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조사
콘텐츠 주제
가제 방언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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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기획배경
조원들 모두 방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방언을 주제로 위키 페이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어 방언들 종류가 다양하며 각각 역사가 매우 길기 때문에 몇 가지를 고르기로 하였고, 기간 역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하기로 결정하였다.
기획목적
한국어를 통시적으로 탐구, 분석해보는 것이 큰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어는 표준어와 다양한 방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방언마다 따로 떼어 조사한 것이 아니라 한 방언을 여러 방언들과 언어들 간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였다. 예를 들어, 함경도 방언은 중세 국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어에 영향을 주었다. 국내 방언 2개(제주어, 육진 방언)와 해외에서 주로 쓰이는 한국어 방언 2개(조선어, 고려말)를 골라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기간에 집중하여 탐구해보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동포들이 많이 해외로 이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 방언을 간(間)언어적으로 탐구해보기 위하여 기간을 위와 같이 잡았다.
온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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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
국내 방언
제주어
제주어 음운론
제주 방언은 다른 지역 방언과 달리 많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배경이 독자적 특성을 유지하게 했다. 제주 방언은 특히 음운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1)15세기 한국어의 한글 자모 사용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와 쌍아래아(••)가 남아 있다. 아래아는 [ㅗ]보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혀뿌리를 좀 더 아래로 잡아당겨서 발음하는 후설 저모음이다.
제주에서 사용되는 예로는 'ㄷ•리(다리), ㅍ•ㅅ(팥), ㄷ•ㄱ(닭), ㄷ•ㄹ(달), ㅁ•ㄹ(말)'와 같은 것이 있다. (괄호 안 표준어) 쌍아래아는 《훈민정음》에서 ㅢ와 함께 방언과 아이들이 내는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ㅣ와 아래아를 붙인 ᆝ(이아래아)로 처음 소개되었다. 제주 방언에서는 'ㅇ••답(여덟), ㅇ••슷(여섯), ㅇ••라(여러), ㅇ••ㄹ다(열다), ㅇ••망지다(야무지다)' 처럼 쓰인다.
자음에서도 후두 유성음의 존재에 대한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머루'의 제주방언인 '멀위'를 [머뤼]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멀위]로 발음되는 것을 볼 때 2음절의 초성 'ㅇ'은 음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반치음(∆)의 흔적 또한 보인다. 예로는 '아시'(동생), 'ㄱ•새'(가위), '난시'(냉이) 등이 있다.
(2)받침의 'ㅆ'은 'ㅅ'으로 실현
표준어에서 ‘먹었어’는 [머거써]로 발음되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머거서]처럼 발음한다.‘ㅆ’의 받침이 기본형이라면 뒤에 오는 모음어미와 연음되면 당연히 [써]로 발음되어야 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서는 과거시제의 ‘-았/었-’이 결합 한 형태가 ‘갓어[가서]’, ‘잣어[자서]’처럼 실현된다. 따라서 제주 지역의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는 ‘-앗/엇-’이 된다. 또한 ‘있다’는 ‘이시다, 싯다, 잇다’로 말한다. <제주어 표기법>뿐만 아니라 제주 방언을 표기하는 경우 받침에서 쌍시옷을 거의 쓰지 않는다. 발음이 표기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3)거센소리화와 된소리화
중세국어의 ‘ㅂ’계 어두자음군은 표준어에서는 된소리로 변하는데 제주 방언에서는 거센소리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ㅳㅓㄹ다’는 표준어 ‘떨다’이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털다’로 실현되어 ‘추워서 떨고 있어와 같은 표현은 ‘추원 털엄서.’처럼 사용된다. 그 외에도 ‘ㅶㅏㄱ, ㅶㅚ다, ㅳㅟ다’는 표준어에서 는 ‘짝, 쬐다, 뛰다’로 변했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착, 초다, 튀다’로 변했다. ‘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제주에서는 ‘씨어머니, 씨아버지’, 쇠붙이의 ‘쇠’는 ‘쒜’ 로 어두에서 특이한 경음화 발음이 나타나기도 한다.
