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코시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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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경성에 최초로 등장한 근대적 백화점인 미쓰코시 백화점은, 경성의 근대화의 신호탄이자, 상징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당시 모던걸, 보이들의 중심지이자, 유행의 발상지였으며, 근대적 소비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의 생성과, 구조, 판매목록을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미쓰코시 백화점의 설립과정[1]

시간 내용 상세 규모
1906년 10월 미쓰코시 오복점 경성점 개설 수출입상을 주업으로 하고, 소규모로 잡화상을 경영 50평 규모의 2층 건물
1916년 10월 미쓰코시 오복점 경성출장점 증축 미츠코시 오복점 경성출장소로 사명 변경 약370평 규모의 르네상스식 3층 건물
1927년 10월 주식회사 미쓰코시 경성지점 추가 증축, 주식회사 미쓰코시 경성지점으로 변경 x
1929년 10월 미쓰코시 경성지점 개설 출장점에서 지점으로 승격 x
1930년 미쓰코시 경성지점 신축 구 경성부청사의 부지 일부에 신축 약 730평 규모의 만주, 조선에서 최대 규모의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설립과정 TimeLine

미쓰코시 백화점의 구조와 판매목록

층별 안내도.jpg

층별 구조[2][3]
입점 목록
지하 이발소, 레스토랑, 신발 판매점
1층 입구, 여행객 안내소, 조선 특산물 판매점, 선물 포장점, 인포메이션 , 고급 식료품 매장
2층 화장품 판매점, 휴계실, 일본 옷, 맞춤복, 기성복
3층 신사 양복, 숙녀 양장 코너, 옷 제작 공장, 피팅룸
4층 미쓰코시 홀, 귀슴속, 가구매장, 대형식당
5층 옥상정원, 미쓰코시 갤러리, 사진관, 온실, 커피, 차 및 소다 판매점


미쓰코시 내부 양복점
미쓰코시 5층 옥상정원

미쓰코시 백화점의 의미


일본 식민시대를 공고히 하는 공간.

미쓰코시 백화점은 일본 자본에 의해서 설립된, 일본의 소비문화를 비롯한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일본 중심의 공간을 조선인들에게 유행시켜, 일본문화를 인식시킴과 동시에 수많은 일본인을 조선에 이주시키고 신영지의 동화과정에 협력하게 하는 미끼였다.[4] 또한 조선에 이주한 일본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게 해준 공간이다.
또한 백화점 내부에서 자주 열린 사상 박람회는 백화점에 방문한 수많은 조선인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일본의 사상에 노출되게 하고, 식민지배과 일본 문화의 수용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자본주의 경성의 공간.

이전의 상점들과 달리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정찰제를 사용한 백화점은 근대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이러한 백화점이 경성에 등장했다는 것은, 경성이 이전의 봉건적인 공간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32, 대한건축학회, 2016, 81-89.

"충무로의 일본인 백화점" 『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최리애,「식민지시기 백화점의 등장과 사회적 위상」, 『 地域社會 2017 가을호』77, 한국지역사회연구소, 2017, 57-61.

주석

  1.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32, 대한건축학회, 2016, 82-83.
  2. "충무로의 일본인 백화점" 『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3. 이길훈, 위 논문, 84-85.
  4. 최리애,「식민지시기 백화점의 등장과 사회적 위상」, 『 地域社會 2017 가을호』77, 한국지역사회연구소, 2017, 58.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