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골장(去骨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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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牛馬]를 사사로이 도축하여 짐승의 뼈를 골라내거나 가죽을 벗겨 가죽신을 비롯한 각종 피물(皮物)을 제작한 노비 신분의 장인.

개설

고려시대 이래 마소를 도축하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화척(禾尺), 그들을 조선시대에 호적에 편입시켜 부른 백정(白丁), 마소의 가죽을 벗겨내는 일을 하던 피장(皮匠) 혹은 속칭 갖바치는 모두 거골장(去骨匠)이다. 백정이 북방이나 남방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외래 거주민으로서 천시된 반면, 거골장은 양인이나 천인을 가리지 않고 사사로이 마소를 도축하여 형벌을 받아 노비로 전락한 사람이어서 백정과 구분하여 신백정(新白丁)이라고도 한다. 거골장을 노비로 삼는 규정은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하여 1461년(세조 7) 법제화를 시도하였다. 1470년(성종 1)에 가중 처벌을 규정한 뒤 1474년(성종 5)에 비로소 노비로 삼는 규정이 정해졌다. 그러나 『경국대전(經國大典)』이나 『대전속록(大典續錄)』에는 실리지 않았으며, 1543년(중종 38)에 간행된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비로소 노비로 삼는 규정이 등재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 거골장은 다음과 같은 신역(身役)을 하였다. 첫째, 사대부 가문에서 혼인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사련소(司臠所)에 청해서 소를 잡았는데(『성종실록』 5년 2월 7일), 거골장이 사사로이 가축을 도축하였다. 그들은 자기 소유나 타인 소유의 마소를 사사로이 도축하거나, 병에 들어 죽은 소나 말을 관가에 신고하지 않고 죽이면 형벌을 받았다. 둘째, 가축의 고기를 팔았다. 거골장은 가축을 죽인 후 짐승의 뼈를 골라내고 나머지 고기를 판매하였다. 셋째, 마소의 가죽을 벗겼다. 마소의 가죽으로 가죽신이나 가죽옷 등을 만드는 것은 거골장과 구분하여 피장이라 한다. 그들이 생산한 가죽은 북이나 장구 등의 악기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넷째, 고기의 지방으로 납촉(蠟燭)을 만들었다.

변천

고려시대에 화척은 떠돌아다니며 마소를 도살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였다. 이에 조선초기 1406년(태종 6), 이들이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6년 4월 24일). 특히 세종대에 화척이 소를 사고팔고 몰래 잡아먹는 것을 금지하는 기록이 보인다(『세종실록』 2년 11월 7일). 세종은 재인(才人)과 화척의 업이 천하고 칭호가 특수하여 백성들이 이들과 혼인도 안 하고 함께 섞여 살지 않는 것을 보고 가엾게 여겨 이들을 백정으로 개칭하게 하였다(『세종실록』 5년 10월 8일). 이들은 기존 백정과 구분되는 신백정 혹은 양색백정(兩色白丁)이라 불렀다. 세종은 이들 신백정에게 토지를 주고 호적에 올려 정주시켰다(『세종실록』 17년 8월 27일).

1470년 형조에서는 앞서의 규정에 더하여 가중 처벌을 입법하였다. 거골장 중 초범(初犯)은 장 100대 3년, 재범(再犯)은 장 100에 몸에 글씨를 새기는 형벌인 자자(刺字)를, 삼범(三犯)은 장 100에 얼굴에 글씨를 새기는 형벌인 경면(黥面)을, 사범(四犯)은 목을 매달아서 처형하는 처교(處絞)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성종실록』 1년 3월 3일). 1474년 12월에는 사헌부의 상소문[箚子]에 의해 노비로 만드는 조치를 입법하였다. 곧 소와 말을 사사로이 죽인 사람에 대해서는 양인과 천인은 물론 전 가족을 통행이 빈번한 도로의 제읍(諸邑)과 제역(諸驛)에 정속(定屬)시켜 노비가 되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거골장은 노비가 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성종실록』 5년 12월 7일).

그래도 범법자가 많아지자 1477년(성종 8)에 사헌부에서는 더욱 가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사사로이 소와 말을 죽인 사람은 장 100을 결장(決杖)하고 전 가족을 절해의 고도에 있는 관노비(官奴婢)로 정속하도록 형량을 더욱 높인 것이다.

이러한 규정들이 법적으로 발효되었는지에 관한 사례들은 발견되지 않고, 1484년(성종 15)에 편찬된 『경국대전』이나 1491년(성종 22)에 편찬된 『대전속록』에는 실리지 않았다. 『대전속록』을 발행한 이후 1542년(중종 37)까지의 수교 중에서 법으로 삼을 만한 것을 뽑아 1543년(중종 38)에 간행된 『대전후속록』에 가서 비로소 정식으로 법전에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속록(大典續錄)』
  •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 문영철, 「고려말 조선초 백정의 신분과 차역」, 『한국사론』 26, 1991.
  • 박종성, 「조선 백정의 사회적 불만과 사회화」, 『사회과학연구』 16, 2003.
  • 지승종, 「조선 전기의 형벌 노비」, 『한국학보』 72호. 1993.
  • 한희숙, 「조선 태종, 세종대 백정의 생활상과 도적활동」, 『한국사학보』 6.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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