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팔장법(三十八將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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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일행(一行) 선사(禪師)가 제창하였다고 하는 좌향(坐向)에 따라 묘지의 길흉을 따지는 법.

개설

풍수 이론에는 크게 두 가지 유파가 있다. 하나는 형세파(形勢派)이고 다른 하나는 방위파(方位派)이다. 조선조에서 방위파 이론은 호순신(胡純臣)의 『지리신법(地理新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지리신법』 이외에도 다양한 방위파 이론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삼십팔장법이다. 성종 때 처음 언급되어 조정에서 논란이 일었던 풍수법이다.

내용 및 특징

삼십팔장법이 조선에 등장하게 된 것은 1488년(성종 19)의 일이다. 당시 지리학제조김석산(金碩山)이 당나라 일행 선사가 쓴 삼십팔장법에 따르면, 폐비 윤씨 묘가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오(午)방이 수파(水波)이며, 오방과 미(未)방의 사이가 정(丁)방으로 장남이 되는데, 정방 땅의 반이 오방 땅으로 들어가 흉지가 되지 않은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면서 문제가 된다(『성종실록』 19년 4월 12일).

삼십팔장법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리신법』 이론과 전혀 다른 길흉화복론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지리신법』에 따르면 길지가 삼십팔장법에 따르면 흉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대 최고의 풍수 실력을 지녔던 문신과 상지관윤필상(尹弼商)·서거정(徐居正)·임원준(任元濬)·최호원(崔灝元)이 김석산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의견을 정리한다. 성종대와 연산군대에 이르기까지 상지관으로 활동하였던 최호원은 풍수의 법이 좌청룡(左靑龍)은 남자를, 우백호(右白虎)는 여자를 위주로 하는데, 삼십팔장법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5산(五山)이 각각 그림이 있어서, 혹은 청룡(靑龍)이 삼녀위(三女位)가 되고 백호(白虎)가 삼남위(三男位)가 되어 기존의 풍수술과 상충되는 데다가 정본이 없이 필사본만 있어서 믿을 것이 못 된다고 결론을 짓는다(『성종실록』 19년 4월 13일).

변천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 가운데 삼십팔장이란 용어는 『동림조담(洞林照膽)』에 언급이 되지만, 구체적 내용이 없이 다른 책에서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조선조 지리학 고시과목이 아닌 것으로 『지리신서(地理新書)』라는 풍수서가 『조선왕조실록』에 인용되는데, 그 『지리신서』에 삼십팔장법이 자세히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지리신서』의 내용으로 추정할 뿐이다. 또한 삼심팔장법은 당나라의 풍수승 일행 선사에게서 유래한다고 하나 고증되지 않았다. 삼십팔장은 조선 성종 때 단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진다.

참고문헌

  • 『동림조담(洞林照膽)』
  • 『지리신서(地理新書)』
  •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 이몽일, 『한국풍수사상사』, 일지사, 1991.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