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복(書筵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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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 서연(書筵)에서 강론을 들을 때 입던 옷.

내용

서연은 조선시대에 왕세자에게 경학(經學)을 강론하던 자리를 말하는데, 주연(胄筵)이라고도 한다. 서연이란 용어가 나타난 시기는 고려중기 명종 때이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는 경연(經筵)과 서연을 각각 설치하여, 서연에서 세자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것이 조선시대로 이어져 1403년(태종 3) 세자도 성균관에 입학하는 제도가 관례화되었으나 세자의 실제 교육은 서연에서 이루어졌다.

서연복(書筵服)은 왕세자가 서연에서 강론을 들을 때 입던 옷이다. 그러나 서연복이라고 할 뿐 실제로는 상복(常服), 시복(時服) 차림이므로 왕세자가 관례를 치르기 전에는 공정책(空頂幘)에 자적용포(紫的龍袍)를 착용하고, 책례 이후에는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착용하였다. 다만 3년 상중에는 서연의 복색을 소복(素服)으로 하였다.

한편 1626년(인조 4) 3월 예조(禮曹) 판서(判書)이정구(李廷龜)가 상례의 부당함을 들어 상소를 올리고 사직을 청하였는데, 그 가운데 “왕께서 졸곡(卒哭) 전에 백포(白袍)를 착용하시므로 왕세자가 서연에서 일을 볼 때에는 당연히 천담복(淺淡服)을 착용해야 하고, 졸곡 후의 복색 역시 차례로 강쇄되어 나가야 한다.”(『인조실록』 4년 3월 2일)라고 하여 왕세자와 서연복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세자의 복이 기년복이라고는 하나 현재 상중에 있으면서 천담복을 착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한 것 같다 하여 시행되지 않았다.

또한 1649년(효종 즉위) 6월 예조에서 『오례의(五禮儀)』에 근거하여 왕과 세자의 복장에 대하여 아뢰었는데 왕세자의 서연 복색인 백단령(白團領)·포과대(布裹帶)·공정책은 백포로 바꾸고 쌍옥도(雙玉導)도 아잠(牙簪)으로 바꾸어야 마땅하며, 세자가 강서할 때 공정책을 쓰지 않는다면 백세포(白細布)로 두 동계(童髻)를 싸고 소대(小帶)의 끈을 두 가닥으로 뒤로 늘어뜨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요청에 따라 그대로 따랐다[『효종실록』 즉위 6월 8일 6번째기사].

용례

殿下卒哭前視事 旣以白袍 則王世子書筵視事 當用淺淡服 卒哭後服色 亦當次次稍降(『인조실록』 4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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