(4)기타
그 외에도 제주 방언은 ‘셋아덜[섿따덜], 지집아이[지집빠이], 팔월[팔뤌]’ 등에서처럼 하나의 앞 음절에 받침이 있고 뒤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일 때 앞 음절 종성을 뒤 음절의 초성 자리에 복사하여 발음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또한 제주 방언에서는 ‘ㅅ’불규칙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짓다, 긋 다, 잇다’와 같은 ‘ㅅ’불규칙 용언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올 때 ‘지어, 지으니’ 처럼 ‘ㅅ’이 탈락한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서는 ‘짓어, 짓으난/긋어, 긋으난/잇어, 잇으난’으로 활용한다.
제주어와 오사카 방언 - 통사론을 중심으로
제주어의 통사론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code라는 용어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 Code란 2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다중언어 사회에서 쓰이는 하나의 언어 혹은 언어의 변이형을 의미한다. 즉, 한국어의 표준어와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 모두 각각 code에 해당한다. 오사카 재일제주인 1세, 2세들이 무의식적으로 일본어(오사카 방언)와 제주어를 섞어 쓰는 것은 code switching이 아니라 code mixing에 해당한다.
일본어에서 'な'는 화자의 감정, 걱정, 바람 등을 표현하며, 화자의 어떤 일에 대한 단정을 나타내거나 주장을 강조한다. 또한 문장 중간에 쓰여,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숨을 고르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본어와 제주어가 혼용된 발화 속 'な'는 제주어의 종결어미 '-아/어', '-ㅂ서', 연결어미 '-난(니까)', '-ㄴ디(ㄴ데)', 명사, 복수형 접미사, 조사, 접속사 등 매우 다양한 말과 결합한다.
도쿄 방언, (김보향 (2020), <오사카 지역 제주어 화자의 언어 혼용에 관한 연구 - 제주어 기반 발화의 일본어 ‘な’ 혼용을 중심으로 - >, <<언어학연구>>, 25:1, 23-38)
현재 제주어 사용 현황
육진 방언
육진방언과 고려말 - 통사론을 중심으로
육진방언과 고려말의 형태적 특징을 비교하면, 주격 조사, 목적격 조사, 여격 조사, 관형격 조사, 도구격 조사 등의 사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주격 조사의 경우, 육진 방언에서는 '이'가 사용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고려말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어 표준말에 나타나는 조사 '는'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 주로 '르'라는 목적격 조사가 사용되나, 육진 방언에서는 '우'라는 목적격 조사가 사용되기도 한다.
육진 방언에서는 여격 조사로 'ㄹ/르', '게', '게르'가 사용된다. 고려말에서는 여격 조사로 '르', '게루', '인데루'가 사용된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 관형격 조사는 생략되기도 하고,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는 '이', 자음으로 끝난 경우에는 '가'가 사용된다.
육진 방언과 고려말에서는 '방향'을 나타내는 도구격 조사에 '르', '으르/을르', '우르', '으루/을루' 등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아래의 a, b는 육진방언, c, d, e는 고려말 예문이다.
상대방 높임 표현의 경우, 육진방언에서는 '서'가 주로 사용되고, 고려말에서는 '소'가 사용된다. 또한, '합쇼'체에 해당하는 존대의 서술형 종결 어미의 경우, 육진 방언에서는 '다'가 사용되고, 고려말에서는 '꾸마'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내리다(나에요)'와 '내꾸마(나에요)'와 같이 나타난다.
20세기 초 연해주 한인들이 사용했던 육진방언, 다른 함경도방언과의 접촉으로 인한 육진방언의 분화,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이후의 고려말 정착 등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모국어와 러시아어 간의 접촉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한국인을 위한 철자 교과서”에 실린 육진방언 자료이다.
육진 방언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어와 접촉했고, 초창기에 완전히 낯선 언어인 러시아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어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고려말은 오랫동안 러시아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한인들의 러시아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러시아어에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려말과 러시아어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고려말은 러시아어에 동화되는 양상을 띤다. 고려말에서 러시아어 단어에 한국어 형태소를 붙여 다양한 어휘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과 달리 연해주 육진 방언에서는 수사와 명사의 결합, 격 사용 등에 있어 러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표준어
표준어 제정
한국어의 표준 규정은 크게 한국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있다.
