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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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군사 편제 단위의 하나로 군사 120명 전후로 이루어짐.

내용

임진왜란 기간 중 명나라의 척계광(戚繼光)이 개발한 새로운 전술 체계인 절강병법(浙江兵法)이 소개되면서 군사 편제도 함께 도입되었다. 절강병법의 군사 편제는 대장(大將) 아래 5개 영(營)이 있고 영장(營將)이 지휘하였다. 영 아래에는 각각 다섯 개의 사(司)를 두고 파총(把摠)이 통솔하도록 하였다. 사 아래에는 5개의 초(哨)가 있었고 지휘관으로 초관(哨官)을 두었다. 초 아래에는 3개 기(旗)를 두었고 기총(旗總)이 지휘하였고 기 아래에는 대장(隊長)화병(火兵), 그리고 군사 10명 등 모두 12명으로 편성된 3개 대(隊)를 두었다. 『기효신서』에 의하면 사 휘하의 5개 초 중에서 4개 초는 살수(殺手)로 편성하고 1개 초는 조총병인 포수(砲手)로 편성하도록 하였으나 조선에서는 포수의 비중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용례

兵曹啓曰 (중략) 且紀效新書 束伍篇 一司五哨內 鳥銃 只爲一哨 而殺手 多至於四哨 今之練兵花名 則隨見在之數 盡爲砲手 火藥鳥銃 于何辦得而習放乎 火藥 旣不可多得 則減定砲手之數 使得精鍊 而其餘 則敎以射弓槍劍之技 固無所妨(『선조실록』 29년 4월 21일)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기효신서(紀效新書)』
  • 김우철, 『조선후기 지방군제사』, 혜안, 2000.
  •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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