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단령(裌團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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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으로 만들어진 단령(團領).

내용

단령은 옷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官服)으로, 관리들이 국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입었다. 색은 정해지지 않아 여러 가지 색이 사용되었지만 시대마다 유행한 색이 있었다. 648년(신라 진덕여왕 2) 김춘추(金春秋)가 당(唐) 태종에게서 단령을 받아 온 이래 조선시대까지 관리들의 상복(常服)으로 입혀져 관복이라고도 하며, 둥근 옷깃 때문에 원령(圓領)이라고도 한다.

1387년(고려 우왕 13) 6월 명제(明制)를 따라 새로운 관복 제도를 정했는데, 1~9품까지 사모(紗帽)를 쓰고 단령을 입었으며 품(品)의 차이는 대(帶)로 표시하였다. 색은 특별히 정하지 않았으며, 단령과 사모의 형태는 중국과 같았다. 1426년(세종 8) 상복으로 제정된 이래 조선시대 내내 관리들의 복식이 되었다. 착용은 사모와 단령·대·화로 이루어지며, 대로써 품계의 등위를 가렸다. 1454년(단종 2) 이후에는 흉배(胸背)로 상하를 가렸다.

조선전기 단령의 형태는 고려와 같았으나, 조선후기가 되면서 깃을 많이 파고 소매가 넓어졌다. 또한 옆에 있던 무를 뒷길에 붙이고 옷고름을 달았으며, 흉배의 크기도 작아졌다. 1884년(고종 21)에는 상복과 시복(時服)을 흑단령 하나로 간소화했다. 1895년(고종 32) 8월 10일에는 문관복 장식을 반포하여 대례복(大禮服)·소례복(小禮服)이 생겼으며(『고종실록』 32년 8월 10일), 흑단령의 소매 넓이로 대례복·소례복을 구별하였다. 1900년(광무 4) 단령을 양복으로 대치한 이후 단령은 지금까지 혼례복으로 남게 되었다.

겹단령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모두 7건으로, 1405년(태종 5)부터 1496년(연산군 2)까지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겹단령은 중국 사신 및 관리에게 내린 하사품이며, 직물은 목면·면포·필단으로 면과 비단을 사용하였고, 색상은 아청색·옥색·짙은 녹색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출토된 조선전기의 단령 유물은 모두 홑옷이다.

용례

賜兀良哈上萬戶金大帖木兒光銀帶一腰 萬戶柳遼何達魯花赤金都赤角帶一腰 又各賜木綿裌團領紬襦衣紬小衫單裙靴各一 都萬戶柳歸毛何都鎭撫柳也何千戶柳加乙毛鎭老古百戶好心波通事金哲等木綿直領笠靴各一『태종실록』 5년 3월 16일 1번째기사].

참고문헌

  • 유희경,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1.
  • 최은수, 『조선시대 백관의 단령』, 민속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