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典製)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전제 |
한글표제 | 전제 |
한자표제 | 典製 |
관련어 | 궁관(宮官), 내명부(內命婦), 상궁(尙宮), 여관(女官) |
분야 | 정치/행정/관직·관품 |
유형 | 직역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임혜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전제(典製)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8년 윤2월 27일, 『세종실록』 10년 3월 8일 |
개설
내명부는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이 중 내관은 왕의 후궁이며 궁관은 여관(女官)으로 지칭되던 궁녀 조직이다. 궁관은 왕의 시위(侍衛)와 궁중 실무를 맡았으며, 이 중 전제(典製)는 옷의 재봉을 담당하는 직무를 수행하였다. 종7품 궁관으로 상공(尙功)을 보좌하였다.
담당직무
전제의 직무는 의복과 재봉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정6품 상공의 지시와 감독을 받아 그 직무와 분량을 할당받았다. 전제는 침방(針房)에서 왕과 왕비의 의대(衣襨)뿐만 아니라 이불과 베개를 제조하였고, 그 밖에도 궁궐에서 소용되는 각종 의복을 제조하였다. 주로 왕실 구성원들에게 소용되는 의복 등을 만들기 때문에 국가의 의례가 시행될 때도 필요한 의상을 준비하였다. 왕실의 의례 중 친잠례(親蠶禮)에는 전제가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성종대 친잠 의주를 만들 때 『통전(通典)』의 사제(司製)가 광주리를 받들고 여기에 뽕잎을 따서 넣는다는 것을 참고로 하였다. 성종대 치러진 친잠례에서 전제의 상관인 상공은 갈고리를 잡았고, 전제는 광주리를 잡고 있다가 광주리에 뽕잎을 받아냈다. 이때 참석한 전제는 1명이었다(『성종실록』 8년 윤2월 27일). 영조대 친잠례에서도 상공과 전제는 왕비의 갈고리와 광주리를 준비하여 의식에 참여하였다.
변천
세종대 내관과 궁관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사제(司製)로 관직명이 정해졌으며, 정6품으로 인원은 1명으로 규정되었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종7품으로 품계가 낮아졌고, 전제로 관직명이 변경되어 법제화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친잠의궤(親蠶儀軌)』
- 金用淑, 『朝鮮朝 宮中風俗 硏究』, 일지사, 1987.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