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공주(貞順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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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385년(고려 우왕 11)~1460년(세조 6) = 76세]. 조선 제 3대 임금인 태종(太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부마는 청주 이씨(淸州李氏)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이백강(李伯剛)이다. 태종의 첫 자녀이자, 세종(世宗)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정순공주(貞順公主)는 조선이 개국하기 전인 1389년(창왕 1) 태종이방원(李芳遠)과 원경왕후의 4남 4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으며,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거이(李居易)의 아들 이백강과 혼인하였다. 이어 이백강은 1400년(정종 2) <제 2차 왕자의 난> 때 아버지 이거이와 함께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종의 장녀는 정순공주에, 이백강은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다.[『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권6 「이백강(李伯剛)」],(『태종실록』 2년 11월 13일),(『문종실록』 1년 10월 17일)

그런데 1404년(태종 4) 이거이가 반역을 도모하였다고 탄핵되면서 이거이의 아들들인 태조(太祖)의 딸 경신공주(慶愼公主)의 부마 이애(李薆)와 정순공주의 부마 이백강도 이에 연좌되었다. 당시 태종은 이들이 공신이라는 점과 이백강의 경우 사위라는 점을 들어 극형에 처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태종실록』 4년 10월 18일),(『태종실록』 4년 10월 18일) 결국 이거이 및 이애·이백강 형제 등은 폐하여 서인(庶人)이 된 후 유배를 가는 것으로 처벌이 결정되었다.(『태종실록』 4년 10월 24일) 이때 대간(臺諫)에서는 정순공주와 부마 이백강을 이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태종은 받아들이지 않고 정순공주를 부마 이백강의 유배지인 동성(童城)에 함께 보내도록 하였다.(『태종실록』 4년 10월 24일),(『태종실록』 4년 10월 28일),(『태종실록』 4년 11월 1일) 그리고 이듬해인 1405년(태종 5) 부마를 서인으로 만들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부마 이백강은 직첩을 돌려받았다.(『태종실록』 5년 10월 2일)

이후 정순공주의 삶은 큰 부침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1418년(세종 즉위년) 부마 이백강은 청평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이는 부마가 부원군에 봉해진 첫 번째 사례이다.(『세종실록』 즉위년 9월 7일) 그리고 1451년(문종 1) 부마 이백강이 세상을 떠나고, 1455년(세조 2) 하나밖에 없는 사위 이계린(李系疄)이 세상을 떠났다.(『문종실록』 1년 10월 17일),(『세조실록』 1년 12월 8일) 이어 1460년(세조 6) 정순공주 또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세조실록』 6년 8월 25일)

한편 정순공주의 부마 이백강의 형은 태조의 딸 경신공주의 부마 이애였다. 즉 경신공주와 정순공주는 고모와 조카이자, 동서 간이었던 것이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에 있는데, 부마 이백강과 합장되었다.

정순공주는 부마 이백강과의 사이에서 1녀를 두었는데, 이계린의 처가 되었다.(『문종실록』 1년 10월 17일)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보감(國朝寶鑑)』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태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