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교식법(宣明交食法)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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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선명교식법 |
한글표제 | 선명교식법 |
한자표제 | 宣明交食法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선명교식법(宣明交食法)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1년 8월 2일 |
『선명력(宣明曆)』에서 일식과 월식을 추보(推步)하는 방법을 지칭함.
개설
교식법(交食法)은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위치와 시각을 추산하는 방법을 말하며, 다른 말로는 교회술(交會述)이라 일컫는다. 『선명력』의 역산법은 제7장으로 분장되어 있는데, 첫째는 태양과 달의 운동 주기를 기준으로 절기(節氣)와 삭의 위치를 정하는 기삭(氣朔) 추보술이고, 둘째는 태양의 적위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계절 변화를 다루는 발렴(發斂) 추보술, 셋째는 태양의 운동과 위치를 역산하는 일전(日躔) 추보술, 넷째는 달의 운동과 위치를 역산하는 월리(月離) 추보술, 다섯째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물시계로 시각을 측정하는 구루(晷漏) 추보술, 여섯째는 일월식을 추산하는 교회(交會) 추보술, 일곱째는 다섯 행성의 운동과 주기를 측정하는 오성(五星) 추보술이다. 이렇게 교회 추보술, 즉 교식법은 고대 역법을 구성하는 주요 부분이다.
내용 및 특징
일월식이 태양의 길인 황도(黃道)와 달의 운행 궤도인 백도(白道)가 만나는 교점에서 발생하므로 일월이 이 교점에 접근하는 정도가 식분(食分)의 깊이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 일월의 교점이 일정한 한도를 벗어나면 일월식이 발생하지 않게 되므로, 삭망 시 일월이 교점에서 떨어진 정도를 계산하는 것이 교식 추산의 제1 요건이 된다. 이 교점에서의 거리를 거교도(去交度)라 하는데, 당나라의 『대연력(大衍曆)』과 『선명력』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월평행으로 거교도를 나눈 수치로 대체하였는데 이를 입교정일(入交定日)이라 한다. 평행운동 하는 달[入交常日]이 교점과 정삭망 사이의 황경차(黃經差)를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날수를 말한다.
일월식을 예보하는 교회 추보술은 측정 방법이 매우 어려워 고려가 선명력을 도입하여 사용하면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경험치로 보정한 『선명교식법(宣明交食法)』을 조선초기 서운관에서까지 보관하여 왔음을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정인지(鄭麟趾)가 『고려사(高麗史)』 「역지(曆志)」서문에서, 고려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도입하였음에도 교식법에 관한 1절만은 여전히 선명력의 옛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그에 따라 일월식의 예보 시각이 실제와 맞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역산을 맡은 일관(日官)들이 자체의 노력과 지혜로써 앞뒤를 맞추려 애를 썼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결국 고려왕조가 끝날 때까지 개정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자탄의 기록과 일치한다. 곧 조선초기가 되어서도 『수시력』의 일월식 교회술은 『선명교식법』에 의거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종은 정인지, 정흠지(鄭欽之), 정초(鄭招) 등에 명하여 『수시력』을 깊이 연구한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편찬토록 하였다. 이후 칠정산법을 바탕으로 실제 계산례를 보인 1444년(세종 26) 이순지(李純之)와 김담에 의해 칠정산내편정묘년교식가령(七政算內篇丁卯年交食假令)이 작성되었고, 1457년(세조 3) 12월 24일에는 이순지와 김석제(金石悌)에게 일월교식추보법을 의정토록 하였는데 이것이 『교식추보법가령(交食推步法假令)』으로 간행되었다. 이렇게 교식법은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었다.
『교식통궤(交食通軌)』를 인용하여 일식이 밤에 발생하는 것과 월식이 낮에 발생하는 것까지 예보토록 하였으며, 만일 1428년(세종 10) 4월 초1일의 일식이 대생광(帶生光)이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면, 평양부 사람들이 미리 구식(救蝕)하고, 명나라 사신 조천(趙泉) 등에게 고하여 해가 복원(復圓)되기를 기다려서 아침밥을 먹게 하였을 것이며, 이렇게 하였다면 조천 등이 반드시 우리나라에 예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 21년 8월 2일). 대생광은 그날의 일출입 이전에 일식의 후반이 시작되어 일출입 시각에 복원에 이르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경우를 이른다. 이는 대생광의 교식조차도 천의(天意)가 반영된 현상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즈윈, 2008.
- 김일권, 『국역고려사』,동아대학교 石堂學術院 , 경인문화사, 2011.
- 陳美東, 『中國科學技術史』 , 天文學券, 科學出版社, 2003.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上中下 , 上海人民出版社,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