한국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는 규범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모두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당시의 서울 방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조선 건국 이래로 서울이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서울 지역의 언어가 공통어의 역할을 했고, 이것이 표준어로 규범화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맞춤법에 대한 규정이지 어떤 어휘나 문법을 표준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는 조선어(한국어) 보급을 위해서는 표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때의 표준어 규정의 대원칙은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였다. 그리고 1935년부터 표준어 어휘 사정 관련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물은 1936년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으로 결실을 맺었으며, 9457개 단어에 대해 표준어, 준말, 비표준어, 한자어 등으로 분류하였다.
사정 원칙에 있어서도 “서울말로써 으뜸을 삼되, 가장 널리 쓰이고 어법에 맞는 시골말도 적당히 참작하여 취하였다.”고 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학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편찬해 어휘의 완전한 규범화를 꾀했으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관련자가 전부 일제 경찰에 잡혀가 무산되었다.
한글학회 변천과정
표준어 정립에 큰 공을 세운 한글학회가 어떠한 변천과정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타임라인이다.
해외 방언
고려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를 고려말이라고 부른다.러시아 혁명 전 연해주의 한인 신문,잡지,교과서는 '대한국'또는 '한국','한인'이라는 말을 썼지만 러시아 혁명 후가되는 1920년대부터는 '고려','고려인','고려말'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애국계몽운동시기가 끝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이 전개되면서 '고려'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이주 후에는 조선,고려라는 말을 함께 썼으나 구소련의 해체 이후 공식적으로 고려,고려인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려말,고려음식.고렷법(한민족의 전통 예법이나 관습),고렷글(한국어로 쓰인 글),고렷사람/고렷사름(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인),고려촌(한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등은 한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1)고려말의 어휘적 특징
- 어휘는 동북방언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어휘량은 매우 적다.고려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물의 명칭이나 개념은 러시아어 어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이주 후 언어정책적인 측면에서 창조적으로 고려말을 갈고 다듬어 부려 쓴다거나 또 새말을 만들어 쓰는 일이 없었으므로 고려말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거의 정체된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때문에 이주후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나 과학 기술 용어는 모두 러시아어를 쓰게 되었다.그러나 고려말 어휘가 있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러시아어를 쓰기 떄문에 습관적으로 러시아어 어휘를 쓰는 경우도 많다.
다음은 고려말 어휘의 예시이다. 끼생게:더부살이 낼래리:말을 마구 해대는 사람 수수깨애기:수수께끼 오마벨:불가사리 지정거리다:투정하다
(2)고려말의 통사적 특징
- (논문,도서관 책,답사를 통해서 고려말의 통사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였지만 통사론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고 아래의 내용이 전부이다..ㅠ)
- 통사적으로는 이중목적어 구문의 쓰임이 빈번하다는 점과 부정 부사 '아이(<아니)', '못'(모음 또는 'ㅎ'으로 시작하는 용언 앞에서는 '모')이 놓이는 위치가 특이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부정 부사는 합성어의 어기 사이에 놓이고 또 보조 용언의 앞에 놓인다.예를 들어서 떠 못 나오(떠나지 못하오),먹어 못 보오(못 먹어 보오).그리고 'ㄹ(또는 ㄴ) 것 같다' 구문은 의존명사 '것'이 없이 쓰이는데 이는 동북방언이나 고려말이 가진 보편적 특징이다.예를 들어서 안개 길 가툴하다(안개가 낄 것 같다).
고려말의 음운론
(1)고려말의 음성 특징
러시아어의 간섭으로 'ㄹㄹ'을 러시아어 유음 'Л[l]로, 'ㄹ'을 'Р[r]'로 조음하는 경향이 있다.또 어두 'ㅅ'를 [z]나 [c=ts]로 발음하기도 한다.[w]를 [v]로 조음하는 것도 러시아어의 영향이다.그리고 '지'를 '즈'와 '주'의 중간음 정도로 발음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나주다(나지다,없던 것이 새로 나타나다),가주다(가지다),-주(-지,부정어미) 등.
(2)고려말의 음운 체계
'죄'는 자음 뒤에서는 원순성이 약화되어 있다.예를 들어서 쇠고기를 쇠고기와 세고기 사이로 발음하는 것이다.그러다 어두 위치에서는 이중모음 [we]로 나타난다.예를 들어서 외국을 웨국으로,왼쪽을 웬짝이라고 발음하는 것이다.또 '쇠'를 '쇄'로 발음하기도 하는데 이는 육진방언의 영향이다.육진방언에서는 대체로 'ㅚ'가 'ㅙ'로 변화하였다.
