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객(지대)(使客(支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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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자기 관할 구역을 지나는 관료들을 위하여 지출하는 비용.

개설

사객은 자기 관할 구역을 지나는 관료들을 말하고, 지대는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물이나 일용품 등을 공급하는 비용을 말한다. 사객지대는 군읍이 놓인 대로·중로·소로 등 교통상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사객의 왕래 빈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경우 71개 고을을 12등급으로 나누어 최하 쌀 10석(石)에서 최고 120석에 이르도록 차등을 두어 지급하였다.

내용 및 특징

대동법 시행 이전, 공물(貢物)을 현물로 납부하던 공납제(貢納制)에서 각 군현은 아록전(衙祿田)·공수전(公須田)·관둔전(官屯田)을 경영하여 관아의 지출 경비[官需]를 감당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체의 필요 경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동법 시행 이후, 대동세 중 유치미로 사용되는 영읍소용미(營邑所用米)는 기존의 아록전·공수전·관둔전에서 거두는 수입에 비해 그 규모가 크게 책정되었다.

영읍소용의 규모가 증가한 이유는 2가지였다. 하나는 원래 아록전·공수전·관둔전에서 지급되던 항목의 지출 규모를 현실화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래 아록전·공수전·관둔전에서 지급되지 않던 항목들에 대해서 새로 대동미를 지급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경우는 사객지공미(使客支供米)와 감사지공미(監司支供米) 액수가 늘어난 것이 해당되었다. 감사지공미는 감사가 각 군현을 순시할 때 접대하기 위한 비용이고, 사객지공미는 사객을 접대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다. 충청도 각 군현의 액수를 모두 합하면, 이 두 가지는 각각 980석 정도였다. 왕을 대신하여 도를 순력하는 감사나 중앙관료로서 지방에 내려온 사객의 경우, 지방 수령으로서는 이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수령은 재정적으로 호조(戶曹)의 명령에 태만할지언정 감사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감사가 수령을 평가하여 점수 매기는 고과(考課)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접대 비용은 관수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부담은 군현의 백성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대동법에서는 영읍소용비 가운데 사객지공미와 감사지공미의 액수를 늘려 책정하였다.

변천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각 군현이 접한 길의 대소(大小)에 따라 크게는 100석에서 적게는 30석씩을 사객지대로 지출하였다. 이것은 현물 공납제 때의 지급액보다 상당히 증가한 양이었다. 작은 마을[殘邑]의 1년 관수(官需) 전체가 100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과 지방 사이 안정적 교통을 위하여 기울였던 노력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옥근, 『조선 왕조 재정사 연구 Ⅲ』, 일조각, 1988.
  • 이정철,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역사비평사, 2010.
  • 조병로, 『한국 역제사』,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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