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나루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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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던 광나루 터라는 나루터에 대해 조사함으로써 광나루 터가 어떤 역할을 했고,
그 역할이 어떤 시대상을 나타냈는 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광나루의 위치

현재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다.[1]

지도를 불러오는 중...

광나루의 역할

예부터 서울의 남쪽을 흐르는 한강변 상류쪽에는 다양한 나루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광나루는 서울 주변의 중요한 나루터로서 조선 전기에는 이 곳에 관리를 두어 서울로 운송되는 세곡을 관리 감독했다. [2] 이 지역은 한강을 건너는 도진 취락으로 발전하여, 일제시대에 광진교가 놓이고, 일제강점기의 국도 노선과 해방 이후 국도 제3호선이 이 광진교를 지나도록 지정된 일도 있었다. [3]

조선시대 서울에서 부산까지 연결되는 영남로의 주된 간선로는 아니었으나, 부산으로 향하는 도로의 길목에 위치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파발로가 지나서, 광나루의 교통상 기능은 지속적으로 중요시되었다. 당시 좌도수참전운판관(左道水站轉運判官)이 겸직으로 이 지역의 조운을 관장하였을 정도로, 광나루는 서울 주변의 중요한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뿐만 아니라 북쪽에는 백제 초기 몽촌토성·풍납토성 등과 연결되는 아차산성이 있으며, 삼국시대의 서울∼부산간 교통로도 이 지역을 지나고 있어, 광나루는 고대부터 교통로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4]


광나루 터 표석

  • 광나루 터 표석 문구
  서울과 강원지방을 이어주던 나루터, 원래 너븐나루
  • 설치연도
  1988

교통에 관한 일화

  • 광나루 관련 영상
광나루 관련 일화 설명
광나루의 교통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하나의 일화 관련 영상이다. 정조가 여정을 떠날 때 광나루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현재의 광나루

조선 후기에 정치질서가 문란해지면서 양반들이 토지와 배를 빼앗아 광나루는 점점 부실해졌다. 일제강점기에도 유지가 되었으나 1936년 광진교가 설치되면서 광나루는 기능을 잃었다. 현재는 광진교, 천호대교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해주므로 나루터의 기능은 상실하였으나 3번국도와 강변도로가 지나고 있어 여전히 교통이 좋은 지역이다. [5]

참고문헌

네이버 블로그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 컨텐츠 진흥원

주석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