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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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우황청심원 |
한글표제 | 우황청심원 |
한자표제 | 牛黃淸心元 |
상위어 | 의학(醫學) |
하위어 | 감초(甘草), 길경(桔梗), 당귀(當歸), 맥문동(麥門冬), 방풍(防風), 백복령(白茯苓), 백작약(白芍藥), 백출(白朮), 산약(山藥), 서각(犀角), 시호(柴胡), 신곡(神麯), 우황(牛黃), 인삼(人蔘), 천궁(川芎), 행인(杏仁), 황금(黃芩) |
관련어 | 구미청심원(九味淸心元) |
분야 | 문화/의학·약학/처방 |
유형 | 약 |
집필자 | 김호 |
약재 | 백작약(白芍藥), 맥문동(麥門冬), 황금(黃芩), 당귀(當歸), 방풍(防風), 백출(白朮), 천궁(川芎), 시호(柴胡), 길경(桔梗), 행인(杏仁), 백복령(白茯苓), 인삼(人蔘), 신곡(神麯), 산약(山藥), 감초(甘草), 서각(犀角), 우황(牛黃) |
약효 | 뇌질환이나 중풍으로 정신이 혼미한 증세를 치료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24년 6월 25일 |
전통적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나 그런 조짐이 있을 때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던 구급약의 하나로서, 요즘에는 뇌 질환, 중풍 질환, 심장 질환, 신경성 질환에 두루 사용하는 처방.
개설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은 심기(心氣)가 부족하고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종잡을 수 없고, 혹 중풍(中風)으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며 가래가 끓고, 깨어나도 정신이 맑지 못하고 말이 어눌하며 구안와사(口眼喎斜)가 발생하고 손발을 쓸 수 없을 때나, 정신력이 약해져 감정의 변동이 심한 경우를 치료한다.
고려시대 왕실 의서인 『신집어의촬요방』에 중풍을 치료하는 약물의 하나로 우황청심원을 소개하고, 풍담으로 언어가 자유롭지 않고 정신이 황홀하고 어지러우며 가슴이 답답하면서 혼미한 증세를 치료한다고 했다. 또한 심기가 부족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자주 놀라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발작과 광란하는 증세에도 처방했다.
조선초의 『의방유취』에는 제풍(臍風)을 치료하는 약물로 우황청심원을 소개하고 있다. 말을 더듬고 마음이 불안하며 건망증이 심하고, 정신이 황홀하고 두통이 심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담(痰)이 잦고 정신이 혼미한 증세를 치료한다고 했다. 조선 왕실의 구급 약재 목록인 『언해납약증치방』에는 우황청심원이 중풍으로 말을 못하고 답답하며 담천으로 인한 열증 등 일체의 열병을 치료하고 갑작스런 중풍으로 인사불성이 되고 정신이 아득하여 말을 더듬고 구안와사의 증세가 나타난 경우 따뜻한 물에 한 알을 복용한다고 했다. 『의림촬요』에는 「중풍」조에 중풍으로 말을 더듬고 정신이 황홀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상한병처럼 열증이 나며 심기가 부족하여 정신이 일정하지 않은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의방활투』에는 『동의보감』을 인용하여 중풍으로 인한 인사불성과 정신이 혼미하여 언어가 막히고 구안와사가 생기고 수족이 자유롭지 못한 증세를 치료한다고 했다.
제조법
백작약(白芍藥)·맥문동(麥門冬)·황금(黃芩)·당귀(當歸)·방풍(防風)·백출(白朮) 각 1.5냥, 천궁(川芎)·시호(柴胡)·길경(桔梗)·행인(杏仁)·백복령(白茯苓) 각 1냥 2.5돈, 인삼(人蔘)·볶은 포황(蒲黃)·볶은 신곡(神麯) 각 2.5냥, 산약(山藥) 7냥, 볶은 감초 5냥, 가루 내어 볶은 대두(大豆)·육계(肉桂)·가루 내어 볶은 아교(阿膠) 각 1냥 7.5돈, 백렴(白歛)·구운 건강(乾薑) 7.5돈, 영양각(羚羊角) 가루·사향·용뇌(龍腦) 각 1냥, 서각(犀角) 2.5냥, 우황(牛黃) 1냥 2돈, 수비(水飛)한 웅황(雄黃) 8돈을 대추 1백 개를 고아서 껍질을 제거한 것과 섞어 환을 만든 후 금박을 입힌다. 한 번에 1환씩 따뜻한 물에 타서 먹는다.
효능
중풍으로 인한 인사불성과 구안와사로 수족이 자유롭지 못한 증세를 치료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승정원일기』에는 인조가 수라를 들지 못하고 기운이 매우 허약하자 이형익 등 의관들이 침과 더불어 우황청심원의 복용을 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영조가 어지럼증과 더불어 몸에서 열이 나며 번뇌가 심해 혹 누웠다가 혹 일어나는 등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초조해 하며 얼굴이 약간 부어오르자 의관들이 우황청심원을 처방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종에 임박한 정조가 번열이 번갈아 나타나자 용뇌안신환과 죽엽차와 우황청심원을 복용하였다고 나와 있다(『정조실록』 24년 6월 25일).
참고문헌
- 『신집어의촬요방(新集御醫撮要方)』
- 『의방유취(醫方類聚)』
- 『언해납약증치방(諺解臘藥症治方)』
-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
- 『의림촬요(醫林撮要)』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