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각(秘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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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내각(內閣)에 서적을 보관하던 관청의 명칭.

개설

비각(秘閣)은 비서각(秘書閣) 혹은 비부(秘府)이라고도 하는데, 왕실에서 문서와 서적을 보관하는 내각으로 왕실도서관의 기능을 하였다. 고대부터 왕실에서 도서를 장서(藏書)하는 곳을 두어 이를 비각이라고 하였다. 비각은 내각과 외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후기 규장각(奎章閣)을 내규장각과 외규장각으로 한 것도 이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비서각은 당나라의 관명에서도 보이며, 고려시대 비서성(秘書省)의 하부 조직이었다. 비서성은 경적(經籍)과 축소(祝疏)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구체적으로는 제초제향(齊醮祭享)의 문서 및 서적의 구입·교환, 편서(編書), 교서(校書), 간서(刊書), 장서(藏書), 시강(侍講), 제고(製誥)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비서각은 고려 예종 때 설치되어 거듭 변화를 겪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1463년(세종 9) 5월 내각(內閣)을 비서각이라 고치면서 확대되었다. 여기에 관직으로는 대제학(大提學)·제학(提學)·직각(直閣)·응교(應敎) 등의 문과 출신 관원 각 1명씩 총 4명을 두었다. 이후 교서관(校書館) 등에 소속되었다가 정조대에 규장각으로 이전되었다.

내용 및 특징

1458년(세조 4) 예문관(藝文館)에서 소장한 서적은 모두 비각에 간수하고 있었는데, 고려조 이래로 구매하여 얻거나 찾아서 모은 것이었다. 전적들은 경(經)·사(史)·자(子)·집(集)·잡서(雜書)를 나누어 3방(房)으로 만들어 전수(典守)하되, 직제학(直提學)이나 직관(直館) 중 1원(員)을 구임(久任)으로 하여 총괄하도록 했다(『세조실록』 4년 7월 24일).

원래 고려는 990년(고려 성종 9)에 세운 수서원(修書院)을 시작으로 각종 도서의 수집·보존·정리·활용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제도를 갖추었다. 이 가운데 왕실의 서적들은 비서각·비서성·문덕전(文德殿)·중광전(重光殿)·청연각(淸讌閣)·보문각(寶文閣)·천장각(天章閣)·임천각(臨川閣) 등에서 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비서성의 업무 중 일부는 조선 왕조 초기에 교서관으로 계승되었다. 교서관은 조선시대 경적(經籍)의 인쇄와 교정·향축(香祝)·인전(印篆) 등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서, 교서감(校書監) 또는 운각(芸閣)이라고도 하였다. 교서관은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다(『태조실록』 4년 12월 7일). 이후 조선후기로 가면서 국왕별로 왕실도서관 기능의 관서가 신설되거나 변경되는데, 정조대 규장각이 대표적이며, 이때 비각이 소속되었다.

참고문헌

  • 배현숙, 「고려시대의 비서성」, 『도서관학논집』7, 한국도서관정보학회, 1980.
  • 임지혜, 「고려시대 왕실문고에 관한 고찰」,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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