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공주(慶愼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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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26(세종 8) = ?]. 조선 제 1대 임금인 태조(太祖)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이다. 부마는 청주 이씨(淸州李氏)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이애(李薆)이다. 정종(定宗)과 태종(太宗)의 친동생이자, 세종(世宗)의 친고모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태조와 신의왕후의 6남 2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조선이 개국하기 전에 태어났으며, 요동 공격에 나선 장수들의 가족을 볼모로 잡을 때 태조가 직접 경선공주(慶善公主)와 무안군(撫安君), 소도군(昭悼君)과 함께 어린 나이의 경신공주를 피신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태조실록』 총서 89번째기사] 부마는 이거이(李居易)의 아들인 이애인데, <제 1차 왕자의 난>과 <제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이를 인정받아 경신공주의 부마 이애는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었으나, 1404년(태종 4) 과거에 이거이가 반역을 계획하였다며 탄핵되면서 아들인 부마 이애도 이에 연좌되어 서인(庶人)으로 폐한 후 함주(咸州)으로 유배를 갔다.(『태종실록』 4년 10월 18일),(『태종실록』 4년 10월 24일),(『태종실록』 4년 11월 1일),(『태종실록』 14년 10월 6일) 그리고 이듬해인 1406년(태종 6) 태종은 대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애에게 고신을 돌려주었다.(『태종실록』 6년 윤7월 12일)

이후 경신공주는 큰 어려움 없이 살다 1426년(세종 8)에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 날 세종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거애(擧哀)하였다.(『세종실록』 8년 3월 22일),(『세종실록』 8년 3월 23일)

한편 경신공주의 부마 이애의 동생 이백강(李伯剛)은 태종의 장녀이자 경신공주의 조카인 정순공주(貞順公主)의 부마가 되었다.

성품

경신공주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타고난 성격이 유순하고 아름다우며, 마음가짐이 엄격하며 조심스러워서, 부호로 살면서도 검소하게 지냈고, 귀하게 되었으나 더욱 겸손하였다. 집안에 모범이 되어 일찍부터 집을 잘 다스리는 덕이 나타났으며, 남편을 협조하여 능히 국가를 창건한 공을 이루었도다.(『세종실록』 8년 3월 27일)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고읍 신원리에 위치한다.

경신공주는 부마 이애와의 사이에서 1남 이후(李厚)를 두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인재집(寅齋集)』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지두환, 『태조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