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木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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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활자.

개설

목자(木字)는 나무를 조각하여 인쇄에 쓰일 낱개의 활자를 만든 것을 말하며, 목활자라고도 한다. 목활자로 조판하여 인쇄한 것을 목활자본 혹은 목활자판이라고 말한다. 목활자 인쇄술에 관한 처음의 기록은 북송의 경력 연간에 필승(畢昇)에 의하여 교니활자(膠泥活字) 인쇄술이 발명되었을 때 이미 시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나오나, 당시에는 실용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목활자 인쇄술이 실용에 성공한 것은 원대의 왕정(王禎)에 이르러서였다. 왕정은 공장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설계로 30,000여 개의 목활자를 제작하였으며, 그 목활자로 1311년(원 지대 4)에 『정덕현지』를 시험적으로 인쇄하였는데, 60,000여 자를 사용하여 1개월이 걸리지 않고도 100부가 인성(印成)되어 그 효과가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정의 저술 『농서』 권22의 부록에 있는 ‘조활자인서법(造活字印書法)’에는 사운(寫韻)·각자(刻字)·거자(鋸字)·수자(修字)·감자(嵌字) 등을 비롯하여 조륜(造輪)·취자(取字)·안자(安字)·인쇄(印刷)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는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이운지」 권7 도서장방(圖書藏訪)에 목각 활자법 및 취진판식(聚珍板式)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목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찍었는지 전하는 기록이나 활자 창안 초기의 인본(印本) 실물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현전하는 것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395년(태조 4)에서 1397년(태조 6) 사이에 사급(賜給)된 『개국원종공신녹권』의 인출에 사용된 목활자이다.

내용 및 특징

목활자 제작법에 관한 기록은 원나라 왕정이 지은 『농서』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농서』에서는 활자를 만들어서 인쇄하는 방식으로, “① 작고 가는 톱으로 잘라서 각각 하나의 활자를 만든다, ② 작은 칼을 사용하여 사면(四面)을 수정하고 서로 비교하여 크기와 높낮이를 같게 한다, ③ 그 후에 활자를 배열하여 행(行)을 만들고 깎아서 만든 죽편(竹片)을 끼운다, ④ 판에 활자가 이미 가득 차면 톱밥을 채워 넣고 단단하게 조여 활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 후에 먹을 사용하여 인쇄한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각 공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운(韻)을 써서 글자를 새기는 방법인 사운각자법(寫韻刻字法), 글자를 잘라 내어 수정하는 방법인 수자수자법(鎪字修字法), 활자판에 활자를 넣는 방법인 작회감자법(作盔嵌字法), 윤반을 만드는 방법인 주륜법(造輪法), 활자를 뽑는 방법인 취자법(取字法), 인판에 활자를 배열하여 인쇄하는 방법인 작회안자쇄인법(作盔安字刷印法)을 기록하였다.

특히 글자를 새기는 법에서는 각기 자양(字樣)을 교감하여 초사(抄寫)가 완비되면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선택하여 활자의 모양을 정하게 하고, 크고 작은 각 문자의 자양을 쓰게 하여 판 위에 붙이고 공장에게 명하여 새기게 한다. 그리고 자르는 경계선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톱으로 자른다. 또한 ‘지(之)’·‘호(乎)’·‘자(者)’·‘야(也)’ 등의 글자 및 숫자, 아울러 자주 사용되는 자양은 각기 독립된 일문(一文)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이는 ‘윤반을 만드는 법’ 등의 공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적용하였던 일반적인 목활자 제작 방식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한국의 목활자와 그 인본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는 실증적인 자료와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이 밝혀졌으나, 그 간행 지역이 다양하게 분포되고 종수가 많아서 전체적인 분석에 미진한 부분이 많다.