(3)고려말의 음운 현상
1.구개음화 형태소 내부의 ㄷ(ㅌ) 구개음화는 완료되었다.그러나 아래 예처럼 특이하게도 비구개음화형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육진방언의 영향이다. 예:피 한고티두(피 한 방울도),빗고티(빗방울),물고치(물방울),오좀고치(오줌방울),다티다(다치다) 한편,형태소 경계(굴절)에서의 ㄷ구개음화는 원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나 몇 예가 보인다.'빋','곧',젙'은 그 주격형(또는 서술격 조사 '-이-' 결합형)이 언제나 [비디],[고디],[저티]로 실현된다.그러나 특이하게도 '낟'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 /낮/으로 교체된다.즉,부사격 조사 '-으르' 앞에서도 /낮/으로 교체되어 교체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예:낮으로 빼엡더마.그전에 싹 낮으로 베에.낮을르 빼서 싹 묶어서 이래 조배기로 햇놧스 음.그 담에 그담에는 마술게다두 실어딜이그.뱃단으 싹 낮을르 삐문,다른 걸르 무스거 빼에.그전이 직금 와서 깜빠이나 잇는두.(뜻:낫으로 베더군요.그전에 싹 낫으로 베어.낫으로 베어서 싹 묶어서 이렇게 15단씩 무지를 지어 놓았지.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말 수레 따위로 실어들이고 볏단을.싹 낫으로 베면,다른 걸로 뭘 베어(=낫 외에는 벼를 벨 것이 없었다는 말).그전이,지금 와서 콤바인이나 있는지.)
현대 고려말 사용 현황
현재의 고려말은 그 기반에 육진방언적 요소가 잔존해 있는데 보수적인 육진방언의 음운특징은 함북방언의 영향으로 함북방언의 음운특징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고려말은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발전하여 공용어로 쓰이는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고,또 러시아어라는 전혀 이질적인 언어와 접촉해 옴으로써 자신의 안에 러시아어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고 급기야는 그 러시아어에 압도되어 사멸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koine라 하기도 어렵다.
koine:한 언어에 속한 여러 지역방언들이 상호 접촉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면서, 어느 한 방언을 근간으로 하고 ㅇ기에 다른 방언적 요소들이 뒤섞인 것.
강제 이주 이전에 연해주에서 언어습득기를 보낸 사람들 즉,80대 중반 이상은 대체로 모방언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체로 70세 이하는 koine형태의 방언을 구사하며, 그 이후에(대체로 8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거의 고려말을 구사하지 못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한인공동체(집단농장)를 벗어나 도시로 진출하면서 고려말의 위상은 흔들리게 되었다.공동체에 남은 한인들은 주로 모국어를 썼지만 공동체를 벗어난 고려인들의 고려말은 가정방언(family dialect)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즉.밖에서는 지배언어(dominant language)이자 민족 간의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쓰고 집에서는 고려말을 쓰게 된 것이다.게다가 새로운 정치,경제,경제,문화 또는 과학 기술 관련 어휘들이 모두 러시아어로 되어 있으니 불가불 러시아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이 결과 집거지역이든 산거지역이든 지금은 대략 80세 이상의 노인층만이 고려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이들 노년층은 이중언어자이거나 현지 이민족의 언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다중언어자이다.이 노인층은 자신들끼리 만나 어울리거나 또는 단오와 같은 명절에 한인끼리 만나 대화를 나눌때만 고려말을 쓴다.가정에서는 러시아어와 고려말을 뒤섞어 쓰는 경우도 혹간 있지만 젊은 세대가 고려말을 모르니 러시아어를 쓸 수 밖에 없다.70대는 어느 정도 듣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고려말이 매우 서툴다.러시아어와 초보적인 고려말 어휘를 뒤섞어 쓰는 경향이 있고 러시아어 조음 습관에 젖어 있어 발음이 명료하지 않다.한인 집거지역에서 사는 이들은 도시에서 사는 이들보다 사정이 좀 낫다.이렇게 된 까닭은 80대 이상의 세대는 이주와 정착 및 독소전쟁의 와중에서 한인들만의 지역 공동체 안에서 모국어를 쓰고 자랐지만 70대 이하는 대체로 1950년대의 안정된 사회 환경에서 러시아어로 공부하고 새로운 사회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본국과의 접촉도 없는 데다가 한국어 교육마저 일찍이 폐지되었고 또 사회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관련 어휘도 증가하여야 하나 그 자리를 러시아어가 메운 까닭에 고려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이주 초기에는 모국어로 쓴 문학 관련 출판물도 나왔고 고려일보 <레닌기치>와 같은 신문이 지금까지 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고려말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고려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다.카자흐스탄과 탈디쿠르간이다. 지도에 보라색으로 표시를 하였다.
