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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중원]]은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문을 닫았지만, 1951년 [[광주기독병원|광주기독병원]]으로 재개원하였다. 이후 [[허철선|허철선(Charles Huntley)]]이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의료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 [[광주제중원]]은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문을 닫았지만, 1951년 [[광주기독병원|광주기독병원]]으로 재개원하였다. 이후 [[허철선|허철선(Charles Huntley)]]이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의료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 ||
| − | 한편, [[광주나병원]]은 [[최흥종]]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한 병원이다. [[ | + | 한편, [[광주나병원]]은 [[최흥종]]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한 병원이다. [[윌리_포사이드|포사이드]]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도 이곳에서 헌신했고, [[우일선]] 역시 나병 환자들을 위해 힘썼다. |
[[오기원|오기원(Clement Owen)]]의 설교에 감화된 [[김윤수]],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최흥종]]. 의료 선교는 전문 의료인을 넘어 더 넓은 삶의 울림으로 퍼져 나갔다. | [[오기원|오기원(Clement Owen)]]의 설교에 감화된 [[김윤수]],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최흥종]]. 의료 선교는 전문 의료인을 넘어 더 넓은 삶의 울림으로 퍼져 나갔다. | ||
| − | 그들의 발자취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놀란]], [[우일선]], [[서서평]], | + | 그들의 발자취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조셉_놀란|놀란]], [[우일선]], [[서서평]], 부란도, [[허철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시대의 벽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
낯선 땅의 문을 두드린 그 손길이, 광주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 낯선 땅의 문을 두드린 그 손길이, 광주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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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 ==이야기 지도== | ||
| − | * | + | * [[S2024-C026|근대 기독교와 도시 근대성의 형성]] |
| + | ** [[E2024-C013|1937년,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선교사들과 학교]] | ||
| + | ** [[E2024-C367|향사리에서 서현으로: 신앙과 교육, 민주화의 발자취]] | ||
** [[E2024-C037|역사가 기억하는 광주의 의료 선교사들]] | ** [[E2024-C037|역사가 기억하는 광주의 의료 선교사들]] | ||
| − | ** | + | ** [[E2024-C049|일제강점기 무렵, 기독교 선교사들과 관련된 광주의 건축물]] |
| − | ** | + | ** [[E2024-C066|전쟁의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시민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한 광주의 기독교]] |
| + | ** [[E2024-C097|양림동의 선교사 사택 둘러보기]] | ||
| + | ** [[E2024-C124|타국에서의 너무 이른 이별: 광주에서 생을 마감한 선교사 아이들]] | ||
| + | ** [[E2024-C166|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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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3일 (화) 01:18 기준 최신판
역사가 기억하는 광주의 의료 선교사들
이야기
1905년, 광주 양림동 언덕에 첫 서양식 병원이 세워졌다. 그것이 바로 광주제중원이다. 병원의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은 조셉 놀란(Joseph W. Nolan)이었다. 뒤를 이어 우일선(로버트 윌슨)이 1908년부터 18년간 제2대 원장으로 헌신하며 의료 선교를 이끌었다. 간호사 서서평과 의사 부란도도 함께하며, 병원은 사랑과 헌신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조선간호협회를 창립한 서서평은 봉사의 정신을 광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광주제중원은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문을 닫았지만, 1951년 광주기독병원으로 재개원하였다. 이후 허철선(Charles Huntley)이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의료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한편, 광주나병원은 최흥종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한 병원이다. 포사이드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도 이곳에서 헌신했고, 우일선 역시 나병 환자들을 위해 힘썼다.
오기원(Clement Owen)의 설교에 감화된 김윤수,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최흥종. 의료 선교는 전문 의료인을 넘어 더 넓은 삶의 울림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의 발자취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놀란, 우일선, 서서평, 부란도, 허철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시대의 벽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낯선 땅의 문을 두드린 그 손길이, 광주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