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華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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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중국 음.

개설

화음(華音)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향음(鄕音)의 상대어로서, 한자의 중국 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화음이 한자의 중국 음이라는 것은 여러 문헌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1435년(세종 17)에 문례관(問禮官)변효문(卞孝文)이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돌아와, "신이 또 조서(詔書)를 읽을 때 화음(華音)을 쓸 것인지를 물었더니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다만 전하와 군신들이 알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미 이를 알고 있으니, 마땅히 향음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세종실록』 17년 3월 15일). 또한 1447년(세종 29)에는 신숙주(申叔舟)가 『동국정운(東國正韻)』「서(序)」에서, "우리나라는 안팎 강산이 저절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화음(華音)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라고 하였다(『세종실록』 29년 9월 29일). 여기서 화음은 모두 한자의 중국 음을 뜻한다.

변천

한자음이 향음과 화음으로 달리 발음된다는 인식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어졌다. 박성원(朴性源)이 1747년(영조 23)에 간행한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에서 각 글자의 아래 오른쪽에 화음을 기록하고, 왼쪽에 동음을 병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조대에는 이 책에 어제(御製) 「서문」을 붙여 다시 간행하였는데, 「서문」에서 정조는 "요즘 선비들은 어리석고 급급하여 구차히 속음을 따라 잘못 읽으니, 초성·중성·종성의 3성과 자모 7음의 법이 있음을 또한 알지 못하고, 특히 화음이 옛날과 달라짐이 심하다. 즉 소위 전와(轉訛)된 것으로, 그러나 가히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성원이 편찬한 『화동정음』이 능히 그것을 바르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여기서도 물론 화음은 한자의 중국 음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 『동국정운(東國正韻)』
  • 강신항, 『수정증보 훈민정음연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3.
  • 이돈주, 『한자음운학의 이해』, 탑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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