-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약 130여 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다.각 민족은 자신의 민족어를 구사하기도 하나 민족 간의 대화에서는 러시아어를 쓴다.구소련이 해체된 후 카자흐어가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카자흐어도 많이 쓰인다.
- 탈디쿠르간
탈디쿠르간에는 6,000여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지만 이민족과 함께 사는 까닭으로 일상적으로는 러시아어를 쓴다.구술자는 50대의 아들.딸 및 30대의 손녀와 한집에 사는데 가족간의 대화는 러시아어로 이루어진다.50대의 자녀들은 간단한 한인 음식,친족명칭 등을 알 뿐이다.이들은 초보적인 고려말만 구사할 수 있다.
조선어
일제강점기의 중국 조선어
<중국에서의 조선어 방언분포 과정 및 양상 고찰>(김광수, 김홍매, 2022)에서는 '조선어'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비롯한 요녕성 일대, 중국 전지역에 분포한 모든 한국어 방언을 총칭하는 술어라 하였는데, 필자는 이에 동의하여 여기에서도 그렇게 정의하도록 하겠다.
조선어 방언분포는 조선인들의 중국 동북으로의 이주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이주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이주 초기(연도 제시하기)
이주 초기 조선인들의 이주 노선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표 넣기)
또한 이주 초기 연도별 재만 조선의 출신은 다음과 같았다.
(표 넣기)
1910년 이전에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지역들에 이주한 조선인은 대부분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의 이주민이 제일 많았다. 조선인들 중에는 제주도 출신도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주요 방언들이 모두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동북 방언(정평 이북의 함경도 방언), 동남 방언(주로 경상도에서 쓰이는 방언), 서북 방언(주로 평안도와 자강도에서 쓰이는 방언. 황해도의 멸악산맥 이북 지역과 안악, 은율, 송화, 신천 등 서북 해안 지역의 방언도 서북 방언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부 방언(경기 방언, 충청도 방언, 황해도 남부의 방언, 강원도 방언의 총칭), 서남 방언(전북의 대부분, 전남의 동부인 구례와 광양 일대, 그리고 전남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전북의 고창 등에서 쓰이는 방언)이 주로 쓰였고, 제주 방언은 그만큼 쓰이지 않았다.
2. 한일합병 이후
1910년 8월, 일본은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동북의 조선인 인구가 63만 900여 명이었는데 연변지역 4개 현에 40만 9400여 명, 길림, 장춘 지역에 2만 4100여 명, 안동, 통화 지역에 5만 500여 명, 심양, 철령 지역에 9만 7100여 명, 여순-대련 지역에 1700여 명, 북만주에 4만 4400여 명, 기타 지방에 1000여 명이 분포하게 되었다.
이주 조선인의 출신 지역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순서대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함경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북간도에, 평안도와 경상도 출신 이주민은 주로 서간도에 자리를 잡았다.
이 시기 조선어 방언 분포 지역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함경도 방언 지역: 연변 지구, 목단강 지구, 합강지구의 일부 지방(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통화 지구의 장백 지방
평안도 방언 지역: 단동 지구, 무순 지구, 심양 지구, 영구 지구, 철령 지구, 통화 지구(장백 지방 제외)
경상도 방언 지역: 장춘 지구, 길림 지구, 사평 지구, 송화강 지구(하얼빈 시 포함), 수회 지구, 합강 지구(목단강 지구와 인접하여 있는 일부 지방 제외) (출처: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언어사>>, 민족출판사, 1995, 678쪽.)
현대 조선어 음운론
중국 조선어 음운론 연구가 미비한 관계로 요녕성의 조선어에 대한 내용만 실었음을 밝힌다.
중국 요녕성은 중국 조선족이 거주하는 산재 지구로써 평안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이 주로 사용되며 방언섬들도 존재한다.
