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종(中神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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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의 7개 불교 종파 중 하나로, 중도종과 신인종이 통합된 종파.

개설

중신종(中神宗)은 조선 태종대에 중도종과 신인종이 통합되면서 성립하였다. 중도종은 중관(中觀) 계통인 법성종 계열의 종파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종파로서 성립되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신인종은 밀교(密敎) 계통의 종파로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유명한 신라의 명랑(明朗)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이전에 종파로서 성립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도종과 신인종은 모두 조선시대 초기에 그 명칭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하는데, 태종대에 불교의 11개 종파가 7개로 축소될 때 합쳐져 중신종이 되었다. 중신종은 이후 세종 연간에 7개 종파가 다시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화엄종(華嚴宗)·자은종(慈恩宗)·시흥종(始興宗)과 함께 교종에 편제되었다.

내용 및 변천

중도종과 신인종은 조선 태종대에 그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태종대에는 억불 정책이 본격적으로 단행되었는데, 1406년(태종 6)에 11개 종파에 속한 242개 사찰을 공인하고 해당 사찰에만 토지 및 노비의 소유를 허용하였다. 이때 11개 종파에는 중도종과 신인종을 비롯해, 조계종(曹溪宗)·총지종(摠持宗)·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법사종(法事宗)·화엄종·도문종(道門宗)·자은종·남산종(南山宗)·시흥종 등이 포함되었다. 그 당시 중도종과 신인종에 속한 사찰은 합쳐서 30개소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태종실록』 6년 3월 27일).

이듬해인 1407년(태종 7)에는 11개 종파를 다시 7개로 축소, 통합하였다. 조계종·자은종·시흥종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천태소자종과 법사종은 천태종으로, 총지종과 남산종은 총남종(摠南宗)으로 통합되었다. 도문종은 화엄종에 포함되었고, 중도종과 신인종은 중신종으로 합쳐졌다. 이때 자복사(資福寺) 88개를 산중의 명찰(名刹)로 대체하였다. 중신종의 경우에는 임실 진구사(珍丘寺), 함흥 군니사(君尼寺), 아주 동림사(桐林寺), 청주 보경사(菩慶寺), 봉화 태자사(太子寺), 고성 법천사(法泉寺), 배주 견불사(見佛寺), 익주 미륵사(彌勒寺) 등 8개 사찰이 새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이후 세종대인 1424년(세종 6)에는 기존의 불교 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폐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중신종은 화엄종·자은종·시흥종과 함께 교종에 편제되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興王寺大覺國師墓誌銘)」
  • 김갑주, 『조선시대사원경제연구』, 동화출판, 1983.
  • 김영수, 『조선불교사고』, 중앙불교전문학교, 193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김영수, 「오교양종에 대하여」, 『진단학보』8, 1937.
  • 김영태, 「오교구산에 대하여」, 『불교학보』16, 1979.
  • 김용태, 「조선전기 억불정책의 전개와 사원경제의 변화상」, 『조선시대사학보』58, 2011.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 春秋社,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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