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문화 표석과 관련된 사건들 중 언론사의 창간과 정간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대적 상황에서 언론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어떤 사건들을 겪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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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법은 조선 말기 일제가 우리나라의 신문을 탄압 및 통제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으로, 1907년 공포되었다. 신문을 창간함에 있어서 내부대신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보증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며, 발행 정지, 벌금형, 체형 및 기기 몰수의 벌칙이 추가 되었고 사전 검열을 완전히 제도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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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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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본은 총독부 기관지와 국문지 매일신보(每日申報), 일문지 경성일보(京城日報), 영문지 서울프레스(The Seoul Press)만 남겨두고 조선인이 발행하는 모든 조선어 신문을 폐간하였다. 하지만 1919년 3.1 운동에서 발현된 강렬한 독립 의지와 식민 저항의 물결에 놀란 일제는 1910년대 강압적인 무단통치에서 1920년대 문화통치로 정책 노선에 변화를 주었다. 이 때, 이전에는 허용하지 않았던 조선인의 한글 신문 발행을 '신문지법'에 의해 허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일보(朝鮮日報), 동아일보(東亞日報), 시사신문(時事新聞)이 창간되었다.[1]
오늘날에 이르러 언론에 대한 불신과, 언론인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언론이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목소리가 되고, 사건과 상황을 투명하게 보도하고 공개하여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소통의 창구로 작용될 수 있다. 과거 언론사의 역사와 역할을 살펴보며 오늘날 언론이 갖추어야 하는 기능과, 언론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1. 역사
김성수를 대표로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사시 아래 창간되었다.
초기 창립자 중 박영효는 친일파이기 때문에 동아일보의 3대 정신이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조선 총독부를 비판하여 무기정간 처분을 당하고 윤전기와 신문이 압수되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2]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브나로드 운동을 전국적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하여 보도하였고, 최초의 여성 월간지 '신가정'을 창간하였다.
하지만, 193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이 실시된 이후, 1940년 8월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
2. 동아일보 창간 사옥터
동아일보 창간 사옥터 표석은 현재 종로구 화동 138-26에 위치해 있고, 2006년 설치되었다.
표석의 문구는 1902년 4월 민족 언론을 표방하여 창간된 동아일보의 사옥터. 그에 앞서 1917년까지 기호학교와 그 후신인 중앙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 동아일보사가 1926년 광화문 신축사옥으로 이전한 뒤에는 중외일보의 사옥이 되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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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 역사
조선일보는 3.1운동 이후 1920년 창립되었으며, 현존하는 한국어 신문들 중 가장 역사가 싶은 신문이다. 특히 친일파 수장이 속해있어 일제와 타협적이었던 동아일보와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최초로 연합했던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총독부의 탄압과 검열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1933년 친일파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며 친일적인 논조로 변절하였다. [3]
2. 조선일보 창간사옥 터
조선일보 창간사옥 터 표석은 현재 종로구 관철동 43-11에 위치해 있으며, 표석 문구는 1920년 3월5일 창간한 조선일보사 사옥 터. 조선일보는 3·1운동 이후 민족자본으로 이곳에서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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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1. 역사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토머스 베델이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창간하였다. 외국인이 설립자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언론사였다. 대한매일신보는 특히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으며, 고종 강제 퇴위 반대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비판하는 항일 운동을 지속하였다. 하지만 베델 사망 후 1910년 통감무에 매수된 후 병합 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전환되며 폐간되었다.[4]
2.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표석은 현재 종로구 수송동 80-7에 위치해 있으며, 표석은 2007년 설치되었다. 표석의 문구는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영국인 베델(Bethell)과 양기탁(梁起鐸)이 창간한 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 항일 민족 언론이다. 이후 중동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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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1. 역사
황성신문은 광무 2년 1898년 창간되었다.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등이 활동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대한 항일 사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기사로 인해 정간당했다.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통치 및 항일 운동에 대한 제지로 폐간되었다.
2. 황성신문사 터
황성신문사 터는 종로구 서린동 33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 출구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2005년 표석이 설치되었다. 표석의 문구는 황성신문은 1898년 남궁억 등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애국계몽 일간지로서 국원을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통분 논설을 게재하였다가 정간 당하였다. 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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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웹사이트
문화콘텐츠닷컴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석
- ↑ 일제 강점기의 언론과 광고, 우리역사넷.
- ↑ 위키백과, 동아일보.
- ↑ 나무위키, 조선일보/역사.
- ↑ 위키백과, 대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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