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리(隣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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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이웃하는 마을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

개설

인리(隣里)는 서로 이웃하는 마을 또는 이웃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용어이다.

내용 및 특징

인리라는 용어에는 이웃 간의 화목과 상부상조를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컨대 병이 나서 논밭을 갈아 씨를 뿌릴 수 없는 사람은 이웃 사람과 친족으로 하여금 서로 도와서 그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였다(『태조실록』 3년 4월 11일).

또한 세종대에는 한성부와 형조(刑曹)에서 왕과 여러 신하가 모여 조회를 하고 정사(政事)를 보던 날인 아일(衙日)을 당할 때마다 각방(各坊)의 책임자인 관령(管領)과 인리로 하여금 범죄 행위자를 잡고 고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범죄자의 원수가 될까 걱정하여 고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세종실록』 27년 4월 23일).

변천

인리는 향촌 사회의 풍속을 지적하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다. 예컨대 세조대 대사헌(大司憲)양성지(梁誠之)는 소가 농사에 꼭 필요한 가축인데도 당시 소의 도살이 지나치게 많이 행해지고 있다면서, "지난날에는 소를 잡는 도적[宰牛賊]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거골장(去骨匠)이라 칭하고, 여염의 곳곳에 (백정이) 섞여 살면서 소를 잡아도 크고 작은 인리에서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여 인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세조실록』 13년 1월 4일).

조선초기에는 이전 시대의 생활 풍속을 음사로 규정하여 단속하려는 의도에서도 인리라는 용어가 구사되고 있다. 예컨대 성종대 예조(禮曹)에서는 사치를 금하는 조목을 올리는데, 그 조목에서 "근래에 서인(庶人)의 집에서는 마시기를 숭상하여 절도가 없습니다. 심지어 의복을 빨래한다든가 재계하고 제사하는 정도라도 마을을 벗어날 일만 생기면 인리를 불러 술과 안주를 가지고 길 위에서 맞이하여, 마냥 취하도록 마시고 도로에서 춤추며 남녀가 서로 농지거리를 하면서 지극히 음탕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20명 이상이 떼를 지어 술을 마시면 더욱 엄하게 금하소서. 또 사족(士族)의 부녀가 혹 영전(迎餞)을 빙자하여 산간의 계곡에서 잔치를 베풀고 취한 뒤에 부축을 받으며 돌아와 방탕함이 막심하니, 또한 규찰을 더하여 금법을 범한 자는 실행(失行)한 것으로 논죄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성종실록』 3년 1월 22일).

그러나 중종대 이후가 되면 전국적으로 향약 시행 논의가 전개되면서 향약 내용에서 인리간의 화목, 친척간의 화목이 강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참고문헌

  • 이규대, 『조선시기 향촌 사회 연구』, 신구문화사, 2009.
  • 이해준, 『조선시기 촌락 사회사』, 민족문화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