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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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실공사와 부실관리로 발생한 참사였다. 502명의 사망자, 30명의 실종자,937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사회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안겨 준 사고였다. 현재까지도 국민들이 '참사'하면 떠올리는 최악의 참사다.

내용

전개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52분, 서울시 서초구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약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하루 전만 해도 균열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탁자가 기울어진 현상도 있었으나 안일한 대처로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사고 하루 전부터 붕괴는 시작되었던 것이고, 사고 당일 신고도 있었으며, 휴업을 하는 식당도 있었다. 당일 긴급대책회의가 열렸으나 붕괴 위험은 없다는 판단으로 영업 중지 없이 보수 공사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로써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끝났다.

당시 뉴스

원인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관리 또한 부실했다. 건물의 상가 배치는 부실한 공사를 더 악화할 만큼 심각했다. 결정적으로는 건물 옥상에 있던 에어컨 냉각탑의 무게였다. 옥상에는 냉각탑 세 대가 있었고, 무게는 36톤, 냉각수를 채울 경우 87톤이었다. 이는 옥상이 견딜 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었다. 이 냉각탑들의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로부터 민원을 받았고, 그에 대응해 이 냉각탑들을 롤러에 올려 반대쪽으로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이동 비용을 줄이려고 그런 것이며, 이는 건물에 더욱 큰 충격을 가했다.

영향

8개월 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함께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후로 전국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안전실태를 조사했고 건축법을 강화하게 되었다. 1980년대, 1990년대 초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안전 평가 결과 대한민국 내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였다.백화점 및 대형건물 기피현상도 퍼졌다. 사회적으로 많은 작품의 소재로도 등장했다. 생명보다 이익을 중시한 삼풍그룹에 국민은 분노했다.

추모시설

사고 현장에서 32km 이상 떨어진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1040에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전시관이 있다.

삼풍위령탑

위령비는 4km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그마저도 한쪽 구석에 위치한다. 사고가 일어난 장소에 지으려 했지만, 참사가 일어난 곳이란 것을 알리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반발로 무산되었다. 삼풍백화점 부지에는 2004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서울특별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 국가기록원. (1996. 6), 작성일: 2022. 6. 26

박수연, 안치용, 김민주, 신다임, "비리로 세운 백화점과 한강다리가 무너졌을 때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LE MONDE diplomatique. (2021. 3. 22), 작성일: 2022. 6. 26

"삼풍백화점, 지하1층/지상4층 총9백평 매장 신규오픈", 한경 뉴스. (1994. 11. 1), 작성일: 2022. 6. 2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연합뉴스. (1995. 6. 29), 작성일: 2022. 6. 26

메모리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1995년 서울, 삼풍』, 동아시아. (2016. 4. 29), 작성일: 2022. 6. 26

KBS NEWS,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이시각 사고현장", (방송일: 1995. 6. 29), 작성일: 2022. 6. 26

타M머신, "놀란가슴뉴스 보고또봐도 역대급 상품백화점 붕괴 - 붕괴당시영상 (1996년도)", YouTube, (방송일: 2015. 3. 30.), 작성일: 2022. 6. 26.

주석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