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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1 기준 최신판



장악원에 소속된 악기 연주자로, 악공(樂工)이라고도 함.

개설

조선시대 중앙의 음악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음악인 중 악기를 연주했던 음악인을 공인(工人)이라고 하였다. 한글로 ‘고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공인들은 성종대에 장악원에 소속되었으며, 이들의 직위는 체아직(遞兒職)으로, 1년에 두 차례 윤번(輪番)으로 재직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에 중앙 음악 기관인 장악원은 아악(雅樂)을 연주하는 좌방(左坊)과 속악(俗樂)으로 불리던 향악(鄕樂)당악(唐樂)을 연주하는 우방(右坊)으로 나뉘었다. 좌방에 소속되어 악기를 연주했던 악생(樂生)과 우방에 소속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을 통칭하여 공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서 공인은 악생과 악공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악공을 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좌방의 악생은 제례의식에서 아악을 담당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악생은 신분적으로 양인에서 선발되었다. 우방의 악공은 종묘대제(宗廟大祭), 경모궁대제(景慕宮大祭), 관왕묘제(關王廟祭)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전정조회(殿庭朝會)·진하(陳賀)·헌가고취(軒架鼓吹)·대가전후부고취(大駕前後部鼓吹)·전후고취(前後鼓吹)·외진연정재악(外進宴呈才樂)·내진연정재악(內進宴呈才樂) 등의 음악과 춤 반주를 담당하였다. 악공은 공노비 중에서 선발되었고, 양인도 원하면 악공이 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원칙적으로 정부는 필요한 수의 악공과 악생을 팔도에 배정하고, 각 도는 그 배당된 수를 뽑아서 올려 보내야 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지방에 배정된 악생과 악공들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돈으로 대납(代納)하였다.

변천

조선시대에 악기 연주자의 통칭이었던 공인은 궁중과 지방 관아에 소속된 음악인뿐만 아니라 민간의 악기 연주자를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악사(樂士)로 불렸으며, 현재는 국립국악원 연주단으로 계승되었다.

의의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 서인화, 「장악원의 관원·악인·습악」, 『역대 국립음악기관 연구』, 국립국악원, 2001.
  • 송방송, 「장악원과 궁중악인 연구-17세기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1982.
  • 장사훈, 「장악원고-장악원 제조를 중심으로」, 『국악사론』, 대광문화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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