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인 묘와 신도비
변종인 묘와 신도비 Tomb and Stele of Byeon Jong-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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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변종인 묘와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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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and Stele of Byeon Jong-in |
한자 | 卞宗仁 墓와 神道碑 |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산63-7 |
지정(등록) 종목 |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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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시대의 무신 변종인(卞宗仁, 1433~1500)의 묘와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도비이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으로, 대개 무덤 앞이나 무덤의 남동쪽에 세운다.
변종인은 밀양변씨 중 부천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변예생(卞禮生, ?~1444)의 아들이다. 세조 6년(1460)에 무과에 급제했으며, 세조 13년(1467) 함경도 지역의 지방 세력인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여진족을 격퇴하였고, 성종 18년(1487)과 성종 25년(1494)에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며 국경 방어에 공헌하였으며 재임 중 병을 얻어 죽었다.
변종인의 묘는 부인 이천안씨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봉분 아랫부분에 돌을 둘렀는데, 이러한 형태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묘 앞에는 묘비,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 문인 모양의 문인석을 갖추었다.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몸돌, 연꽃 모양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었고, 명필로 이름났던 안침(安琛, 1445~1515)이 비석 제목과 비문의 글씨를 썼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고, 원래 변종인과 부인의 묘와 함께 지금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지금의 고강동 복지회관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비 주변 지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자주 나자 마을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지금 위치에 묘역을 조성하고 신도비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도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1996년에 세웠다.
영문
Tomb and Stele of Byeon Jong-in
This is the tomb and stele of Byeon Jong-in (1433-1500),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tomb consists of two burial mounds: Byeon Jong-in’s mound to the left and his wife Lady An’s mound to the right. It is said the burial mounds and the stele were originally located about 200 m to the southwest (near the Welfare Center in Gogang-dong), but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by local residents at some point due to frequent fires around the original site.
Byeon Jong-in was a son of Byeon Ye-saeng (?-1444), the first person from the Miryang Byeon Clan to settle in the Bucheon area. In 1460,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ilitary officials. In 1467, he proved himself a skillful commander by suppressing a rebellion organized by Yi Si-ae (?-1467), an influential figure in Hamgyeong-do Province. Later, he was sent to protect Korea’s northern frontiers, where he successfully repelled the Jurchens. In the years 1487 and 1494, Byeon visited China as an official envoy. He later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greatly contributing to the security of the kingdom’s borders. Byeon died of illness while in office.
The bases of the burial mounds are surrounded by support stones, a popular feature of tomb architecture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The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mounds include a tombstone, a table, two pillars, a lantern, and two statues of civil officials.
Th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pedestal, a body stone, and a lotus bud-shaped capstone. The text on the stele, which commemorates Byeon Jong-in’s life and achievements, was composed by the renowned writer Seong Hyeon (1439-1504) and calligraphed by the famous calligrapher An Chim (1445-1515). It is unknown exactly when the stele was erected, but the pavilion housing the stele was built in 1996.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변종인(1433-1500)의 묘와 신도비이다. 두 봉분 중 왼쪽이 변종인의 묘이고 오른쪽이 부인 이천안씨의 묘이다. 원래 두 묘와 신도비는 지금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지금의 고강동 복지회관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 지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자주 나자 마을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지금 위치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변종인은 밀양변씨 중 부천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변예생(?-1444)의 아들이다. 1460년 무과에 급제했으며, 1467년 함경도 지역의 지방 세력인 이시애(?-1467)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여진족을 격퇴하였고, 1487년과 1494년에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며 국경 방어에 공헌하였으며 재임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봉분 모두 아랫부분에 돌을 둘렀는데, 이러한 형태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한 쌍의 망주석, 장명등, 한 쌍의 문인석이 있다.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변종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 비문은 유명한 문장가 성현(1439-1504)이 지었고 명필로 이름났던 안침(1445-1515)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를 세운 시기는 알 수 없고, 신도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1996년에 세웠다.
