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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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1970년 4월 8일 오전 8시 경,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와우 아파트 15동이 붕괴하여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이다.

발생날짜 발생시각 발생장소 사망 및 피해
1970.04.08 오전 8시 경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33명 사망, 39명 중경상

와우아파트붕괴.jpg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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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국토를 얻었고, 많은 이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국가라는 제3세계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면서,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추구하며 경제성장이 단일한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단기간에 근대화를 이룩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성과 중심주의가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는 제도의 미비와 비리를 낳았으며, 이는 각종 대형인재, 즉 사회적 참사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사람보다 수치와 눈으로 보이는 성과가 더 중요해진 사회가 도래했다. 이에 따라 3년만에 아파트 2000동을 짓겠다는 무리한 계획이 수립되었고, 이는 공사기간의 단축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낮은 공사비 책정, 허술한 기초공사 등 총체적인 부실이 함께했고, 이에 더해 근본적인 원인은 해당 동을 시공한 대룡건설이 무면허 토건 업체에 하청을 주면서 공사비를 떼먹는 비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1]
그러나 비리와 관련된 이들의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담당자들은 와우아파트의 붕괴조짐을 보고도 방기했다. 3월 20일에 주민들은 14동과 15동의 지지받침대에 금이 간 것을 보고 신고했지만, 구청장과 건축과장은 14동주민만 대피시키고 15동은 보수 공사로 충분하다며 그대로 돌아갔다. [2] 그렇게 15동이 무너져 내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아파트

와우아파트는 '시민아파트' 건립과정에서 지어진 아파트이다. 시민아파트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이 1968년 판잡짓 등 불량 건축물 정리와 변두리로의 인구 분산을 위해 3년 계획으로 판자촌 지구 40곳 78만 평에 아파트 2000동을 지어 무주택자 13만구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뒤 세워진 아파트이다.[3]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 마련을 명목으로 지어진 아파트였다.
시민아파트의 건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서울에 존재하던 무허가정착지라는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1960년대부터 자연발생적 무허가정착지를 해체하여 서울 외곽에 대규모 집단 재정착지를, 서울 변두리에 집단 재정착지를 조성하면서 정부주도의 집단이주 무허가정착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4] 시민아파트는 빈민을 위한 복리후생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으나, 판자촌 주민들이라는 이들을 서울 외곽, 또는 특정 공간으로 이주시키면서 주거 취약자들을 시민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도록 했다. 또한 저소득층 아파트인 시민아파트의 경우는 커뮤니티 공간이 따로 계획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공동화장실,빨래터 등이 자연스레 그런 역할을 하며 건물 자체 내의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5]

현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자리에는 와우공원이 조성되어있다. 와우아파트의 붕괴 흔적은 공원에 설치된 동판의 뒷편을 자세히 읽어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이후에도 부실시공과 비리로 인한 아파트 붕괴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1993년 1월 7일에 청주시 우암동에 위치한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는 사망자 28명과 부상자 48명 및 이재민 370여 명을 발생시켰다. 2020년 6월에는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참사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고, 2022년 1월 11일에는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공사 중이던 화정아이파크 아파트의 2동 건물이 붕괴되어 사망자 6명, 부상자 1명 등 총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2022년에도 똑같은 문제로 인한 참사가 반복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시공사의 대표는 직접적인 관리라인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6]
이 사고들은 모두 부실시공과 부실시공을 용인하게 만든 비리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받았다. 1970년의 와우아파트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에 대해 홍성태는 안전불감증을 유발하는건 단순한 개인의 무지함이 아니라, 안전불감증을 용인하고 방치하는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7] 아파트는 근대화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집'의 이미지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이는 거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행태이며 온갖 곳에 예기치 않은 죽음이 도사리는 불안도가 높은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이다. 더이상은 발전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시스템 미비라는 변명을 이어나갈 수 없다. 작금의 참사는 비리를 통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스템의 붕괴에 힘쓴 이들이 발발시킨 문제인 것이다.

보도영상[8]

결론

알라이다 아스만은 어떠한 경험이 기억 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관련하고 있는 경험이 완결되어 ‘지나간 것’으로 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9] 그러나 참사 이후에도 동일한 원인으로 인해 참사가 반복된다면, 어떤 참사도 결코 지나간 기억이 될 수 없다. 단순히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을 타자화시키는 과정으로서의 '교훈'을 얻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참사 이후의 올바른 진상규명과 처벌을 통해, 참사라는 재난을 방지하고 모두가 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참고문헌

논문

박태균, 「와우아파트,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 『역사비평』 통권 93호, 역사비평사,2010. 조성찬, 「압축성장시대, 무허가정착지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재산권」, 『국토』 제 475호, 국토연구원,2021. 박종우 외 5명,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서울의 구릉지 저소득층 공동주택에 관한 연구 - 시민아파트와 정릉 스카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제21권 제12호, 대한건축학회,2005.

도서

홍성태, 『사고사회 한국』, 진인진, 2017. 재인용,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역, 『기억의공간』 , 그린비, 2011, 9쪽.

기사

홍국기, 「이러다 또 무너진다-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연합뉴스』, 2022년.1월.16일., 『연합뉴스』online, 연합뉴스.).

유튜브

MBCNEWS, "[오늘 다시보기 와우아파트 붕괴(1970) (2019.04.08/뉴스투데이/MBC]", YouTube, (방송일:2019.04.08), 작성일:2019년 04월 08일.

주석

  1. 홍국기,「이러다 또 무너진다-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연합뉴스』, 2022년.1월.16일., 『연합뉴스』online, 연합뉴스.
  2. 박태균, 「와우아파트,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 『역사비평』 통권 93호, 역사비평사,2010,173쪽.
  3. 박태균, 위의글,142쪽.
  4. 조성찬, 「압축성장시대, 무허가정착지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재산권」, 『국토』 제 475호, 국토연구원,2021,9쪽.
  5. 박종우 외 5명,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서울의 구릉지 저소득층 공동주택에 관한 연구 - 시민아파트와 정릉 스카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제21권 제12호, 대한건축학회,2005,50쪽.
  6. 홍국기, 「이러다 또 무너진다-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연합뉴스』, 2022년.1월.16일., 『연합뉴스』online, 연합뉴스.).
  7. 홍성태, 『사고사회 한국』, 진인진, 2017.
  8. MBCNEWS, "[오늘 다시보기 와우아파트 붕괴(1970) (2019.04.08/뉴스투데이/MBC]", YouTube, (방송일:2019.04.08), 작성일:2019년 04월 08일.
  9. 재인용,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역, 『기억의공간』 , 그린비, 2011,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