치된 어반 캐노피는 왕관처럼 튀어나와있는데 이는 장식 역할 외에도 하단의 하중을 부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종로타워는 수평 Rib Glass 등을 사용하여 건물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형성하였다.[3]

용도의 모호성

종로타워의 주 용도는 업무 및 판매시설이다. 그러나 종로타워는 오피스 빌딩으로서는 ‘무명(無名)’에 가까우며 어떠한 회사가 입주해 있는지 직관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종로타워가 오피스 용도로는 비교적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초 종로타워 개발을 계획할 당시 그의 용도가 판매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한보그룹으로부터 해당 부지를 살 때부터 판매시설을 계획했으나 골조 공사까지 끝마친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1997)가 발생하며 업무시설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엘리베이터 위치와 같은 특징이 판매시설에 맞게 설계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건물의 기능과 형태가 용도와 맞지 않다라는 비판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들

1.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이건희 회장은 유독 종로타워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의 관심이 크다 보니 피곤한 점도 있었는데 특히 종로타워는 착공 후에도 사업 진행이 상당이 느렸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담당자들이 교체되거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한다. [4]


2. 또한 종로타워의 이름이 ‘밀레니엄타워’가 될 뻔했다는 사실도 있는데 종로타워가 준공된 시기가 1999년, 즉 2000년을 눈앞에 둔 때여서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를 기념해 밀레니엄타워로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레니엄이라는 이슈가 일시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결국 종로타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5]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

라파엘 비뇰리는 1944년 우루과이 몬 비데오에서 태어나 1981년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다. 현재까지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구조적인 독창성의 신고전주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재료에 대한 탐닉'과 '합리적 사고'를 주축으로 한다. 1996년 <Tokyo Forum> 이라는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세계의 여러 도심에서 자신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특히 그의 작품은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공공성의 실현'이라는 철학을 반영한다.[6]

참고문헌

삼성물산 건설부문 블로그_종로타워 리프트업 공법: 종로타워 건축 이야기

서울경제_익숙하지만 낯선 건물 ... '종로타워'

티스토리_종로타워와 화신백화점

위키피디아_종로타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화신백화점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_종로타워

라파엘비뇰리 웹사이트

대한경제_건축가의 발자취를 느끼다 40- 라파엘 비뇰리

주간조선_이건희 회장이 아꼈던 종로타워 결국 매물로

주석

  1. 티스토리_건축도서관: 종로타워
  2. 삼성물산 건설부문 블로그_종로타워 이야기
  3. 삼성물산 건설부문 블로그_종로타워 이야기
  4. 주간조선_이건희 회장이 아꼈던 종로타워 결국 매물로
  5. 서울경제_[건축과 도시] 익숙하지만 낯선 건물 ... '종로타워'
  6. 라파엘 비뇰리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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