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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과 식영정, 그리고 조대쌍송은 이렇게 한 시대 네 사람의 우정과 예술을 잇는 공간이자 상징으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그늘 아래 서면, 바람에 실려오는 옛 시구와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미는 듯하다. | 환벽당과 식영정, 그리고 조대쌍송은 이렇게 한 시대 네 사람의 우정과 예술을 잇는 공간이자 상징으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그늘 아래 서면, 바람에 실려오는 옛 시구와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미는 듯하다. | ||
2025년 12월 22일 (월) 20:46 기준 최신판
두 그루의 소나무에 머문 네 사람의 시심
이야기
광주 환벽당 아래로 내려서면, 두 그루의 늠름한 조대쌍송이 나란히 서 있다. 이 소나무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심을 나누던 인물들의 기억을 품은 살아 있는 증인이다. 김성원(金成遠,1525~1597)은 이곳에서 임억령(林億齡,1496~1568)과 교유했고, 훗날 시인이자 정치가인 정철(鄭澈,1536~1593)과도 벗으로 지냈다.
김성원은 담양에 식영정을 세우고, 그 중심인 식영정을 가꾸었다. 식영정은 시와 그림, 풍류가 어우러진 정자였고, 여기서 김성원·임억령·정철과 함께한 문인들이 ‘사선(四仙)’으로 불렸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시를 지으며 서로의 재능을 북돋았다.
이 교유의 흔적은 문집 『식영정팔십영息影亭八十詠』과 그 일부인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작품에는 조대쌍송의 모습도 묘사되어, 소나무가 단지 배경이 아닌 시인의 사유와 감정을 비추는 매개체였음을 보여준다.
환벽당과 식영정, 그리고 조대쌍송은 이렇게 한 시대 네 사람의 우정과 예술을 잇는 공간이자 상징으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그늘 아래 서면, 바람에 실려오는 옛 시구와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미는 듯하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