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활(芼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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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에 올리는 국에 넣는 건더기로 미끌미끌한 채소.

개설

왕실 제향을 모실 때 올리는 국으로는 등갱(㽅羹)과 형갱(鉶羹)이 있다. 등갱과 형갱은 각각 3그릇이다. 각각 3그릇에는 소, 양, 돼지의 고기를 끓인 국물을 담는다. 조선에서는 양고기와 돼지고기에 비해 쇠고기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등갱과 형갱의 각각 3그릇에 모두 쇠고기로 끓인 국물을 담았다.

등갱은 다른 말로 대갱(大羹)이라고 하며 간을 맞추지 않았다. 형갱은 다른 말로 화갱(和羹)이라고 하며 오미(五味)로 간을 맞추고 미끌미끌한 채소인 모활을 보태서 끓였다. 모활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의 『예기(禮記)』, 『주례(周禮)』 등에서 등갱과 형갱을 설명하면서 모(芼)와 활(滑)에 대한 언급만 있기 때문에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이것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 예학적 논쟁이 있었다. 『의례(儀禮)』「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의 주석에서 정현(鄭玄)은 활은 근채(堇菜) 계통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여름에는 규채(葵菜)요, 겨울에는 환채(荁菜)를 쓴다고 했다. 환채에 대해 알지 못해 아욱인 규채를 대신하여 썼다[『세종실록』 오례 길례서례 찬실도설]. 숙종 때가 되면 아욱 대신에 미나리나 무에 육편(肉片)을 섞어서 썼다(『숙종실록』 43년 6월 21일).

북위(北魏) 가사협(賈思勰)은 『제민요술(齊民要术)』「갱확법(羹臛法)」에서 “육고기와 생선 그리고 순(蓴)을 넣은 국을 먹는다. 모갱(芼羹)의 채소로는 순채(蓴菜)가 제일이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모활로 가장 많이 쓰인 채소는 순채였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에서는 순채보다 아욱이나 미나리나 무를 사용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순채는 수련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연못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뿌리와 줄기가 옆으로 가지를 치면서 자라고 원줄기는 수면을 향해 가지를 치면서 길게 자란다. 어린 줄기에 우뭇가사리처럼 점액이 있는데 이 부분을 주로 먹는다. 조선시대에 봄이 되면 각도에서 순채를 채취하여 진상하였다. 경상도와 전라도와 같이 먼 곳에서는 순채를 물에 담아 오기 때문에 녹아 버리는 폐단이 있었다(『연산군일기』8년 4월 14일).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순채를 넣고 끓인 ‘순탕’ 만드는 법이 나온다. “갓 돋은 순을 뜯어 잠깐 데쳐 물에 담가 두고 천어(川魚)를 맹물에 많이 달여 단지령(단간장) 타고 순채 넣어 한소끔 끓여 초 쳐 달이면 가장 좋으니라. 붕어를 넣어 순갱(蓴羹)을 하면 비위가 약하여 음식을 내리지 아니하는 데 약이라. 순채를 꿀에 정과를 만들면 가장 좋으니라.”

연원 및 용도

모활의 모는 식용이 가능한 수초(水草)나 채소를 가리킨다. 『주례』「내칙(內則)」에서는 모활은 곧 모갱이라면서 채소와 여러 고기로 만든 국이라고 했다. 『주례』「천관(天官)」에서 ‘활’은 미끌미끌한 맛이라고 했다. 곧 활은 오미가 잘 어울린 상태를 가리킨다. 숙종 때 예조(禮曹)에서 형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환채(荁菜)도 알 수 없으니, 이제 도식에 따라 여름에 규(葵)를 쓰고 고례(古禮)에 따라 겨울에 근(菫)을 쓰되 시고 짠맛을 탄다면,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합니다.”고 제안했다(『숙종실록』43년 6월 21일). 이유(李濡)는 “형갱은 환이 어떤 물건인지 상고하여 옛것을 회복하되, 혹 그대로 미나리·무를 쓰더라도 반드시 고깃국을 주로 하고 짠맛과 신맛을 섞으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듯합니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숙종실록』43년 6월 21일). 이이명(李頤命)은 “형갱의 오미와 같은 것은 오히려 염매(鹽梅) 따위로 맛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숙종실록』43년 6월 21일). 하지만 이에 대한 확정을 하지 못했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순채와 관련된 고사로는 『진서(晉書)』「문원전(文苑傳)」 ‘장한(張翰)’에 나오는 순갱노회(蓴羹鱸膾)의 이야기가 유명하여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도 즐겨 사용하였다. 곧 사람의 일생은 뜻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거늘, 왜 고향에서 먼 곳까지 와서 관직과 명예를 바라고 있는가 하는 심정을 표현할 때 자주 언급하였다.

참고문헌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제민요술(齊民要术)』
  • 『예기(禮記)』
  • 『의례(儀禮)』
  • 『주례(周禮)』
  • 주영하, 『선비의 멋 규방의 맛 : 고문서로 읽는 조선의 음식문화』, 글항아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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