참고자료
- 변종인 묘와 신도비,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변종인_묘와_신도비 → 연산군 5년(1499) 여름에 순변사로 함경남도에서 변방을 구축하다 이해 과로로 인하여 풍질이 생겨 다음 해인 1550년 3월 대청에서 타계하니 그 때 나이 68세였다고 한다. / (현지 안내문 인용) 연산군 1년(1495) 평안도절도사·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역임 전후 12회에 걸쳐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국방력 강화에 공헌했다. 연산군 4년(1498) 공조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로 있던 중 68세를 일기로 하세하니, 시호는 공장공이다.
- (부천)공조판서 변종인(卞宗仁) 묘‧신도비 –밀양변씨-, 개미실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2021.12.01. https://blog.naver.com/roaltlf/222522127463 → 신도비 실제 사진(전체, 부분) / 인근에 조성된 밀양변씨 묘역 확인 가능
- 조선 무신 변종인(卞宗仁), 재봉틀의 국어방, 네이버 블로그, 2013.08.23. https://blog.naver.com/kwank99/30174569276 -> 이미지 출처(작성자 틀, 게시일 2013.8.23.)
- 공장종 변종인 신도비, 경기문화재연구원. https://gjicp.ggcf.kr/archives/artwork/공장공-변종인-신도비
- 강상골에 밀양변씨 향나무,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가 있다, 콩나물신문, 2019.01.14. http://www.kong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141 → 강상골 향나무는 밀양변씨 종가집에서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서 있다. 아주 큰 향나무지지만 오른쪽에만 잎들이 조금 살아있고 나머지는 죽은 가지를 달고 있다. 지금은 밀양변씨 제실인 흑량제(黑梁祭)의 뒤쪽 담안에 가두어 놓았다. 향나무 아래는 많이 패여 있다. 밀양변씨 집안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기 위해 쪼개다 써서 그렇게 되었다.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 주인공인 변종인이 강상골에 살 때 심었다고 전해져 오는 향나무이다. // 강상골 언덕을 오르면 밀양변씨 집안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묘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밀양변씨 선산이다.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각이 보인다. / 신도비각은 팔작지붕이 있고, 지붕 아래에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통 신도비는 묘에서 바라보았을 때 주로 동남쪽 방향에 세웠다. 이는 선친이 죽어 ‘혼령이 다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신도비각 옆에는 변종인에 대한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 마지막으로 1499년 66세에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국을 돌면서 군사를 독려하는 순변사로 함경남도에서 변방을 구축하다가 과로로 풍질이 생겨 사망하게 되었다. / 변종인 신도비의 머리부분을 옥개(屋蓋)라고 한다. 이 옥개의 모양이 투구가 아니라 연꽃으로 되어 있다. 투구모양이라고 하면 양옆이 투구처럼 둘둘 말려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없다. 칼을 들고 싸우는 무관이라고 해도 신도비에는 하엽형(荷葉形)이라고 해서 연꽃을 형상화해서 음각한 것을 썼다. 이를 화관석(花冠石)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신도비의 받침대인 비좌(碑座)는 문갑(文匣) 무늬로 되어 있다. 신도비 뒷면에는 변종인의 일생이 새겨져 있다. 마모가 되어 읽기 힘들다. 비문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인 성현 선생이 지었다. / 원래 변종인 신도비는 고강동복지회관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변종인 묘지도 거기에 있었고 신도비도 거기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런데 변종인의 신도비가 세워진 직후부터 고리울 일대에 원인모를 불이 자주 났다. 자주 불이 나고 좋지 않은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의견을 내서 신도비를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현재의 자리로 변종인의 묘역을 조성하고 신도비를 옮기자 고리울 일대에서 일어났던 화재가 멎고 안 좋은 일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했다.
- 변종인 신도비, 디지털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cheon.grandculture.net/bucheon/toc/GC01601182
- 변종인 묘, 디지털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cheon.grandculture.net/bucheon/toc/GC01601139
- 변종인, 디지털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cheon.grandculture.net/bucheon/dir/GC01601197
- 변예생, 디지털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cheon.grandculture.net/bucheon/toc/GC01601349
- (참고) 이시애의 난 관련 → 장말손 적개공신교서 항목 설명 참조 가능 ; 1467년 함경도 지역의 지방세력인 이시애가 세조(1455-1468 재위)의 중앙집권체제 강화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다. 3개월에 걸쳤던 반란이 진압되자, 세조는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45명을 공신으로 선정하였다.
- (참고) 안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5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