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印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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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석판 등을 이용하여 찍어 낸 책.

개설

활자판이나 석판에서 인출한 서적이나 이미 새겨진 목판으로 단순히 종이와 먹물만을 준비하여 찍어 낸 서적을 말한다.

내용 및 특징

인본(印本)은 간본(刊本)과 상대되는 용어로, 이 둘을 합하여 간인본(刊印本)이라고 한다. 본래 간본은 목판을 이용하여 인출한 서적을 의미하지만, 활자 인쇄가 널리 보급된 이후인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활자본까지도 포함하였다. 인본은 활자를 사용하여 인출하거나 석판을 이용하여 찍어 낸 책 및 그 밖의 방법으로 인출한 모든 책을 뜻하는데, 이미 새겨진 목판으로 단순히 종이와 먹물만을 준비하여 찍어 낸 서적까지도 포괄한다.

먼저 인본이 활자본만을 지칭하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1782년(정조 6)에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먼저 활자로 한 책을 찍어 내고, 이어 인본(印本)으로 재목(梓木)에다 번각(翻刻)한 후 봉모당(奉謨堂)에다 봉안하였는데(『정조실록』 6년 11월 24일), 여기서 말하는 인본은 정유자본(丁酉字本)인 금속활자본을 의미한다. 또한 조선후기에 작성된 장서목록인 『보문각책목록(寶文閣冊目錄)』, 『서향각서목(書香閣書目)』, 『이문원봉안총록(摛文院奉安總錄)』, 『봉모당봉장서목(奉謀堂奉藏書目)』, 『봉모당후고봉장서목(奉謀堂後庫奉藏書目)』, 『서고장서록(西庫藏書錄)』, 『융문루서목(隆文樓書目)』의 경우에도 목판본은 간본으로, 활자본은 인본으로 명시하여 간본과 인본의 구별을 엄격히 하였다.

인본이 간인본의 의미로 사용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1443년(세종 25)에 일본국 사신이 대장경(大藏經)의 인본을 요구했던 기록(『세종실록』 25년 11월 18일)과 1461년(세조 7)에 명의 예부(禮部)에 보낼 자문(咨文)의 내용 중에 서사(書肆)의 인본인 『홍무정운』에는 착오가 많아 문서를 작성할 때에 실수할 수 있으니 관본(官本) 1건을 황제에게 아뢰어 반사해 달라고 요청한 기록(『세조실록』 7년 4월 6일)에서는 인본이 활자본이 아닌 목판에서 찍어 낸 책을 의미한다. 그 밖에 1530년(중종 25)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최세진(崔世珍)이 중국에서 『황극경세서집람(皇極經世書集覽)』의 인본을 찾지 못하고 간신히 서본(書本)을 구하여 진상(進上)한 기록(『중종실록』 25년 12월 20일)에서는 인본이 필사본에 상응하여 간인본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814년(순조 14)에 간행된 『홍재전서(弘齋全書)』의 제179~184권에 수록되어 있는 「군서표기(羣書標記)」의 경우에도 목판본과 활자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간본으로 통칭하였다.

참고문헌

  • 『보문각책목록(寶文閣冊目錄)』
  • 『봉모당봉장서목(奉謀堂奉藏書目)』
  • 『봉모당후고봉장서목(奉謀堂後庫奉藏書目)』
  • 『서고장서록(西庫藏書錄)』
  • 『서향각서목(書香閣書目)』
  • 『융문루서목(隆文樓書目)』
  • 『이문원봉안총록(摛文院奉安總錄)』
  • 『홍재전서(弘齋全書)』
  • 천혜봉, 『한국서지학』, 민음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