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142
정자와 사우로 읽는 청송 심씨 사람들
이야기
광주 광산구 동호동에는 세월을 넘어 청송 심씨 가문의 자취가 깃든 정자와 사우가 남아 있다. 그 중심에는 우국지사 심원표가 있다. 그는 1913년,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내고자 한다"는 뜻으로 만취정을 세웠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고 문인들과 교류하던 학문의 장이자, 마음을 닦는 수양의 공간이었다. 정자에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쓴 현판과, 문신 윤용구의 글씨가 걸려 있어, 그가 지녔던 학문과 예술의 품격을 전한다.
그의 제자들과 후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 1946년 남동영당을 세워 심원표를 기렸다. 영당에는 후손 심종대와 심한구가 함께 모셔져, 한 가문의 정신적 맥이 이어진다. 인근의 동호사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한 심광헌까지, 청송 심씨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또 다른 정자인 호은정은 문인 심노옥이 설계하고, 그의 아들 심원하가 일제강점기에 세운 곳으로,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학문과 도덕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어 1965년에는 심영구가 아버지 심종선과 큰아버지 심종수를 기리기 위해 청송정을 건립했다. 청송정 마당에는 심종선-심종수 효행비가 세워져, 효와 의리의 가풍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 호은정, 청송정은 서로 이웃한 자리에 서서, 학문과 절의, 그리고 후손의 효심으로 엮인 한 가문의 정신사를 전하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정자의 기둥마다, 청송 심씨 사람들이 걸어온 세대의 길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