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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정치 교류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관계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청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은 조선은 이후로도 청과의 사대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한국이 일본에 의한 침탈의 과정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전근대 시기처럼 청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나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일본과 함께 조선의 정치에 다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갑신정변_1884년을 계기로 잠시나마 청이 일본보다 조선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우위를 넘겨주게 된다. 이후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다.


일제 공동의 적을 둔 두 국가의 우호 관계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둘 모두 일본 제국주의라는 공동의 적을 둔 입장이 되면서 다시금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다. 많은 한국의 독립 단체와 독립 투사들이 만주와 상해 등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독립단체들의 자금 및 세력이 미약하여 자력으로는 독립 운동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을 바탕으로 해방 이전까지 꾸준하게 독립 운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중국의 항일 세력에 직접적으로 군대를 지원하는 등 상호 간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양국 모두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영별로 또는 다같이 합세하여 협력하는 양상을 보인다.


해방 직후 적대관계로 돌아서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온다. 신탁 통치 기간이 지나고 여러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좌익과 우익 계열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남한과 북한 정부가 각각 수립되며 완전한 분단이 이루어진다. 이때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을 필두로 하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당연하게도 공산권이 중국에서는 같은 공산권인 북한의 정부 수립을 승인하게 되면서 남한과는 강력한 적대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UN군의 진격에 밀려 올라가는 북한에 중공군을 직접 투입해 줌으로써 남한의 북진을 저지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과는 철저한 적대관계를 이루게 되고, 대한민국 정부의 강력한 반공주의에 따라 중국과는 거의 수교가 단절되었다.


냉전 종식과 함께 다시 수교를 시작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참가하게 되면서 양국의 관계가 강력한 적대 관계에서 점차 완화되었다. 이후 1989년부터 시작된 냉전 종식의 영향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해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랜 적대 관계를 깨고 다시 수교를 시작한다. 물론 수교를 하였다고 해도 완전히 사이가 좋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공주의 시대의 적대 관계보다 현재의 관계가 훨씬 우호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갈등이 지속되다


중국과의 수교 이후 현재까지 경제적으로는 큰 변화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무역에 있어서 2020년 기준 중국은 세계 최대 교역국가이자 수출대국이고, 수입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로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2020년 전세계 수출 중 중국의 비중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이외의 부문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지속적인 동북공정을 진행하며 역사적으로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으며, 2020년대 들어서는 문화에 있어서도 문화공정을 진행하며 김치, 한복 등 한국의 문화를 중국의 문화라 주장하며 지속적 갈등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더하여 여전히 그 영향이 남아 있는 중국발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외교적 압박 및 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민간 여론이 극도로 나빠진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