현존하고 있는 활자 인쇄 용구나 활자 실물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지겟다리획인서체목활자, 계명대학교 도서관 소장 목활자,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목활자, 경북대학교 도서관 소장 영주 이산신씨목활자(榮州伊山申氏木活字)·임하임씨목활자(臨河林氏木活字)·진양하씨목활자(晉陽河氏木活字),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산청화계리 청송심씨목활자,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목활자 등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지겟다리획인서체목활자는 인쇄 용구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목활자는 3종류 이상의 활자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섞여진 것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지방의 족보나 문집 등의 간행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천

편리성과 경제성이라는 목활자 장점을 바탕으로 지방에서는 목활자 인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많은 종류의 목활자 인쇄본이 남아 있지만 목활자의 제작에 관련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제작 주체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조선시대 지방에서 이루어진 목활자본의 인출은 활자를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인출하기도 하였지만, 왕실이나 중앙 관서의 활자 인쇄 활동에 직접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지방에서 인출된 목활자본의 자형이 중앙 관서의 금속활자본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초기 목활자 제작 기록으로는 1395년(태조 4) 백주지사서찬(徐贊)이 활자를 만들어 서적원에 바친 목활자인 서적원자(書籍院字)에 대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활자의 크기나 자수는 알 수 없지만 서적원자로 『대명률직해』를 인쇄한 기록이 있다. 서적원자는 조선 건국 초에 서적원이 활자 인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을 때 지방 관서에서 만들어 바친 목활자로, 당시 필요했던 서적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는 점에서 인쇄 문화사적으로 의의가 크다.

인본이 실물로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개국원종공신녹권』 인출에 사용된 녹권자(錄券字)가 있다. 이는 1395년에서 1397년 사이에 사급된 녹권의 인출에 사용된 목활자이다. 그 밖에도 초기에 중앙에서 제작된 목활자로는 1447년(세종 29)에 완성된 『동국정운』의 간행에 사용된 동국정운자(東國正韻字), 1455년(단종 3)에 『홍무정운역훈』의 간행에 사용된 홍무정운자(洪武正韻字), 인수대비(仁粹大妃)와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주관한 불경 간행에 쓰인 인경자(印經字) 등이 있다.

중앙에서 사용된 목활자는 임진왜란 이후에 훈련도감·실록청·교서관 등에서 제작하기도 하고 시급히 필요한 서적의 사용에 쓰였다. 중앙에서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를 중심으로 하고 필요에 의하여 목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반면 지방에서는 주로 조선후기에 금속활자가 부분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신속성·편리성·저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목활자가 지역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다양하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특히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 목활자로 간행된 책의 종수는 1,000여 종이 넘게 추산되고 있으며, 조성된 시기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어 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지방 제작의 목활자로서 그 활자명이 정해진 것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16세기의 것으로는 1538년(중종 33) 나주에서 『성리대전서절요』를 찍을 때 사용한 금성자(錦城字), 1561년(명종 16) 성주에서 『회암서절요』를 찍어 낼 때 사용한 임고서원활자(臨皐書院活字)가 있다. 이 시기에 목활자본을 인출한 서원으로는 서천의 명곡서원, 인동의 오산서원, 성주의 천곡서원 등이 있으며, 1600년(선조 33)에는 경주부에서 여강서원의 목활자를 사용하여 『맹자대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호음자(湖陰字)는 개인이 만든 목활자로 1573년(선조 6) 정사룡(鄭士龍)의 문집 『호음잡고』의 인출에 쓰인 목활자이며, 추향당자(秋香堂字)는 16세기 후반기 이후 평양감영 내의 별채 건물인 추향당에서 찍은 활자이다. 비슷한 시기에 전주부에서는 전주갑인자체목활자(全州甲寅字體木活字)로 『결송유취』를 간행하였다.

