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탱(佛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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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보살, 신중(神衆) 등을 그려 넣은 족자 형태의 불화.

개설

불탱(佛幀)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족자를 만들어 거는 불화의 한 종류로, 불교에서는 족자 형태의 정(幀)을 ‘탱’으로 발음한다. 한국에는 중국, 일본의 사찰과 달리 신앙의 대상인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관련 탱화를 거는 후불탱화(後佛幀畵)가 유행하였다. 후불탱화는 불전에 봉안되어 불상을 장엄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예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연원

최초로 불화가 그려진 기록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불화가 그려진 시기는 부처가 살아 있었을 때부터이며, 불화가 그려진 장소는 최초의 불교 사원인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이다. 기원정사의 불화는 벽화 형태로 건물의 용도와 기능에 맞추어 제작되었는데, 사원의 문 양쪽에는 몽둥이를 든 야차를, 문 옆에는 부처께서 신통력을 행하신 그림과 인간이 천·인·아귀·축생·지옥에서 생사를 윤회하는 모습을 그린 오취생사륜도(五趣生死輪圖)를 그렸다고 한다.

부처를 존상화 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은 부처가 열반한 후 500년 뒤인 1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불상의 제작과 관련되어 그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불화는 기원전 2~3세기경에 제작된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이다.

내용 및 변천

(1) 삼국시대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화가 그려졌는데 삼국시대의 불화로는 고구려 장천 1호분의 「불상예배도」, 담징(曇徵)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일본 호류지의 금당벽화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화를 그리던 화승의 일부가 그림을 관장하는 채전(彩典)에 소속되어 국가에서 필요한 사찰의 벽화, 탱화, 변상화 등을 제작하였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 시기의 불화는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사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寫經變相圖)」가 유일하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불화 관련 기록을 통해 당시 불화의 특징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솔거(率居)는 경주 분황사에 관음보살도, 진주 단속사에 유마상을 그렸으며, 경주 남항사에는 「십일면관음보살도(十一面觀音菩薩圖)」와 미륵보살도가 있었다. 경주 흥륜사 금당에는 금으로 그린 불화가, 금산사 금당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현신수계도(彌勒菩薩現身授戒圖)」가 있었다. 당시의 불화들은 대부분 벽화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관음보살도와 미륵보살도가 많았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수도 개성에 10대 사찰을 창건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진전사찰(進展寺刹)로 이후 개성에만도 70여 개에 달하는 사찰이 건립되고 수많은 귀족의 원당(願堂)이 설립되었다. 원당에서는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 기일재(忌日齋) 등의 다양한 법회가 열렸으며 법회를 위한 의례용 불화가 왕실과 귀족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채색화 총 160여 점, 사경 및 변상화가 80여 점, 벽화 2점이다. 고려불화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족자 형태의 탱화는 대부분 세로 2m, 가로 1m 내외의 크기로, 왕실과 귀족들의 원당에 봉안되거나 법회에 사용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 건축이 주를 이루는 한국 건축의 특성상 남아 있는 수는 적으나 고려시대에 불전 장엄용 후불화는 벽화의 형식이 많았다. 주제로는 관음보살도·지장보살도·아미타불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려불화의 양식을 살펴보면, 예배화에서는 화면 상단에 부처를 크게 강조하고 하단에는 대좌를 중심으로 보살들을 배열하는 상·하 2단 구도를 엄격히 지켰으나 수월관음도, 아미타내영도 등의 단독상의 경우 비교적 자유로운 자세로 측면을 그렸다.

(3) 조선전기

조선초기 강력한 억불숭유 정책에도 불구하고 불심이 깊은 일부 왕과 왕비, 왕실 일원 등은 친족의 죽음 앞에 명복을 기원한다든지 왕비의 회임(懷妊) 등을 발원할 때에 고려의 불교적 전통을 따랐다. 궁궐 내에는 문소전(文昭殿)이라는 불당이 설치되었고 여승들이 기거하는 정업원(淨業院)자수궁(慈壽宮)이 건립되어 죽은 선왕과 대군의 명복을 빌며 불화를 제작하여 봉안하였다. 또한 호불 군주였던 세조가 훙어하자 새로 불탱을 제작해 빈전(殯殿)에서 점안법회를 베풀기도 하였다(『예종실록』 즉위년 11월 8일).