요녕성의 심양시, 무순시, 본계시, 단동시, 반금시, 영구시는 주로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며, 철령시, 안산시는 주로 경상도 방언이 사용된다.
1. 모음의 변화
(1) 모음 'ㅏ', 'ㅓ'의 앞모음화: 모음 'ㅣ' 역행 동화
요녕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남.
가마 > 가매
처녀 > 체네
부스럼 > 부스레미
두드러기 > 두드레기
할머니 > 할매
할아버지 > 할배
엄마 > 엄매
(2) 모음 'ㅣ'가 'ㅟ'로, 'ㅟ'가 'ㅜ'로 바뀌는 현상
평안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남. 즉, 심양시, 무순시 등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에서 들을 수 있음.
사마괴 > 사마귀 > 사마구
'사마괴'는 '사마귀'로의 변천하는데, 중세의 'ㅟ'는 이중모음으로써 'ㅜㅣ'로 발음되었다. 당시부터 평안도에서는 앞의 'ㅜ'만 발음되었고, 그것이 현대 방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방긔'가 '방구'로, '글픠'가 '글푸'로, '바퀴'가 '바쿠'로 발음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3) 단모음의 이중모음화
여기서 단모음의 이중모음화는 단모음 'ㅐ'가 평안도에서 'ㅏㅣ'로 발음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세에 단모음 'ㅐ'는 이중모음이었는데, 중세 국어의 흔적이 아직까지 평안도 방언과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방언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넣기)
개 > 가이
고양이 > 괴 > 과이
새 > 사이
넷 > 너이
(4) 모음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
경상도 방언에는 모음 'ㅡ'가 자음 'ㅅ, ㅈ, ㅊ'와 결합될 때 모음 'ㅣ'로 변화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는 중세 국어에 존재하였던 아래아와 관련된 현상이다. 자음 'ㅅ'와 반치음과 결합된 아래아는 모음 'ㅡ'로 변하고, 그 후 다시 'ㅣ'로 바뀌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상도 방언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ㅈ', 'ㅊ'과 결합되었던 아래아가 'ㅣ'로 발음된다. (아래아 > ㅡ > ㅣ) (황대화, <력사적 모음 <<`>>의 변화에 대하여(2)>, <<중국조선어문>> 1999년 제3호, 1999, 11쪽.)
하지만 평안도 방언 등에서는 어음운론적 특성으로 인해 아래아가 'ㅣ'까지로 변천하지 않고, 'ㅡ'로 남아있다고 한다. (동 논문 인용)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습관 > 십관
부스럼 > 부시럼
가슴 > 가심
즐겁다 > 질겁다
<평안도 방언에서 유래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
기침 > 기츰
짐승 > 즘승
점심 > 점슴
심심하다 > 슴슴하다
(5) 반모음 j의 탈락
이중모음 'ㅕ'와 'ㅠ'가 자음 'ㄴ', 'ㅅ', 'ㅎ'와 결합할 때 반모음 [j]가 탈락하는 현상이다. 이는 평안도 방언에서 발견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평안도 출신 이주민의 비율이 높은 심양시, 무순시 등에서 발견된다.
숭늉 > 숭눙
흉년 > 훙넌
흉측하다 > 훙축하다
양념 > 양넘
훌륭하다 > 훌룽하다
(6) 이중모음 'ㅢ'의 분화 - 경상도
2. 자음의 변화
(1) 대부분의 요녕 지역에서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음.
니불
니마
령감 > 넝감
리혼 > 니혼
(2)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는 현상
구개음화란 치음 'ㄷ', 'ㅌ'이 모음 'ㅣ'나 반모음 [j]로 시작하는 모음을 만날 때 구개음 'ㅈ', 'ㅊ'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평안도에서는 치음이 구개음으로 변화하지 않고 원 상태를 유지한다.
당마 (장마)
지나다 (디나다)
가물티 (가물치)
[가티] (같이[가치])
짠디 (짠지)
경상도 김치 (짐치)
방언 교육 및 보존 방안
2005년 1월 27일 제정된 국어기본법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제1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의 향상과 지역어의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법 조항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국가도 방언 보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언이 처음에는 국어정책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방언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일 뿐 정책적인 접근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런 방언이 관심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였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방언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고 그 무렵 사회 분위기는 방언을 긍정적으로 보는 추세 였다.
민경이: 고려말의 보존 방안(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