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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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서화의 좋은 점을 찬미하고 칭송하는 한문 문체.

개설

찬(讚)은 찬(贊)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송(頌)’과 성격이 같아서, 제사에서 신명(神明)에게 송축하는 말로 고하던 글이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점차 그 성격이 달라져, 신명에게 고하는 것은 도외시되고 인물의 덕을 찬미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 듯하다. 찬은 한나라 때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형가(荊軻)의 찬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전하지 않지만, 형가의 인물됨을 찬미한 작품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이를 모방하여 찬을 짓는 사람이 늘어났고,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과거 시험 과목이 되기도 하였다.

육조시대의 문예 평론가인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찬(贊)을 비롯해 의(議)·설(說)·전(傳)·주(注)·평(評)·서(序)·인(引) 등 8종을 모두 논(論)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비해 청나라 때의 문학가 요내(姚鼐)는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에서 찬(贊)을 송(頌)·부명(符命)과 더불어 송찬류(頌讚類)로 분류하였다. 이 세 문체는 압운을 한 까닭에 형식상으로는 운문이지만, 내용은 산문적이다.

내용 및 특징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가 각각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편말에 붙인 찬은 운문이 아니라 산문이었다. 한나라 때는 찬이 산문으로 지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가 육조시대 송나라의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의 찬을 운문으로 지은 것을 계기로, 이후 찬은 운문으로 정착되었다.

찬은 각 구를 4언으로 하고, 격구(隔句)하여 운(韻)을 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5언~7언 또는 8언~9언 등의 장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경우에도 운자는 꼭 달았다.

명나라의 서사증(徐師曾)은 『문체명변(文體明辨)』에서 찬의 종류를 잡찬(雜贊)·애찬(哀贊)·사찬(史贊) 등 셋으로 나누었다. 잡찬은 인물이나 문장, 서화 등의 뛰어난 점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글이다. 애찬은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덕을 기리고, 사찬(史贊)은 인물의 잘잘못에 포폄을 가하여 논평하는 글이다.

변천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시대에 처음 찬이 도입된 뒤 먼저 잡찬이 크게 유행하고, 애찬과 사찬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발달한 듯하다. 최초의 찬은 신라시대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화엄불국사석가여래수상번찬(華嚴佛國寺釋迦如來繡像幡贊)」이다. 이후 영찬(影贊)·진찬(眞贊)·상찬(像贊)·자찬(自贊) 등과 같이 인물의 영정 옆에 그 덕을 찬미하여 쓰거나, 서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승려의 불덕을 칭송하는 찬이 부기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인 김석주(金錫冑)는 「제사기발췌(題史記拔萃)」를 작성하여 『사기발췌』를 엮은 경위를 밝히고, 사마천의 자서(自敍)를 모방해 발췌한 60편의 글에 대한 찬어(贊語)를 지었다. 김석주는 어려서 조부 김육(金堉)과 외삼촌 신최(申最)에게서 『사기』의 「항우본기」와 열전을 배운 일이 있는데, 병자호란 이후에 『사기평림(史記評林)』의 낙질을 정리하고 그것을 대본으로 하여 본기(本紀) 3편, 서(書) 3편, 세가(世家) 5편, 열전 49편을 뽑아 이 책을 엮었다.

찬 가운데는 초상화에 그 인물의 행적을 찬미하여 써넣는 진찬(眞贊), 자서전의 일종인 자찬(自贊) 등이 있다. 그중 자찬은 사진에 써넣기도 하고, 사진과는 별개로 작성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도 자찬이 많이 나왔지만, 특히 조선시대에는 내면의 수양을 중시하는 철학 사상의 영향으로 자찬이 많이 지어졌다. 예컨대 1761년(영조 37)에 영조 역시 자찬을 지었다(『영조실록』 37년 3월 8일).

자찬은 대개 유교 사상에서 연유했지만, 유교의 틀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유교적인 내용이 아닌 불교나 도교적인 내용을 담은 글이 나타난 것이다. 장유(張維)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산수 간에 거처하며 양생하는 삶이 만족스러움을 나타낸 「지리자자찬(支離子自贊)」이 그 예이다.

찬의 문체는 기명(器銘)과 화제(畵題)로서 널리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 심경호, 『한문산문의 미학』(개정증보), 고려대학교출판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