조선전기에 제작된 불화로 제작 연대가 뚜렷한 작품은 1465년(세조 11) 효령대군(孝寧大君), 월산대군(月山大君), 영응대군(永膺大君)의 부인 송씨 등의 시주로 제작된 「관경십육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 태종의 손자 옥산군(玉山君)의 부인 윤씨가 발원한 「수월관음도」 등이 대표적이다.

명종대 문정왕후(文定王后) 섭정기에는 왕실의 비호 아래 불화 제작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현전하는 조선전기 불화는 총 130여 점인데 대부분 문정왕후 섭정기에 제작된 것이다. 1563년(명종 18) 명종의 외아들이던 순회세자(順懷世子)가 요절하자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의 장수와 태자 탄생을 기원하며 경기도 양주에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는데, 당시 400여 점의 불화를 함께 조성하였다.

문정왕후가 발원한 불화의 삼존도는 고려시대의 전통인 2단 구도를 그대로 적용하였으나 협시보살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커졌다. 주제 면에서도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화를 계승하는 한편 삼장보살도와 감로도가 새롭게 생겨났는데, 이 두 불화는 죽은 자를 위한 천도 의식이나 수륙재를 지낼 때 쓰이는 의식용 불화이다. 이는 고려시대에 시행하던 여러 천도 의식이 수륙재로 단일화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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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후기

조선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유재란 3번의 난 이후 불교는 다시 중흥을 하게 된다. 외적이 침입했을 때 사명(四溟) 대사(大師)를 비롯한 승군(僧軍)의 활동은 유생들에게 불교 교단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찰의 중건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불화 제작도 함께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 시기 불화 제작에는 일반 백성과 승려들이 시주, 발원자로 참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불교 의식집들이 간행되면서 사찰의 구성 형식이 상단, 중단, 하단의 삼단신앙(三檀信仰)으로 확립되면서 불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는 불화가 전각 내에 봉안용 탱화로 제작되는 형식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조선전기까지 후불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벽화가 거의 사라지고 탱화를 후불벽에 거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탱화’, ‘불화’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으며 ‘불탱’이라고 기록하였다.

괘불화의 조성도 활발해졌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과 역병, 기근 등으로 죽은 영혼들을 천도하는 영산재(靈山齋), 예수재(預修齋), 수륙재(水陸齋) 등 야외 법회가 늘어나면서 10m가 넘는 거대한 괘불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사찰의 중창 불사와 불화의 제작에는 많은 화승이 참여하면서 불화 조성 외에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모든 공사에 빠짐없이 동원되었다. 화승들은 지역별로 유파를 형성하여 조선후기에는 4~5개의 화승 유파가 각 지역의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면서 조선후기 불화계를 이끌어갔다.

17,18세기에 제작된 탱화에는 권속들이 부처를 둥글게 에워싸는 군도 형식의 구도를 가진 불화들이 정착되는데 이는 조선 불화의 전형이 되었다. 인물의 표현도 조선전기의 가늘고 섬세한 선에서 벗어나 건장하면서도 당당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왕실 발원 불화는 1790년(정조 14)에 제작된 용주사 「삼세여래체탱(三世如來體幀)」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수원 용주사(龍珠寺)를 창건하면서 대웅전 후불탱화를 그리는 일에 당시 최고의 화원 김홍도가 참여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이르면 18세기 불화에서의 당당하고 원만한 인물 표현이 점차 형식화되고 비례가 맞지 않는 모습으로 불화의 표현 기법이 도식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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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정희,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 돌베개, 2009.
  • 문명대, 『한국의 불화』, 열화당, 1981.
  • 박은경, 『조선전기 불화 연구』, 시공사, 2008.
  • 장희정, 『조선후기 불화와 화사 연구』, 일지사, 2003.
  • 탁현규, 『조선시대 삼장탱화 연구』, 신구문화사, 2011.
  • 홍윤식, 『한국불화의 연구』,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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