그 외에도 1591년(선조 24) 남원부에서 윤현(尹鉉)의 『국간집』을 인출하는 데 쓰인 남원필서체목활자(南原筆書體木活字)도 있으며, 16세기에 을해자(乙亥字)·을유자(乙酉字)·병자자(丙子字)의 소자체 목활자로 인출한 소형본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활자명이 정해진 것 중에 17세기의 것으로는 1621년(광해군 13)경의 문계박자(文繼朴字), 1626년(인조 4) 나주에서 『설문청공독서록』의 인출에 사용된 나주자(羅州字) 등이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목활자 인쇄가 더욱 성행하였고, 특히 18세기 후반부터는 민간 목활자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더욱 증대되었으며 20세기 중반까지도 그 명맥을 이었다. 18세기의 것으로 그 명칭이 정해진 지방 목활자로는 1791년(정조 15) 『오산집』과 1792년(정조 16)에 『목민대방』을 찍은 기영필서체자(箕營筆書體字), 1798년(정조 22) 『문소세고』를 찍은 성천자(成川字)·고흥갑인자체목활자(高興甲寅字體木活字)·무주인서체목활자(茂朱印書體木活字)가 있다.

19세기의 것으로는 훈몽삼자경자(訓蒙三字經字)·보광사자(寶光社字)·야소삼자경자(耶蘇三字經字)를 비롯하여 호남 지방의 것으로 전주지겟다리획인서체자·창평필서체목활자(昌平筆書體木活字)·광주필서체목활자(光州筆書體木活字)·광주대치사필서체목활자(光州大峙祠筆書體木活字) 등이 있다. 그중 전주지겟다리획인서체자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조선후기의 지방 목활자로 주로 호남 지방의 서책을 인출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 활자 실물과 인쇄 용구가 현전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각 지방의 서원이나 사찰에서도 목활자에 의한 서책 인출이 이루어졌으며 사찰의 목활자로 보광사자가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민간에서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목활자를 만들어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 활자체는 금속활자 중에 교서관인서체자(校書館印書體字)·정리자(整理字) 또는 전사자(全史字) 등을 모방한 것이 많으며, 대부분 인서체(印書體)이지만 전통적인 필서체(筆書體)의 활자도 있어서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한 편이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목활자 인쇄를 이용하여 많은 종류의 서책을 간행하였고, 이후로 20세기 중엽까지 목활자 인쇄의 기술과 전통이 이어져 여러 지방에서 개인들의 문집이나 족보들을 간행하는 데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소규모의 상업적인 출판으로 개인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필요한 족보나 개인 문집 등을 간행하는 데 활용되었다.

의의

목활자는 금속활자, 목판 등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 인쇄 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목활자 인쇄는 금속활자나 목판 인쇄에 비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서적의 생산이 가능하였으므로 조선시대 각 지방에서 사용되었으며, 그 인본의 종류가 다양하다.

현존본으로 살펴볼 때 14세기 말부터 시작된 목활자 인쇄는 15~17세기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주제 분야의 서적 인쇄가 이루어졌고, 특히 문화적 향유층이 일반민들에게까지 확산되는 18~19세기에 이르러 문집과 족보를 중심으로 성행하였으며 20세기 중반기까지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목활자는 현재 그 기원이나 구체적인 제작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분야이다. 목활자는 조선시대에 관에서 금속활자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보조적인 역할로 많이 사용되었다. 지방에서는 주로 조선후기에 금속활자가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목활자는 목판 인쇄에 비하여 빠르고 편리하며 저비용으로 인쇄가 가능하였기에 지역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또한 금속활자보다는 만들기가 쉬웠기 때문에 전후의 복구 기간 중에는 훈련도감자(訓鍊都監字)의 예처럼 수시로 만들어 금속활자를 대체하기도 하였다. 인쇄 업무에 경험이 없던 병사들이 만든 것이라 글자 모양이 바르지 않고 자획도 고르지 않으며 인쇄도 정교하지 못한 편이었지만, 인쇄 업무를 관장하던 교서관의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 그 업무를 대신 수행하여 문화 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쇄 문화사적으로 의의가 큰 것이었다. 이러한 목활자는 18세기 이후로 민간에서도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지식의 보급과 전파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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