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원(朴在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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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23년(경종 3)~1780년(정조 4) = 58세].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 활동한 문신. 행직은 홍문관(弘文館)교리(校理)이다. 자는 이천(而川)이고, 호는 두암(斗庵)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박사복(朴師復)이며, 어머니 한산 이씨(韓山李氏)는 이병철(李秉哲)의 딸이다.

영조∼정조 시대 활동

1774년(영조 50) 52세의 나이에 식년(式年試) 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774년(영조 50) 9월 홍문관 수찬(修撰)으로서 천재지변을 이유로 재물 절약 등에 관하여 상소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다시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가 그 해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4월 교리가 되었다가 그 해 5월 다시 장령이 되었으며, 그 해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이 되었다. 이때 홍국영(洪國榮)의 누이가 정조의 빈(嬪)으로 들어가는 것을 극력 반대하여, 홍국영의 미움을 받아 고난을 겪다가 1780년(정조 4) 다시 사간원 헌납이 되고, 그 뒤 홍문관 교리가 되었다. 그 해 6월 22일 세상을 떠나니, 나이는 58세이다. 그의 성품에 관해서는 “성질이 깨끗하고 곧아서 세속을 따라 아첨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조실록』정조 4년 6월 22일 「박재원 졸기」]

시호와 후손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1789년(정조 13) 우의정(右議政)채제공(蔡濟恭)의 주청으로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추증되었다. 그 뒤 1801년(순조 1) 이조 참판(參判)에 추증되었고, 또 다시 이조 판서로 추증되었다. 첫째 부인 조씨(趙氏)는 조명원(趙明源)의 딸이고, 둘째 부인 이씨(李氏)는 이돈중(李敦中)의 딸이다. 자녀는 3남을 두었는데, 1자는 박종신(朴宗臣)이고, 2자는박종유(朴宗維)이며, 3자는박종경(朴宗京)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